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목포해양대학교 교수

<Flying Dutchman : 떠도는 네덜란드선, 유령선>

네덜란드어 Der fliegende Holländer의 영역으로, 우리말로는 ‘떠도는 네덜란드인’으로 널리 번역돼 통용되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떠도는 네덜란드선’으로 번역해야 옳다. 네덜란드어 Holländer와 영어 Dutchman은 모두 ‘네덜란드인’과 ‘네덜란드선’ 두 가지 의미가 있고,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도 반 데 데켄(Van der Decken) 선장이 주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떠도는 네덜란드인’으로 옮기는 게 맞을 듯하지만 ‘떠도는 네덜란드선’으로 옮기는 게 타당하다. 왜냐하면 Flying Dutchman은 사람이 아닌 선박, 즉 유령선을 뜻하고, 반 데 데켄 선장의 아버지가 Flying Dutchman호의 선장이어서 Flying Dutchman호와 그 배의 선장이 각각 별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떠도는 네덜란드선이 유령선의 이미지를 갖게 된 데는 16세기 이후 전 세계의 바다를 무대로 항해했던 네덜란드인의 역사적 경험이 바탕이 됐다. 1629년 6월 4일 네덜란드동인도회사 소속의 바타비아호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현재의 자카르타)로 항해하던 도중 경도 추산의 오류로 호주 서해안의 아브롤요스(Abrolyos) 군도의 암초에 좌초했다. 좌초로 40여명이 익사했고 선장이 20여명의 선원들을 데리고 자카르타로 구조를 요청하러 간 사이 남은 270여 명 중 115명은 폭도들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이 폭도들은 선장 일행이 자카르타에 도착해 데리고 온 구조대에게 진압돼 교수형에 처해졌다.

악명 높았던 바타비아호 참극이 있고 난 뒤 반세기만에 세계의 바다 곳곳에서는 기이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Flying Dutchman(떠도는 네덜란드선)으로 상징되는 유령선에 관한 것이었다, 1689년 12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된 케이프타운 상공에서 불길한 혜성이 나타났고, 12월 23일에는 머리가 둘 달린 송아지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인 1690년 1월 28일에는 테푸이(Tepui, 탁상산지)만에 정박해있던 데 노르트호가 사라졌다.

5월초에 알베르트 포케르스 선장이 스노페르호를 타고 테푸이만으로 입항했다. 알베르트 포케르스 선장은 암스테르담에서 바타비아까지 90일만에 항해한 바렌트 포케르스 선장의 아들이었다. 최단항해기록을 세울 당시 아버지 포케르스 선장이 탔던 배도 스노페르호였다. 1690년 5월초 테푸이만에 또 다른 배가 입항했는데 먼저 입항한 알베르트 포케르스 선장은 이 배가 선단 중의 페르굴데 플라밍(Vergulde Vlaming, golden Flanders)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페르굴데 플라밍호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말았다.

이런 이야기들이 한 데 뒤섞였다. 페르굴데 플라밍호가 플리겐데 플라밍(Vliegende Vlaming, flying Flanders)호로 와전되고, 이것이 다시 Der fliegende Fleming이 됐다가 영어로 ‘플라잉 플레밍’(flying Fleming)으로 바뀌었다. 영국 선원들은 이를 영어식으로 ‘떠도는 네덜란드선’(flying Dutchman)으로 불렀다.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들을 싫어할만한 이유는 많았다. 해외 식민지 전쟁에서 네덜란드는 영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고 1623년에 네덜란드동인도회사가 암본섬의 영국인들을 학살했으며 1667년 해전에서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사건도 있었다.

떠도는 네덜란드인이 확실한 근거를 획득한 데에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사이에 문학작품으로 활자화된 데 힘입은 바 크다. 1798년 영국의 문학가 콜리지와 1813년 월터 스콧이 네덜란드 유령선에 관한 이야기를 출간했으며, 1821년에는 에든버러의 잡지에도 이야기가 소개됐다. 이 잡지에서는 네덜란드 유령선의 선장이 반 데 데켄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됐다.

1822년 Washington Irving의 폭풍의 배에서는 유령선의 활동무대가 허드슨강이 됐고 Wilhelm Hauff(1802~1827)는 1826년 유령선 이야기에서 인도양을 무대로 삼았다. Heinrich Heine(1797~1856)는 1834년 Memoiren des Herrn von Schnabelevopski(폰 슈나벨레보프스키의 회상)에 유령선에 관한 중세 전설을 소설화했다.

바그너는 1841년 이러한 이야기들을 종합해 ‘떠도는 네덜란드선’을 작곡했다. 네덜란드 선장 반 데르 데켄은 희망봉 부근에서 폭풍우를 만났지만 ‘지구 끝까지 항해하리라’라고 외치며 선원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희망봉을 돌아 항해를 계속하려 했다. 결국 그는 저주를 받아 희망봉도 돌지 못하고 영원히 바다를 떠돌게 되고, 진실한 사랑만이 그의 저주를 풀 수 있다.

데켄 선장은 노르웨이의 달란트 선장에게 자신의 배에 실린 금은보화를 주기로 하고 그의 딸 젠타와 결혼을 해 저주에서 풀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에리크라는 약혼자가 있었던 젠타는 두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진실한 사랑이 없으면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저주에 빠진 데켄 선장을 가엽게 여겨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돼 데켄 선장의 저주를 벗어나게 한다는 얘기다.

이집트인이나 바이킹, 우리 조상들에게 배는 사후 영혼과 내세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떠도는 네덜란드호는 한편에서는 바다를 유랑하는 선원들의 삶을 상징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바다에서 발생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유령선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 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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