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원장)

▲ 박태원 박사

글로벌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저성장과 저소비, 높은 실업률 등으로 통칭되는 ‘뉴 노멀(New Normal)’이 거시경제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았다. 모든 산업에 IT가 녹아들고, 어느 분야든 혁신 기술이 함께하는 사업 모델이 속속 등장하면서 산업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노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세대 갈등 등 인구구조를 둘러싼 변화도 만만찮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경영인을 길러내는 경영대학원(MBA)의 순위도 바꾸어 놓았다. 제4차 산업혁명을 기치로 기술 기업이 떠오르면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대 등이 부상하고 있고, 학문 간 통섭과 인재 다양성을 중시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스페인 이에세(IESE), 스위스 IMD 등이 전통적인 미국 명문대 경영대학원들을 제치고 있다.

2020년을 앞둔 시점에서, 세계 주요 경영대학원장들이 제시했던 '경영자에게 필요한 자질'에 대한 키워드가 다시금 떠오른다.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구상하는 데 필요한 ‘뉴 하드스킬’, 기업 구성원 스스로 혁신을 이뤄내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동기부여 능력’,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고 조직 내 갈등을 줄이는 ‘수평적 조직 문화’, 기업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배려와 진정성의 경영’ 등 네 가지이다.

제조업과 첨단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제의 근간도 지식의 생성과 활용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지식 기반 경제'로 탈바꿈했다. 이런 환경에서 비즈니스 리더에게 꼭 필요한 자질로 '뉴 하드스킬'을 꼽고 있다. 재무·회계·마케팅 같은 경영 지식을 ‘하드스킬’이라고 하는데, 이보다 첨단 기술에 대한 지식인 ‘뉴 하드스킬’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경영자에게는 자신의 분야를 넘어서 다른 학문의 전문가에게 손을 내미는 능력도 중요한 자질로 꼽힌다. 지식 기반 경제로 옮아가면서 재무나 생산 관리보다 혁신이 기업의 성과를 좌우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공학도 출신이 아니더라도 여러 분야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업무 능력이 필요하다.

최근 경영학계는 '똑똑한 1인 보스 체제'보다 '혁신적인 조직'에 주목하고 있다. 소비자의 취향이 변화하고 기술이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경영자 한 사람이 모든 혁신을 주도할 수 없다. 세계경제의 성장기를 주도해왔던 ‘카리스마형 리더’는 좋은 리더가 아니다. 조직에 영감을 주고 인재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리더가 중요하다.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원들이 능동적으로 따라오게 만드는 리더가 있어야 기업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원들을 매끄럽게 아우르고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것도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이다.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 따라 기업이 끊임없이 변신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흔들리고 인재의 유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과거의 수직적인 기업 문화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직원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영에서 인재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다양한 사람과 환경에 노출되면서 내가 가진 사고방식과 전혀 다른 접근법을 배우고, 내가 가진 편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된다. 경영자에겐 기업 내 세대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기업의 상층부를 구성한 세대는 일과 가정이라는 선택지를 기반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짙은 반면, 최근 입사한 젊은 세대는 현재를 얼마나 충실하게 살고 있는지,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엄격한 위계질서 대신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경영자는 신세대의 사고방식과 일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며, 모든 직원과 함께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경영자의 도덕성도 새로운 관심사다.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MBA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앞으로 어떤 리더십을 배양해야 할지 연구했다. 이때 내려진 결론은 ‘사회적 책임과 배려를 강조하는 리더십’이었다. 효율성보다 인류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 배려와 조화를 중시하는 리더십에 무게를 두게 되었다. 경영대학원 교육과정에 철학, 역사학 등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르는 수업이 많아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일관된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적·도덕적 문제에 깨어 있는 ‘진정성(authenticity)’이나 사회적 기업과의 연계가 기업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현대 소비자들에겐 본인이 중시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상품을 선호하는 ‘가치 소비’의 경향이 있어, 유명 상표나 대기업의 제품이 아니더라도 진정성에 끌린다는 분석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 해운물류업계는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혁신을 통한 성장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2020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해운물류업계 경영자들은 무엇보다도 뉴 하드스킬과 동기부여 능력, 수평적 조직 문화, 그리고 배려와 진정성의 경영 등 네 가지 키워드에 혼신의 힘을 다해 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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