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어차피 버리고 갈 것을!

耕海 김종길
耕海 김종길

장마가 두 달 가까이 계속됐다.

그간 태풍도 몇 차례 지나갔다. 태풍과 폭우가 남해안과 동해안을 강타했다. 피해가 막급 하다. 섬진강 둑이 터져 흙탕물이 내 고향 화개장터도 덮쳤다.

온통 뻘 구덩이라 엉망진창이었다. 불볕더위까지 겹쳐 생지옥이었다. 코로나를 견뎌내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이를 두고 ‘엎친 데 덮친다’라는 건가? 절망한다. 한탄이 절로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옷장 속 의복에 곰팡이가 하얗게 피었다. 며칠을 햇볕에 노 맡겨뒀다. 아파트 3층인데도 이럴진대, 바람과 햇볕이 통하지 않는 반지하 방은 어떠했을까? 빈민들이 처절해 숨이 막힐 것이다. 앞뒤가 탁 터인 집으로 얼마나 옮기고 싶었을까? 돈 없으니 한탄뿐이었다. 어찌하랴, 이 서러움을! 온갖 좋은 것은 가진 자들의 몫이다. 재난은 빈민들의 몫이 됐다.

하느님! 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에게 햇볕과 바람을 주시옵소서!

국이니 미향이니 미애니 등등 고귀한 사람들이 세상을 소란케 한다. 국론은 갈기갈기 찢겼다. 피곤하다. 진저리난다. 누가 이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 했던가? 쾌도난마처럼 처리할 솔로몬은 이 땅에는 나타나지 않는가?

이때다. 라운하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테스형에게 절규했다. 서양철학의 할아버지 소크라테스를 맞상대해 물었다. 담대하다. 놀랍다. 배짱이다.

2500년간 세상을 관조한 대철학자가 헝클어진 이 나라 상황쯤은 짐작하시리라 생각했을까? 그러나 대답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칠년대한에 단비처럼 메마른 가슴들을 적셔주었다. 역시 라운하는 가요계의 황제이다.

책장의 책들과 서류뭉치에도 곰팡이가 서렸다. 서류뭉치를 펴봤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호소했던 이·취임사들이 있다. 읽어봤다. 나 잘났다고 거드름 피우지 않았다. 다행이다. 해운발전을 위해 몸 바쳐 신뢰받는 행정을 하자고 호소했다.

외국 해운항만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인사장들도 있다. 의례적이지만 그래도 서로를 이해했다. 존경이 넘쳤다. 오래오래 기념으로 보존하려고 알뜰하게 보관해 왔다.

이제 더 관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도 없다. 사회구조가 그렇게 변화되었으니. 섭섭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내가 죽고 나면 어차피 폐기물처리 업체가 내 모든 것을 무지막지하게 휩쓸어 가져갈 것인데. 내가 살았을 때 내 손으로 살갑게 챙겨 고이 보내련다. 내 평생 땀 흘려 쌓아온 탑을 내 손으로 무너뜨리다니!

인생이 이다지도 허무할까,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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