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耕海 김종길
耕海 김종길

           그리워라                                                   

그리워 그리워라!
어찌 그립다 아니하리오
내 강아지들을

처맛기슭 제비집
어미가 물어오는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고개를 휘둘러대던 제비 새끼들

고개를 돌려 다시 보니
어느새 제비 새끼들은 날갯짓하며 전깃줄로 날아가고
내 강아지들은 내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리움!!!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사모의 정. 그리움이 사무친다. 그리움에 잠 못 이룬다. 그런 게 그리움이란 건가.
내 어릴 적 엄마가 딸네 집으로 다니러 가셨다. 언제 돌아오시려나 하루하루 목메게 기다렸다. 식구들도 친구들도 없고 오직 나 홀로인 것만 같았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 논두렁을 나 홀로 걷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엄마가 오시려나 하고 섬진강 강변에서 통통배를 기다렸다. 배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고 짐이 다 풀릴 때까지 통통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왔다. 외로움은 그리움을 불러왔다. 

그랬던 내가 스무 살이 됐다. 어머니께서 대학시험을 보려고 떠나는 나에게 “이것 내가 보름달 아래서 바늘귀에 실을 끼어 만들었다”하시며 하얀 가제 손수건을 내 손에 쥐여 주셨다. 노안이라서 대낮에도 바늘귀를 잘못 끼시는 어머님 정성이 눈물겨웠다. 6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하얀 손수건이 내 가슴에 아직도 살아있다. 

내가 어른이 되고서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잊어버렸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만 했다. 그리고 가야 하는 길이 험하고 멀었다. 오로지 앞만 바라보며 뛰었다. 옆과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곁눈질할 겨를이 없었다.

살다 보니 아이들은 제 짝들과 함께 저들 갈 길로 떠났다. 그들은 스스로 자란 것으로 안다. 나도 그랬으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마음에 꼭꼭 담아둔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부모의 사랑을 효도로 갚지 못하고 자식 사랑으로 갚는 건가. 

이제 젊음은 가고 열정은 식어 인생대열에서 차츰 쳐진다. 가진 것 모두가 나에게서 떠났다. 아쉽다. 지나간 옛날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남은 것이라곤 손녀들에 대한 희망과 보람밖에 없다. 손녀 셋이서 “할아버지 많이 보고 싶어. 많이많이 사랑해”란 이메일이 온다. 나도 그리움과 사랑을 이메일에 구구절절이 실어 보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들을 얼싸안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싶다. 그러나 태평양이 가로놓여있고 대륙을 넘어가기엔 아득히 멀다. 힘이 부쳐 갈 수 없다. 그저 외로움과 그리움을 삭일뿐이다.

늙으면 아이 된다고 했던가. 섬진강 강변에서 엄마들 기다리던 아이 맘으로 돌아왔다. 외로움이 깊을수록 손녀들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외로움과 그리움은 비례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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