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Maritime Day에 부치는 소회

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지난 9월 24일은 World Maritime Day(WMD)다. 굳이 번역하자면 ‘해운의 날’보다는 ‘세계 해사의 날’이 적합할지 모르지만 내용의 함축적인 의미를 감안해서 그냥 World Maritime Day로 부른다. WMD는 1958년에 발효된 IMO 협약 20주년을 맞아 1978년에 제정된 기념일로 통상 매년 9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WMD로 하고 세계 경제에 대한 해사산업분야의 기여에 대해 강조하고 특히 해운의 역할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날이다.

1. 해운의 역할과 외부의 인식

해운관련 서적을 보면 국민경제에 있어서 해운의 구체적 역할을 무역의 촉진, 원료 취득의 수단, 국제수지개선, 조선과 보험업 등 관련 산업의 육성, 고용창출 그리고 비상사태시 운송수단의 확보 등으로 기술돼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해운계는 이런 논리를 들어 해운의 중요성을 스스로 강조하며 그에 상응하는 정책적 배려를 요구해 왔고 실제 그러한 주장이 정책에 반영되는 사례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논리들은 1980년대 까지는 대체적으로 공감이 가는 것들이지만 최근의 시장에서는 무역의 촉진과 원료 취득의 수단을 제외한 나머지 역할은 상당부분 희석됐다.

해운인들은 해운산업이야말로 글로벌 경제의 허리축(backbone)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반인 특히 정치권은 해운에 대한 관심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21세기 현재 해운에 대한 외부의 인식은 해운계의 기대와 달리 여러 산업부문중 하나로 타산업과 달리 해운에 대해서만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거나 육성을 해야 한다는 인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19 쓰나미가 몰려오기 이전부터 해운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는 그렇게 우호적이지 못했고 국민 대다수의 머릿속에는 해운이라고 하면 커다란 무역선이 화물을 수송하는 운수업 정도로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면 종종 대형 인명사고로 뉴스의 헤드라인을 점하거나 해양오염 등 환경파괴의 주역으로 각인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해운이 국제무역 상품의 80% 이상(가격기준)을 수송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운송수단중 가장 싸고 효율적인 수단으로 국제무역을 촉진하고 국가와 국민의 부를 창조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해운의 이와 같은 중차대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별로 외부의 공감을 얻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해운산업의 보호와 육성을 위해 오랜 기간 시행해왔던 경쟁법이나 독금법 적용대상에서의 면제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가 하면 해운산업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감시의 대상으로 보는 분위기다.

해운계 바깥세계의 이러한 인식이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 됐다. 전 세계가 Lockdown, Shutdown 등으로 생산과 이동이 제한되고 있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해운은 요즈음 표현으로 글로벌 물류공급망의 주역으로 원자재, 에너지, 상품 등은 물론 팬데믹에 대처하고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데 필수품목인 의약품, 식품, 생필품 등을 수송하며 생활과 방역을 위해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해운의 이와 같은 역할이 없었다면 글로벌 물류의 흐름은 중단될 것이고 항공기마저 운행이 중단된 상황에서 최소의 생필품은 물론 의약품과 개인보호장구의 조달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은 해운의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선원들은 현재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영국 등 전통 해운국가 일부에서는 선원을 'Key worker' 혹은 ‘Essential worker'로 지정해 각종 여행제한과 국경 봉쇄 등의 조치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반면 세계 최대 선원 송출국인 필리핀과 인도에서는 사실상 선원들의 입출국을 제한하고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수의 국가에서 선원을 기피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3월부터 시작된 선원의 이동제한은 초기에는 입항거부, 선원의 상륙거부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적인 선원의 교대마저 불가능 해지는 사태로까지 진전됐다. 전체 약 150만명의 선원 가운데 9월말 선박에 40만명, 가정에 40만명 등 총 80만명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더니 10월초 기준 그 숫자가 1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불원 승선중인 선원 대다수가 선박에 갇혀 운항하거나 혹은 선박 운항을 중단해야 하는 최악의 사태에 이를 수 있다.

이번 WMD를 계기로 IMO 주관으로 앞뒤가 다 막혀있는 선원교대난의 현실을 알리고 이 문제가 단시일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도래할 위기상황에 대해 정치권 등 바깥세상을 향해 목청을 높여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며 가까운 장래에 특별히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2. 선원교대문제는 돈과의 전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여행제한과 검역조건하에서 채산성 등 상사적 고려를 초월한 상태에서 선원의 교대에 최우선을 두고 총력을 다해 부분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관리회사도 있다. 세계 최대 선원 및 선박관리기업인 V-Group은 마닐라에 객실 160명의 조그만 호텔을 인수해 이곳을 선원들의 격리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이 조치로 여행제한과 검역조건을 충족해나가며 순차적으로 선원교대를 추진한 결과 9월 한때 34%에 달했던 계약 기간을 초과한 선원의 비율이 현재 20% 수준으로 하락했다.

V-Group이 이처럼 추가부담을 감수하면서 선원교대에 우선을 둘 수 있었던 것은 관련 선주들이 추가비용의 일부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이다. 선원공급계약상에는 선원교대 업무는 전적으로 관리회사의 책임과 비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주들이 선원 1인당 1,500~2천달러를 지원한 것은 교착상태의 책임이 선박관리회사에 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V-Group은 현재의 교착상태가 단시일내 해소될 가능성은 없으며 오랜 시간이 경과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여러 가지로 장애요인이 많은 필리핀 선원들을 동구권 선원으로 교체한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우선 필리핀의 경우 동남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확진자가 많은 국가로 일단 선원들이 해외에서 마닐라에 도착하더라도 7천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고향으로 귀향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이며 후임 교대 선원의 경우 10명이 집단으로 항공편을 이용하더라도 그중 어느 한명이 양성으로 판명되면 9명 모두가 승선이 불가능해져서 선박이 2~3주 대기하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설사 선박이 선원교대만을 위해 항로를 벗어나 마닐라만에 긴급기항을 하더라도 최소 24~48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추가비용만도 수십만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결국 세계 상위 선원공급국이자 선원송출로 인한 외화수입이 국가재정에 상당한 비중을 점하고 있는 필리핀이지만 관련분야에서 필리핀이야 말로 선원교대측면에서 가장 까다로운 국가로 알려지면서 이제 필리핀 선원을 동구권 선원으로 대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필리핀 정치권에서도 사태의 추이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만 별로 그런 조짐은 없어 보인다.

3. 인명구조와 책임

선원교대 문제만이 아니다. 상사적 이해관계를 희생시켜가며 순수한 인도주의적, 도덕적 책임감으로 해상에서 위기에 처한 인명을 구조한 선박이 주변국가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오히려 정치적 볼모가 돼 오도 가도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목전에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해운계는 속수무책으로 그저 정치권의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난감한 처지가 현실이다. 구조요청이 있으면 구조를 해야한다고 법으로 강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요청을 상사적 이유로 외면할 경우 형사 처벌도 불사한다고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적, 도덕적 책임감으로 어려움을 감수해가며 구조에 임한 선박과 선원에 대한 격려는 고사하고 오히려 구조 이후의 후속 마무리는 전적으로 해당 선박과 선주의 비용과 책임으로 처리해야 하는 법적, 제도적으로 불합리한 체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 지중해에서는 난민을 구조한 선박과 선원이 38일간 운항하지 못한 체 사실상 볼모로 잡혀 있다가 어려운 협상 끝에 자선단체 소속선박에 구조한 난민들을 임시로 인도하고 겨우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인도적 의무에 충실한 선장과 선원이 곤욕을 치룬 배경에는 역시 정치권의 관심부족이 자리 잡고 있지만 정치권의 무관심을 탓하기에 앞서 해운산업이 일반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혹시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면 왜 그렇게 됐는지, 홍보부족은 없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4. 해법은 없는가?

글로벌 물류 공급망의 구성과 해운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고 있다. 해운계, 선원 단체는 물론 국제기구, UN 사무총장 그리고 교황까지 나서서 사태의 수습을 주문하고 있지만 정작 Key를 쥐고 있는 정치권에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심각한 선원교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며 IMO를 비판하며 IMO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IMO 역사상 한번도 정치적 이슈를 IMO의 장내로 끌어드린 적이 없을 만큼 정치적 현안과는 거리가 먼 조직이다. IMO는 처음부터 174개 회원국의 의사를 대변하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만큼 비록 해사관련 문제가 얽혀있더라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IMO 안에서 다룰 수 있는 기능자체가 부여돼 있지 않다. 문제는 IMO가 아니라 해운에 대한 해운 밖에서의 인식부족이 문제다. 현재 이미 해운의 중심축이 유럽이 아닌 아시아권으로 이동한 마당에 IMO 본부도 영국이 아닌 아시아로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 아시아권의 해운에 대한 인식이 영국이나 유럽의 그것에 비해 더 낫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5. 왜 그런가?

해운이 정지될 경우 국제 무역은 중단되고 전 세계 경제가 수습불가한 사태에 처하게 될 것임에도 해운의 주역인 선원을 역병의 전파자 정도로 취급하며 이동을 차단하는가 하면 해상에서 위기에 처한 인명을 구조한 선장과 선원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야 하는 폐습이 오랜 기간이 경과해도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운이 바다를 주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주역인 선박은 대부분 육지에서 먼곳에 있기 마련이다. 일반인들의 눈에 안보이다 보니 마음에서도 멀어지고 결국 그늘에 가려서 살게 되는 것(Out of sight, out of mind and in the shadows)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인가?

실제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운은 정치권의 눈이나 관심과는 거리가 있어왔지만 해운계 스스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해운계 스스로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해운계가 비즈니스 혹은 재정적 측면에서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 이외에는 정치권의 관심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았는지?

가장 가까워야할 고객 즉 하주들과의 관계에서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의 지위에서 상호 주고 받기 혹은 상호 윈윈을 위해 해운계는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혹시 선하주 상생이란 이름으로 제도권의 힘을 빌려 고객의 선택권을 제한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6. 해운계 자성론(自省論)

전례없이 금년에 교황이 두 차례나 해운과 관련해 선처를 호소하는 발표를 했다. 첫째는 팬데믹 영향으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선원들의 어려운 처지를 해소해 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난 7월 모리셔스 해안을 크게 오염시킨 와카시오(Wakashio)호의 환경파괴에 관한 우려였다.

선원교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운단체, 선원단체, 국제기구까지 나서면서 문자 그대로 백방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나 정치권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물론 정부나 정치권의 상황인식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기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사태 해결을 촉구하다보니 정부나 정치권의 입장에서 보면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나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의 후폭풍에 대해 쉽게 가늠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이번에는 해운계의 주요 인사들이 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하기에 앞서 해운계를 향해 과거를 되돌아보며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자성론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9월 초 개최된 International Chamber of Shipping(ICS) 회의에서 발표된 내용의 요지를 정리한다.

정치권의 책임의식 결여(lack of accountability)에 대해 실망했으며(DNV GL), 해운의 현안 해결을 위해 정치권을 움직이려하는 것은 벽에다 머리를 부딪치는 것과 같다(ICS 사무총장).

해운계 대표들이 함께 열심히 노력했지만 과정과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물론 해운관련 장관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타부처는 전혀 그렇지 못했으며 정부조직안에서 선원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상황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ILO).

우리는 선원위기를 전세계의 문제라고 보지만 각국은 국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필리핀에서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선원을 필리핀의 영웅(heroes in the Phillippines)으로 호칭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선원을 코로나 팬데믹의 운반자(Pandemic carrier)로 보고 있다(필리핀 Transmarine Carriers).

이와같은 정치권을 탓하는 시각과는 전혀 다른 비판이 대형 해운회사 대표로부터 제기됐다(Tanker 회사 Euronav).

현재 해운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정중앙에는 우리 해운계가 과거 행동해왔던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그늘에서 살려고 했고(live in the shadow), 너무 신중하려 했고(to be discreet), 가급 잊혀 지기를 원했다(to be forgotten). 가급적 세금은 안 내려했고(Nobody wanted to pay tax) 과도한 규제는 싫어했다(Nobody wanted to be heavily regulated). 가급적 규제가 느슨한 Panama, Bahamas, Marshall Islands 등으로 국적을 옮겼다. 과연 이들 국가가 해운계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안들을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코로나 사태 이후 선원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해운단체들이 전례없는 협력과 공조체제를 보였지만 해운계는 여전히 분열상태다. 지금까지 오직 대형해운회사만이 사태 해결을 위해 앞에 나섰을 뿐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소형선사들도 대열에 동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족경영회사 대부분이 뒤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은 Cruise 선박의 침몰이나 이번 모리셔스 해안의 대형 오염사고와 같은 나쁜 소식들만 듣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배에서 내리는 선원을 ‘위협(threat)’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이들은 선내에서 2주 이상 검역기간을 필한 사람들로 코로나로부터 깨끗한 사람들이다. 문제는 하선하는 선원이 아니라 승선하는 선원이다. 국민들의 이와 같은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위기가 도래해야 비로소 해운의 역할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해운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홍보해야 한다.

Euronav 대표의 이와 같은 자성론에 대해 참석했던 패널 모두가 공감을 표시했다. Euronav는 벨기에에 위치한 세계 최대 탱커선사다. 2014년에 Maersk Tanker의 VLCC 15척을 일시 매입했는가하면 뉴욕 상장사인 Gener8을 흡수합병을 통해 현재는 Cosco Shipping Energy Transportation을 제치고 세계 제1의 탱커 전문회사로 부상했다. 2018년 기준 ULCC 2척, VLCC 43척, 수에즈막스 27척, 파나막스 2척 등 총 74척, 1900만dwt를 보유하고 있다.

7. 해운기업과 사회적 책임

글로벌화 이후 국제기업들은 이윤 창출이라는 상사적 목적에 주력하면서도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CSR)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국제성이 특히 강한 해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운기업의 CSR 실천은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힐 뿐 아니라 해운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며 일반인과 정치권의 해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해운의 발상지이자 아직도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은 단연 유럽이다. 근래 들어 해운과 조선산업의 축이 유럽에서 아시아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운과 유관 산업을 지배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유럽의 상대적 우위는 당분간 변할 것 같지 않다. 주요 해운단체들이 위치해 있는 곳도 유럽이고 금융, 보험, 해사법과 중재 등 해운과 유관한 기능이 모여 있는 이른바 글로벌 마리타임 클러스터가 유럽이다.

오랜 역사의 영향인지 아니면 CSR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인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나타난 그들의 선공후사(先公後私)적 CSR 실행 사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쯤 주시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8. 유럽선사들의 CSR 실천

4월 들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타격이 예상보다 크고 장기화 될 것으로 예상되자 유럽의 주요 선사들은 최우선 과제인 물량의 증대, 소석률 제고, 매출신장, M/S 확보 등을 향한 상사적 측면의 노력은 일단 접어두고 필수품, 의약품, 방역활동용 설비, 개인 보호장구(personal protective equipment)의 운송과 지원에 나서는 등 기업의 CSR 실천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다음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4월부터 시작된 유럽선사들의 CSR 실행 사례들이다.

(1) AP Moller Holding

세계 제1위 컨테이너선사인 Maersk의 지주회사로서 자국의 보건의료 종사자들에게 보호장구의 공급을 원활히 하고 덴마크 병원내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항공, 육상과 해상을 연계 운영하는 복합운송시스템 ‘Maersk Bridge’를 가동했다. 일차로 주문한 마스크, 안면차단장비, 보호가운, 수술복을 Maersk Bridge를 통해 2주 간격으로 필요 장비들을 자국으로 수송했다. 한때 덴마크 GDP의 20%를 점했던 AP Moller Maersk그룹은 과거 그룹산하 각 부문에서 나온 주주 배당금을 투입, 최신식 오페라 하우스를 건립해 코펜하겐시에 기증한 바 있다.

(2) MSC

지난 50년간 해운사업을 영위해온 세계 제2위의 글로벌 선사이자 민간기업인 스위스의 MSC 역시 자회사인 크루즈 산업의 붕괴로 대다수의 선박이 휴항상태이었을 당시, 전통 해운기업의 CSR의 일환으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① Suspension of Transit programme : 4~5월에 이르러 단계적 정상화로 아시아권 수출물량은 증가일로에 있으나 유럽과 미국등 주요 소비지에서는 Pandemic Lockdown의 영향으로 소비가 크게 위축되면서 도착지에서 화물의 인수가 지연되고 그로인해 항만의 적체는 날로 심화됐다. 수입지 항만의 적체로 인한 항만의 효율저하와 함께 고객들이 부담해야 하는 화물장치비용도 누적되자 MSC는 항만의 체증현상을 완화, 하주의 부담 절감 지원 및 소비가 되살아 날 경우 하주로 해금 가장 지근거리에서 신속하게 화물을 재 운송할 수 있도록 최종 도착지 이전에 위치한 적체 현상이 없는 항구를 중심으로 지역별로 임시 보관시설을 마련 화물을 중도에 보관했다.

② 병원선으로 개조 : MSC 그룹 산하인 이태리 Grandi Navi Veloci소속 Passenger ferry 한척을 코로나 감염자를 위한 병원선(floating hospital)으로 개조해 보건당국에 제공했다.

(3) CMA CGM

3자 물류 자회사인 CEVA Logistics와 자선단체인 Virgin Foundation이 제휴해 상해로부터 영국 국립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에 의약품과 개인용 보호장구를 수송했다. 긴급 공수된 물품들은 현 영국 수상 Boris Johnson이 입원 치료했던 St. Thomas' Hospital을 포함 영국 전역의 NHS 병원들에게 배송됐다.

9 . 세계 최대 해운국 그리스 해운의 CSR

그리스 선주협회(UGS), 오나시스 재단(Onassis Foundation)과 개별 선사단위로 자국의 방역활동에 필요한 의약품과 장비들을 해외에서 구입해 공수했다. UGS는 코로나 팬데믹 직후 회원사들에게 의료품 지원의 필요성을 알리고 참여를 요구해 5일만에 1천만유로(약 11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했고 그 후 120개 회원사가 지원에 동참했다.

오나시스 재단에서는 780만유로(850만달러)을 투입, 자체 비용으로 용선한 점보기를 이용해 장비와 물품을 공수해서 의료계에 제공했고 그에 앞서 Aegean Airlines는 비행기를 용선하고 연료는 Hellenic Petroleum의 부담으로 중국으로부터 마스크 1350만장을 포함 필요 물품을 3차에 걸쳐 공수했다.

이에 앞서 재단과 협회를 통해 그리스 해운계는 335개의 산소호흡기를 포함 인공호흡기, 의사용 보호장구, 중환자 치료용 침상 수백개 등을 제공한 바 있으며 최근 북부 국경지역에서 터키와 긴장이 고조되자 경찰과 해안경비대에 경비정 수리비를 지원하고 개인용 보호장비들을 제공한 바 있다

개별적으로는 그리스의 대표적 선주인 George Prokopiou 가문, Dynacom Tanker 등은 중국과의 오래된 친분관계를 바탕으로 보호장구 일체를 한 세트로 총 3만 세트, 일회용 의료복 13만개, 장갑 250만 컬레 등을 중국에 주문 공수했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자사의 선박을 건조해왔던 중국 조선소에도 마스크 등을 기증했다.

그리스 선박왕 Aristotle Onasis가 설립한 오나시스 재단은 현재도 탱커 21척과 벌크선 10척을 운항하고 있다. 1975년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오나시스 재단은 그리스 위기 때마다 보건, 의료, 안보 차원에서 CSR 활동을 계속해왔다. 의료환경이 열악한 자국의 병원에 대량 앰뷸런스를, 소화시설이 부족한 소방대에게는 소방차 200대를 기증했는가 하면 1992년에는 Onasis Cardiac Surgery Center를 건설해 국가에 기증했다. 십여년전 그리스판 IMF 사태로 자국의 재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당시 집권한 시리자(Syriza) 정권시절 그리스 해운계는 해외에 치적해있는 선주들까지 동참해 법이 정한 톤세의 4배에 달하는 금액을 자발적으로 세금명목으로 납부한 바 있다.

오나시스와 함께 그리스 해운의 쌍벽을 이루었던 Stavros Niarchos(1909~1996)씨가 설립한 Stavros Niarchos Foundation(SNF)도 글로벌 팬데믹 대책을 위해 1억달러(약 1200억원)을 기증하기로 하고 그 첫 단계로 코로나19 관련 연구를 위해 Rockefeller University에 300만달러를 출연했다. S. Niarchos씨는 Niarchos Ltd의 설립자로 한때 80여척의 탱커를 운항했던 그리스 해운계의 거인이다. S. Niarchos 가문은 2003년에 사실상 해운에서 철수했다. 1996년 사망당시 그의 재산 50억달러중 20%를 출연해 SNF를 설립했으며 주로 국민 건강과 관련된 체육시설, 문화시설, 병원 등을 후원하고 있다. 아테네에 있는 문화센터(8억6천만달러 투입), 3개의 병원건립(4억5천만달러 투입)등이 SNF의 대표적 CSR 실천사례들이다. 최근 1억달러의 출연을 발표하면서 SNF측에서는 코로나19 충격을 완화시키고 그 일선에서 고투하고 있는 의료진들을 지원하는 것이 SNF의 의무라고 밝혔다(LList. Apr. 14, 2020).

10. 지름길은 없다

예전부터 해운계는 국제적 혹은 국내적 모임에서 해운계 공통의 과제를 공론화하는데 인색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해운에 대한 이미지 구축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 공론의 장이 마련돼도 과도하게 각자의 이해관계에 매달리다 보면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공감대가 결여된 자기중심적 의견이 넘쳐나다 보니 컨센서스 도출이 어렵고 그렇게 되다보니 결집력이나 추진력도 기대하기 어려워 질 수 있다. 좋게 말해서 각자 갈 길이 바쁘다 보니 해운계 전체를 위한 공동전선 구축에 소홀했거나 외면한 것 아닌지 한번쯤 자성해 볼 필요도 있다.

해운의 국제적 특성 때문에 자국의 이해관계만을 과도하게 주장하기도 어렵고 용납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운계 스스로가 응집력이 결여되고 분산되다보니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대외 환경 변화에도 내항력(耐抗力)이 결여돼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이 뒤엉키는 가운데 이렇다 할 결론도 없이 시간만 소비하는 사례는 없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한마디로 선원교대 문제 같은 해운계의 현안들은 해운계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국의 정치권과 정부간 외교적 담론을 거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해운계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먼저 일반인을 포함한 정치권으로 하여금 해운의 고유기능을 이해하도록 하고 그 기능이 저해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충격을 이해하도록 평소에 알리는 것이다.

해운시장이 호황일 때는 ‘업계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제발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지 말라’ 하고 어려울 때에는 정부를 향해 ‘정부는 무엇을 하는 가’라며 불만을 나타낸다고 한다. 전직 관료들이 말 하는 우리 이야기다. 정책부서로서 호불황과 관계없이 시장의 동향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나 호황때 해운계 사람들 얼굴보기도 힘들 지경이다 보니 시장의 현황에 대해 잘 알 수 없다는 소리까지 한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그 내용이 가볍게 웃고 말일이 아닌 듯하다. 더구나 해운계의 중심은 서울에 있고 주무부처는 쉽게 가기 어려운 먼 거리에 위치하다보니 주무부처의 실무진들과는 더더구나 얼굴을 마주대할 기회도 그만큼 줄었다.

전세계 경제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악조건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는 유럽선사들의 사고(思考)에 새삼스럽게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게 한다. Euronav 대표의 자성론이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인지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부산 감천항에 기항하는 러시아 냉동운반선에서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사례가 2~3차례 정도 있었다. 현재의 분위기에서 냉동운반선의 기항을 금지하거나 선원의 상륙을 불허할 경우 러시아산 냉동생선의 유통이 차단될 수 있다는 이유로 선원들에 대한 검역 규제를 완화하라고 요청하면 부산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몇년전 명동의 어느 호텔 조찬 모임에 초대받은 한 정치인은 ‘해운계가 정치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정치인들은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표(vote)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동안 해운계와 인연을 가졌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운계가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2020.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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