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대 교수/한국해법학회 회장)

▲ 김인현 교수
어제(6월 19일) 부음을 들었다. 한국해양대학 학장님을 지내신 이준수 교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고인께서는 한국해양대학교를 1기로 졸업하시고 한국해양대학교에서 교수로 정년 퇴직시까지 재직하시면서 후학을 양성하셨다. 그 후로도 명예교수로 계시면서 해운의 발전에 진력하셨다.

선생님께서 한국해양대학 역사나 해운산업에 남기신 업적은 지대하다. 첫째, 공학계가 주류를 이루었던 한국해양대 교수진에 유일한 법학박사로서 해운에 법학의 뿌리를 내려주셨다.

한국해양대학은 항해학, 기관학 두과로 운영되는 학교였고 항해학과 기관학은 모두 공학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 이준수 교수님과 법학박사 손태현 교수님께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셨다.

선장이 되면 법학과 경영학의 기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지론이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국제법과 해양법이 무엇인가를 가르켜 주셨다.

이후 배병태 교수님, 임동철 교수님, 박용섭 교수님, 황석갑 교수님 같으신 분들이 법학박사를 취득해 선생님의 뒤를 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해기사 출신 법학교수 10여명과 해상변호사 10여명이 탄생하게 되어 우리 해운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해운산업에는 법학과목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전공분야로서 해사법학의 존재감을 후학들에게 알려주신 분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둘째, 선생님은 프론티어 정신에 투철하셨다. 필자가 알기로는 선생님은 1960년대 후반 교수직을 일시 휴직하고 수산개발공사 이사로 나가셔서 해외에 거주하시면서 우리나라 원양어업을 개척하셨다.

또한 1978년에는 한국해양대학 31기 학생들을 이끌고 신조한 한바다호의 실습감으로서 세계일주 항해를 완수하셨다. 우리나라 역사상 실습선이 세계 일주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한국해대생들의 흰 제복입은 모습이 신동우 화백을 통하여 언론에 보도되어 일반 국민들이나 대학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었고 한국해양대학의 위상이 이에 따라 크게 올라가게 되었다.

박현규 이사장님, 서돈각 교수님, 손주찬 교수님과 함께 한바다호에서 한국해법학회를 1978년 창립하신 것도 큰 업적이다. 해법을 좀 더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집적하자는 취지에서 한국해법학회를 창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선생님은 상아탑내에서 학문에만 매진하신 것이 아니라 학사행정가로서 또 해운·수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크게 진력하신 분이기도 하다.

선생님과 나는 학창시절 교수와 제자 사이로 1981년 만나 뵙게 되었다. 그러다가 필자가 교수가 된 다음해인 2000년부터 3년간 자주 뵙게 되었다. 한국해사문제연구소에서 ‘해운물류큰사전’을 편찬하게 되었는데, 각 분야별 전문가 2분씩, 총 12분을 모시게 되었다. 나는 배병태 박사님과 같이 해상법 담당이었고, 선생님은 허일 교수님과 같이 항해학 담당이셨다. 당시에도 선생님은 이미 70대 중반으로 모임에서 최고 원로셨다.

우리들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두 차례 강원도의 조용한 곳에 합숙을 하면서 편찬 작업을 하게 되었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위원님들은 평소와 같이 저녁을 먹고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밖에는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그 눈이 점차 강해져서 바닥에도 눈이 제법 쌓이게 되었다. 숙소는 산길인데 차로 10분은 족히 걸리는 언덕길이다.

몇 분은 이제 숙소로 돌아가자고 하셨지만 술기운에 한잔 더 하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반주를 좋아하시는 선생님은 나직하면서도 느리면서도 설득력 있는 예의 목소리로 한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은 모두 이 나라에서 소중한 분들입니다. 눈이 더 쌓이면 길이 미끄러워 숙소로 돌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사고라도 나게 되면 큰 일입니다. 이제 그만 모두 일어나서 숙소로 돌아가십시다”

모두 숙연해 지면서 주섬주섬 일어나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미 길은 미끄러워 겨우 숙소에 당도했다. 조금 더 지체했다면 문제가 생길 뻔 했다. 필자는 당시 원로의 경륜과 힘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며 선생님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명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한국해양대학교 1기로 1945년 입학해 해양대학의 교수로, 최고책임자인 학장으로, 실습감으로 재직하시면서 후학을 양성하셨다. 그리고 해기사협회장, 수개공 이사, 한국해법학회 창립, 해운물류큰사전 편찬 등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진력하셨다.

선생님은 우리 해운의 여명을 밝히신 선각자의 한사람으로 후배 해운인들에게 길이 길이 칭송되고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생님의 해운 사랑하는 마음이 후학들인 우리들이 잘 전수하여 해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선생님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2017.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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