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 박태원 박사
우리는 빠르고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 즉 대변혁(mega-change)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국가와 기업, 개인 등 다양한 차원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대변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구 역사 전반에 걸쳐 몇 백 년 마다 뚜렷한 변혁이 일어난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한 사회의 세계관, 기본적 가치관, 사회 정치적 구조, 예술, 주요한 제도 등이 아예 재정리 된다. 50년만 지나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 세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조부모 세대가 살았고, 부모 세대가 태어났던 세계를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드러커가 말하는 핵심은 현재 우리는 기존 세계관(modernism)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많은 올가미들이 사라지는 동시에 또 다른 세계관(postmodernism)이 등장하고 있는 절묘한 시점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문화, 사회 그리고 제도는 막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는 절대적이고 혼란스러운 불연속성의 상상을 초월하는 순간을 살아가면서 기존의 것들이 스러지고 새로운 것들이 그 빈자리를 재빨리 채우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실제로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도 50년을 넘지 않는다. 1945년에서 1970년 사이에 선정된 500대 미국기업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사라졌고, 1970년 사이에 선정된 500대 기업 중 3분의 1이 1983년에 기업명단에서 사라졌다.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58년에 45년이었고 1998년에는 22년으로, 2008년에는 15년으로 점점 짧아지고 있다.

혁신은 이제 트렌드가 되었다. 기업 어디에서나 혁신 없이는 버틸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의 경제 발전이론에 따르면, 경제 발전의 동력은 누가 뭐래도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이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만들어낸 그는 새로운 기술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산업과 경제는 송두리째 그 모습이 바뀌었다.

여기서 우리는 시장선도자(first mover)와 추종자(fast follower)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종자는 시장선도자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놓으면, 이를 벤치마킹해서 1위 기업보다 더욱 개선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한다.

물론 추종자 전략을 잘 써서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많다. 과거 PC산업의 경우 MIST가 Alter 8800이라는 PC를 만들어내지만 시장선도자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추종자인 IBM과 Microsoft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는 스마트 폰 시장에서 시장선도자인 애플과 추종자인 삼성의 사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컨테이너 해운시장에서 시장선도자와 추종자의 관계는 어떠한가?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해운회사에 근무하던 1970년대 중반에도 머스크(Maersk)의 시장지배력은 대단했다. 그 시절 머스크의 정보 수집 및 분석 기능은 한국의 종합무역상사와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심지어 미국 국방성의 정보력에 비교되기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이킹의 후예답게 머스크는 거대한 자본력과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정기선 해운시장에서 난공불락의 탄탄한 글로벌 화물유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컨테이너 해운시장의 시장선도자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머스크 등에 한국의 현대상선은 추종자로서 어떤 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혹자는 100만teu 이상의 선복 확대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혹자는 우리나라 원양항로의 국적선사 선복량이 200만teu가 되어야 하며 국적선사간 협력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초대형 컨테이너선(mega-containership)의 등장을 가져온 조선 산업의 혁신은 선사들의 컨테이너선 대형화 경쟁과 맞물려 세계 정기선 해운시장에 참혹한 재앙을 초래했다. 필자는 2002년 11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연구위원 재직 시절에 펴낸 연구보고서 『컨테이너 대형화와 경제적 효과 분석』에서 시장선도자의 규모 경제효과에 의한 1만teu급 이상의 대형 컨테이선의 투입은 추종자의 대형선 투입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선복의 공급과잉을 심화시킴으로써 운임이 하락하고 수익성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대형화로 인하여 증대된 선복에 상응하는 집화능력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소석율의 저조로 채산성 달성이 불가능하고 선박의 대형화 경쟁은 집화경쟁으로 이어져 해운시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진해운이 몰락한지 1년이 지난 지금, 현대상선도 또다시 도취된 추종자가 되어야 하는가? 이미 세계 정기선시장은 세계 반도체시장과 같이 끝없는 치킨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10여 년간 이어졌던 치킨게임의 끝에 '살아남은 자’들의 화려한 파티는 세계 정기선시장에도 시사 하는바가 매우 크다.

세계 정기선 해운시장에서 거대한 공룡인 머스크와 같은 시장선도자에 대한 조급하고 무모한 추종자 전략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 해운의 대표 주자인 현대상선의 당면 과제는 재무적 안정성을 통한 대외신인도의 회복이다. 철저한 시장분석을 근거로 틈새시장을 노리는 적정한 크기의 선대 확충도 시급하지만 효율적인 글로벌 블록체인(Blockchain) 물류서비스 구축 등 소프트웨어 인프라 투자도 급선무다. 또한 우리나라 수출입 대량화물의 장기운송계약(COA)을 통한 전용선 확보 등 사업부문간 효율적인 포트폴리오의 구축을 통하여 불확실한 해운시황의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여기엔 정부의 정책 · 금융 지원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현대상선의 생존과 한국 해운의 활로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해운시황 예측 능력의 제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에 의한 해운시장의 정보 분석과 시황 예측은 선사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시간에도 머스크는 IBM의 ‘왓슨(Watson)’과의 제휴를 통해 해운시황 예측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경영전략에 활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비하는 범정부적 차원의 총력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해운실무에 경험이 없는 연구진에 의한 국책 연구기관의 해운시황 분석은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당장 산·학·연 협력 체제를 구성하고 상호 인적 교류와 함께 외국의 유수한 해운시황 분석기관으로의 연구인력 파견 등을 통한 시황분석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물론 개별 선사 차원의 해운시황 분석 기능의 제고를 위한 인재 양성과 시스템 구축도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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