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 박태원 박사
최근 부산에 대한상사중재원과 부산시가 공동 설립하는 ‘아시아태평양해사국제중제센터’에 대응해 서울에 한국해법학회가 주도하는 임의해사중재기구인 서울해사중재협회(SMAA)가 설립된다는 매우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대한상사중재원이 부산시로부터 5억원을 지원받아 아태해사중재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것에 자극을 받아 해양법 학자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해사중재제도의 독자성 확보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인 해사중재조직의 출범은 세계 해사중재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영국과 같이 기관중재와 임의중재가 경쟁을 벌이는 이원적인 해사중재구조를 갖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미국, 일본 등에서는 1920년대 중반부터 해사중재위원회 등의 해사중재기구가 발족돼 상사중재와는 별도의 독자적인 해사중재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해사중재가 단지 상사중재의 일부분으로 취급돼 오면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해사중재기관이 없이 대한상사중재원에서 해사중재를 담당해 왔다.

해사중재의 대상은 선박충돌, 용선계약,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해상보험, 공동해손, 선박수리, 선박권리에 관한 계약, 해상 및 기타 수역에서 발생한 비계약적 분쟁 등으로 상사분쟁과는 매우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해사중재제도는 전문성과 신속성이 결여돼 이용자들로부터 신뢰성을 잃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국내 수출입업자와 선사 등은 외국 거래당사자와의 각종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재조항의 중재지를 관행적으로 우리나라가 아닌 영국이나 미국, 일본 등으로 정했다. 이는 외국에서의 중재절차에 따른 외화유출이라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인력과 시간의 낭비를 초래했으며 외국중재인에 의한 중재판정에서 오는 불이익도 감수해야만 했다.

필자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재직하던 2004년 8월에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제출한 『한국해사중재원 설립 타당성 연구』의 연구책임자로서 영국과 일본, 중국 등의 현지 출장을 통해 해사중재제도의 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한국해사중재원 설립의 타당성과 기대효과를 도출해 <한국해사중재원>의 2006년 설립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그 당시 외국사례의 특징과 시사점으로는 △해사중재기관의 독립적인 운영 필요 △해사중재절차 선택의 다양성과 신속성 △해사중재 운영조직의 슬림화와 재정자립형 운영구조 △표준해사중재조항 사용 권장을 통한 해사중재 활성화 도모 등이 도출됐다.

특히 해사중재 운영조직과 관련해 런던해사중재인협회(LMAA)는 회장 1명과 위원 6명의 위원회(Committee)와 의장 1명과 위원 13명의 회원연락위원회(Supporting Members Liaison Committee), 그리고 1명의 사무국장과 1명의 보조요원의 사무국 등으로 구성돼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2003년 중재신청건수가 2,302건에 이르는 런던해사중재인협회의 상주 직원이 2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쿄해사중재위원회의 경우에도 해사중재업무에 종사하는 행정요원이 4명에 불과했으며 중국의 해사중재위원회도 5명의 사무국 조직을 운용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일본, 중국 등은 해사중재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자국의 해사중재기관에 의한 해사중재를 규정하는 표준해사중재조항을 제정해 각종 해상운송계약서에 삽입하도록 하고 있었다.

2004년에 연구용역의 수행 과정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70%를 상회하는 국적선사들이 대한상사중재원과는 별도로 독립적인 해사중재기구를 설립해야 하며 영국과 유사한 수준의 해사중재제도가 정착될 경우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한국해사중재원의 설립은 △해사중재의 독자성 확보 필요 △동북아 물류중심국가 실현의 필수적인 제도적 인프라 △국내 선사 · 화주의 중재판정 불이익과 비용과다 지출 문제 해소 △해운산업 발전전략에 부합하는 정책적 과제 등에서 그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한국해사중재원 설립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제출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만시지탄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서울해사중재협회(SMAA)의 태동이 한국해사중재원의 설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양수산부는 관련부처와의 신속한 협의를 통해 법제도 정비 등 정책적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해사중재원의 설립은 세계해운질서를 우리나라 중심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며 21세기 동북아 해운물류중심국가로 도약하는데 필수적인 성장 동력이다.

해양수산부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하드웨어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책 입안도 중요하지만 적은 예산으로도 한국해운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소프트웨어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책 발굴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해양수산부가 2017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 천명한 “해양수산 신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과 “해운·항만 물류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그리고 “해양주권 강화와 글로벌 선도국가 도약”을 실현하는데 걸 맞는 정책방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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