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원장)

▲ 박태원 박사

한강 하류에서 서해 바다까지 이어진 18km의 국내 최초 내륙운하, 경인아라뱃길이 개통한 지 8년이 지났다. 화물과 승객을 뱃길로 나르겠다고 2조 7천억 원을 쏟아 부었지만, 지금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지나다니는 선박은 보이지 않고, 요트 접안시설은 모두 철거되어 기둥만 남았으며 유람선 매표소 건물도 텅 비었다.

당초 연안운송과 육상운송을 연계한 모달시프트(Modal Shift)를 통해 온실가스·에너지 사용 배출량을 감축하고, 운송의 다양성을 통해 물류산업 경쟁력을 증진한다는 전제 아래 추진된 사업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인아라뱃길이 2012년 5월에 개통된 이후, 화물 처리량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예측한 사업 계획 대비 8.5%에 그쳤고, 여객 수송 실적도 사업 계획에 비해 19.6%에 불과했다.

그동안 경인아라뱃길의 활성화 방안을 찾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연구용역을 했지만 뾰족한 해법이 제시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다.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경인아라뱃길을 관광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관련법에 막혀 있다. 운하는 화물운송로로 지정되어 있어 동력이 없는 레저스포츠 선박은 아예 들어갈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질도 6등급 중에서 5등급으로 매우 나빠서 해상레저관광을 즐기기는 적합하지 않다.

2018년 3월에 국토교통부 관행혁신위원회는 "아라뱃길 사업이 타당성이 부족한 데도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며, "아라뱃길 활성화 및 기능전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급기야 환경부는 그 해 12월에 물류와 여객운송 분야에서 제 기능을 못 하는 경인 아라뱃길의 효율적인 활용방안을 찾기 위해 연구용역을 또 다시 발주했다. 올 해 6월까지 수행되는 「경인아라뱃길 공론화 및 개선방안 연구용역」은 물류 등 경인아라뱃길의 기존 핵심 기능을 유지할지를 백지상태에서 재검토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연구용역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몰라도, 경인아라뱃길은 정부가 추진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홍수 시에 아라뱃길 인근 지역의 홍수량을 재빨리 서해 바다로 방류시키는 치수기능과 선박을 통한 물류기능, 그리고 친수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관광레저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건설된 경인아라뱃길은 2008년에 KDI가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인아라뱃길은 12개 선석의 인천터미널과 10개 선석의 김포터미널이 건설되어 부산과 포항 등 국내 항만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의 해외 10개 항만을 운항하는 선박이 18척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경인아라뱃길의 사업 주체로서 항만을 건설한 대가로 정부로부터 1조 5천억 원 규모의 항만 무상이용 판매권을 획득한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그동안 사업비 회수를 위해 항만 무상 이용권을 지속적으로 매각해 왔다. 항만 무상 이용권은 국가 항만시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쿠폰'이다. 이를테면, 화물·여객선을 운영하는 선사들이 수자원공사로부터 10%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권을 사들인 뒤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항만(평택, 당진 등)을 무료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이처럼 항만시설 무상 이용권 매각에 열을 올리지만, 아라뱃길 사업으로 조성된 경인·김포항의 물동량은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오히려 싼값에 항만 이용권을 사들인 선사들은 경인·김포항 대신에 다른 국가항만을 무료로 이용하는데 사용함으로써 전국 국가항만이 경인아라뱃길의 사업비 일부를 고스란히 떠안는 꼴이 되었다.

필자는 2008년에 국토해양부에서 열린 경인아라뱃길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해운물류업계 간담회에 참석하여, 경인아라뱃길이 컨테이너화물의 물류기능에 크게 기여할 수 없으며 경제적 타당성도 없기 때문에 사업자체를 추진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강하게 피력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필자가 내세웠던 ‘우리나라에서의 컨테이너 내륙수로 운송은 항만 간 해상운송에 비해 물류경로의 다단계로 인한 물류비 증가와 운송시간의 비효율성 등으로 경쟁력이 없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총 24조 1천억 원 규모의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기업과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수도권과 비 수도권간의 성장의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판단에 따라, 공공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의 발전을 유도하고 국가의 균형 발전을 목표로 예비 타당성을 면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포함되었다.

그 당시 경실련은 “토건사업 확대를 위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이라고 비판했으며, 참여연대도 “정부가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건설사업의 장기적인 경제성이나 사업 타당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경기부양만을 목표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경우, 4대 강이나 경인아라뱃길과 같이 국민 혈세 낭비를 되풀이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정부 정책의 잘못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OECD 평균인 10%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임을 감안할 때, 토목·건설사업 부문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자제되어야 마땅하다. 과거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우후죽순처럼 경쟁적으로 개발된 일부 지역 항만들의 공급과잉 폐해가 말해주듯이, 국가재정을 축내는 무분별한 SOC 사업의 추진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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