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명가名家

나는 결혼하고서 내 집안을 명가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내는 어림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나는 확신했다. 나는 결코 허세를 부리는 돈키호테가 아니다.

왕조시대에는 왕가王家이거나 정승판서를 배출한 문벌門閥을 일컬어 명문대가라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명가란 어떤 일에 뛰어나 이름이 난 집안을 말한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Boys, Be Ambitious!”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란 경구를 상기시켰고 나포레옹은 “자기 사전에는 Impossible 불가능 이란 단어가 없다”란 말을 했었다고 전해주셨다.

6‧25전쟁으로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격려의 말씀은 내 마음에 각인됐다. 나라는 초토화되고 집안은 해체되었다. 격려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겨두었기에 자포자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여, 명문고교를 졸업하고서, 국가가 학비와 의식주를 제공하는 해양대학을 나와 공무원이 됐다. 기적이었다.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공무원은 축재를 하는 직업이 아니다. 청빈한 선비정신으로 나라에 충성하는 명예직이다. 좁혀서 말하면, 해운발전을 위해 부지런하고 깨끗하게 온몸을 불살라야 한다. 해운은 국제적 감각과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내 부족함을 깨닫고 쉼 없이 일하고 공부했다. 국내외 대학원 4곳을 이수하며 시야를 넓혔다.

하여,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고, 모교를 빛내었다고 고교와 대학으로부터 자랑스러운 동문상을 받았다.
 
명가는 혈통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콩 심는 데 콩 나고 팥 심는 데 팥 난다’했다. 名馬나 名犬에게도 혈통과 족보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현대사회가 가문보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없지도 않지만…

나의 父系는 성리학의 영남학파 종조宗祖로서 폭군 연산군이 부관참시했던 善山金氏 점필재 金宗直이 중시조님이시다. 母系는 磻溪隧錄반계수록 26권을 간행하여 실사구시의 실학을 최초로 체계화한 文化柳氏 磻溪반계 柳馨遠류형원의 후손이다. 부계의 성리학과 모계의 실학과의 대립이 역사의 강을 흐르고 흘러 나의 혈관에서 하나로 어울려졌을까?
 
할머니께서는 독립운동을 하던 지인을 도우느라 폭약이 폭발하여 만신창이가 되시었다. 진주도립병원에서 3년간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두 손을 잃고 피골이 상접 하여 집으로 돌아오셨다. 두 손을 일제에 빼앗기고 한 많은 29년을 사시다 가셨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라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참담하게도 ‘빈손으로 오셨다 손을 잃고 가셨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이인삼각二人三脚이 되시어 29년을 하루 같이 모셔 효부상孝婦賞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예의범절이 밝으셨다. 밤늦도록 바느질과 고전소설을 읽으셨다. 반계 할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은 요조숙녀 이셨다.

나는 아들과 딸 둘만 두었다. 자식들은 부모의 뒤꽁무니를 보며 자란다 했다. 근면과 책임과 정직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둘 다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공부는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만큼은 시켜주려고 했다.

아들은 영국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대학에서 철학 교수가 되었다. 30년 철학연구의 총결산으로 로크 경험철학책을 세계적 출판사 Routledge에서 출간하게 되었다.

나는 손자는 없고 친손녀 셋, 외손녀 둘, 손녀만 다섯이다. 첫째 친손녀는 미국 고교에서 학교방송국 앵커로서 유창하게 방송을 진행했다. 편집장도 겸했다. 150년 역사의 명문여자대학 Smith Liberal Art College에 작년에 합격했다. 수리경제학 수업 조교로 발탁되어 2학년이 되면 후배들을 지도한단다.

첫째 외손녀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전액 장학금으로 예일대학 석사과정 첼로전공으로 합격했다. 친구들이 ‘재수再修 없는 년’이라고 농담을 한단다. 예중, 예고, 음대 그리고 대학원까지 한 번도 재수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들어갔으니…

아들이 예일에서 2년간 visiting scholar를 했다. 아들과 손녀 둘이 예일에 학적을 두었으니 가문의 영광이다. 나머지 셋 손녀들도 언니들을 능가하는 재질을 가졌으니 그들도 이 할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리라 기대한다.
 
할머니의 애국정신, 어머니의 지극한 효성, 나의 행적, 아들의 철학연구업적, 그리고 손녀 다섯이 모두 탐스럽게 태어나 드넓은 세상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 나는 명가의 꿈을 이루리라.

5대를 이어왔고 앞으로도 이어가면 어찌 명가라 하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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