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 윤민현 박사
대한민국 제1호 국영기업이자, 제1호 선사인 내셔널 캐리어 대한해운공사가 설립된 것은 1949년으로 한국해운사의 시작은 바로 대한해운공사에서부터 비롯된다. 국영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해 민영 1기(한양재단 김연준 총장), 2기(서원농산 윤석민씨), 3기(한진그룹)에 재직했던 한 사람으로서 대한해운공사의 연결선상에 있는 한진해운이 청산의 길을 걷고 있는 현실에 대해 수몰지구의 실향민과 같은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선주협회가 2007년 발간한 「한국해운 60년사」, 그리고 대한해운공사에서 한진해운에 이르기까지를 대상으로 한진해운측이 2008년 발간한 「한진해운 60년사」, 그리고 한국해사문제연구소가 대한해운공사가 한진그룹으로 편입되기까지의 40년 역사를 기록한 「잃어버린 항적」 등에 참여한 바 있었던 필자의 생각으로 후일을 위해 대한해운공사의 족적을 기록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자료를 모아왔으나 그 자료가 대한민국 제1호 선사 대한해운공사-한진해운의 67년 일생을 정리하는 기록이 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모아온 자료들은 회사의 조직과 선대 구조, 경영실적, 평가, 회생신청과 청산의 진행과정 등 한진해운/관리인/회계법인 등이 작성한 자료 1500여 쪽과 국내외 언론보도자료, 관련기관의 보고서 등 1000여쪽, 관련 도표와 사진 등이 150여장이다. 향후 청산이 마무리 될 때까지 추가 자료를 보태어 이를 토대로 객관적 시각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금융위기를 중심으로 한진해운이 수평선 넘어로 사라지기까지 67년만에 끊어진 대한해운공사의 항적을 정리해보려 생각하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는 국내외적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과 파장을 불러왔다. 한국해운사라고 할 수 있는 내셔널 캐리어가 무너진데 대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개인, 기업, 부처와 당국 그리고 해운인과 비해운인간 느끼는 체온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한진해운 도산 일년에 즈음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날선 비판과 문책론을 보며 대한해운공사에서 한진해운에 이르기까지 그 회사에서 관리, 운영, 기획, 해외지역본부 등에 30여년 재직했던 입장에서 한진해운 사태를 보고 느끼는 아쉬움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아쉬움이 크게 틀리지 않다면 향후 해운의 재건이나 유사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다음 몇가지로 아쉬움을 요약해본다.

① 실패한 경영진과 대주주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수십년간 명맥을 유지해온 내셔널 캐리어를 경영난만을 이유로 도산시켰어야 했는지…

② 전통적으로 불필요한 라이벌 의식 때문에 국적선사간의 공조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양대 선사를 통합해 제 5위의 글로벌 선사로 부상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기회였는데…

③ 국내에서 또 다시 그런 사태가 생기면 동일한 방식을 택할 것이라는 금융당국자의 자심감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왜 이를 정치적 실수(political blunder)라고 평가하는지…

④ 해운산업의 주기성(cyclical character), 컨테이너 정기해운시장의 구조와 속성에 비추어 볼 때 컨테이너 정기선사가 그룹경영에 포함되는 것이 타당한지…

⑤ 법정관리 개시란 정기선 해운에서 사실상 사망선고와 다를 바 없음에도 한진해운의 경우 법정관리라는 절차가 꼭 필요 했는지…

⑥ 일부 지역에서 한진해운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는데 그 목적이 반드시 재발방지라면 지금까지 노출된 여러 가지 정황만으로는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⑦ 원인과 책임규명이 현실적으로 어디까지 가능하며 한국해운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것인지, 범정부 차원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업(대주주 포함)뿐 아니라 운송정책과 금융정책을 대상으로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정조사’를 할 경우 작년 9월 개최되었던 청문회 그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인지…

한진해운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해 제2의 한진해운 사태를 방지하자는 데는 원론적으로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한진해운 사태의 시작과 종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한진그룹과 한진해운이 그 한복판에 있으며 재정난에 처한 회사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당사자는 채권단을 중심으로 한 금융정책과 한진해운의 위상을 개별기업차원이 아닌 국가의 안보와 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했어야 할 운송정책의 세 축(軸)이 있다.

바꾸어 말해서 한진해운이 청산이라는 극단적인 결말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이들 3개 주체간의 상호 소통과 조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 결론이 회생절차 개시를 통한 청산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을 되짚어 보고 주요 결정사항에 대한 정당성과 합리성을 확인해보아야 하는 만큼 전체과정에 대한 심도있고 폭 넓은 조사 없이 막연한 ‘감’에 의존해 어느 특정 계층의 과오나 태만을 지적하기에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역부족일수 있으며 정도에 따라 또 다른 비생산적인 논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주요 이슈들은 대부분 그 윤곽이 들러났다. 다만 그 내용을 뒷밭침하는 실물 기록과 자료가 없을 뿐이며 구체적으로 계량화, 계수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다행히 3축중 하나이자 사태의 주역인 한진그룹과 한진해운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자격이 공인된 제3자가 조사한 보고서가 있어 나름 대주주인 한진그룹과 한진해운의 경영진에 대한 책임 유무를 어느 정도 확인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요지는 아래와 같다.

1. 2016년 8월 31일자 한진해운이 작성해 제출한 법정관리개시 신청서상에 언급한 원인 및 경위
ⓐ 지속적인 해운업계의 불황 및 운임수준의 급격한 붕괴에 따른 유동성 위기
ⓑ 회사의 자구안에 대한 채권금융기관 협의회의 신규자금 지원 부결 및 주채권 은행을 통한 자율협약의 중단

이는 회사측 시각이기 때문에 그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해운시장의 장기침체와 그로인한 유동성 고갈,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노력과 채권단의 계속적인 지원거부를 법정관리 개시신청의 배경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채권단이라함은 한국산업은행(KDB), KEB 하나은행, 농협은행, 국민은행, 부산은행 등이며 당시 한진해운의 주거래은행은 산업은행이었기에 사실상 채권단을 주도한 당사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었다.

2. 반면 서울중앙지방법원(제6 파산부)이 선임한 ‘ㅅ’ 회계법인의 조사보고서상 ‘회생절차 개시에 이르게 된 사정’
ⓐ 전세계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해운업계 불황 및 선복량 과잉에 따른 해상운임의 폭락
ⓑ 고원가 선박발주에 따른 원금 상환 부담 및 고시황기에 확보한 장기용선계약의 손실
ⓒ 자율협약 절차 중단에 따른 자금 지원 및 채권 연장 실패

3. 파산 원인과 관련해 회계법인과 회사측의 차이라면 회계법인이 좀 더 구체적으로 시장의 정점에서 고선가로 선박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고요율로 장기용선한 결과가 부채의 누적과 함께 유동성 고갈을 초래했다고 추가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4. 다음 동 조사보고서에서 언급한 ‘법인채무자의 지배주주 및 임원들의 책임’에 관해서는 “외부 경영악화 및 일부 투자에 대한 판단 실패로 채무자(회사)의 경영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판단되나, 채무자의 지배주주 및 임원들의 재산 은닉 또는 유용,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되는 행위 또는 이사 등의 임무해태 행위에 기인한 중대한 책임이 있는 행위로 인해 회생절차 개시의 원인이 발생했다고 판단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5. 다만 한가지 동사의 계열사인 ㈜싸이버로지텍(CTL)과 체결한 IT Outsourcing 계약과 관련해 당초 저작권은 회사(한진해운)가 보유하고 CTL은 업무수행에 필요한 범위내에서 통상의 사용권을 갖도록 계약되어 있었으나 이를 중도에 변경해 소프트웨어에 대한 저작권 등 권리가 양사 공동으로 귀속된다는 취지의 합의서를 작성함에 있어 당연히 법(상법 398조)이 정한 바에 따라 이사회의 결의를 득해야 하나 그렇지 않았다는 흠결을 지적한 바 있다(이 부분에 관해서는 양측간에 법정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한진해운의 경영난 문제가 외부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2013년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외신들도 이때부터 한국의 양대 컨테이너 선사의 실적과 동향에 대해 주시하기 시작했다. 주지하듯이 금융위기 직후 전 세계 상위 20대 선사 모두가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다가 2013년 이후부터 부분적으로 소수의 선사들의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했고 자타가 공인하듯이 2016년은 1990년 이래 최악의 시황이었다(Clarkson). 즉 경영악화는 한진해운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며 이점에 관한한 한국의 다른 회사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어려움의 정도가 한진해운의 경우 해외선사들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율협약의 전제조건으로 2016년초 양대선사에게 채권단이 제시했던 3개 조건중 하나가 용선료 인하였다. 2016년 3월 기준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합계 153척을 운항중이었으며 그중 컨테이너선 101척의 경우 사선이 37척, 용선이 64척이었다. 이중 법정관리 개시결정일 기준으로 7년 이상 장기용선 선박이 46척으로 대부분의 계약용선료가 당시 시장가(market rate) 대비 적게는 35%, 많게는 400%를 넘는 고요율이었다. 예를 들어 4000teu급 수척의 계약 용선료는 일일 2만 5950달러였으나 2016년초 당시 시장요율은 일일 5천달러였음을 감안하면 그로 인한 자금 압박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짐작할 수 있다(회사제시 자료에 의거 ‘ㅅ’회계법인의 조사보고서 p8).

뿐만 아니라 발주한 선박의 경우도 시장의 고점에서 발주한 관계로 선가는 경쟁선사와 대비해 지나치게 높았다. 2008년 발주한 1만 3000teu급 5척의 경우 척당 1억 6900만 달러였는데 2012년 대만 에버그린이 발주한 1만 3800teu급의 선가는 척당 1억 1500만 달러였다. teu당 건조가격을 비교해보면 한진해운은 teu당 1만 3천 달러, 에버그린은 teu당 8333달러로 teu당 4667달러나 차이가 난다. 선박운항원가중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자본비 즉 선가이며 Box당 1~20달러의 운임차이로 운송선사가 결정될 만큼 치열한 원가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시장에서 이정도의 선가 차이는 아무리 유능한 경영을 펼치더라도 극복하기 어려운 격차임에 틀림없다.

200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중국발 특수로 인해 해상운임과 함께 덩달아 시장의 용선료 역시 천정부지로 올라갔고 그러다 보니 당시 경영진에서는 비싼 용선선박 대신 선박을 건조하는 방향을 택했던 것으로 보이나 2008년 초에는 용선료와 마찬가지로 신조선가 역시 고점에 머물러 있었던 시기였다. 따라서 회사 경영진의 입장에서 사태의 원인을 전적으로 시황 탓으로 돌리기에는 선박확보 시기를 판단함에 있어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대주주 혹은 오너의 책임론>

전기한 조사보고서에서는 경영의 실패에 관한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책임 여부에 대해 언급은 있었지만 법정관리 개시 전후의 국내 정서는 경영진에 대한 책임보다는 대주주인 한진그룹의 대응에 더 관심이 집중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법정관리 개시가 결정된 이후 그룹차원에서 혹은 대주주 차원에서 벼랑 끝에 몰려있는 한진해운을 구하기 위해 적극 나서지 않고 정부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비판이 비등해 왔으며 회사는 이미 법정관리중임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을 포기한 대주주의 무성의(?)를 대통령까지 나서서 질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진해운의 최대주주는 전체 총 주식 2453만 여주의 33.23%를 소유하고 있는 ㈜대한항공이며 한진해운과 그 사주조합이 보유한 3.4%를 제외하면 63% 정도는 기타 일반주주들이었다. 당연히 대한항공에 이목이 집중되었으며 특히 그룹을 총괄하는 대주주(일명 오너)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한 시각에서 살펴보면 당시 한진해운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2016년 4월 대주주가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자율협약을 요청한 이면에는 한진해운을 살리기에는 대주주인 대한항공과 타그룹사만의 힘으로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한진그룹의 리더(leader) 입장에서는 언제까지 한진해운에 돈을 쏟아 부어 그룹을 위태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한진해운을 버리고 그룹을 살린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진해운 상황과 대주주인 대한항공의 상관관계를 바라보는 일반투자자의 생각도 한진그룹의 리더가 보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한진해운 리스크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주가가 급등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하튼 한진해운이 한진그룹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주축은 싫든 좋든 그룹경영체제이고 적어도 그런 현상이 당분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산업분야에는 항상 부침이 있기 마련이고 그룹경영이라고 해서 산하 모든 기업을 다 이끌고 갈수는 없는 것이며 그 중 어느 특정 사업부문이 위기에 처할 경우 상황과 정도에 따라 그 진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도가 심각할 경우 때로는 어려운 취사선택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런 목적하에 대부분의 그룹에는 그룹경영을 총괄하는 조직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때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삼성중공업을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 검토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핵심은 조선시장의 전망과 그 회복시기, 그리고 그때까지의 필요한 자금지원의 규모였을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버릴 수도 있고 지원을 계속할 수도 있는 것이며 정리하려면 가능한 빨리 정리하는 게 그룹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라 판단되면 그 후속 대책은 매각 아니면 스스로 시장에서 철수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현대그룹도 현대상선이 그룹 주력사업이 아니었다면 한진그룹보다 더 빨리 현대상선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해 굳이 법이 정하고 있는 주주의 유한책임론을 들지 않더라도 한진해운 때문에 대한항공까지 위기로 내몰아서는 안된다는 중론에 공감한다면 대주주인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의 결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재정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채권단과 정책부서 그리고 대주주간의 소통이 다소 매끄럽지 못했다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며 사태 이후 해외 일각에서 프로답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약해보면 한진해운 사태에 관한 한진해운 경영진과 대주주의 책임을 논한다면 전기한 내용이 그 주가될 것으로 생각하며 조사보고서가 지적한 것처럼 상황인식과 경영 측면에서의 부족함이 있었다는 지적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중대한 과실이나 태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책의 역할과 책임>

한진해운의 경영난에 대해서는 상사적 측면에서 볼 때 한마디로 경영의 실패라 할 수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본다. 문제는 내셔널 캐리어라고 할 수 있는 한진해운의 가치에 대한 평가다. 경영의 성패를 일개 영리기업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법정관리를 거쳐 청산되는 경우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모두가 아쉬워하는 것은 상사베이스를 떠나 정책적 고려가 부재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채권관리차원에서 먼저 접근했던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채권채무정산의 윤곽이 드러난 후 어느 단계에 이르면 단순한 채권단의 논리를 뛰어 넘어 한진해운의 장래를 조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자면 채권단 주도의 금융정책과 정책부서가 살폈어야 할 운송정책에 관한 조율과 조정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영의 실패를 이유로 명실상부한 내셔널 캐리어의 장래가 채권단의 손에서 처결되기 이전에 자발적으로, 금융정책에서 제기할 수 있는 다소의 저항을 감수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운송정책이 개입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진해운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원인조사를 한다면 정책조율 부재에 관한 부분도 조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핵심사항이 되겠으나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보아야 한다. 한진해운 사태를 두고 해외에서 정치적 실수라고 평가하는 배경에는 상사베이스에서 내셔널 캐리어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보다는 정책적 고찰이 부족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한다.

핵심을 간과한 체 경영의 성패가 한진해운 사태의 전부인 것처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며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자는 본래의 취지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과거 정권의 실정(失政)을 조사해보겠다는 목적이라면 해운계의 영역 밖으로 논외의 대상이 되겠으나 금융정책과 운송정책에 관한 부분을, 그것도 해운업계의 시각에서, 해운업계의 주도로 조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고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운송과 금융정책라인 선상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에 작성된 각종 서류와 자료들에 대한 접근이 불가한 처지에 과연 해운계가 그러한 장애를 뛰어 넘을 수 있을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담당 라인의 인사들에게 답변을 요구할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사라진 한진해운, 이미 뿔뿔히 흩어진 임직원 그리고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책부서의 협조(?)를 포함, 극복하기 어려운 여러 장애를 감수하면서까지 한진해운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반드시 규명해야 할 정도로 한국해운계가 그 필요성을 절박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진해운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조사할 수 있는 길이 ‘해운계’에 열려있다고 보는지, 또 누가 어떤 방법으로 조사를 할 것이며 그 결과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범정부 차원에서 ‘국정조사’를 하지 않으면 한진해운 사태의 재발방지 대책 수립이 불가능한 것인지, 원인조사와 책임규명이 유사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 한국해운의 재건을 위한 것이라면 핵심 이슈들은 충분할 만큼 이미 그 윤곽이 들러났다고 본다.

현재 정책부서는 이미 한진해운 사태를 통해서 얻은 뼈아픈 교훈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한국해운의 재건을 위해 나서고 있으며 해운계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root cause)이라 할 수 있는 한진해운은 67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목하 청산중이고 경영에 실패한 경영진과 직원들은 직장을 잃었다. 임직원과 대주주에게 민형사상의 책임이 있다면 논외가 되겠지만 이 정도면 실패한 경영에 대한 문책으로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what you want)과 할 수 있는 것(what you can)은 구분해야 하며 이를 혼동할 경우 엄청난 혼란과 분열이 뒤따를 수 있는 것이다. 정치공학적인 문제는 산업계가 간여할 영역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국 해운계에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잃어버린 글로벌 컨테이너 항로의 복원이며 이를 위해서는 그나마 남아 있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야 하는 시기다.

실현 가능성도 문제일 뿐 아니라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주체들간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는 ‘책임규명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한국해운계의 상황이 업계 독자적으로 추락하고 있는 해운을 재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 아닌가?

p.s : 대한해운공사와 한진해운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주변에 참고가 될 만한 자료가 있거나 소재를 알고 있으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Penb4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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