인터뷰-이트레이드증권 박무현 책임연구원

“친환경선, 해운업계 구도 재편할 것이다”

2012-07-26     강민철

최근 친환경선 전도사를 자처하며 친환경선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이 있다. 매일 친환경선에 대한 이슈 코멘트를 발표하고 있는 이트레이드증권 박무현 책임연구원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5월 말부터 꾸준히 친환경선 이슈를 제기하고 있는 박 연구원은 친환경선은 업계 판도를 바꿀 대형 이슈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향후 늘어날 친환경선 발주의 상당수를 국내 조선업계가 수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그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연구원이 왜 친환경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하는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20일 그를 직접 찾아갔다. 오전 9시 여의도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긴 3시간 동안 이뤄졌다. 한쪽 벽면에 마련된 보드판을 수차례 지워야 했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친환경선의 중요성을 역설한 그의 모습에서 고사성어 ‘不狂不及’이 떠올랐다.

너무도 많은 얘기가 오갔기에, 불가피하게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글로벌 선사들의 동향을 주시해야 합니다”

- 왜 ‘친환경선’일까요?
= 머스크가 1만8000teu급 Triple-E 클래스 컨테이너선을 왜 발주를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들 불황이라고 외치는 상황에서 컨테이너선사 1위 업체가 왜 초대형 투자를 단행했을까요? 그것은 시장을 확장하기 위한 포석이라기보다 점유율을 뺏어오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점유율 쟁탈전에서 이기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친환경’과 연결되는지 살펴보면 재미있습니다. ‘Triple-E’에서 주목할 점은 엔진입니다. 1만5500teu급인 ‘EMMA Maersk’와 비교했을 때 적재량은 16% 늘어났지만, 추진마력은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머스크가 채택한 엔진은 MAN Diesel사 제품인데, 컨테이너선을 위해 개발된 K-Type(Normal Stroke) 엔진이 아니라 벌크선과 탱커를 위해 개발된 S-Type(Super Long Stroke)입니다. K-Type이 RPM 120 이상인 반면, S-Type은 70~90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머스크는 S-Type을 Ultra Long Stroke로 개조해 장착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기존보다 RPM은 낮추고 출력은 더 높였다, 즉 적재를 늘리되 연료비는 낮춘다는 것입니다. Triple-E가 기존 컨테이너선과 다르게 넓고 뚱뚱한 선형으로 건조되는 것은 저속운항에 적합한 S-Type 엔진에 맞추기 위함입니다. S-Type엔진 장착으로 이산화탄소 발생도 최대 50% 절감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머스크의 행보는 친환경을 내세우면서도 경제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머스크가 이미 10여년 전부터 연료효율을 개선한 친환경 선박을 발주해왔다는 것입니다. 머스크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207척의 컨테이너선을 인도 받았는데, 이 중 121척이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된 것입니다. 단순히 값싼 배가 아니라, 연료 효율을 개선한 컨테이너선을 꾸준히 확보해 왔다는 것이죠. 내년 6월 Triple-E가 구주항로에 투입되면 해운업계에 큰 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기존 구주노선이 매출 싸움이었다면, Triple-E 출현 이후에는 연비경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 흐름은 계속 변해왔습니다. 슬로우스티밍이라는 흐름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물동량ㆍ선복량ㆍ유가 등을 고려했을 때 고속운항은 이제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작년 7월 IMO/MEPC 62차 총회에서 EEDI와 SEEMP가 강제 규정으로 채택됐습니다. 해운업계는 EEDI를 위해 CO2배출을 감소해야 하고, SEEMP를 위해 선박 운항시 에너지효율을 높여야하기 때문에, 저속운항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운업의 경쟁력은 운임입니다. 운임이 낮은 선사가 이기는 싸움에서 운임을 낮추기 위해서는 운항비를 줄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결국 연료 효율을 개선한 친환경선대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인데, 머스크는 이미 10년 전부터 이를 준비해 왔다는 것이죠.

머스크는 환경규제를 오히려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자체 선박평가시스템인 MSPS((the Maersk Ship Performance System)를 시행해 결과를 매월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주에게는 같은 조건이라면 친환경선이 더 매력적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머스크는 운임 인하여력도 충분합니다. 머스크 발표에 따르면, 머스크는 지난 3년간 친환경선대를 통해 약 9000만 달러의 연료비를 절감했습니다.


- 중고선 거래량과 해체량 추이를 통해서도 친환경선이 부각되고 있다고 주장하시는데,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 벙커유가가 2009년 톤당 372달러에서 올해에는 톤당 73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선사들이 저속운항으로 연료소모량을 10%가량 줄였지만, 연료비는 두 배 높아진 것이죠. 운임마저 바닥인 상황에서 이미 기존 선대는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현재 벙커유가를 기준으로 1만teu급 컨테이너선을 20년 간 운항할 경우, 연료비가 신조가의 8배 가까이 나오며, 벌크선과 탱커도 5배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금 여력이 있는 선사라면 기존 선대를 해체하고 친환경선대를 갖추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MOL이 선령 15년 정도의 벌크선과 탱커를 해체하고 차세대 선박을 발주하겠다고 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실제로 스크랩가격이 떨어지고 있지만, 올해 선박 해체량은 오히려 중고선 거래량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해체가 늘어날 이유가 없는데도 해체가 늘고 있고, 더군다나 해체선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또한, 현재의 과잉선복과 내년까지의 엄청난 인도량을 감안하면 신조가 나올 이유도 없지만, 신조발주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중고선 거래량을 상선시황 지표로 활용했지만, 현재의 분위기에서는 해체량 추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해체량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기존 선대의 경제성이 매우 낙후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이 있는 선사들이라면 지금이 친환경선 발주를 위한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친환경선 건조능력은 국내 조선사가 최고다”

- 머스크의 행보에 주목하시고 계시는데, 조선업계가 해운업계 분위기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 조선업계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제품을 미리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주문을 받고 나서야 제품을 만드는 산업입니다. 조선업이 시장을 주도하지 않기 때문에 해운업계, 그 중에서도 글로벌 리더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지금의 친환경선 발주는 조선업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불황 속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해운업계의 고민의 결과이고, 그 결과가 선형이 바뀐 친환경선 수요로 나타난 것이죠. 조선 호황기에 중국이 상선 수주를 휩쓴 것은 국내 조선업계가 배를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선주들이 중국 조선업계에 발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호황기에는 싼 가격에 빨리 인도 받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중국이 수주를 휩쓸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저속운항이 정착된 지금에는 가격보다는 연료효율성이 더 중요합니다.

문제는 국내 조선업계가 새로운 흐름에 대비하고 있느냐입니다. 다시 MAN Diesel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만디젤은 2010년 8월 G-Type엔진을 출시했습니다. ‘Green Ultra Long Stroke’라고 하는데, 기존 S-Type 엔진보다 RPM을 낮추고 출력을 높인 엔진입니다. 현재는 중형선박에 적용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모든 선종과 모든 선박에 Ultra Long Stroke 엔진이 탑재될 것으로 보입니다.

저속운항에 적합한 엔진을 출시한 만디젤이 어느 조선소를 사업파트너로 선택하고 있을까요? 바로 국내 조선사들입니다. G-Type엔진을 장착한 선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갖췄다는 의미겠지요.

저속운항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에 적합한 엔진 뿐 아니라, 엔진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선형이 출현해야 합니다. 머스크의 Triple-E가 저속운항에 따른 저항을 줄이기 위해 넓고 뚱뚱한 형태인 것이 그것이죠.

선사들이 새로운 형태의 선박을 과연 중국에 발주를 할까요? 누적 건조량의 차이, 설계도면에 대한 해석능력, 운항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 해결 능력 등 건조기술에서 중국은 한국에 감히 견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 국내 조선사들이 받은 수주상담을 살펴보면, 역시나 선박 선형이 옆으로 넓어진 연료효율적 친환경선이 대부분입니다. 아마 중국 선사들도 한국 조선소에 발주하고 싶을 것입니다. 에버그린이 왜 직접 발주가 아닌 용선형태로 친환경선을 확보했을까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양밍이 하반기에 컨테이너선 발주에 나설 계획인데, 아마 에버그린과 비슷한 방식으로 발주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국내 조선사들의 경쟁력이 뛰어난 것이죠.

오히려 걱정해야할 부문은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봅니다. 일본 조선업계가 불황 극복을 위해 친환경선 분야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머지않아 중국을 제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해 봅니다. 그만큼 향후 상선시장에서는 친환경선 건조능력과 경험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말씀을 종합하면, 결국 상선시장이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 저는 현재 나오는 불황 전망은 단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선사나 국제기구가 보여주는 팩트들은 상선시장의 희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새로운 흐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존의 시각, 즉 경제가 성장하면 물동량이 증가해 상선발주가 늘어난다는 것은 중국발 경제확장 국면 속에서 해운시황과 조선시황이 일시적으로 맞아떨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기본적으로 상선시황을 움직이는 동인은 글로벌 선사들의 선대경쟁입니다. 누가 더 운임을 낮춰 점유율을 높이느냐의 싸움이죠. 이미 작년부터 친환경선 발주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2007~2008년 초호황기와 비교해 보면 발주량 자체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고, 그러한 호황이 다시 찾아올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호황기에 중국의 자체물량을 제외하면 현재와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양적인 발주량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도 새로운 선박이 출현할 때 조선업계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VLCC와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의 출현, 이중선체 탱커 규제가 그러했습니다. 현재는 친환경선이 새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상선을 발주되고 있고, 그 상선은 연료효율을 개선한 친환경선이며, 그것을 건조하는 조선소는 국내에 있습니다.


- 결국, 친환경선의 출현은 해운업계나 조선업계 구도를 재편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클 것 같습니다.
= 지금 중요한 것은 양 업계가 친환경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을 빨리 끝내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친환경선을 확보하고, 누가 먼저 친환경선을 건조하는가, 이것이 중요하겠죠. 컨테이너선사들은 아마 머스크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것 같습니다. 시황을 주도하기는커녕, 머스크를 쫓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컨테이너선사들이 얼라이언스를 통해 머스크에 대적하겠다고 나섰지만, 맥을 잘못 짚은 것입니다. 누가 운임을 낮출 수 있는 효율적이고 강력한 배를 갖추느냐의 싸움인데, 기존 선대 규모로 승부하겠다는 것이죠.

국내 조선업계에는 장기 수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선가가 바닥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조선업계의 경쟁력은 Man-Hour입니다. 선가의 고저는 시황의 문제일 뿐, 조선소의 경쟁력과는 무관합니다. 고마진으로 1척을 수주한 것과 저마진으로 대량 수주한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수익 측면에서 유리할까요? 단연 후자입니다. 그만큼 얼마나 Man-Hour를 줄일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경험 축적이 이를 좌우합니다. 대량 수주를 할 수 있는 능력과 Man-Hour를 줄일 수 있는 능력에서 국내 조선소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죠.

해운업계가 원하는 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한국 조선업계에 대한 관심을 높여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