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 이기병 박사

미국의 항공모함은 대부분 역대 대통령 이름으로 짖는데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니미츠(Nimitz)호다. 요즘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드웨이(Midway)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체스터 월리엄 니미츠(Chester William Nimitz) 제독의 이름에서 따왔다.

니미츠 제독은 리더십 경영에서 많이 언급되는 덕장형으로 ‘아메리칸 시저’라 불리는 카리스마형인 맥아더와 종종 비교된다. 니미츠는 사람들을 쥐어짜서 성과를 거두려고 하지 않고 인화와 덕을 중요시하며 부하 직원의 직무 포지션 파워를 향상시켰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면 끊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감성 경영과 직원 존중에 능한 지도자였다.

미드웨이 해전에는 항공모함이 등장한다. 흔히들 항공모함하면 미국을 연상하지만 사실 첫 개발 국가는 일본이다. 1922년 ‘호쇼(鳳翔)’를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했다. 일본은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 4척과 함재기 250대의 큰 손실을 입었다. 일본 해군이 보유했던 항공모함 절반 이상을 잃었고 이러한 미드웨이 해전이 갖는 의미는 무척이나 크다.

첫째, 미국은 진주만 공습 이후 유리했던 일본의 공세를 미드웨이 해전을 통해 전황을 역전시켜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을 지치게 해 평화 협상을 통한 태평양 지배권을 인정받고 조기 종전을 이루려는 일본의 야무진 꿈이 깨진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태평양 방어선을 구축하여 지켜내려던 일본의 전략은 무너지고 미국은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둘째, 인력 수탈 증가로 인한 조선인들의 비극적 희생이 커졌다. 일본은 원래 신성한 황군을 더럽힌다고 조선인 장병들의 입대를 불허했다. 그러나 중일전쟁과 미드웨이 해전 이후 태평양 전쟁 확대로 방침을 철회했다. 또한 군부, 군요원으로 불린 일본 육·해·공군에 소속된 민간 인력인 군속도 늘렸다. 일반적 범주에서 군속은 세 가지가 있다. 노무 동원(모집, 관알선, 징용, 군요원) 병력 동원(지원병, 징병, 준병사) 여성 동원(여자정신대, 일본군 위안부)으로 분류된다. 미드웨이 해전 후 태평양 지역에서 고전하던 일본은 만성적인 전투원 부족 현상이 발생됐고 군속에 대한 채용 관련 기사도 1942년부터 급증했다. 기사의 공통점은 “일본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라”는 것이며 군속은 19세부터 40세까지 폭넓게 이뤄졌다.

일본 육군은 공병대가 있어 공사를 감당했지만 해군은 유사 조직이 없어 나중에 설영대를 만들었다. 해군 설영대는 기지 건설, 진지구축 등 공병대와 유사한 업무를 했고 작업 수요가 많아 그만큼 해군 군속도 더 필요했다. 이들의 작업 공간은 섬, 군함 등 전장의 최전선이었다. 어떤 연구자의 분석에 따르면 조선인 해군 군속은 7만 9천명으로 1941년 1,153명이 동원됐는데 1942년에는 1만 3,765명으로 큰 증가세를 보였다. 미드웨이 해전 연도에 의미 있는 수치 차이가 나타났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선박 손실이 커지고 해상 수송이 감소되자 물자난과 생산력 감소는 더욱 심해졌다. 이로 인해 일본군 국방헌금 강요, 정치·사회·문화적 내부 단속 강화 등 이 땅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살면서 현실은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보고 이상(理想)은 나보다 나은 사람을 봐야 하지만 누가 누굴 봐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한반도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눈가리개 가면을 쓴 경주마였다.

구정 연휴 때 아이들과 영화 미드웨이를 봤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태평양 전쟁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은 속셈이었다. 벤허·십계·혹성탈출의 주인공 ‘찰튼 헤스튼’이 1976년 주연한 영화를 봤던 필자로선 리메이크작을 다시 보니 기대감과 새로운 추억이 피어났다. 역사는 전쟁으로 얼룩졌고 앞으로도 멈출 것 같지는 않다. 미드웨이 해전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어떤 시사점을 주고 있나?

첫째, 절대불변의 진리란 없다. 일본은 영국식 해군 모델을 따르면서도 합리적 고찰은 외면했다. 군인정신, 정신력 등 무형전력은 자신들이 최고라는 불변의 진리를 갖고 이것이 사상적 근간을 이룬 게 패배의 근본 원인이다. 전략 및 조직운영에서도 적(敵)은 변화하는데 무사도 정신을 강조하고 관료제와 교조적인 전통에 따르는 그들의 진리에 함몰되어 패망을 초래했다. 당대의 진리와 상대적 진리는 있어도 적어도 전쟁판에선 절대적 진리란 없다. 자율성과 조직의 유연성 확보, 목표를 공유하며 협동을 자극하는 것이 공동체 번영의 지름길이다.

둘째, 기술 수용성이 부족했다. 그 당시 레이다는 일본 사람이 만든 우수한 물체 탐지기가 최고였는데 그들은 외면했다. 일본은 자국민이 만든 최첨단 레이다 기술보다는 잘 훈련된 인간의 눈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레이다를 잘 활용해 전력의 열세를 극복했다. 일본은 애플사의 아이폰 출시 당시 기술력을 폄하하며 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외면했다. 그저 기술의 정밀도만 높이려고 한 것이 오늘날 일본 스마트폰 및 전자산업의 침체기를 가져왔다. 한국이 잘나가고 있는 LNG 운반선 시장에서도 일본은 한때 둥근 원형에 화물창이 탑재된 모스 타입을 선호하여 시장을 장악했다. 한국은 적재공간이 더 넓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멤브레인 타입 개발에 주력했고 이것이 적중하여 조선 산업의 효자가 되었다. 결국 기술 수용성 부족과 자만심은 화를 불러일으킨다.

셋째, 군함 등 한국의 국방과학 기술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 한국의 조선업은 1위지만 2018년 세계 국방기술 수준을 비교하면 함정분야는 9위다. 부동의 1위 미국을 제외하고 중국은 2위, 일본은 6위다. 해양국가인 한국에서 바다의 안전 확보는 국가 안보의 핵심이다. 조선강국의 기술력과 인지도를 밑바탕으로 민수·군수 분야 간 활발한 기술이전과 인프라 공유로 품질 및 가격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동남아시아 국가 등과 정치·경제적 교류를 확대시켜 틈새시장을 확보하여 독점적 지위가 있는 군수분야에선 ‘한국형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Corporation)’을 키워야 한다. 함정 수출이 글로벌 시장의 주요 수출 제품군으로 확대되어 조선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견인돼야 한다.

넷째, 국가안보선제도의 총체적 점검과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해운업은 상선대(Merchant Fleet)를 확보하고 있어 비상시 선박·선원을 전시물자와 병력 수송 등 상시 전력으로 활용한다. 예비전력 효과와 수송망의 기간산업 유지 등 공공재 기능을 갖고 있다. 국가 잠재력 전력화 차원에서 육·해·공군 다음의 제4군으로서 상선대의 중요도를 미국 등 선진국은 일찍부터 인식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자국 선박에 대한 각종 보조금 및 지원정책을 시행하였다. 만약 전쟁이 발생할 경우 외국 선원과 선박이 침몰의 위험성이 있는 자국의 항만에 기항하려고 하지 않는다. 설사 입항한다 해도 많은 프리미엄을 요구하며 자국민의 구호와 정책에 잘 따르지도 않는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제2차 세계 대전의 덩케르크(Dunkirk) 철수 작전은 상선대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전시 동원시스템 개선과 선원들에 대한 인센티브 부재, 필수선박 규모 확대 등 국가안보선 운영 제도의 개선점을 발굴해서 보완해야 한다.

“전쟁은 평화를 갈망하기 위해 치르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전쟁 난 땅에 평화가 정착되기는“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 평화를 위해선 늘 어둠을 준비하고 한편으로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만 매몰돼선 안 될 것이다.

제주도에 가면 ‘알뜨르 비행장’이 있다. 제주도 방언으로 ‘아래 들판’이란 뜻이다. 일본 해군항공대 비행장으로, 난징 대학살의 폭격 거점으로, 자살특공대 ‘가미가제’의 연습장으로, 태평양 전쟁 말기엔 미국의 본토 상륙을 막는 저항기지 역할도 하였다. 일본은 평평한 땅이 드문 제주도에서 삽과 곡괭이만으로 많은 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수십 만평의 기지 조성 작업을 시켰다. 굶주림과 매질 등 학대와 고통의 뒤따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대일 무역 적자폭이 16년 만에 가장 낮아 무역역조 흐름이 개선되고 있다. 장비 부품 감소와 불매운동으로 인한 맥주, 의류 등 일본 소비재 품목의 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우연적 상황이 아닌 필연적 귀결점이다. 같은 물이라도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환영받는 법. 시장과 고객에게 찬물과 더운물을 제공하는 전략적 유연성과 핵심 역량을 키워 대일 무역 적자의 벽이 부서지는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쌓였던 대일 적자의 목마른 갈증을 크게 한번 해소했으면 좋겠다.

“목마른 사슴들이 시냇물을 찾듯이” 경제의 목마름과 메마름은 심화되는데 우리는 요즘 마스크만 찾는다. 제자리 뛰기나 보통의 점프가 아닌 한국 경제의 퀸텀점프(quantum jump)을 만들어 보자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부작위(不作爲)의 결심과 경기를 솟구치게 만들겠다는 작위(作爲)의 결심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잘 비벼졌으면 좋겠다. 설사 그 결심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면 삼 일째 다시 결단하면 된다. 안되더라도 자괴감 말곤 손해 볼 것도 피해 줄 것도 없지 않은가?

알뜨르 비행장은 일본 해군이 건설하였다. 그 비행장엔 일본군 군속 조선인들과 제주 도민들의 처절한 고통의 울림도 짙게 배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 파도의 출렁거리는 물결은 한스러워 우는 울림의 목소리 같다.

영화 미드웨이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바다는 그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강제 동원은 ‘피해자 몸에 얼룩진 영원한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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