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 박태원 박사
품질과 가격경쟁력이 최우선 가치였던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의 요구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 요구를 즉각적으로 제품에 반영하는 기업이 시장을 선도한다.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제품의 개발을 선도하고 제조 기업들은 그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어쩌면 자동차산업에서 현대자동차가 구글의 하청업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기술은 과거의 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우 빠르고 광범위한 변혁을 가져온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인지와 사고영역이 인공지능(AI)이라는 형태로 기술과 접목하고, 이 기술들이 산업 전반에 녹아드는 ‘융합과 연결’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기 때문이다. ‘파괴적 기술’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산업분야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대대적인 재편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1차 산업혁명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고, 2~3차 산업혁명은 미국을 세계 최강의 국가로 변모시켰다. 3차 산업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은 또 다른 영원불멸의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맥킨지(McKinsey & Company)는 “모바일 인터넷, 자동화, 사물인터넷(IoT), 무인차, 전지, 신소재 등 4차 산업혁명의 모든 부분에서 선진국들의 독점 현상이 지속될 것이며, 제조업이나 정보통신기술 인프라가 부족한 신흥국들은 상당히 고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와 기업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우편 마차는 여러 대를 연결해도 결코 기차가 될 수 없다.” 경제학자 슘페터가 약 1세기 전에 말한 혁신의 본질이다. 마차를 개량해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도 그것은 근본적인 진화가 아니다.

이제 금세기 최대의 화두가 되어버린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계 정기선 해운시장의 지각변동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COSCO가 홍콩의 OOCL을 인수하며 세계 3위의 선사로 몸집을 키우자, 프랑스 CMA CGM은 2만teu급 초대형선 9척 발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세계 정기선 해운시장의 맹주 자리를 놓고 치킨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점입가경이다.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의 첨단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는 선박보유량 일색의 하드웨어적 인프라 투자는 예기치 않은 대형 선사의 몰락이라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드웨어 위주의 거대한 몸집의 대형 선사라 할지라도 첨단 ICT 소프트웨어로 무장한 해운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시장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통적인 해운업의 역할은 점점 약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ICT기술 융복합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기반은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운조사기관인 IHS는 ‘Global Maritime Trends 2016’ 백서에서 향후 10년간 글로벌 해운업계를 이끌어갈 5개의 핵심 트렌드 중 하나로 ‘빅 데이터’를 선정한 바 있다.

빅 데이터를 활용한 온라인플랫폼이 구축되면서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등 디지털 혁신 선도 기업들은 모든 정보를 축적하고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미 머스크(Maersk)와 CMA CGM이 알리바바와 파트너십을 맺고 온라인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에 뛰어든 지 오래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우리 해운업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의 등장과 이에 따른 해운업계의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모임이 잦아진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원론 수준의 논의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유럽선사들은 빅 데이터와 IoT의 활용이 적극적인 반면, 우리 해운업계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빅 데이터나 IoT 등 신기술의 도입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현대상선이 냉동 컨테이너에 IoT 장비를 부착해 실시간 추적 및 모니터링을 통한 화주 서비스 향상과 비용절감 가능 여부를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정도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해운업계는 ICT 역량과 지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는 솔루션으로 「해운산업 스타트업 클러스터(Maritime Startup Cluster)」의 조성을 제안한다. 우리 해운업계가 ICT 역량과 지식을 갖춘 인재를 직접 양성하기 보다는 해운업계와의 연계를 통해 4차 산업에 대비하는 신생 창업기업을 육성하는 범정부차원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그나마 우리 해운업계가 살아남기 위한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해운산업 스타트업 클러스터」는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당장 해양수산부는 관련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신속한 액션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한국선주협회를 중심으로 모든 선사들의 역량 집중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 해운업계의 대응은 논의에만 그치는 말의 성찬이 아니라 적시(適時)의 의사결정과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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