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첨단기술에 IT 결합 신산업 창출 계속
“관민 힘 합쳐 IMO사무총장 지원책 마련해야”

한국해운신문은 매년 연초에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해외 물류현장을 취재해 왔다. 최근의 경우만 해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로 이어지는 남미지역을 순회 취재한 적이 있고, 그리스와 두바이를 취재하기도 했으며, 2년전에는 상해지역을 방문하여 취재하기도 했다.

올해는 한국인 사무총장을 처음으로 배출한 국제해사기구(IMO) 본부가 있는 영국 런던을 취재하기로 했다. 1월 1일부터 정식 업무에 들어간 임기택 IMO 사무총장도 직접 인터뷰하고 해운과 금융의 세계중심지인 영국 런던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는지를 취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런던 취재에 있어 국제 해사규범을 만드는 IMO가 위치해 있는 런던이 왜 아직도 세계 해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앞으로 그 역할은 어떻게 변모해 갈 것인지, 앞으로 영국의 경제와 영국 해사산업은 어떻게 변할 것이며,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국제물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물류기업에 대한 취재는 다음으로 기회를 미뤘다.

기자가 영국 런던 취재를 위해 대한항공편으로 출국한 것은 3월 1일 오후 1시 인천공항을 통해서였다. 12시간 30분의 비행 후에 영국 히드로공항에 내려서 지인의 도움을 받아 한인지역 뉴몰든(New Malden)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White Cottage’에 도착한 것이 현지시각 오후 5시반 경이었다. White Cottage 여주인은 반갑게 맞아주었고, 저녁 시간이라며 식사하기를 권했다. White Cottage에는 한국계 은행의 임원 한분과 무역회사 관계자 한사람 등 기자를 포함 한국인 3명이 묵고 있었다.

<워털루역 중심으로 취재 시작>

기자가 영국을 취재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1995년 네덜란드에서 카페리를 타고 영국 휄릭스토(Felixstowe)항 북쪽에 위치한 항만을 통해 영국 런던에 들어와 취재한 것이 처음이었다. 두 번째는 911테러가 터진 다음날인 2011년 9월 12일 영국을 방문해 영국에 주재하는 한국선사 주재원들과 좌담회를 갖은 바 있다. 앞선 두 번의 취재 때에도 기자는 런던의 호텔에 숙박하지 않고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비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식사를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취재에서도 굳이 게스트하우스를 고른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 워털루역 전경

영국 도착 다음날인 3월 2일에 가장 찾아간 곳은 SK해운 런던현지법인 ‘SK Shipping europe plc.’이다. 런던의 가장 중심인 워털루역 근처에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고 교신을 하기에 아주 적합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뉴몰든역에서 기차를 탄 기자는 40분 정도 달려서 런던 워털루(Waterloo)역에 도착했다. 워털루역에서 기차에서 내려 지하 계단으로 빠져나가 큰길을 하나 건너자 SK해운 현지법인이 들어있는 빌딩이 나왔다. 기자는 여기서 강명오 법인장을 만나 영국의 최근 정세와 경제사정 등에 대해서 듣고, 당사자들과의 전화를 통해 스케줄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사실 가장 먼저 한진해운의 영국지사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런던시내에 있던 사무실이 휄릭스토항으로 이전한 탓에 방문할 수가 없었다. 런던 시내에서 휄릭스토항까지는 차로 달려도 적어도 3시간 이상은 걸리는 먼 거리였다. 안타깝게도 이번 취재에서는 방문이 어려웠다.

워털루역은 우리나라 서울역 같이 런던의 상징적인 중심역이다. 모든 철도들이 워털루역에 집결하고 있고 상당수가 종착역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워털루역은 마치 인도 뉴델리의 중앙역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인산인해 사람들이 차에서 우르르 내리고 다시 올라타고 하는 가운데 역사를 빠져나오면 역 광장에 시계탑이 있고 대형 전광판에는 몇 번 플랫폼으로 어떤 기차가 들어오는지 지역별로 자세히 안내를 하고 있었다.

런던 중심 워털루역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SK해운 런던현지법인이 있었다. 직원은 강 법인장과 현지인 한사람, 현지 채용 교포직원 1명으로 모두 3명이었다. 아담하면서도 깨끗한 사무실에서 3명이 열심히 근무하고 있었다. 기자는 방해가 되지 않게 비어 있는 책상에서 전화로 여기저기 컨택 포인트와 교신을 했다.

<IMO 방문 - 해수부 출신들 만나>

본격적인 취재는 2일 오후 IMO 본부를 방문하는데서부터 시작됐다. IMO본부는 워털루역 한정거장 전인 박스홀(Vauxhall)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에 위치한 지역에 있다. 전날 게스트하우스에서 안내를 받은 대로 워털루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정거장 가서 박스홀역에 내리자 출구쪽에 육교가 있었고 그것을 건너서 계속 걸어가자 ‘Park Plaza Riverbank Hotel’이 나왔다. 그것을 조금 더 지나가자 몇 번 와 봤던 IMO 본부 건물이 보였다. 건너편으로 테임즈강을 가로지르는 예의 램버스브리지(Lambeth Bridge)도 보였다.

▲ 테임즈강 강면의 IMO 본부 건물 전경

나는 IMO 본부 건물 앞 길 건너에서 본부건물을 사진에 담았다. IMO소개 사이트나 팜플렛에 나오는 사진보다는 멋이 없지만 리얼한 현장 사진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IMO 빌딩으로 들어서자 사전에 연락을 받은 해양수산부 파견직원인 이시원 과장이 안내소까지 내려와서 직접 기자를 안내했다. 6층 커피숍으로 올라가니 해운항만청 출신으로 IMO에만 20여년 근무하고 있는 민경래 국장과 해양수산부 주영 해무관인 박준영 국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민경래 국장을 다시 만난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그는 한중간의 사랑의 결실로 상징되는 자오즈민과 안재형 커플보다도 먼저 중국여인과 결혼해 제일 먼저 한중커플이 된 인물로 유명하다.

IMO에 가면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었다. 과거 해운항만청에 근무하다가 IMO 정식직원이 된 김성진 국장이다. 그는 커피숍에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가 임기택 사무총장을 정식으로 인터뷰 하고 난 후에 잠시 만날 수가 있었다. 그는 IMO 예산 편성과 관리를 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오후 3월 2일 오후 3시경부터 임기택 사무총장을 정식으로 면담하여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역시 이시원 과장의 안내로 임기택 사무총장을 만나 배석자 없이 단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중요한 사진은 기자가 직접 찍었지만 임기택 총장과 기자와의 기념사진은 IMO 전속 사진기사에게 의뢰를 해서 찍었다.

<힘 합쳐 사무총장 지원책 마련해야 >

임기택 총장은 인터뷰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최근에 주요 인사들과 만났던 얘기를 들려줬다. 2월 3일 IMO를 방문한 반기문 사무총장을 외교사절을 비롯한 1000여명의 청중 앞에서 연설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과 2월 초순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EC(유럽공동체) 각료이사회의 교통부 장관을 만났던 얘기를 꺼냈다. 임 총장은 이러한 만남을 통해 유럽 사람들의 마음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여성인 EC 장관과 허심탄회한 얘기를 통해 하이파이브를 할 정도로 서로 소통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성과라고 했다. 이런 일들을 통해 IMO내부 직원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고 했다.

▲ 기자(우측)와 임기택 총장은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임기택 사무총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 특히 한국 해운물류업계가 국제적인 조류에서 상당히 뒤처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분발을 촉구했다. 컨테이너 총중량 제한 등의 문제에 있어서 선진국들은 엄청나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대비태세는 너무나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IMO를 통한 활동면에서도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 보다도 더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역시 분발해 줄 것을 촉구했다. 임기택 총장은 중국이 IMO에서 가지는 위상이 급신장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고, 해사산업 전반도 우리보다 앞서고 있다며 중국이 어떻게 하는지 잘 파악해 우리가 이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기택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는 2시간 정도 진행됐는데, 임총장이 취임 초기라 방향을 잡아 나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IMO 사무국의 분위기를 점차 바꾸어 가기 위해 큰 배가 방향을 틀듯이 서서히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보수적인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임 총장은 소통을 강조하고, 그를 위해 그룹별로 자주 모임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임 전에 갖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IMO사무국과 각국 대사관이 공동 개최하는 골프대회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임기택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가 IMO에서 가지는 위상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가 당선시킨 IMO 사무총장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임기택 사무총장이 IMO를 변화시키고 국제 해양리더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우리나라 해사관련 산업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기 초반이라서 어려움 점이 많을 것이기에 이런 때 일수록 정부와 업계가 힘을 합쳐 지원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리장성도’ 중국세 신장 실감>

임기택 총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해양수산부에서 파견돼 있는 이시원 과장의 안내로 IMO 본부 건물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본부 건물을 들어서자마자 프론트의 안내 데스크를 통과하기 전에 외부 미팅 룸이 있고 넓은 공간 한 켠에는 선박 모형들이 전시돼 있었다.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건조한 배 모형이 가장 눈에 들어 왔다. 그러나 안내 데스크를 통과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은 중국 만리장성을 그린 그림이었다. 어마어마한 대형 그림 걸개가 눈에 가장 잘 띄는 장소에 걸려 있는 것이다. 2001년에 기자가 IMO를 방문했을 당시 한국에서 기증한 수예품 ‘십장생도’가 걸려 있었던 자리에 현재는 중국이 기증한 만리장성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IMO 내에서 중국의 위치가 급상승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IMO 1층 내부 광경

한국에서 기증한 ‘십장생도’는 2층의 외빈 접견실 한쪽 벽에 붙어 있었다. 접견실이라고는 하지만, 한켠에서 회의를 할 수 있는 구조라서 ‘십장생도’는 주목도가 떨어지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십장생도는 IMO 본부가 현재의 장소(램버스 브리지 옆의 Albert Embankment)로 옮길 때 한국에서 본부 이전을 축하하기 위해 기증한 그림이다. 2001년 기자가 IMO 방문시에는 1층에 있었는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2층으로 옮겨져 있어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관계자들은 IMO내의 그림이나 선박 모형들의 위치는 수시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신경 쓸 것이 없다고 말했다.

본회의장도 방문해 사진을 찍고 관계자들로부터 IMO 전반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마침 본회의장에서는 소위원회가 열리고 있었고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휴식시간이어 몇몇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IMO에 대해 브리핑 받은 내용은 사실은 우리도 다 잘 아는 내용이다. 그러나 기왕에 IMO를 취재한 것이기 때문에 주요한 내용만 요약하여 정리해 보기로 한다.

▲ 우리측이 기증한 ‘십장생도’는 접견실 한켠에 걸려있었다.

<한국은 IMO A그룹 이사국 활동 >

IMO는 조선이나 해운과 관련된 안전이나 해양환경에 대한 보호문제. 해상교통 촉진이니 보상 문제 등과 관련된 국제규범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정부간 국제기구이다. 1959년 1월에 정부간 해사전문기구(IMCO)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IMO(국제해사기구)라는 명칭으로 변경된 것이 1982년 5월이다. 현재 정회원은 171개국이고 준회원은 3개국이다. 한국은 1962년 4월 가입했고, 현재 상위 그룹 10개국이 가입하고 있는 A그룹 이사국으로 당당히 활동을 하고 있다.

IMO는 총회가 매 2년마다 한번씩 본부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사국은 총 40개국으로 구성돼 있고 연 2회씩 열리며 여기서 사업계획이나 예산안 및 전문위원회 상정안 등이 검토돼 총회에 제출된다.

▲ IMO 총회등이 열리는 본회의장 광경

IMO 산하의 위원회는 법률위원회(LEG=Legal Committee),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해사안전위원회(MSC), 기술협력위원회(TC), 간소화위원회(FAL) 등 5개 위원회가 있으며 이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해사안전위원회와 해양환경보호위원회이다. 이와 별도로 전문위원회도 선박설계 및 건조전문위원회(SDC), 화물 및 컨테이너운송전문위원회(CCC) 등 모두 7개의 전문위원회가 있다.

이러한 IMO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바로 사무국이고, 이번에 당선돼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임기택 사무총장 및 6개의 국(局)이 있으며 전체 직원수는 370명 정도이다.

현재 IMO에서 논의되거나 토의되고 있는 주요한 안건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 중요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해사안전위원회(MSC)에서는 여객선의 안전 강화를 위한 논의를 하고 있으며 장기작업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또한 최근에 극지운항선박에 대한 안전기준(Polar Code) 강제화를 위해 SOLAS 개정안을 승인했다. 이 개정안이 채택되면 올해 안으로라도 강제화될 가능성 있다. 극지운항과 관련해서는 선박설계 및 건조전문위원회(SDC)가 극지운항선박에 대한 안전코드(Polar Code)를 개발하고 있으며, 극지방 운항선박원 선원 교육에 대한 관련규정은 인적요소, 훈련 및 당직전문위원회(HTW)에서 검토를 하고 있다. 이밖에도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는 선박평형수 내 생물체와 관련된 논의를 계속하고 있으며, 항해통신 및 수색구조 전문위원회(NCSR)에서는 e-Navigation 전략 이행계획을 만들고 있다.

<“컨테이너 총중량 검증제 대응 늦어”>

이미 IMO에서 승인돼 발효를 앞두고 있는 국제 해사규칙들도 여럿 있다. 이중에 최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7월부터 시행되는 컨테이너 화물 총중량 검증제도이다. 세계선사협의회(WSC)와 국제해운회의소(ICS)가 잘못 검증된 컨테이너 총중량으로 인해 선박 복원성이 확보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며 이를 시정할 것을 요구해 왔고, IMO가 이를 받아들여 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을 개정한 결과이다. 이 제도에 의하면, 하주는 컨테이너의 총중량을 검증해 이를 정확하게 사전에 선사와 항만터미널에 통보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유럽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온 관계로 7월 시행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이나, 우리나라는 업계의 대응이 너무나 늦고 대응태세가 되어 있지 않아 큰 걱정거리라는 지적이 많다. 임기택 총장도 인터뷰에서 컨테이너 총중량 검증제 도입 문제를 다룬 ‘ICHCA 컨퍼런스’ 참가하기 위해 3월 1일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다녀왔다고 밝히고 “선진국들은 계측 장비의 개발을 비롯해 컨테이너 총중량 검증제 도입에 한참 앞서가고 있지만, 우리나라 해운업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해운업계가 국제조류에 너무 뒤쳐져 있음을 지적했다.

임기택 사무총장과 인터뷰가 끝나고 IMO 본부를 살펴본 기자는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임기택 총장을 만나 함께 선상 파티로 진행하는 국제도선사협회(IMPA=International Maritime Pilots Association) 리셉션에 참석했다. IMPA 리셉션이 열린 웰링턴(Wellington)호는 2차대전에 참가했던 슬루프선(돛대가 하나인 범선)으로 당시에는 순시선이었으나 전후에 개조해 리셉션 전용 선박으로 쓰이고 있다.

▲ 리셉션 시작전에 기념사진을 찍은 IMPA 회장(좌측) 과 임기택 총장

리셉션장인 선박 안으로 들어가자 세계도선사협회 회장이자 캐나다도선사협회 회장인 Simon Pelletier씨가 우리 일행을 반겼다. 그와 임기택 사무총장은 구면인 듯 오랫동안 인사를 했다. 선박 하나를 빌려서 하는 선내 파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신기하다는 생각도 잠시, 술잔을 든 채 흔들흔들 흔들려가면서 얘기꽃을 피웠다. 비좁은 사람들 사이로 술잔을 나르는 서빙요원들도 익숙하게 움직였다. 흔들리는 선내 파티야말로 가장 영국적인 파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로이드리스트 - 첨단 정보회사로 변신>

3일에는 해사관련 언론사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해사언론의 시조일 뿐 아니라 세계 언론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로이드리스트(Lloyd`s List)이다. 오전 10시쯤 로이드리스트 편집장인 리차드 미드(Richard Meade)가 안내 데스크에서 기다리던 나를 픽업해 자신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는 홍차를 권하며 나에게 근황을 묻고 자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Lloyd List Intelligence‘의 여러 가지 장점에 대해서 얘기했다.

▲ 첨단화된 로이드리스트의 사무실 전경

Lloyd`s List는 1734년 해운뉴스를 제공하는 주간지로 창간했다. 282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초기에 선박입출항 정보와 함께 해운정보를 실어서 만들었던 로이드리스트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현재는 오프라인 발행을 폐간하고 오로지 인터넷 디지털신문으로만 독자들을 접하고 있다.

로이드리스트가 지면 발행을 포기한 것은 영국 해운산업의 성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드리스트는 창간 100주년이 지난 1837년부터 일간신문으로 매일 발행했었다. 영국의 해운전성기에 일간신문으로 당당히 올라선 것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로이드리스트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영국 컨테이너선사들이 다른 나라로 팔려가고 난 이후 기반을 잃어버리면서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로이드가 결정적으로 변화를 맞은 것은 1998년 모기업인 LLP그룹과 IBC그룹이 합병해 교육, 지식, 이벤트 사업을 하는 Informa 그룹으로 재탄생하면서부터이다. Informa 그룹은 지식, 비니지스 컨설팅, 출판, 교육 등의 사업을 주로 온라인을 통해 하는 회사로 세계 43개국에 65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2012년 유명월간 잡지 Contaunerisation International을 합병한 로이드리스트는 2013년 12월부터 일간지를 폐간하고 온라인언론사로 탈바꿈했다. 로이드리스트의 변화 상황은 현재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한국의 해운언론계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Informa 사무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정보화된 사무실이었다. 사무실 중간 중간에 증권회사의 전광처럼 번쩍번쩍하는 컴퓨터들이 통계자료 같은 정보를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종업원 수가 너무 많아 놀랐으나, 로이드리스트 편집 데스크는 사무실 일부인 Marime 섹션에 머물러 있었다. 근무 중인 기자들도 10명 내외였다. 2001년 로이드리스트를 찾아갔었을 때는 아담하고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현재는 그 때와 달리 역동적이긴 하지만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트레이드윈드와 상호협력 논의>

오후에는 트레이드윈드(TradeWinds)를 방문했다. 트레이드윈드는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가까운 우드스트리트에 있었다. 트레이드윈드가 들어있는 건물을 찾다가 빌딩 3~4채를 동시에 건설하는 대형 공사장을 발견했다. 취재기간 내내 런던시내에서 아파트, 오피스텔 건축 현장을 수도 없이 발견했다. 런던 시내는 부동산 경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곳이었다.

▲ 사무실 회사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한 줄리안 브레이 국장

트레이드윈드에서 만난 사람은 줄리안 브레이(Julian Bray) 편집국장이다. 그와 나는 이미 2001년 그가 로이드리스트에 근무할 때 처음 만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한국에서 몇 번 만난지라 서로 잘 아는 사이라 할 수 있다. 그와 나는 신문사간 협력방안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을 해나가기로 서로 약속을 했다.

로이드리스트 편집장까지 지낸 줄리안 브레이가 어떻게 경쟁사인 트레이드윈드 편집국장을 맡게 됐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줄리안 브레이는 2011년 로이드리스트의 감원 방침에 따라 회사를 나왔고 이후 트레이드윈드에 입사했다고 말했다. 줄리안 브레이가 로이드리스트를 그만 둔 이후 로이드리스트는 오프라인 신문을 접었다는 점은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트레이드윈드 사무실은 많은 인원이 자리하며 활기차게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로이드리스트처럼 번잡하지 않지만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인상을 받았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질 높은 신문을 만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트레이드윈드 방문 이후에는 선박의 가치평가를 하는 콘텐츠로 유명한 베셀벨류닷컴(VesselValue.com)을 찾아갔다. 회사는 관광명소 피카디리 서커스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 회사의 극동지역 담당 직원 아베 준코(Abe Junklo)씨가 기자를 맞이해 안내하고 회사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아베 준코씨는 3년 전 베셀벨류닷컴을 한국에 알리기 위해 방한한 자리에서 만난 경험이 있다.

<베셀벨류닷컴 - 혁신 콘텐츠로 발전>

베셀벨류닷컴은 2011년 5월에 설립된 회사이다. 등록된 선박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해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하고 있다. 처음에는 컨테이너선 가치평가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현재는 거의 전 선종을 망라한 가치 평가를 하고 있으며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LNG선에 대한 가치평가 자료도 곧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베설밸류닷컴은 선박의 고유한 가치평가 뿐만 아니라 시세평가, 현금흐름에 대한 평가, 거래에 대한 조회 서비스등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온라인 위치정보 서비스까지 추가하여 서비스를 계속 확장해 나가고 있다.

▲ 베셀벨류닷컴의 사무실 전경
베셀벨류닷컴 주요고객은 은행과 투자회사, 펀드회사, 리스회사, 보험사 등 금융회사들이다. 물론 선사와 선주사, 손해사정회사, 해상변호사들도 고객으로 자리하고 있다. 베셀벨류는 전 세계 30개국에서 250개 이상의 회사를 비롯해 400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베 준코씨에 의하면, 베셀벨류닷컴은 최근에 기록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아베 준코씨가 입사할 당시인 4년전 직원은 불과 10명 남짓이었는데 최근에는 영국에만 60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런던에 3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고 영국 남부의 섬인 와이트 아일랜드(Wight Island)에 위치한 정보센터에 30명이 근무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제대로 된 사업 아이템을 잡아서 성공했다는 점에서 베셀벨류닷컴의 성공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코트라 런던무역관 방문 상황 청취>

3월 4일 오전에는 런던 시내에 있는 코트라(KOTRA) 무역관을 찾아갔다. 런던무역관에서 장상해 부관장으로부터 영국경제의 현황, 한-영 관계, 국내 기업의 진출 현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기자는 먼저 장상해 부관장에게 런던 시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건물 건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그는 최근에 주택 경기 붐이 일어나고 있으며, 영국경제가 다른 EU국가들에 비해서 잘나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최근에 영국경제와 영국 부동산 관련된 기사 스크랩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 장상해 런던무역관 부관장이 회사 로그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영국경제는 올해 성장률이 과거보다 다소 줄어든 2% 미만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2014년에 2.9%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지만 그 이후 차츰 진정돼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영국 GDP 성장률은 2.2%를 기록했는데, 이 정도의 증가율이라면 EU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상대적으로 아주 좋은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영국 중앙은행은 이 같은 경제 성장세가 이어져서 경제성장률이 올해에도 2.2%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 경제가 이처럼 상대적인 호황을 누리는 것은 인구 증가와 서비스산업, 금융업 등 지식산업의 발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동유럽 등지에서 많은 이민을 받아들여 계속적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이민 정책을 까다롭게 개정해 이민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출산율도 증가하고 있어 인구 증가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향후 10년 이내에 500만명 정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은 것을 보면 앞으로도 인구 증가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민자 늘어 부동산경기 계속 활황”>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주택수요가 증가하게 됐고 이것은 런던의 부동산 붐으로 확산돼 왔다. 최근 고가 주택들을 중심으로 그 열기가 식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2~3년부터 만개한 부동산 열기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고 있다. 현재 런던 시내에 공사 중인 건물은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영국정부가 최근 주택건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 런던 시내 곳곳은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다. 우드스트리트 공사현장.

이렇게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영국의 주택가격은 치솟고 있다. 1월 조사 결과로는 영국의 주택가격은 평균 2.5%가 상승했으며, 이는 월단위 상승률로는 14년 만에 최고였다. 1월 기준으로 런던의 연간 집값 상승률이 무려 13.9%였다고 하니 런던 시내 곳곳에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될 것이다.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데 집이 모자라니 당연히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고 수요를 메우기 위해 신규 건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영국경제에 불안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주요 수출대상국인 중국 등 신흥국들의 경기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출경기가 침체돼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의 EU탈퇴를 의미하는 블렉시트(BREXIT)가 현실화될 경우, 그 파장은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문제다. 각 신용기관들이 영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영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것을 보면 마이너스 쪽으로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 경제에 던지는 충격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영국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경제가 점진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에 대응을 잘 했다는 뜻도 된다. 많은 이민들을 받아들여 인구를 늘리고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선 결과이다. 스타트업 기업들이 파리 대신에 영국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점은 좋은 시사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경제 부흥에 대들보 역할을 하는 것이 IT산업이다. 영국의 IT산업은 금융산업의 핀테크처럼 산업과 직접 결부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금융이나 건설, 석유화학 분야에서 고도의 하이테크놀로지를 발전시켜 함부로 따라올 수 없는 성역을 구축하는 한편, 하부구조는 이민 노동력을 활용하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향후 한국경제가 나가야 할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럽선사들 “향후 2년간 해운시황 위축”>

기자는 장상해 부관장에게 영국경제 전반에 대한 얘기를 들은 다음에 영국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다. 장상해 부관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영국 진출을 분석해 보면 제조업체의 진출은 거의 없고 판매법인의 진출이 대부분을 이룬다고 했다. 영국은 직접적인 물류의 중심지가 아니라 유럽지역을 관할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금융의 중심지라는 설명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해 25억 달러 정도의 선박을 영국으로 수출했는데, 이는 계약과 금융거래가 됐다는 얘기이고 실제로 선박을 인수하는 나라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라고 했다.

장상해 부관장은 코트라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도 선박 수출이라며, 2월 말 런던무역관이 유럽 4개국 11개 해운회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자료를 내밀었다. 유럽 해운 11개사를 대상으로 향후 해운경기를 어떻게 보고 있고 선사들이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를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집계한 자료이다. 이 결과는 우리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긴 하나 모처럼 조사했다는 자료이니 그 내용을 옮겨 보기로 한다.

유럽 해운사 55%는 향후 2년간(2016년, 2017년) 해운경기가 축소될 것이라고 답했고, 그 이유로 물동량 대비 선복량 과잉(91%)을 꼽았다. 이들은 대체로 향후 2~3년간은 해운경기가 안정되지 못할 것으로 지적했다. 특히 선복과잉이 심한 선종으로 컨테이너선(35%), 해양플랜트(30%)를 꼽았다.

반면에 2년 이내에 시황이 회복될 가능성이 큰 선종으로 LNG선과 탱커를 꼽았다. 향후 발주 계획이 있는 선사는 조사 11개사 중에 2개사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탱커 쪽에 발주를 하겠다고 응답했다.

응답 해운사의 18%가 선박 애프터마켓에서 기자재 수입을 확대할 것으로 답변했고, 미정(27%)까지 포함할 경우 45%가 수입을 확대할 수 있다는 얘기여서 애프터마켓 수출이 유망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트라의 설문조사는 애프터마켓 수출이 유망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어 국내 조선 및 기자재 회사들의 수출 전망이 밝아 보인다.

장상해 부관장은 영국이 금융과 의약품, 석유와 건설의 엔지니어링 등의 첨단기술을 IT와 접목하여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돈을 벌고 있는 점을 우리나라가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자동차 한 대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열린 자세로 이민을 받아들이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성장을 추구해 나가는 영국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국적선사들 유럽본부 이전계획 없어>

3월 4일 오후 우리나라 선사 주재원들과 KR 주재원을 만났다. 당초에는 개발회사들을 방문해 취재할 생각이었지만, 장기화된 불황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사들을 생각해 방문 취재는 하지 않고 주재원들을 통해 현지의 사정을 청취하기로 한 것이다.

▲ 한진해운 런던사무소는 최근 휄릭스토항으로 옮겼다. 사진은 옮기기전의 사무소 사진.

우리나라의 유명 국적선사들은 과거엔 예외 없이 영국에 현지법인이나 사무소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해운불황의 여파로 인해 상당수 선사들이 영국에서 철수했다. 팬오션은 지난해 영국에서 주재원을 철수시켰고, 함부르크에 유럽 본부를 두고 있는 한진해운은 영국 사무소를 시내 중심에서 휄릭스토항으로 이전했다.

그럼에도 현대상선과 SK해운 등은 아직도 유럽본부를 런던에 두고 있다. 한국선급(KR)도 런던에 지부를 두고 선박검사와 입급 업무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적선사들이 런던에 유럽의 본부를 두고 있는 이유는 영국이 전통적인 해운의 중심지인데다가 교통과 금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IMO 본부가 런던에 자리하고 있으며, 런던은 비행기로 1시간 내외에 유럽의 어느 지역으로든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주재원들은 영국이 해운중심지로서는 장차 퇴색될 것이지만, 상당기간은 그 역할을 유지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당장에 런던의 유럽 본부를 다른 나라로 옮긴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KR 런던지부 - 외국선 수주 늘어>

국적선사들이 해운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KR 런던지부는 좋은 사업실적을 올려서 주목받고 있다. 사실 KR 런던지부는 과거에 정부의 IMO 창구 역할을 담당해 왔다. 우리나라 정부가 국제적인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정부를 대신해 IMO 회의에 참석하는 등 역할을 대행해 왔던 것이다. 현재는 고유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KR이 외국선사 유치에 진력하면서 외국선주 입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KR 런던지부는 외국선사의 입급 비중을 전체 50%까지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국적선사 및 KR 주재원과는 술자리로 이어지면서 많은 대화를 했지만, 주로 해운불황과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들이 주류였으므로 소개하기는 어렵다. 영국 런던의 국적선사 주재원들은 2001년 당시 취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매년 수차례 주재원 모임을 하고 있었다. 주재원과 간담회를 가진 장소는 뉴몰던 한인타운 한가운데 있는 한식 레스토랑이었다.

<후기 - “혁신적인 새 아이템 찾는 게 살 길”>

이번 해외취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IMO 사무총장이 된 임기택 총장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 간 것이 발단이 됐으므로 사실 취재라고 하기보다는 紀行에 가깝다. 제목을 굳이 취재기행이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 런던의 관광명소 피카디리서커스의 지하철역 주변 모습

이번 여행에서 영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보고 왔다. 부동산 붐을 타고 런던 시내 곳곳에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고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 건설 열기가 아직 식지 않고 있었다. 이는 영국경제가 상당히 활성화되고 있다는 말도 되기 때문에, 브렉시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영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나갈 것으로 보인다 .

기자는 영국 해사관련 언론사와 베셀밸류닷컴과 같은 혁신적인 사업 아이템을 갖고 성공한 기업들을 방문하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분명 오프라인과 아날로그에만 매달려서는 미래가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첨단기술에다가 IT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만이 미래의 먹을거리를 창출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로리드리스트의 과감한 오프라인 신문 폐간은 동종의 신문을 발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이번 취재여행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은 영국의 ‘요트와 보트’ 산업이 퇴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가 처음 영국에 갔던 1995년 당시에는 거리에서 소형 보트를 차 뒤에 달고 달리는 자동차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런 광경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더구나 신문 가판대에도 보트/요트 세일을 알리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1995년에는 그런류의 신문들이 가장 많은 부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주재원들의 얘기도 보트와 요트에 대한 열기가 최근에는 상당히 식었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음 번 취재에서는 그 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영국의 보트,요트산업은 사향화하는 것 같다. 한 요트 제조회사의 전경

또 하나 느낀 점은 대중교통 체제가 상당히 후진적이라는 것이다. 가끔씩 전철 운행이 중단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철이 잘 가다가 승객을 전부 내리라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이다. 기자도 3월 5일 영국에서 귀국하는 날 전철을 잘못 탔다가 큰 낭패를 보고 하마터면 비행기 시간에 늦어서 귀국을 연기할 뻔 했다. 전철  운행이 갑자기 취소돼 버스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버스조차도 다니지를 않아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크게 애를 먹은 것이다.

이번 취재여행은 크게 변화해야 하는 디지털시대에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한 여행이었다. 기자의 취재에 도움을 준 고려해운, 장금상선과 취재에 적극 협조해 주신 SK해운, 현대상선, 한국선급 등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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