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marine policy ; 보험증권

고등학교 3학년 때 경제학 교과서가 Seager, H. R.의 Principles of Economics(1913)이었는데, 그 안에는 운송서류(shipping documents)의 하나로 ‘marine policy’라는 것을 담당 야마구치(山口) 선생이 ‘해상보험증권’으로 해석한 것에 대해 구보타(窪田)군이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해상정책’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항의한 적이 있다. 그 때 구보타군은 자기의 생각을 철회하려하지 않고 1시간 가까이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덕분에 우리들은 재미없이 무미건조한 강의로부터 해방되어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 나도 대학에서 해운과 해상보험 강의를 하게 되어 교실에서 종종 marine policy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동급생과 같이 생기발랄한 학생을 만난 적이 없다. 물론 구보타군이 억지를 부린 것이지만, 야마구치 선생도 단지 “이것은 ‘해상보험증권’이라고 번역한다”라고만 하고 그 이상의 설명은 하시질 않아 언제까지 승부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서는 야마구치 선생을 대신해서 내가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을 하고 싶다. 다만, 건강했던 구보타군은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심장병으로 사망해서 나의 설명을 들려줄 수 없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문제는 marine policy의 ‘policy’이지만 ‘정책’을 의미하는 영어의 policy가 그리스어 πολιτια(politia, 시민권, 정치, 정체) 또는 πολια(polia, 도시)에서 유래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것이 ‘보험증권’을 의미하는 policy로 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정책’을 의미하는 policy와 ‘보험증권’을 의미하는 policy가 어원을 달리한다는 것은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일치된 의견이다.

대개 영어 policy가 완전히 같은 글자로 전혀 다른 두 개의 의미를 가지게 된 연유는 프랑스어의 police가 ‘경찰, 치안’ 이외에 ‘증권, 보험증권’을 의미하고, 이것이 영국에 들어가서 마지막 자모 e를 y로 바뀐 것이다. 그렇지만 프랑스어에 대해 이와 같은 설명을 한 것으로는 이 단어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되질 않는다.

따라서 Kluge·Götze, Lay, H. G., Skeat, W.W. 등에 의한 여러 가지 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1) 라틴어 police[pollex(엄지손가락)의 단수탈격, 따라서 ‘엄지손가락으로’의 뜻]에서 왔다. 초기 보험계약에서는 보험업자가 위험을 인수할 때 증권에 자신의 서명을 하지 않고, 일본에서처럼 도장을 찍었다. 그래서 보험증권을 pollice 따라서 police 또는 policy 라고 부르게 되었다.
(2) 이탈리아어 polizza 또는 스페인어 poliza(증서, 상품증명서, 일정금액을 받아야 한다는 증서)로부터 왔다. 이러한 이탈리아어, 스페인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marine policy의 직접적인 계보를 잇는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3) 그리스어 ύ(많은)과 πτύγμα(층, 주름, 영어의 fold)에서 유래한 라틴어 polyplycha(로마의 비망록, 토지대장, 일반적으로는 출납부, 명부)로부터 왔다.
(4) 라틴어 pollicitatio(약속)으로부터 왔다.
(5) 후기 라틴어 apodissa, apodixa(금전영수증)으로부터 왔다.

이상과 같이 어원의 소개를 마치고 다음으로 ‘marine policy’라는 단어가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보험증권’의 의미로 사용된 당시의 사정을 전달하는 문장으로 Thomas Blount의 Law Directory(1670)로부터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자 한다. 현재에는 보험에 대한 상식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 실제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다.

“보험의 계약(asseruratio)은 화물 또는 상품을 해상운송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들은 그들 기업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이러한 보험계약을 통해 선박과 소정화물의 안착을 담보하기 위해 어떤 다른 사람에게 6부, 8부, 1할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한다. 그래서 선박과 화물이 조난될 경우 보험자는 해당 기업자에게 위험에 대해 맡은 금액을 보전해준다. 만약 당해 선박이 무사히 도착한 경우에는 기업자가 보험업자에게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전액을 이득으로 취한다. 이러한 경우 당사자 간의 거래를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정해진 서기 또는 공증관이 당사자 간의 합의 결과를 기록으로 남긴다. 이 합의 계약서는 보험증권(policy)이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후일 그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의견 차이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보험증권이란 호칭은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제13년법률 제12호에 기록되어있고, 이것에 의해 법률상 효력이 부여된다.”…

(출처 : 佐波宣平, 김성준·남택근 옮김, <현대해사영어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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