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 이기병 박사(lgb1461@naver.com)

호주(Australia)는 1879년 세계 최초로 인공으로 얼음을 얼리는 방법을 개발해 냉장 선박으로 영국까지 고기를 수출할 수 있는 해상 물류 길을 열었던 대표적인 해양 국가다. 한국과는 약 15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시차는 1시간에 불과하다. 27년째 세계 최장기 성장률 보유국이기도 한 호주에는 연평균 20만여명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고 약 15만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도 상호 보완적인 경제구조로 중요한 무역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양국은 1962년 국교 수립 이후 짧은 역사에 비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양국은 섬과 반도로 이루어진 지리적 특성상 교역량의 90% 이상이 해상 물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자국의 수출경쟁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둘째,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들이다. 호주는 철광석, 석탄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수출하며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에 경제적 영향력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 역시 미국, 일본 보다 중국과의 무역 규모가 더 큰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대외경제 관계의 현주소다.

셋째, 다양한 경제적 협력 공동체 분야에서 교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양국은 2014년 12월 12일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해 10대 교역 국가로 증대시켰다. 또한 1989년 양국 정상회담에서 정부 차원의 지역 경제협력체 창설에 합의해 호주 캔버라에서 각료 회의를 열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 최대의 지역협력체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로 발전했고 양국은 설립의 산파 역할을 주도했다. 더불어 서방의 경제모임인 G7이 확대된 세계 경제 협의기구 G20의 회원국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넷째, 양국은 식민지 지배를 당했었고 특히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피해를 겪었다. 호주는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한국인 희생자들이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해상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1942년부터 43년까지 약 100회에 걸쳐 호주를 공습했다. 또한 잠수함을 이용해 시드니 항구까지 진입해 시드니 페리선을 침몰시켜 호주 사회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기도 했다.

치열했던 태평양 전투에서 연합군은 포로수용소를 호주 카우라(Cowra)지역에 설치했다. 카우라 포로수용소는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대규모(약 1천명) 탈출사건이 발생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 수용소에는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된 한국인 약 150명이 수용돼 있었다. 이 탈출 사건에 연루된 포로들은 사살, 체포, 상처를 입었고 상당수 탈출자는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 이유로는 전사하지 못하고 다시 포로가 되면 가문의 수치라는 일본군의 선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대탈출 사건으로 매장된 자국 포로들을 ‘일본인 전몰자 묘지’라는 이름으로 카우라 지역에 조성했고 호주 유일의 공식적인 일본군 묘지로 승인까지 받았다. 이 묘지 안에는 일제 식민지 강제 징병된 한국인들이 함께 묻혀 있다. 일본군 포로들은 한국인들을 ‘열등한 존재(inferior)’로 취급했고 포로들의 대탈출 사건시 대열의 맨 앞에 앞장세워 많은 이들이 연합군에게 희생됐다.

많은 사람에게 호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면 아마도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Outback Steak House)가 포함되어 있을 것 같다. 아웃백은 호주식 영어로 ‘오지’를 뜻하는 명칭과 호주식으로 꾸며 놓은 식당 내부 때문에 호주기업으로 인식되지만 실상은 전 세계 1000개 이상의 매장이 있는 미국의 외식업체다.

이외 호주에 대해 인지시키고 싶은 것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블랙타운 시 RAAF(Royal Australian Air Force Memorial Park) 기념공원에 ‘한-호주 평화증진 및 태평양전쟁 희생자 추모 조형물’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건립했고 최근 건립 장소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블랙타운 시 주최로 추도비 제막식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재단 이사장, 참전용사, 블랙타운 시 시장, 호주 한인회 관계자등이 참석했다.

아웃백 사례처럼 정확히 알고 있음이 많은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고 머나먼 해양국가 호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인식도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각각을 이해하여 전체를 파악하고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라는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특히나 최근 과거사에 관한 그릇된 역사 인식에 기반한 잘못된 관념들과 의아심들이 무분별하게 증폭되어 노출되고 있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요구되는 시기라고 여겨진다.

호주의 아웃백스테이크에서 식사 한 끼 후 많은 이들이 추모조형물을 방문해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면 가해자의 국가로 동원되어 피해자로 맺힌 삶을 마감한 먹먹했던 그들의 인생을 조금은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호주 사회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일본보다 뒤처진 한국이 이를 추월해 사회·경제적으로 더 많은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면 평생 열등한 실체로 살아왔던 그들이 사후 세계에서는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고 존재 자체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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