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최근 우리나라 예산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항만개발 관련 자문을 해준 적이 있다. 항만의 기능과 항만과 도시의 연계 개발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는데, 놀랍게도 항만의 효율적인 개발이 항만도시의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요지는 항만이 단순히 수출입 화물을 선적하는 곳이 아니고, 기업의 글로벌화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의 제조, 보관, 물류, 유통 등이 부가가치활동이 일어나는 곳으로 항만이 이제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사슬의 연결고리가 됐다는 점이다. 단방향의 수직적 분업에서, 양방향의 수평적 분업이 일어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는 전체 화물의 97%를 항만을 통한 해상운송에 의존해야 한다. 이 때 내륙운송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공급사슬의 경쟁력이고, 따라서 항만배후단지에서 다국적 기업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기업환경이 된 점이다.

즉 항만과 항만배후단지의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는 곧 항만도시의 일자리 창출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결국 항만 및 항만 배후지가 경쟁력이 있어 글로벌 기업들이 다투어 입주하려 한다면 그 항만도시는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할 뿐만 아니라, 그 도시의 고용을 창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각국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항만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투자하는 이유이다.

항만개발 예산을 담당하는 중앙부처나 국회는 항만도시 즉 지방자치단체의 고용이나 부가가치라는 경제적 이익과 항만을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왜일까? 항만 경쟁력 제고와 지자체의 고용창출은 소관사항으로 보나, 정책, 예산으로 볼 때 멀리 떨어져 있는 항목이기 때문은 아닐까?

항만과 도시의 발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상호 연관성이 굉장히 높았다. 그러나 항만을 이용하는 배후 권역이 커지면서 항만과 도시 발전의 상관성이 약해져 왔다. 항만을 이용하는 경제적 효과가 항만도시보다는 내륙의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여기에 항만 때문에 발생하는 부정적 효과만을 항만도시가 떠 않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항만이 다시 항만도시의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의 원동력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OECD가 2010년에 착수한 ‘항만-도시 프로그램(OECD Port-Cities Programme)’의 일환으로 최근 글로벌 항만-도시의 경쟁력에 대한 종합보고서(The Competitiveness of Global Port-Cities : Synthesis Report)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항만으로부터 여러 경제적 혜택을 분석하고 있다. 무역 비용을 절감하고,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고, 특정 산업 분야도 유치할 수 있다. 무역 당사국 두 나라가 동시에 항만 효율을 두 배로 증대시키면 양국 간 무역 물동량이 32% 증가하는 것으로 연구된 바 있다. 또한 항만물동량이 1톤 증가하면 경제적으로 평균 100달러의 부가가치가 발생하고, 또한 항만물동량이 100만 톤 증가하면 단기적으로는 항만도시에 평균 300명의 고용이 창출되는 것으로 연구됐다.

항만이 경쟁력이 있어야 항만도시가 항만 관련 부가가치 및 고용 같은 경제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항만은 해상운송 항로의 증대, 항만 운영 및 항만 배후지 연결을 강화해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항만이 경쟁력이 있어 선박입항이 늘어나는 것은 필요조건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항만의 경쟁력을 통해 입항하는 선박과 화물을 통해 항만 밖, 즉 항만배후단지에서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얻느냐 하는 충분조건일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항만도시가 항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을 늘리기 위해 해상운송 서비스 클러스터, 산업개발, 항만 관련 워터 프런트 개발이라는 세 가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해상운송 서비스 클러스터는 선박금융, 컨설팅, 법률, 엔지니어링 서비스 등 해운산업 관련 고 부가가치 서비스들의 집합체를 구성하는 일이다.

항만 관련 산업개발은 항만도시가 전통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많은 산업이 수입 원자재나 제품이 소비시장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기업의 글로벌화에 따라 항만이 공습사슬관리(SCM)의 거점이 되면서 글로벌 산업이 항만주변에 들어서고 있다. 워터 프런트 개발은 항만과 해운의 유산을 활용해 도시 성장의 한 원천으로 전환시켜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항만배후단지의 고부가가치화, 항만클러스터 육성, 산업단지 유치, 워터프론트 개발 같은 정책을 이미 추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들의 효과가 있는가? 항만배후단지에 입주하는 외국기업들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고, 배후단지 물동량은 늘지 않았다. 당연히 고용창출도 이뤄지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규제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은 도시를 통째로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하고 있고, 지정하려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정 확대를 아무리 주장해도 묵묵부답이다. 우리나라 중앙정부나 국회에서는 항만도시에 경제적 영향을 직접 미칠 수 있는 고유한 정책수단을 찾기 보다는 관리기관별 이해, 형평성, 선택과 집중 같은 비 항만적인 기준에 의해 항만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당해 항만도시는 이러한 항만정책 수립에 소외되어 있고, 이에 따라 일부 항만도시는 아예 무관심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이 두 개의 멀리 떨어져 있는 정책을 연계하기 위해 우선 항만도시가 노력해야 한다. 비록 항만개발과 항만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중앙정부나 항만공사가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도, 그 경제적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지방자치단체, 즉 항만도시의 고유한 정책이 필요하다. 항만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항만개발, 항만의 잠재력을 분석해 이를 마케팅하는 포트세일즈, 내륙연계수송 확충 등 항만도시의 항만물류 고도화를 위한 항만도시 나름의 정책을 세워야 한다. 항만도시의 고용을 창출하는 별도의 정책을 수립해서 이를 정부의 항만정책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정책이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부나 국회가 항만정책이나 관련 예산을 수립할 때 직접 나서서 각 항만도시 입장에서 항만도시정책을 수렴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간의 개발계획 및 예산 투입이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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