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윤민현
윤민현

1. 글로벌 항로가 위협받고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장 먼저 나타났던 현상은 흑해를 통항하는 민간 상선에 대한 통항금지, 제재 혹은 공격이었다. 뒤이어 기후변화가 초래한 갈수 현상으로 파나마운하의 통행이 제한되더니 2023년 11월에는 예멘 후티 반군에 의한 아덴만과 홍해를 통과하는 민간 상선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 결과는 흑해에 이어 양대 요충인 파나마운하와 수에즈운하 통항이 동시에 어려워진 3중고(tripple whammy)로 인한 공급망 혼란의 내용을 보면 이동거리가 길어지고, 비용이 증가하고, 상품의 흐름이 지연되고, 전 인류의 공통 과제인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대를 초래하고 있다.

2020년부터 약 2.5년에 걸친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 대혼란을 경험하면서 각국 정부들은 공급망의 안정을 강조하며 공급망의 탄력성 회복을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공급망 위기상황의 근원을 살펴보면 과연 그토록 강조해왔던 공급망 강화와 탄력성 회복에 정치권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해운시장은 현명하게 대처해왔다. 많은 경제전문가와 학자들이 오랜기간에 걸쳐 지적했던 것처럼 모든 공급망의 회복력(resilience)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수요의 동향을 사전에 충분히 예측하고 수요의 흐름을 지체없이 해소할 수 있는 공급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문제는 현재의 3대 요충을 가로막고 있는 지정학적 갈등이 조만간 해소되지 않을 경우 해운업계는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해야 하는가가 문제다.

(1) 공해상의 안보

흑해에서 홍해에 이르는 일련의 위기상황이 국제 규칙과 질서가 최근 들어 붕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연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선박은 공해를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는 공해상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 at seas)가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는 전함이 횡행하는 가운데 기뢰가 부설되기 시작했고 곡물을 선적한 벌크선은 교전 당사국의 승인을 득해야만 항해가 허용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② 아프리카 북동부 이른바 Horn of Africa로 불리는 주변 해역과 말라카 해협에서 출몰했던 해적들도 한때 진압된 듯 보이더니 다시 고개를 들고 통항 선박들을 위협하고 있다.

③ 홍해에서는 후티 반군이 일반 상선을 공격하는가 하면 그 여파로 해상운임이 2~3배까지 급등했고 언제부터인가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통로인 홍해라는 해역에서는 미국, 영국, 이스라엘 선박을 사양한다는 시그널을 발하고 있다.

④ 남중국해가 국제수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신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가 하면 대만의 흡수통일을 주장하며 대만해협의 통항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해운 역사상 이처럼 광범위하게 공해상 항행의 자유 원칙이 흔들리거나 지정학적 갈등으로 글로벌 무역 루트가 위협을 받는 예는 없었다. 공해(high seas)는 글로벌 경제가 양대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는데 결정적인 통로가 됐다. 컨테이너선들은 공해상 항행의 자유를 통해 상품을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중국은 오랜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으며 미국 역시 중산층의 기반구축과 함께 미 달러를 글로벌 기축통화로 정착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2) 공해상 항행의 자유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며 국제법상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비판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흑해의 폐쇄를 선언한 직후 서방을 향해 우크라이나 항만에 기항하는 선박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적대국으로 간주할 것이며 우크라이나를 향하는 선박들은 군사적 공격의 타겟이 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석유를 수송하는 러시아 탱커는 물론 제3국의 민간 상선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경고했다.

사실상 중립국가들의 선박들에게 주어진 타국항에 기항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리를 부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되돌이켜 보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이 쿠바에 대한 검역제한 조치를 선언한 것이나 1967년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아카바만과 홍해를 잇는 티란 해협(Straits of Tiran)을 봉쇄하면서 이른바 6일 전쟁(Six-Day War of 1967)의 단초를 제공했던 이후 반세기 만에 러시아가 유사한 카드를 들고 나선 것이다.

런던을 포함한 서방의 유력 법률사무소들은 UN 해양법(제17, 18, 19, 제25조 3항)이 공해상의 무해 자유통항권(right of innocent passage)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무력위협은 법적 근거가 없으며 러시아가 Odesa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항만에 기항하는 제3국의 선박을 공격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UN 해양법이 금지하고 있는 민간선박의 자유통항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콜럼버스 항해시대 이후 해적선, 사나포선(privateer : 私拿捕船)과 무장한 함선들은 어느 국가의 선박이 자신들의 통제수역을 통항할 수 있는지를 결정해왔고 그 기준은 어느 나라의 국기를 게양하고 있는지에 따라 좌우돼왔다. 유럽의 해운사(史)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나포선이라 함은 교전국의 선박을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민간 소유의 무장 선박으로 해상에서 적국과 싸우고, 적의 상선(商船)을 나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선박이다. 정부로부터 보수를 안 받는 대신 나포한 화물·돈을 환산해 분배받을 권리가 있다. 사나포선의 활동은 16~17세기 영국·네덜란드가 에스파냐와 맞설 때 많았고 또한 미국독립혁명, 1812년부터의 영미전쟁(英美戰爭)에서도 활동했다.

이와는 대칭되는 개념의 공해상 항행의 자유(freedom of the seas)는 원래 1960년대부터 거론돼 왔지만 실질적인 효력을 갖게 된 것은 1945년 미 해군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부터다. 그 당시만 해도 미 해군은 약 7,000여척에 이르는 함선과 전직 해병 혹은 상선사관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해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오늘의 미 해군력은 300척이 안되는 함정을 운용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함대는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인공섬을 조성하고 기지를 건설하며 터무니없는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배후에는 이처럼 막강한 해군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남중국해에서 자유항행권을 주장하는 누구든 중국의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 누가 보장하는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강대국들은 바다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합심해왔다. 2008년 소말리아 해적들이 중국 선박 2척을 납치했을 때 해적행위를 단속하기 위해Horn of Africa 해역을 순찰하는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이 함정을 파견했다. 냉전 이후, 러시아는 빙하가 녹으면서 새로운 항로의 개설에 대비해 북극해에서 핵폐기물을 청소하는 작업에 미군과 협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러시아, 중국 3대 강국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때 전 세계에 걸쳐 세를 과시할 만큼 강력한 해군을 보유했었던 유럽과 일본을 향해 미국은 아직도 전략적 제휴를 요구하고는 있지만 현재 유럽과 일본은 위기에 동원할 수 있는 충분한 해군력이나 인적 자원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해군력은 지금부터 250년전 미 독립전쟁 당시보다도 더 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미 해군은 상선의 항로, 해저케이블은 물론 가스 파이프라인까지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글로벌 무역에 필수요건인 공해상 항해의 자유원칙에 익숙해 있는 모든 국가들은 수에즈운하, 대만해협, Horn of Africa 등 해상교통의 요충지가 모든 선박에 열려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기 위해 소요되는 재정적 부담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한발 물러서 있는 것도 현실이다.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는 중국이고 그 비용도 스스로 감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유항행을 강조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항상 미국이어야 하는가? 몇몇 국가들의 연합체(coalition)인가? 그렇다면 누가 그런 연합체를 결성하고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가? 등의 질문에는 마땅한 답변을 찾기가 어렵다.

생산과 물류의 활동이 거대화되고 글로벌화되다 보니 공급망상의 조그마한 변수에도 글로벌 시장은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어떤 사유로 주요 해협이나 요충지를 포함한 해상 공급망에 장애나 걸림돌이 나타날 경우 그 피해 역시 막대하다. 2021년 수에즈운하를 약 1주일 동안 봉쇄시켰던 Ever Given호 사고가 가장 좋은 사례다. 팬데믹 기간동안 나타났던 공급망의 병목현상으로 화물의 흐름이 마비되면서 미국의 주요 항만은 대기하는 수많은 선박들로 인해 물류 공급망이 거의 마비되는 사태를 빚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귀착됐다. 해상의 공급망이 의외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다.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이유로 공해상의 자유 항해 문제가 다시 글로벌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해상의 안보위기가 맞물리면서 전세계를 향해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공해상 항행의 자유는 과연 지켜질 것인지?. 만일 이 원칙이 흔들린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1) 기후변화와 파나마운하

그동안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통해 글로벌 무역을 촉진하는데 일익을 담당해 온 파나마운하는 미국이 건설해 1914년에 개통됐고 2000년까지는 미국의 통제하에 있었다. 미국 전체 연간 컨테이너 이동량의 40%가 운하를 통과할 정도로 파나마운하는 미국의 경제적 안보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요충로라 할 수 있다.

① 갈수사태

적도 기후대(氣候帶)에 속하는 파나마는 비가 많이 내리는 국가로 통상 5월에서 11월까지가 우기(雨期)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대서양의 대기 온도가 상승하고 태평양에서는 엘니뇨(El Nino) 현상까지 가세하면서 건기(乾期)가 길어지고 지역의 기온도 상승하고 있다. 70년내 최저 강수량으로 인해 갈수현상이 장기화되다보니 파나마운하에 물을 공급하는 Gatun lake의 수위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파나마운하가 선박 1척을 통과시키는데 소요되는 수량(水量)은 파나마 인구 50만 명이 하루 사용하는 수량과 맞먹을 정도다. 제한된 수량을 운하용과 주민용으로 배분해야 하는 파나마 정부 입장에서 가뭄이 길어질 경우 또 다른 고충에 직면하게 된다.

② 통행제한

2016년 확장을 통해 그 동안 5천teu급이 주력이었던 USEC 항로가 이제 1만 5천teu 까지 가능해졌으며 USEC의 물량은 46.8%, 서안은 18.4% 증가했고 미 동안 항만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갈수현상으로 파나마운하가 통항 선박의 수위 조절에 나섰던 것은 2020년에도 있었다.

2016년 확장공사가 끝난 이후 하루 통과 척수는 40척까지 올라갔으며 2022년에는 평균 35.4척으로 줄었고 2023년 7월 32척으로, 금년초에 18척으로 축소할 예정이었으나 지난해말 비가 내리면서 약간 완화됐다. 이번에는 통항 척수 제한에 흘수(draft) 제한 조치까지 취하다 보니 선적화물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제한 흘수가 정상시 50ft에서 44ft로 6ft정도 낮아짐에 따라 1ft당 400teu로 환산할 경우 대략 척당 2,400teu를 싣지 못하게 된다.

운하 양측 입구 대기 시간도 문제다. 2023년 8월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네오파나막스급 선박의 경우 북향과 남향 공히 평균 17시간 정도를 입구에서 대기하기도 했다. 갈수현상이 심화되면서 대기 시간마져 예측 불허의 상태가 되고 있다.

(2) 흑해(Black Sea) 교착상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흑해와 아조프(Azov)해의 통항을 봉쇄하기 위해 기뢰를 부설하는가 하면 선박의 일방적인 억류로 사실상 우크라이나 발착 화물의 통로가 러시아에 의해 전면 봉쇄됐다.

우크라이나는 광활한 경작지를 기반으로 한 곡창지대가 많은 국가로 보리, 밀, 옥수수 등은 글로벌 물량의 거의 1/3을 점할 정도로 최대 수출국이다. UN에 의하면 중동, 북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일부 국가에 걸쳐 약 1억 8100만명이 우크라이나 곡물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곡물 수출길이 막힐 경우 이들 국가는 곧바로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러시아의 흑해 봉쇄조치로 우크라이나 발착 컨테이너,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Landbridge 서비스도 전면 중단됐고 중국이 국책사업으로 추진중인 Belt & Road Initiatives(BRI)도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해운계는 스스로 알아서 아조프해와 흑해 주변의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사실상 우회적으로 제재에 동참했다. 영국은 러시아 선박의 영국항 입항을 금지했고 미국과 캐나다와 북미 서안의 29개항에 종사하는 항만근로자 2만여명이 러시아 선박과 러시아 화물의 하역작업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러시아 선박과 화물의 미 서안항 기항 금지에 상당하는 조치다.

(3) 홍해사태

홍해는 글로벌 곡물의 8%, 석유의 12%, LNG 8% 등을 포함해서 글로벌 해상 물동량의 15%가 통과하는 요충지다. 2023년 10월 14일자로 예멘의 친이란 무장조직인 후티(Houthis) 반군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홍해를 항해하는 이스라엘 관련 상선을 공격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고 11월 19일 NYK가 용선 운항중인 PCTC Galaxy Leader호를 납치하면서 홍해 위기가 시작됐다. 해상운임은 급등세를 보였고 한동안 부품 도착 지연으로 독일과 벨기에에 위치한 Tesla, Volvo 등 자동차 공장이 일시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뿐 만 아니라 봄철용 의류, 신형 휴대폰 등의 생산도 영향을 받았고 가장 심각한 사태는 글로벌 식품 가격의 상승이다(UNCTAD).

홍해는 수에즈운하로 연결되는 유일한 진출입로다, 1869년에 개통된 수에즈운하는 그동안 정치적 이유 혹은 중동전쟁의 영향으로 1956~1957년, 1967~1973년 두차례에 걸쳐 장기간 폐쇄된 적이 있었고 2021년 선박사고로 일주일 가깝게 통항이 중단된 적은 있었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아덴만과 홍해를 항해하는 제3국 선박들에 대한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이어지면서 컨테이너 선은 물론 일부 벌크선, 탱커들도 희망봉 우회항로를 택했다. 아시아-USEC 선박들도 파나마운하 통항 제한 때문에 수에즈운하 통항을 추진했다가 홍해사태가 발생하자 이제는 희망봉으로 선수를 돌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 함정들이 수에즈운하를 통항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홍해사태에 개입했다. 미 해군이 미국 선박이 아닌 타국 선박에 대해 광범위한 보안대책을 마지막으로 펼쳤던 것은 상선에 대한 독일의 U-boat와 일본의 어뢰공격이 행해졌던 2차 대전 당시였다. 거의 80년 만에 미국이 다시 그때와 유사한 전략으로 복귀한 것이다.

1월 말, 후티 반군측이 러시아 미디어를 상대로 러시아와 중국 선박에 대해서는 공격을 하지 않을 것임을 공언했고 실제 러시아와 중국은 홍해해역에서의 군사작전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란의 지원하에 후티 반군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요충의 하나인 홍해의 입구에 서서 자신들만의 기준에 의해 통과할 선박을 선별, 교통정리하는 해프닝이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국이 보호하고 있는 홍해를 러시아산 석유를 운송하는 선박과 중국 국적선들의 이용이 증가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일반 상선들이 서아프리카, 소말리아 등에서 종종 위협을 받았듯이 이번 홍해사태가 예외적인 것은 아니지만(not-exceptional)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3국의 민간상선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unusual)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충돌이 가시화되면서 최근 아덴만과 홍해를 통항하는 선박에 대한 전쟁보험료(war risk)가 평상시 0.01~0.02% 수준에서 최근 1% 수준으로 100배 인상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3~5% 수준까지 부과됐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4) 군사적 대응의 한계

홍해에서 상선 공격이 이어지자 지난 12월 BIMCO, ICS 등이 나서 함정파견을 요청했고 곧이어 미국, 호주, 캐나다, 덴마크, 독일, 이탈리아, 일본, 네델란드, 영국 등 13개국으로 구성된 Operation Prosperity Guardian(OPG)란 다국적 T/F가 결성됐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 선박은 물론 그 외 제3국 선박까지 공격이 이어지자 미국과 영국이 후티 반군의 육상기지공격에 나섰지만 후티 반군도 물러서지 않았다. 1월 15일 홍해를 향해 아덴만에 진입한 미국 소유의 Ultramax Gibraltar Eagle호가 해상에서 미사일에 피격된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은 후티 반군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이란이 이스라엘 전쟁에 개입, 중동사태가 악화될 것을 경계한 나머지 이란에게 개입할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그동안 예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최대한 자제해 왔다. 그러나 자국 소유의 선박이 피격당한 이상 더 이상 자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물론 군사적 대응에도 한계는 있다. 홍해와 아덴만을 제대로 커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전력의 함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개당 2만~5만 달러에 달하는 무인기(드론)를 격추시키기 위해 1기당 백만불을 호가하는 미사일을 사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 연합함대의 힘만으로는 후티 반군을 무력화 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대세를 이루다 보니 상선들의 희망봉 우회가 증가하고 있다.

홍해에는 현재 미 항공모함 아이젠하워호를 포함해서 미사일 구축함 등 전투함들이 배치돼 있지만 사실상 레드 라인을 넘은 후티 반군의 도발을 그냥 감내할지 아니면 확전을 감수하고 후티 반군의 육상 기지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공격을 감행할 것인지 여부에 따라 중동사태와 홍해위기의 향배도 달라질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엄청난 전비가 소요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전까지 가중되다보니 사태가 다시 중동전으로 확대될 경우 그 결과는 예측불허의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란도 겉으로는 사태의 확산을 원치 않는다며 자신들의 배후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서방에서는 그 말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 가자지구의 전쟁이 중단되게 되면 중동 전역의 전쟁이 중단될 것이라며 UN도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전 자체가 이스라엘-가자 전쟁의 해법은 아니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기본 인식으로 보인다.

(5) 중국, 후티 반군에 자제 요청

홍해사태를 두고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중국이 이란을 향해 후티 반군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청하더니 곧이어 후티 반군에게도 민간선박에 대한 공격중단과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탱커, 벌크선을 포함한 많은 선박들이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로 전환하면서 중국 수출상품의 도착 지연과 함께 운임까지 상승하면서 수입지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에너지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수입 활동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진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번 발표는 최근 후티 반군측이 중국과 러시아 선박에 대한 무해통항을 보장하겠다고 공개 발표를 한 이후이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이 단순히 중국 선박의 안전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위협이 자국의 이해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3. 공급망의 불안과 해운

(1) 항로운영, 우회할 것인가?

지구 온난화 진행에 비춰볼 때 파나마운하의 이번 갈수사태가 운하에 충분한 수량을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저수원이 개발되지 않는 한 장기화될 수 있다. 운하 통행이 어려워질 경우 아시아와 미국 동안을 연결하는 대안은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방안과 미서안을 경유 육로로 미 중부 혹은 동안으로 운송하는 방안 두가지다.

아시아-유럽 항로의 경우 희망봉을 경유할 경우 상해-로테르담을 기준으로 항해거리는 수에즈운하 경유시 7800마일, 우회항로는 1만 4300마일이다. 길어진 항해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선사들은 과거보다 고속항해를 택했고 1만 4천teu급의 경우 항해속력 15~16knts를 20knts로 증속할 경우 왕복 항해를 기준으로 연료비만 최고 400만 달러가 증가한다.

(2) 대안은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공급망의 혼란은 기후변화와 중동사태가 변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파나마운하에 이어 수에즈운하까지 통항이 어려워진다면 해운계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홍해사태의 경우 희망봉 우회항로, 항공 운송으로의 전환에 이어 이미 Hapag-Lloyd가 개설한 Daman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육로로 연결하는 가칭 Saudi Land Bridge도 있다. 파나마운하의 경우도 Maersk가 운하 양측을 연결하는 철도서비스를 이미 개발했다. 우회로 인한 추가시간과 비용만 감수할 경우 선사들에게는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하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

(3) 기회인가, 위기인가?

홍해의 위기가 고조되자 이미 18개 선사들이 희망봉 우회항로를 택했고 운임은 급등했다. 상해-로테르담 기준 현재 운임은 홍해 위기 발생 직전 대비 2~3배 이상 상승했고 선사별로 평균 teu당 450달러 상당의 우회항로 할증까지 부과하고 있다. 홍해사태 직전까지만해도 운임이 바닥세를 면치 못했고 공급과잉 부담이 점점 가중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우회항로를 택하다 보니 공급과잉 우려도 당분간 해소될 것이고, 운임 사정도 낳아진 것이 사실이다.

전적으로 상사적 측면에서만 생각하면 현 시황하에서 톤-마일 증가가 선사에게 불리한 것은 아니다. 홍해사태 초기에는 혼란이 있었지만 이제는 우회항로를 기준으로 선박의 운항과 네트워크가 안정되고 있으며 일시 급등했던 스폿 운임도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홍해사태가 위기인 것처럼 과장되는 경우가 있지만 해운계가 상황에 대체할 수 있는 복수의 카드를 갖고 있는 한 팬데믹과 같은 혼란은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4. 지정학적 리스크와 불확실성

(1) 중국과 대만의 봉쇄 가능성

그동안 동남아 해역에서의 리스크라면 말라카 해협에서 발생하는 절도와 해적 행위들을 꼽아 왔으나 최근 한 전문컨설턴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점차 고조되고 있는 글로벌 차원의 정치적 갈등과 이로 인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과 대만 봉쇄 가능성을 해운과 관련된 최대 리스크로 꼽았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대만은 중국의 일부(province-省)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필요시에는 대만침공을 포함한 군사적 행동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군사행동에는 남중국해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는 카오슝 등 주요항들의 봉쇄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우려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로 인한 충격은 동북아 전역의 해상 교통에도 엄청난 파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2) 러시아와 북극해

흑해 상황도 녹녹치 않다. 2022년 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사실상 흑해 봉쇄를 통해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의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길을 차단하며 글로벌 식량위기와 함께 식품가격 상승을 부추겼던 러시아가 여전히 해운계로 하여금 흑해 통항을 기피하도록 하고 있다.

글로벌 해로의 안전 통항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이 흑해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 러시아는 이미 전략적 필요에 의해 북극에 이미 6개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현재 북극에서 진행중인 해빙현상으로 북극항로(NSR)가 불원 개설될 것이며 이미 시험항해도 마친바 있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유럽항로를 크게 단축해 글로벌 물류공급망의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유럽 안보와 연계해 항로를 선별적으로 운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5. 결언

지난 1월말 스위스에서 개최된 다보스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2024년 최대 리스크중 하나로 전 세계 22억 인구가 참여하는 선거를 꼽았다. 중동사태,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망도 불투명한 가운데 11월로 미국 대선의 향배도 문제다. 선거 결과에 따라 글로벌 무역전쟁 특히 미중간의 갈등을 다시 부추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선거 캠페인 도중 벌써 EU는 과연 미국의 도움없이 자력방어가 가능한가라고 묻고 있다. 그 의미를 익히 알고 있는 폴란드, 프랑스, 독일 등은 유럽 방어를 위한 대안 수립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갖고 유럽의 자체방어력 강화 차원에서 독일에 무기 생산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포럼에서 반 글로벌화(deglobalisation)와 부동조화(decoupling) 문제가 포럼의 주요 아젠다로 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팬데믹으로 고조된 미중간의 갈등의 정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대만해협 문제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내셔널리즘, 보호주의, 토착주의(nativism)에 맹목적인 애국심(chauvinism)까지 겹치면서 갈등의 정도에 따라서는 외국인 혐오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글로벌 해운계의 공통적인 성향은 지정학적, 정치적 리스크와는 거리를 유지한 체 정치논리가 개입하거나 개입되는 것을 극력 자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운계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단 정치논리가 개입하게 되면 해운업계로서는 사실상 대책없이 그 후폭풍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역사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나 정치논리가 해운산업에 부담요인이 되는 경우보다는 득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세계는 글로벌 무역에 의존하고 있으며 원활한 글로벌 무역을 위해서는 파나마운하, 수에즈운하, 흑해와 홍해 그리고 북극항로 등 핵심항로들은 지정학적 갈등과 무관하게 당연히 모든 선박들에게 차별없이 자유 통항이 보장돼야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청룡의 해를 맞이하면서 전세계는 후티 반군에 의한 글로벌 공급망의 혼란사태가 조기에 종식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 비춰볼 때 당분간은 글로벌 무역에 대한 위협과 지정학적 갈등 속에 불투명한 상태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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