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바다의 큰별 海翁 배순태 선장님의 영전에 삼가 고합니다.

북극항해를 하시려고 이렇게 황급히 떠나셨습니까?
지난해 3월 24일 출판기념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북극항해를 꿈꾼다’란 책제목에는 젊은 마도로스의 낭만이 넘쳐흘렀습니다.
바다 사나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북극항해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 그렇도록 컸습니까? 빙하의 북극해가 그렇도록 그리웠습니까?
지팡이를 짚고 출판기념회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춘추 아흔둘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파란만장한 바다인생을 원고 없이 서사시를 암송하듯 담담하게 술회하셨습니다.
간간히 유머어로 하객들을 웃기는 여유를 보였습니다.
바위처럼 중후하고 넉넉하셨습니다.

1925년 2월 26일 창원군 상남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1941년 4월 진해고등해원양성소에 입학하였으나 일제가 총동원령을 발령하여 조기졸업을 하고 일본군에 징집되었습니다.
요고스카 해병단에서 훈련을 받고 임관직전에 일제가 항복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침략전쟁의 제물이 되지 않고 광복을 맞이하셨습니다.
폭격을 받은 조선우선의 금천호가 일본에서 수리를 마치고 부산항에 입항했습니다.
당신께서 금천호 3등 항해사로서 일장기를 내리고 광복된 조국의 태극기를 손수 게양하는 역사적인 감격을 체험하셨습니다.

극동해운의 고려호가 태평양을 최초로 횡단했습니다. 특이하게도, 고려호의 선장은 박옥규 현역제독이었고 당신께서는 3등 항해사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입항했을 때 교포들이 고려호에 게양된 태극기를 바라보고서야 조국이 광복되었음을 실감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신께서도 교포들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한해운공사 동해호 선장으로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횡단하고 항해 거리를 단축시키는 파나마와 수에즈 대운하를 통과하며 화물 따라 오대양 육대주를 누볐습니다.
최초로 세계 일주항해를 성취한 대한민국의 마젤란이 되셨습니다.
우리 해운역사 고비 고비마다 당신께서 그 중심에 굳건히 계셨기에 우리나라가 해운국가로 우뚝 섰습니다.

1958년 인천항 도선사로 취역하여 35년간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8년간의 대역사 끝에 동양최대의 인천항 도크가 준공되어 인천시민과 항만관계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관문통과 시범도선을 하셨습니다.
인천항 도크 도선은 파나마 도선사에게 마껴야 한다는 주장을 기우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파나마 도선사에게 마꼈다면 인천항은 외국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천항 도선역사에 기록될 몇몇 사건들이 있습니다.
첫째, 1976년 밀가루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림부가 소맥을 긴급 도입했습니다.
때마침 갑문을 정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맥을 만재한 거대선박의 입거가 불가능했습니다.
농림부와 교통부가 대책을 거듭했으나 타개할 방법이 없어 애를 태웠습니다.
이때 당신께서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여 거대선박이 신출귀몰하게도 갑문을 유유히 통과하여 사이로 부두에 접안했습니다.
손에 땀을 쥐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바라보던 항만관계자들이 탄성을 자아내며 導船神이라 칭송했습니다.

둘째, 1977년 한파로 인천항이 결빙되어 항만운영이 마비되었을 때도 지기를 발휘하여 그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셋째, 1987년 자동차 5천 5백대를 적재한 자동차전용선 상갑판이 운동장보다 넓은데도 바늘구멍과 같은 좁은 갑문으로 진입할 때 본선 선장이 새파랗게 질려 도선을 가로 막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갑문을 통과했습니다.
본선 선장이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넷째, 한국과 러시아와의 항로가 84년간 두절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소련 여객선이 88서울올림픽 선수단을 싣고 인천항에 입항했습니다.
이때도 당신께서 도선을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인천시 올림픽 성화봉송 최종주자로서 노익장을 과시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인천항 위기의 고비마다 당신께서 매듭을 풀어 주셨기에 수도권 산업활동이 차질 없이 작동되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국가로부터 산업훈장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후진양성을 위해 한국해양대학에 거액의 재산을 기부하였고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우리 해운항만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거대선박을 도선하며 이곳 인천항 갑문을 수없이 넘나들었습니다. 해옹 배순태 도선사님의 인생과 철학과 꿈이 이곳에 서려있습니다.
이제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이곳 갑문을 떠나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향기 그윽한 꽃길을 밟으며, 햇빛 찬란한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시옵소서.

2017년 4월 14일
김 종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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