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지주제'에 '이익공유제'까지 도입

▲ 박종규 회장
이렇게 나는 영업에서의 리베이트 근절, 그리고 선원들의 밀수 근절을 회사 설립 초기부터 소신껏 밀어붙였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로 봐서 사실 나도 여러 가지 걱정이 없는 바는 아니었다. 직원들도 너무 빡빡하게 굴면 혹시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불안해하기까지 했다. 원리원칙만 내세우는데 누가 화물을 주겠나 하는 의심을 사실은 나도 조금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기우였으며, 결과적으로 이런 투명한 경영이 거꾸로 우리의 영업에 큰 메리트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KSS해운이 이런 정도의 위상을 지키며 그래도 성공한 해운회사로 불리는 것은 초지일관 투명한 경영, 정도경영을 하고자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이미 KSS해운의 경영에서 손을 뗐지만, 우리 후배 경영인들이 내가 세워놓은 정도경영의 원칙을 잘 지켜나가고 있고, 그에 따라 회사는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마음 한편으로 아주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운회사에 있어서 정도경영은 기업 성공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운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도경영 외에도 선박을 언제 들여오고 처분해야 하는가에 대한 예측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황산업인 해운에서는 적어도 5년에서 10년 후에 어떻게 시장이 변화할 것인가를 연구하여 거기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항상 “선사들은 10년간의 장기계획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장기적인 시황을 예측하여 불황이 예견되는 때는 미리 장기계약을 맺어 놓음으로써 불황을 넘기는 소위 ‘건더뛰기 작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평범한 진리를 해운경영자들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나는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경영일선에 서 있었을 때도 KSS해운을 내 개인 회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러 임직원들을 대표하여 회사를 경영관리 해주는 ‘큰 일꾼’이라는 생각을 했지, 나 혼자만의 회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항상 직원들이 실질적인 주인으로서 함께 경영에 참가하는 회사를 꿈꿔 왔고, 그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물론 이것은 대한해운공사 시절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하여 종업원 지주제 운동했던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지만. 나는 KSS해운의 전신인 코리아케미컬캐리어스(주) 설립 당시부터 사원지주제 도입을 권장하여, 상장이 된 오늘날에는 종업원들의 주식지분이 상당히 높은, 그런 회사를 만들어 놓았다. 한 기업은 오너나 경영자 한 사람의 소유가 절대 아니며, 임직원들이 모두 똑같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할 때만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는 나의 소신이 그대로 구현이 된 것이다.

현재 우리 회사는 종업원지주제를 뛰어넘어 ‘이익공유제’까지 시행을 하고 있다. 회사의 경영실적이 좋을 때, 그 일을 수행한 종업원들에게 일종의 배당을 실시하는 것이 종업원 이익공유제이다. 경영성과를 낸 만큼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종업원에게 배당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보너스로, 우리사주를 가지고 있는 종업원들이라면 주주로서 배당을 받고, 종업원으로서도 배당을 받게 되므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경영성과가 좋으면 종업원들에게 많은 배당이 돌아가게 되므로, 종업원들이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성과를 올리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위에서 리베이트를 만들어라, 비자금을 만들어라 지시를 해도,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들게 되므로 종업원들은 그런데 동의할 리가 없다.

그러니 리베이트나 비자금을 절대로 만들 수 없는 것이 우리 회사의 회계이다. 회사 직원들이 경영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 조작도 할 수 없다. 장부에 기재할 것도 없이 우리 회사는 경리부장이 결산을 전결하는 내용이 바로 우리 회사의 회계자료이다. 그 어떤 사람도 여기에 손을 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내가 살아온 지난 80평생을 뒤 돌아 보면 ‘바른 경영’을 위해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을 한 한평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 패기만만할 때 사장이 되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것이 결과적으로 자산이 되어서 실제로 한 상장회사의 사장도 되고 최고경영자도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큰 꿈을 안고 대한해운공사에 들어가 보험담당으로서, 조선과장으로서 선박도입 관계를 열심히 한 결과, 한국해운에서는 아주 특별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한국특수선, KSS해운의 창립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해운공사에서 노조부위원장을 지내고, 우리사주조합 사무국장으로 열심히 뛴 것이 종업원 지주제와 종업원 이익공유제를 실천하는 선진적인 해운회사를 만드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KSS해운을 설립하게 된 것도 대한해운공사 조선과장으로서 향후 대한민국에서 케미컬 수송분야가 유망할 것이라는 분석을 해봤던 것이 밑바탕이 되어서 결국은 내 자신이 그 케미컬 수송을 하는 회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게 되는 동인은 깊은 체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실질적인 체험을 하지 않고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가 없다. 아주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에는, 체험만이 좋은 사업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는 것도 사실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에서 얻어진 아이디어를 채택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젊은 경영자들은 진지한 자세로 실질적인 체험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해야 할 것이며, 선배들의 좋은 경험은 열린 자세로 섭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이 신문지상의 회고를 통해서 과거를 한번 반추해 보는 것은, 해운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나의 실패담과 성공담을 통해 후배 해운경영인들이 배우고 느끼는 것이 좀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속으로 ‘바른 경영’을 생각하고 매진해 온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100%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엉터리 같은 결정으로 회사를 위기를 몰고 같던 적도 있음을 사실대로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 나이가 올해로 벌써 84세.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생사의 기로에 섰던 그 아찔한 순간도 벌써 13년전의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이제 더 바랄 것도 없고, 더 해야 할 일도 남아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내가 겪었던 우리 한국해운의 근현대사를 글로 남겨 놓음으로써 우리 회사, 또는 우리 업계의 후배 경영인들이게 타산지석이 되고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하나 더 바란다면, 현재, 위기를 맞이한 한국해운호가 올바른 항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나침판이나 등대역할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낡은 海圖역할을 좀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회고록이라고 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은근히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문제 등에 대한 언급은 가능한 피하고 해운경영의 문제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했으나, 혹시 실수가 있었다면, 본의가 아니라는 점을 널리 양해 해줬으면 좋겠다.

<다음호에 계속>

▲ 나는 바른경영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 바른경제동인회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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