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 윤민현 박사
1. 상황인식(situation awareness)

오래전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라는 모전자제품 광고처럼 순간의 선택은 일순간에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나름의 정보와 상황을 종합, 평가한 후 선택을 하는 것이며 한번 선택하면 그 제품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한다. 리스크 관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인식이란 용어는 원래 군에서 사용된 것으로「적이 아군은 알아차리기 이전에 적을 먼저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나 일반적으로「시간과 공간에 걸쳐 환경의 요소를 지각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며 장래의 상태를 예측」하는 것이다. 즉 상황인식이란「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 의사결정으로 통상 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일수록 상황인식과 판단의 필요성은 커진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며 복잡한 상황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 해운은 다행히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각종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우리는 오감(五感)을 통해 정보를 수집·선택하고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며 계획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 상황인식의 기본 요소는 정보의 수집, 정보의 해석 그리고 이에 근거한 장래 상황의 예측으로 구성되지만 상황인식은 각자가 처해있는 문화, 경험, 개인적 욕구, 사회적 요구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람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상황인식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해운을 포함해 기업경영은 리더십, 조직, 조직원이 동참해 이루어 내는 오케스트라라고 하듯이 무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임무(태스크)에 관련되는 상황인식과 멘탈 모델을 공유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요컨대 지휘자를 포함한 단원 모두가「동일한 악보를 들고 같은 페이지를 보고 연주해야」하듯이 현재의 상황을 함께 인식하고 공통의 목표를 향해야 하는 것이다. 해운경영에서 상황 파악과 인식 그리고 그에 근거한 장래에 대한 예측과 전망은 곧 기업의 장래를 좌우할 만큼 절대적인 요소이자 과정이다. 따라서 왜곡된 정보, 아전인수식 해석과 편견에 근거한 상황판단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세계 최대 해운회사로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머스크라인은 이른바 정보와 데이터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와 같이 급변하는 시장에서 냉정한 시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상응하는 대응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다.

2. 시장의 흐름과 특색

(1) 저성장 시대

① 인구절벽 현상 : 경제가 계속 확장되면 해상수요도 꾸준하게 증가한다는 전제는 재고해야 한다. 서울 인구가 지난 5월 1천만 이하로 하락했고 지방에서도 사망자수가 출생자수를 앞지르는 인구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출산율 하락에 의한 선진국의 인구 증가율 둔화는 곧 소비의 둔화로 이어진다.

② 물류흐름의 변화 : 지난 50년간에 걸친 물류의 흐름은 주로 선진경제국간을 연결하는 동서간의 이동이 주력이었으나 신흥·개도국의 부상과 선진국을 앞서는 인구 증가율로 미래의 물자이동은 남북항로 위주로 전개될 전망이다. 해상수요를 결정하는 톤-마일 기준으로 동서간 항로가 남북간 항로에 비해 장거리인 사실에 비춰보더라도 수요의 증가율 역시 과거에 비해 둔화될 수밖에 없다.

③ 소비와 생산지의 재배치 : 과거에는 원자재 가격, 인건비 차이 등으로 선진국에 위치해있던 생산 공장들이 신흥경제국으로 이동했으나 최근 중국 등 근로자 임금이 상승하면서 생산원가의 격차도 점차 좁혀지고 있다. 나아가 환경규제의 영향으로 수송거리가 길수록 규제부담이 증가하자 과거 중국에 위치한 생산 공장이 다시 소비시장과 가까운 멕시코나 서남아 지역으로 이전함에 따라 생산지와 소비지간의 거리도 그만큼 단축되기 마련이다.

통계에 의하면 2015년 해상물동량의 증가율은 세계 경제성장률 3.1%에도 못 미치는 2.1%였으며 당분간 3%대 증가율이 유지되다가 2050년도에 이르면 해상물동량이 마이너스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지만 선복량은 올해도 7%대 순증할 전망이다.

(2) 시장의 재편

동맹이 와해되자 2011년 유럽의 맹주 머스크는 당시로는 파격인 1만 8천teu급 T-E선 20척을 발주함과 동시에 운송기간을 보증하는 'Daily Maersk' 서비스의 개시를 선언한다. 이는 무동맹 시장에서 질과 규모로(T-E) 승부하겠다는 대외 선전포고다. 실제로 머스크는 평소 언론에 나서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코펜하겐의 본사, 런던, 뉴욕 등에서 대대적인 홍보전에 나섰는가 하면 공개적으로 소형선사들에게 능력이 없으면 시장 철수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질과 규모의 전쟁을 선언한 머스크가 T-E의 인수시기에 맞춰 MSC, CMA CGM사와 결성한 거대 운항동맹 P3가 2013년 6월 17일 중국 상무성에 의해 무산되자 불과 3주후인 7월 10일에 2위 MSC와 2M을 결성한다. 이어 2M에서 배제된 CMA CGM은 2014년 9월 9일 중동의 UASC와 중국 CSCL을 끌어들여 Ocean3를 결성한 것은 Mega 얼라이언스의 필요성에 대해 선두주자 모두가 공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우려반 경계반 하던 타 선사들도 차기 경쟁에 대비해 대형선 발주에 나서는가 하면 ULCs와 공동운항에 부정적이었던 대만의 Ever Green도 대형선 확보에 참여한다. 그 동안 강자들은 초대형선의 소석율 문제 해소를 위해, 약자들은 자력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운 초대형선에 편승해 강자와 약자가 공생해왔던 지난 10년 세월을 마감하고 이제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선대의 대형화와 함께 운항동맹은 5년전 6개 얼라이언스 체제에서 4개로, 다시 3개로 재편되면서 시장은 내년 4월부터 개시될 제2경쟁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거대 운항동맹체제는 유럽선사의 주도하에 이루어졌고 아시아권 주도의 제3운항동맹은 유럽의 양대 얼라이언스에 밀리지 않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성된 것이다.

(3) 미완성의 재편과 불편한 동거

저성장 시대의 물량 증가는 연 3% 정도인데 선복량 순증가는 7%에 달해 수급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작년에만 30척의 2만teu 컨선이 인도됐고 추가로 2018년까지 60여척이 인도될 예정이다. 이들 선박들은 모두 아시아-유럽노선에 취항할 전망인데 2018년 이후 주요 기항지에 하루 평균 1.3척의 1만 8000teu급이 기항하게 될 전망이다.

상위 선사들 중 일부가 추가발주를 구상하고 있어 전체 취항선단은 확대될 전망이며 조만간 3대 간선항로는 1만 8000teu급을 주력마로, 1만 4000teu급은 보조선복으로 주당 5~6회 정도 기항하게 될 전망이다. 남북항로는 파나막스급 위주로 선대개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재편구도에 비추어 볼 때 동맹별 유효기간, 선사수, 선대 분포, 타선사들과 협력 허용 여부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양대 얼라이언스의 결속력이 2M만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내년 4월부터 펼쳐질 경쟁라운드는 양대 운항동맹이 수세 모드를 취하고 2M이 주도하는 체력전의 강도와 그에 따른 약자의 퇴출 여하에 따라 또 한번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문제는 가장 느슨한 동맹으로 평가되고 있는 THE Alliance의 향배다. 현재 일본 3사, 한국 2사(HMM/예정), 양밍, 하파그로이드, UASC 등으로 구성돼 있지만 하파그로이드와 UASC의 통합, 일본 3사와 한국 2사의 국가별 통합 가능성 등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선복 구성면에서도 8개 사중 UASC와 MOL이외에는 1만 8000teu급 확보계획이 아직 없다. 최근의 실적에 비추어 보더라도 유럽의 양대 동맹과 달리 THE Alliance의 작년실적은 하파그로이드를 빼고 모두 적자였을 정도로 재무구조면도 가장 취약하다. 그러다 보니 THE Alliance의 경우 흔히 이야기 하는 것처럼 ‘하파그로이드와 7인들’ 이라고 할 만큼 실적, 선복량에서 하파그로이드가 단연 우세하고 그 외 선사들은 선대구성과 규모면에서도 이질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한 지붕 생활을 해야 할 일본 3사와 한국 양사는 이유야 어떻든 상호 부담스럽고 껄끄러워했던 종래의 관계를 감안할 때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4) 중국은 양날의 칼

중국은 현재 제4위 해운대국으로 벌커, 탱커 분야는 세계 제1의 선사이자 세계 최대 하주국이지만 국적선 적취율은 아직 50%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조선도 국영조선소를 중심으로 구조조정 중이나 고용문제 등으로 획기적인 감축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중국 정부가 내놓은 카드가 국영 3각 편대(조선, 해운, 무역)의 공조정책이다. 즉 무역물자는 국적선으로, 조선소는 해운회사에 배를 지어주고, 해운회사는 그배로 중국화물을 운송하는 정책으로 조선소 일감과 고용을 유지하고 국적선 적취율 목표 70%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최근 단위 물량으로는 최대 규모인 수입철광석 수송권 확보를 위해 최대 광산업체인 브라질 Vale와는 기본 계약이 완료된 상태이고 불원 2~4대 광산업체인 호주물량에 대해서도 철광석 매입 조건으로 수송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중국 정부는 국영해운사를 직접 경영하고 있지만 중국의 정책 가운데 국영선사들이 흑자를 내야한다는 조건은 없다. 세계 최대 하주국으로 수송비 절감이 자국해운의 육성보다 더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엄청난 조선설비를 보유한 일본이 70~80년대 그랬던 것처럼 선박을 계속 건조해내는 것이 막대한 수출입물자의 수송비를 절감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때 최대 하주국으로 글로벌 해운경기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삼각편대의 공조정책으로 해운계는 국적선 적취율 향상을 위해 과거 글로벌 시장에 개방했던 대량화물의 운송을 자국선으로 흡수하고 조선은 시장에 선복을 계속 공급함으로써 수급양면에서 글로벌 시장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중국은 이제 글로벌 해운의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뿐이다.

(5) 경쟁의 Rule이 깨지고 있다

최근 시장에 나타나는 새로운 조짐은 벌커의 경우 체급전(Handy~Capesize)이 유지되고 있으나 컨테이너선은 그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ULCs의 유입으로 어느 정도의 케스케이딩 현상은 예상했지만 적어도 모선과 지선간 Hub & Spoke형 역할 분담은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수백척의 선단을 갖춘 거대 운항동맹의 출현으로 이제는 Multi-port calling 현상이 전 항로에 걸쳐서 나타나면서 전통적인 역내선사, 지선선사들의 위상이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6) 외면하는 선박금융

과거 2008~2009년까지는 선박금융은행들이 해운침체의 깊이와 길이에 대해 과소 평가해 유예조치 등에 관대했다. 금융위기 이후 Chapter 11을 신청하는 선사, 유동성 위기를 겪는 선사들은 많았지만 막상 도산한 선사는 별로 없었다. 은행들이 선주가 되는 것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마디로 형을 선고하고 집행유예를 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금융위기 이후 8년째 지속되고 있는 지금은 어떤가? 자산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시장의 요율은 운항비(Opex)를 커버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에서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라도 갚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투자자들이나 선박금융은행들은 더 이상 BDI 수치나 낙관론을 펴는 애널리스트들의 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유럽 주요은행들은 이미 시장에서 사라졌고 KG Fund도 사실상 사라졌다. 2007년만 하더라도 담보가치의 80%까지 대출하더니 지금은 60%도 힘들 정도이고 그나마도 중장기 용선계약이 확보돼 있을 경우에 한한다. 선박금융은행들은 해운을 이제는 High risk industry로 보고 있다. 돈이 마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7) 원가 절벽에 처하다

시장이 3대 운항동맹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선사들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 EC, 중국 등 3대경쟁당국의 승인을 득하는 것이다. 중국이 P3를 무산시키고 2M을 허용할 때 내세운 조건은 Collective pricing은 물론 Collective purchasing의 금지였다. 동맹단위의 행동은 순수한 모선의 해상운송에 국한돼야 하며 지선망, 항만 서비스, 육상 인터모달 분야 등에서 네트워크를 통합하지 말라는 것이다. 운임의 하락속도가 원가절감 속도를 앞서고 있지만 Port to Port 운송구간에서는 더 이상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여지가 없고 추가 절감이 가능한 부분은 선박단위 cost가 아닌 선대의 운항 cost, 해상구간 이전과 이후의 Supply chain cost 즉 Networks cost를 절감하는 길이 유일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항동맹 단위로 Feeder, 항만 서비스, 육상운송 서비스 등은 물론, 선박의 보수 유지, 연료와 기타 자재조달에 이르기까지 동맹의 대량물량을 무기로 공동 구매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지 못하면 운임하락의 파장을 막을 대안이 없다. 하주 자신들도 그러한 Network cost의 절감이 결국 자신들의 운송비 절감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소수의 거대 운항동맹이 시장을 과점하는 사태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당국도 cost 인하보다는 과점의 병폐를 더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의 질보다 가격(운임)이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는 시장에서 원가절벽에 막혀있는 선사들은 곧 시장점유율이 곧 경쟁력이고 해상운송코스트가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8) 현해운시장에는 Safety Net가 없다

정기선 해운시장에서 어금니라고 할 수 있는 운임동맹이 하주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2008년 와해되면서 시장은 곧 바로 혼란기에 접어든다. 이후 운임 안정을 위한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법으로 금지되고 해운에 대한 독금법 적용의 유예도 허물어지고 있다. 선사들간 시장정보의 교환을 목적으로 결성된 컨소시엄 역시 경쟁당국의 강력한 감시 속에서 급기야 2013년에는 유럽에 취항하는 선사들의 현지 사무실을 경쟁당국이 새벽에 기습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동안 선사들이 운임인상의 도구로 활용해왔던 이른바 GRI 예고제 역시 담합의 가능성을 우려한 나머지 폐지됐고 이제 선사들은 경쟁법 위반시 부과될 엄청난 벌과금이 두려워 선사간 회의시에도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할 만큼 규제와 감시의 벽은 갈수록 두꺼워 지고 있다. 반복되는 선사들의 인상시도에도 불구하고 바닥 운임은 꿈적도 하지 않는 하주들은 선사들의 M&A, 운항동맹, ULCs의 출현 등을 경계하고 있는가 하면 이때를 놓칠세라 운임하락세를 틈타 Service Contract(S/C)의 기간을 연간 단위에서 분기, 월간 단위로 단축하고 있다.

3. 선박금융과 정책 지원

해운산업을 자본집약적 산업이라고 하듯이 자력만으로는 자산 확보에 필요한 재원 조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박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늘 있어온 일이다.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 상선대를 기준으로 할 때 빌려온 은행 돈의 규모가 평균 척당 5백만 달러라고 할 만큼 사실상 전 세계 상선대의 진정한 주인은 당연히 은행이다. 일부 다른 주장도 있지만 선박금융에 관한 한 한국도 타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선박중 은행 대출과 무관한 선박이 있는가? 다만 은행도 대출에 앞서 리스크 관리는 필수이며 담보가 없는 대출 역시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 만일 선박금융이 아닌 지원 혹은 보조를 의미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박금융과 해운산업에 대한 정책지원이나 보조는 구분해야 한다. 지원의 사례로 주로 거론되고 있는 외국의 예를 살펴보자.

중국이 Cosco, China Shipping Group 등 국영선사들에 대해 금융 이상의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주지하듯이 이들은 모두 국영선사다. 주인이 자기 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지원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기업을 살리고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이자 경영활동으로 민간기업에 대한 지원과는 구분해야 한다. 과거 국영 대한해운공사에 대해 정부가 뉴욕과 동남아 항로용 정기선 6척을 재정으로 신조 공급한 예가 있다.

일본 조선과 해운을 담당하고 있는 MLIT는 해사산업분야에 대한 정책의 초점을 Internet of Things(IoT)에 맞출 것이며 조선분야에 대해서는 설계를 포함한 기술개발과 생산성 제고 방안을, 해운산업에 대해서는 Big data 경영에 필요한 Data의 분석과 공유를 지원해 이른바 Smart shipping 환경조성에 주력할 것임을 발표했다. 일본 해운계도 차이는 있지만 고전하기는 마찬가지나 최근 정부에서 해운계에 유동성을 지원한다거나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덴마크 머스크그룹은 덴마크 GDP의 20%를 점하고 있는 사실상 덴마크의 간판기업이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하듯이 머스크에 좋은 것은 덴마크에 좋은 것이다. 그럼에도 덴마크 정부가 머스크를 지원한 사례를 보면 이는 위기에 처한 회사에 대한 구제 금융이 아니라 선대 강화와 체질 개선을 위한 선박금융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독일, 프랑스 정부가 자국선사를 지원하려하자 덴마크 선주협회(DSA)가 구조조정이 필요한 정기선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공정경쟁을 저해한다며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독일 해운업계는 4척 이하의 선주가 전체의 60%를 점할 만큼 중소선주 중심으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유럽타국에 비해 경쟁력이 약하고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유동성압박과 함께 고용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취약점을 갖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 독일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감안해 EC를 설득해서라도 정책지원을 위한 이른바 Bad bank 설립을 시도했지만 결국 무산됐고 2012년에 선원훈련기금으로 3천만유로(3770만 달러) 출연하는데서 그쳤다.

프랑스 CMA CGM은 2009년 당시 한국의 4대 조선소에 발주했던 37척 가운데 2011년부터 1만 1350teu급 6척을 차례로 인수해야 하나 선가체납으로 선박이 경매에 회부될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던 동사가 정부에 SOS를 보냈고 프랑스 정부도 한때 EC에 영향력을 행사해서라도 정부지원을 합리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명분은 아시아권 경쟁사들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상사적 방어(commercial defence)」라는 논리를 내세웠으나 결국 EC도 설득하지 못한 체 하주단체, 머스크, MSC 등 유럽의 선사들이 강력 반발해 무산됐다.

실제 2010년 퇴진 압박 속에 당시 대주주였던 Shadee가에서 유치한 금액 7.5억 달러 중 차입형태의 국민건강보험 기금 1.5억 달러를 제외한 6억 달러는 정책지원이 아니라 터키의 부호 Robert Yildirim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2010년 5억 달러, 2011년 1억 달러) 투자를 유치한 것이며 이를 통해 Yildirim은 현재까지 CMA CGM의 주식 24%를 가진 2대 주주이자 3명의 이사가 배정된 경영 파트너다. 당시 투자조건은 5년 시한부로 CMA CGM이 재매입하는 것이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2017년까지 유예된 상태다. 그동안 Yildirim은 9000teu급 선박의 매입계획에 제동을 걸었고 최근 1만 8000teu급 추가 발주계획도 무산시킬 정도로 2대 주주로서의 영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고 CMA CGM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감수하고 있다. 최근에 결정된 NOL의 인수에도 Yildirim의 동의가 전제된 바 있다.

(1) EC의 Maritime Guideline

정책지원과 선박금융은 구분해야 한다. 외국의 해운에 대한 우선 금융은 구제를 위한 것보다는 경쟁력 강화와 건전성 확보에 초점을 두고 있다. 2009년 이후 유럽의 조선산업이 벼랑 끝에 처했을 때 각국이 자국 조선산업의 갱생을 위한 정책지원을 고려했지만 불발에 그친 것은 1997년 EU의회가 채택해 2004년에 개정한 Maritime Guideline 때문이다. 이는 유럽해사산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aid)를 규제하는 기본 가이드라인으로 정부가 민간기업에 정책지원(보조)을 하려면 이 가이드라인에 부합해야 하며 EC의 승인을 득해야 한다.

(2) 하주단체의 반대

유럽 하주단체는 과거 선주들이 해운불황에 대한 예보에도 불구하고 대형선 건조 경쟁을 했고 그 과정에서 하주들과 단한번의 협의도 없었던 사실, 컨테이너선이 넘쳐나는데도 하주들은 Space 확보가 어려웠을 정도로 일방적이었음을 지적하며 선주의 잘못된 투자결정과 오판의 결과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관련 산업에 대해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지원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이처럼 전반적인 유럽의 정서는 국제시장에서 모든 선사들이 대등한 조건하에서 경쟁하는 민간기업인데 왜 국가가 재정지원을 해야 하는가, 해운이 국가의 전략 산업인가, 혹은 기간산업인가, 시장에는 정부의 지원 없이도 건재하는 회사가 다수 존재하며 국제 무역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도 아닌데 연명치료를 할 경우 결과적으로 해운시황의 회복을 더디게 한다는 시각이었다.

유럽 조선업에 대해서도 여론은 냉혹했다. 정책지원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유럽조선업계가 도산위기에 처한 이유가 반드시 경쟁법 때문은 아니다.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다. 해당산업이 잘못되면 그 업계가 일차적 책임을 부담하는게 당연하며 선주, 선박금융사, KG투자사들이 자신들의 오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떤 논리로 납세자들이 그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지 해명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3) 해운 주기설

국제금융시장이 개방되기 이전만 해도 해운은 소수의 기성선주들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공급조절이 가능했고 해상 물동량이 조금만 증가해도 곧 바로 운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편의치적제도와 선박금융이 개방되면서 해운의 진입장벽은 무너졌고 아시아권 조선산업의 약진이 수급불안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시아 조선설비 규모는 매 7~8년 주기로 전 세계 선단을 교체해야 할 만큼 과잉상태인데 더해 그 경제적 비중 때문에 해운의 후행산업이었던 조선산업이 선행산업으로 뒤 바뀐 것이다.

2008년 해운시장의 거품이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조선의 유입량은 오히려 금융위기 이후 더 증가한 사실이 이를 뒷밭침하고 있다. 절제되지 못한 선주들의 과욕이 초래한 대량 발주로 인해 시장은 이미 무너졌음에도 2017년까지 약 3천척이 더 인도될 예정이나 그동안 인도된 수천척 가운데 흑자 운항선박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시장이 회복하려면 적어도 2005년과 같은 호황이 향후 10년 이상 지속돼야 한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 침체가 7년 이상 지속됐으니 회복할 때가 됐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과거 선가가 떨어지고 시장이 조금이라도 호전 기미가 보이면 곧 바로 발주 러시가 이어졌다. 벌써 그런 조짐이 6월 초 그리스에서 개최된 Poseidon 2016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장의 회복을 위해 무엇이 옳은지를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투자자 대부분은 업계 전체를 위한 최적의 전략보다는 조금이라도 자신이 남보다 나아지려는 욕심, 이른바 Prisoner's dilemma game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다수의 선박이 계선, 해체되고 조선소들이 문을 닫아야만 회복의 길로 돌아섰지만 현재 글로벌 선단의 평균 선령이 8년인 상황에서 해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생존전략에 무슨 오묘한 진리가 있다거나 고차원의 경영이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해운경제는 고객의 경제에 의해 좌우된다. 시장회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내적 축소로부터, 호황은 주기설에 따라 오는 것 아니라 경제계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unpredicted change)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수급 조절이 선주들의 통제영역을 벗어난 상황에서 해운시장의 7~8년 주기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4. Winner와 Loser

(1) 글로벌 리더 유럽해운

세계 해운의 축이 아시아로 이동 중이라고 하지만, 최대 해운국은 그리스이고 컨테이너선사중 Top3가 유럽선사들이다. Winner와 Loser로 양분된 시장에서 그들은 모두 Winner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0년전 모두가 유럽해운의 몰락을 예고했었지만 중동, 아시아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유럽해운은 꾸준히 규모와 경쟁력 키워온 결과, EU 선주들이 지배하는 선복량은 현재 2005년 대비 70% 증가했고 글로벌 선단의 40%를 점하고 있다.

유럽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임에도 해운만은 역풍에 맞서 잘 대응한 이유는 유럽선주들의 시장을 보는 안목과 선박투자의 최적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EU의 Maritime Guideline에서 설명했듯이 유럽 선주들이 정상적인 선박금융이외에 정부의 특별지원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고용창출과 국가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톤세 유지와 같은 정책을 지원하고 있지만 유럽선주들이 지배하는 선박중 EU Flag는 1994년 30%에서 현재 20%로 하락했다. 해외치적을 선호하는 배경은 EU의 정책이 전체적으로 해운산업에 관한 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흡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2) 그리스 해운

국가의 자체 물동량은 1% 정도인데 전 세계 선단의 약 1/5을 지배하는 부동의 제1위 해운대국인 그리스 선단은 현재 4100척, 3억 3300만dwt이며, 350척, 4천만dwt가 건조중이며(2016년 3월 현재) Asset play 측면에서도 세계 최대 Buyer이자 Seller이다. 그들은 호황시 발주보다는 자금을 유보하고 있다가 침체로 선가가 바닥을 쳤을 때 선대를 교체, 보강하며 차기 경쟁라운드에 대비하는 한편 S&P를 통한 차익을 노리는 일석이조의 전략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문어발식 경영보다는 해운에 올인하며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소유한 선박들을 배분 상속시키고 차세대는 각자의 회사를 다시 키운다. 잘 보수 관리된 중년선박을 운항하는 것이 해운업의 핵심이라는 것이 그들의 인식이며 세계 제1위의 해운국이지만 규모면에서 글로벌 상위 10위에 들어간 선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들은 규모보다는 내실을 중요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2015년 기준 개별 선사 순위 : 1위 AP Moller-Maersk, 2위 NYK, 3위 MOL, 4위 K-line이고 TK LNG Partners, MSC, Qatar Gas Transport, Seaspan, Zodiac Maritime, Sovcomflot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3) Boom In, Burst Out 모델

과거에는 선주가 능력껏 선박을 소유하고 어떤 사유로 일시 선복량이 부족해지면 일정기간 빌려 사용했지만 지금은 사선보다 용선비율이 더 높다. 그러다 보니 용선 시기와 기간을 시황과 잘 연계해 관리하지 않으면 커다란 낭패를 보게 된다. 선주 입장에서 볼 때 해운의 원리는 쉬운 것으로 침체기에 선박을 확보해서 호황기에 장기간으로 용선해주는 것이다. 2011년 국내 K사를 거쳐 현재의 상황에서 보는 것처럼 금융위기 이후 세계 어느 지역보다 한국해운계가 더 타격이 컸던 이유도 과도한 용선의존도였다.

문제는 용선의존도 자체가 아니라 시황과 역행하는 용선 즉 고점에서 높은 요율로 장기간 용선한 선박이다. 시황의 내리막길에서 지출항목중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용선료 부담을 낮추지 못하면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상대가 한두명이라면 읍소도 하고 필요에 따라 법정관리라는 배수진을 치고 담판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나 상대가 두 자리 숫자에 달하는 다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용대선 전문회사의 경우 어느 특정용선사의 어려움을 이유로 용선료 할인이라는 자비를 베풀려했다가는 Why not for me? Me too please! 한다. 용선료 차별을 이유로 데드는 선사의 이면에는 다른 전략이 도사리고 있다. 존립의 위기에 처한 선사들의 용선료 협상을 무력화시켜 시장의 재편을 앞당기려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용선료 인하 협상은 결과가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왜 일까?

(4) 투자 타이밍은 상황인식이 좌우한다

호황기 조선소는 표준 설계로 대량생산을 원한다. 낮은 코스트에 높은 이윤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선주가 다른 선박을 요구하면 조선소는 지금 바쁘니 잠깐! 하며 다음 손님 들어오세요!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조선소가 어려울 때는 찾아가기 전에 먼저 찾아올 뿐 아니라 무슨 배를 얼마에 원하십니까? 한다. 해운시장 주기에 역행하는 발주(Order counter-cyclically)가 후일 경쟁우위를 점하는 이유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모든 사람이 ‘지금이 배를 확보할 시기다’하면 값은 이미 올라가 있어 실기하기 마련, 시장의 특성상 선주는 항상 한발 빨라야 한다. 향후 해운시장은 수급균형에 의존하는 시기가 아니라 가격경쟁의 시대다.

투자적기를 놓치다 보면 막상 경쟁력을 가진 선박은 하나도 없고 비경제선만 남아있을 수 있다. 몽땅 합해 놓고 보면 공급과잉인 것은 사실이나 경쟁을 좌우하는 것은 적정한 크기, 가격, 선형 그리고 연료 절감형에 작업효율이 있는 선박이며 이런 선박은 아직 공급부족일 수 있다는 것이 선두주자들의 인식이다. 해운 호황기에는 Boss의 승인을 얻기가 쉽지만 진짜 투자의 적기라 할 수 있는(시장 회복에 대한 판단과 낮은 선가를 조합한 타이밍) 침체기에는 전문경영인의 입장에서 투자 건의가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투자의 시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오너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선박투자와 관련된 상황인식 여하에 따라 오너의 생각이 전문경영인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5) 리더십의 기본

침체는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자연스러운 메카니즘이다. 침체는 과거 호황기에 기업을 적절하게 관리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다. 해운이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들 한다. 실제 그래서인지 근래 해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업가들이 위기에 처한 해운사들을 인수해 해운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운이 그렇게 녹녹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해운은 전문지식을 기초로 경험과 경륜, 시장의 흐름에 대한 폭넓은 안목과 장래를 내다보는 시각을 필요로 한다. 수급의 불균형은 시장이 해결할 수 있을 뿐 정부의 지원이 해결하는 것 아니다. 마켓 리스크를 관리해야할 주체 또한 기업주 자신이지 정부나 금융권이 아니다.

성공한 해운기업의 대표들은 해운기업의 리더가 되기 위한 최소 요건으로 시장의 주기, 지정학적 문제(Geopolitical issues, regional conflicts), 원자재 가격의 동향(Commodity prices), 조선업계의 동향(Yard forward cover), 국제해사규칙(IMO Rules), 환율(Currency fluctuations), 보험(P&I와 선박보험), 유가와 환경규제(Bunker, ECA), 운항비와 선박의 수리검사(Operating expenses and DD/SS) 등에 대한 안목을 강조하고 있다. 해운이 주기산업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200여년의 해운사를 되돌이켜 보면, 적어도 약 2/3에 상당하는 기간은 침체기였다.

5. 기로에 선 한국해운

(1) 대중의 눈앞에서 해운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는 해운기업의 붕괴는 민간기업 차원의 일로 당사자는 조용히 사라지면 그만이었으나 해운이 자본시장의 주시하에 붕괴되기는 처음이다. 한국에서 선두해운기업이 문패를 바꾸는 사례는 자주 있어왔으나 과거에는 어렵더라도 공적자금이든 국민의 혈세가 동원됐든 정부의 정책적 결단에 의해 국내에서 해결이 가능했다. 차이는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금융권의 참여하에 주무부처가 재편을 주도했지만 최근의 양상은 주무부처의 눈앞에서 자율협약이라는 이름하에 채권단이 양대선사의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점이다.

(2) 리스크와 위기관리 시스템은 존재하는가?

No risk No gain! High risk High return! 이라고 하듯이 리스크가 없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해운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당시 신흥 해운상장사들은 큰 돈을 벌었고 회사가치도 급등했다. 거액의 배당금 잔치를 벌였는가 하면 그 중 상당수(배당받은)는 선주의 일가들이었다. 투자자들도 꿀맛 같은 배당에 맛 들여 해운에 크게 매료됐었고 해운업계는 호황에 심취해 정책당국에 대해 해운기업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호언도 했다. 이미 시장에서는 거품의 붕괴조짐과 함께 도처에서 경고 사인이 나오고 있는데도 한쪽에서는 해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선박금융 덕택에 고가에 선박을 발주하고 용선을 늘렸다.

지금은 어떤가? 개별 기업은 이미 예견돼왔던 리스크에 속수무책의 상태가 됐는가 하면 손을 쓰기에는 당근도 채찍도 없는 주무부처 역시 개별기업의 경영에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가 개별기업의 몫이라면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는 정부의 몫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주역은 뒤로 물러서 있고 리스크와 위기관리를 금융권이 하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와 무관하게 현실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3) 해운정책의 향방

해운기업의 지상과제는 흑자경영이고 정부의 해운정책이라면 해운산업의 육성이라고 한다. 개별기업의 성공은 곧 해운산업의 육성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별기업의 경영 영역과 정부의 육성정책 사이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기업과 정부간 역할의 한계가 불분명할 경우 종종 정부가 민간영역에 휩쓸려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1970년대 국적 양대선사(KSC와 조양상선)가 극동운임동맹(FEFC)에 가입하려고 할 때 정부당국자가 운임동맹에 찾아가 가입협조를 구했을 때 유럽해운계가 의아해했다. 왜 정부가 민간영역에 개입하느냐는 것이다. 주변국가의 예를 보면 개별기업단위로 하는 것보다 공동으로 해야할 일 즉 R&D, 정보의 분석과 공유 등이 정부의 몫이고 굳이 강조하자면 국제해운시장에서 공평한 경쟁환경(Level playing ground)을 조성하거나 자국선사가 차별받지 않도록 막후에서 모니터링하고 지원하는 일들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경영의 질, 성패에 관한 한 이는 전적으로 개별 기업의 몫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상황인식이다.

개별 해운기업이 존재하고 도태되는 것도 시장의 메카니즘과 국제 해운질서에 의해 좌우되는 것일 뿐 특정 국가의 정책에 의해 개별기업의 생로병사가 좌우되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해운의 특수성,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 제4군 등의 주장들은 해운초창기에 정부의 정책지원을 얻기 위해 업계에서 활용했던 수사였을 뿐 최근의 국제해운질서와는 맞지 않는 주장이다. 지금은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 스위스의 MSC가 세계 제2의 정기선사로 자리잡고 있고 사실상 3면이 바다인 세계 최대강국 미국은 해운대국을 지향하기 보다는 외국선사들에게 수출입 물자의 운송을 맡겨둔 체 자국의 수출입 활동의 보호에 앞장서 있는 하주국의 편에 서있다.

2015년 중반 싱가포르의 Flag company APL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중국 정부가 자국 선사들의 통합추진을 결정하자 선두주자들을 중심으로 재편을 위한 물밑 접촉이 진행되자 각자 점유율 3%도 안되는 일본 3사가 긴장모드에 진입했다. 2015년 APL 매각설이 나왔다는 사실은 싱가포르 정부가 그 이전에 이미 APL의 장래에 대한 정책적 판단을 끝냈음을 의미한다. 과연 싱가포르가 재정적으로 능력이 없어서 일까? 세계 최대 하주국인 중국 정부가 양대선사의 통합을 결정한 배경이나 세계 최대 허브항을 보유한 싱가포르가 간판선사의 매각을 결정한 것은 향후 시장의 흐름에 대비한 정책적 판단의 결과다.

(4) 구조조정과 은행 관리

부채비율 상승은 혈압상승 만큼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다. 이는 디폴트 리스크를 동반하고 신용을 추락케 한다. 그러나 혈압이 올라간다고 금방 뇌졸중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부채비율의 상승은 경고 신호 정도로 이해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술·담배 끊고 의사 말 잘 들으면 좋아진다. 그러나 단시일내 억지로 체중 감량을 시도한다거나 혈압강하제를 과용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자율협약이 무엇인가? 사람으로 치자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가 수술이고 자율협약은 약으로 치료하는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약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면 다행이겠으나 해보다 안되니 다시 수술해야겠다고 한다면 문자 그대로 타이밍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때까지 환자의 체력과 병세가 버티어 줄 수 있으면, 급변하는 시장이 기다려 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어렵게 수술을 해서 퇴원을 시켜놓고 보니 홀로서기가 힘들 정도로 쇠약해져 있다면 문제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상태에 관한 정확한 진단 즉 상황판단과 인식이다. 채권단의 목표는 우선 채권보전 내지는 회수, 둘째 벼랑 끝에 처해있는 채무자에 대한 연명 치료, 셋째 회생과 부활을 위한 체력정비 등 어느 하나에 해당할 것이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살펴볼 때 셋째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1986년 당시 한국의 간판회사인 KSC(대한선주)에서 은행관리를 한동안 경험했고 그 회사는 은행관리를 거쳐 오늘의 한진해운으로 변신했다. 우리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자율협약, 자금관리 등 어떤 명목이든 불문하고 은행관리에 들어간 선사가 문패를 그대로 두고 재활한 경우는 없다. 채권단은 어디까지나 은행 혹은 투자자일 뿐 시장에 대한 상황을 인식하고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해운의 허와 실을 관찰할 수 있는 안목을 기대하거나 한국해운의 장래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봐도 무리다. 사실이 그렇다면 자율협약을 통한 구조조정의 종점은 어디인가?

(5) 한국해운의 기초(foundation)는 튼튼한가?

한국해운기업에게도 경보장치가 당연히 있다. 문제는 경보장치의 성능과 경보장치가 울린 이후의 대응이다. 위기관리모드로 전환하는 기업과 더 이상의 출혈을 피하고 다른 곳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철수 준비를 하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역시 양자중 선택은 전문경영인의 영역이 아니라 리더의 상황인식과 판단에 따라 좌우된다. 만일 리더의 상황인식의 부재나 기타 이유로 철수모드로 전환한다면 백기사가 나오지 않는 한 해당 기업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해운을 하나의 돈벌이로 생각하고 뛰어든 사람들 중 일부는 역주기에 걸리면 탈출구를 찾아 털어버리고 나간다. 그리고 또 다른 주자가 뛰어들어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정부와 국민이 백기사 역할을 담당해왔다. 금번 구조조정을 통해 이익은 사유화(私有化) 하고 손실은 사회화(社會化)하는 풍토를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해운의 인적 자원은 잠재력이나 질적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잠재력을 구비하고 있다. 구조조정과 연계해 경영진의 문책과 대대적인 인적 개편을 시사하고 있으나 이는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인적자원이라고 하더라도 기업의 지배구조와 문화(corporate governance & culture), 인사제도 등 오너의 의중이 반영된 틀(frame)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오너가 잘하는 사람보다 내 사람을, 전문지식보다는 Loyalty를 더 중시하는 한, 우수 인재들이 자신의 생각보다는 오너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대다수 근로자들의 생존전략이었다.

국제해운시장에도 머스크 마피아란 용어가 있다. 한때 NOL의 CEO를 역임했던 Flemming Jacobs, 현 하파그로이드 CEO Habben Jansen씨 등은 머스크라인에서 잔뼈가 굵어진 사람들로 외국선사에 의해 영입된 사람들이다. 한국기업은 해외선진기업과 달리 지나치게 순혈주의에 매달린다. 반드시 내 혈족, 내 사람이라야 한다는 생각을 재고해야 한다. 부의 세습은 가능할지 몰라도 리더십의 세습은 어렵다.

경영의 최고책임자 일부를 문책하는 것은 불가피 하더라도 핵심인력들을 내치는 것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하에 터미널, 컨테이너박스 등 필수핵심 자산과 경제선박을 처분토록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졸속중의 졸속이다. 설사 핵심인력을 교체한다고 해서 후임 인력이 그보다 우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시이며 이는 오히려 한국해운의 체력을 약화시키는 악수중의 악수가 될 것이다.

(6) 한국해운 60년사의 교훈

그동안 몇 차례 ‘해운산업합리화’란 이름으로 시행된 M&A의 주체는 항상 정부였지만 발전을 위한 정책보다는 구제와 연명을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은 강력한 가족경영은 장수했고 책임의 한계가 애매한 오너와 전문경영의 협업체제는 자주 문패가 바뀌어 왔고 지금도 어느 곳에서 새로운 문패를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성공한 전문경영인은 없고 실패한 오너들의 이름만 회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한국해운이 침체에 가장 취약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불황 때문이라거나 금리가 다른 나라보다 높아서라거나 정책물자를 배정해주지 않아서라는 등 밖에서 원인을 찾으려하기보다 이제는 내면의 문제를 찾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선진해운선사들의 경영도 연구해야 한다. 상황인식이 잘못돼 있고 시스템이 속으로 고장이 나있다면 아무리 볼트를 조이고 윤활유를 칠하고 기름을 부어넣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붙기다.

글로벌 해운의 선두주자들과 세계의 해운대국 그리스의 선주들의 지배구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① Ex-mariner로서 Single-shipowner로 해운사업을 개시했고 ② 강력한 가족경영체제로 해운에 올인한다. ③ 수퍼사이클에 대비한 내구력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④ 후계자 선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⑤ Follow me형 리더십의 주도하에 Analyst & strategic plan을 바탕으로 한 경영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상의 공통점을 갖고 있는 머스크 라인, MSC, CMA CGM EMC, OOCL등 선두주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글로벌 시장을 보더라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논리는 해운에는 적합하지 않다. 해운업을 돈을 벌어야 하는 곁가지(branch) 정도로 생각하거나 그룹의 금고로 생각해서는 호황은 일시이고 불황이 장기화되는 수퍼사이클시대에 생존할 수 없다. 차세대 한국해운은 강력한 리더십, 책임경영, 그리고 해운에 올인하는 리더가 이끌어가야 한다.

6. 양대선사의 진로

(1) 선주들의 협상 상대는 누구였나

채무조정(유예)과 지원을 위한 선행조건 즉, 부채비율 개선, 용선료 인하, 운항동맹(얼라이언스) 가입 등 국책은행이 제시한 세가지 조건은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협상에 임할 해외선주들에게는 협상의 상대가 누구인지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정보로 활용됐다. 용선료 협상에 임한 선주들, 그들은 용선선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능력자를 주시하고 있다. 그들은 상대선사와 협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상황파악을 위해서 온 것이고 마침내 그들은 파트너를 찾았다. 불원 대주주가 될 채권은행이다. 한국에 1만teu급 3척을 빌려준 Seaspan은 공공연하게 채권은행이 협상의 전면에 나서라고 했는가 하면 A사에 13척, B사에 8척을 빌려준 그리스의 Danaos는 A사가 자사의 경영권이 채권은행에 넘어가는 것을 반대해서는 안된다는 단서를 협상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단서가 현실화된 A사와의 협상은 불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나 협상을 이제 시작한 B사에 대해서는 연체된 용선료의 조기해결을 강조하며 단지 용선료를 깍아달라고만 하는 사람과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A사의 협상이 시기적으로 앞섰을 뿐 협상의 주제, 대상, 채권단의 구성이나 전략면에서 B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돌발변수가 없는 한 양 선사에 선박을 빌려주고 있는 선사의 입장에서도 Financial risk를 우려할 필요가 없는 상대가 수면상으로 부상했는데 크게 염려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B사와의 협상에 대해 형식과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시간이 걸릴 뿐 협상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2) 재편의 밑그림

최근의 진전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국적선사의 재편 시나리오는 A사를 통해서 윤곽을 드러냈다. 예상했던 것처럼 대주주의 감자조치로 국책은행이 대주주로 부상했고, 상황이 유사한 B사의 경우도 다른 시나리오를 적용할만한 설득력 있는 명분을 찾지 못하는 한 한국의 양대 간판선사가 국책은행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차피 국책은행이 양사의 대주주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이나 국가가 선박을 소유 운항하는 것이 정상이고 은행이 해운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정상인가? 답변은 뻔하다. 그러나 불가피하다면 은행관리를 하더라도 그 기간은 최소에 그쳐야 한다. 개편이나 통합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양대선사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합병이 최선은 아니다. 양사 공히 경쟁력이 취약한 선대는 접어두더라도 항로, Customer 등 브랜드가 겹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1+1=2가 안된다는 것이 이유가 될 만큼 양사의 상황이 여유 있는 것은 아니다. 1+1=2가 안될 수도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0이 될 수도 있다. 합병하더라도 국내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어렵다거나 하주들의 통합 반대가 통합을 가로막는 이유가 될 수 없다. 하주들은 자신의 선택의 폭이 좁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소비자는 백화점이 많을수록 환영하며 백화점간 출혈경쟁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차기 경쟁라운드는 냉혹하기 마련이다. 현재 한국 양대선사가 보유하고 있는 선단이 원가측면에서 경쟁력이 어느 수준인지는 단언하기 조심스럽지만 그 확보 시점을 두고 볼 때 설사 협상을 통해 전체 용선료를 현수준에서 20% 인하하더라도 적어도 자본비(혹은 용선료) 측면에서는 열세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저선가 시대에 확보한 경쟁사들과의 고정비의 격차가 경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할 정도라면 차후 경영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해운을 유지하려면 당장 연명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현재 상태는 최소한 몇해에 걸친 지속적인 지원이 없이는 양사 모두 존립이 어려운 상태임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구조조정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이어야 하며 필요시에는 창조적 파괴도 불사해야 한다. 냉정한 상황인식과 판단에 기초한 선택과 집중전략이 필요하다. 합병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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