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이기병 박사
이기병 박사

일제 강점기 일본은 조선을 식량 기지로 발전시켜 자국 식량난을 타개하고 싶었다. 일본 내 유휴자본을 조선의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에 투입, 경제도 활성화하고 싶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는 시대였고 ‘조선미곡창고회사’는 그렇게 설립됐다. 국가 물류를 책임지는 국영기업체로 1930년 11월 15일 자본금 100만원, 주요 주주로는 조선은행·동양척식 주식회사가 출자했다.

부대 사업으로 보관·위탁판매를 하였고 본점은 갑오개혁 때 조선 물가 조절과 환곡을 담당했던 ‘선혜청’이 있던 자리였다. 지금은 한때 ‘고양이 뿔 빼고 없는 게 없다’던 남대문 시장 입구다.

이후 서슬 퍼런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한국운수주식회사’와 통합문제를 검토해 1961년 ‘한국미곡창고’라는 이름으로 한국운수를 흡수 합병했다. 운수회사 이름으로 적당치 못하단 이유로 1963년 2월1일부터 회사 이름을 개칭하였다. 이 회사가 바로 ‘대한통운’이다.

1968년 동아건설에 합병,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도 참여하여 사막의 기적도 만들면서 승승장구했으나 성수대교 붕괴로 함께 무너지기도 했다. 2008년엔 금호아시아나 그룹에 편입됐으나 ‘승자의 저주’에 걸려 토해졌고 2011년에는 CJ그룹 품으로 들어가 오늘날에는 ‘CJ 대한통운(CJ Logistics)’으로 불린다. 100년 기업이 드문 우리 역사에 1956년 기업 상장 이래 대표적인 물류 장수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물류 산업은 2PL(second party logistics) 중심의 성장과 시장 규모가 협소하여 다단계와 재하청의 전 근대성을 아직 졸업하지 못해 영세한 3PL(Third Party Logistics) 기업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대기업 기반 2PL 물류 회사들이 매출 상위권에 포진해 있고 대한통운은 1위 현대글로비스 다음의 기업으로 3PL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e-커머스 시장 성장과 4차 산업 혁명, 기업들의 SCM 강화, 산업 클러스터 확대로 물류 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빠른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구촌 물류 시장도 2017년 8조 7천억 달러에서 2026년 16조 4천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그럴까? 삼성·현대·LG 등 국내 10위권 대기업들은 대부분 물류 2PL 자회사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포스코까지 뛰어들고 있다. 2P·3PL의 필요성과 문제점, 각 주체 간의 시각과 해법은 해묵은 김칫독에서 나온 ‘묵은지 지짐’ 마냥 물류 산업의 단골 논란거리 메뉴다.

최근 들어 트로트 전성시대다. 채널만 돌리면 트로트 프로그램만 나오는 요즘 방송은 ‘판박이 콘텐츠’만 양산하고 있다. 레트로(Retro)의 그리움만 강조해선 음악의 재고가 쌓이고 질리며 나중엔 더 보여줄 것도 없어 오래 못 간다. 기성세대의 옛날을 신기해하고 새롭게 복원하는 뉴트로(new-tro)가 돼야 신세대 문화로 또 하나의 한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

통행세와 일감 몰아주기로 대변되는 레트로 방식의 한국 물류산업 구조는 오랫동안 도구적(instrumental)으로 사용돼왔다. 그렇다고 해서 규제 중심 일변도의 정책 추진을 펼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나마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을 통한 자생력을 확보하여 물류 고도화를 실현하는 게 바람직하다.

2PL 모회사 물량은 일정 부분 제한을 두되 화주의 물류 조정자로서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비즈니스 Player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효과적인 경계(boundary)설정이 요구된다.

경계설정과 물류 산업의 레르토 방식을 탈피하는 것 못지않게 바라봐야 할 중요한 논점이 있다. 2018년 기준 국가별 물류성과지수(Logistics Performance Index, LPI)에서 1위는 독일, 한국은 25위다. 전 세계무역 순위에서 한국은 7년 연속 9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 수준보다 물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낮은 물류 인프라, 정부의 물류 산업 지원체계 미흡, 영세기업 위주의 산업 구조로 소규모 업체들이 단순 가격 경쟁에 집중되고 있어 고부가가치 전문서비스 제공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스마트한 젊은이들은 카카오, 네이버, 삼성전자 같은 IT 기업들을 좋아한다. 취업 선호도 10대 기업 중 해운, 물류 관련 기업은 작은 눈 힘주고 찾아봐도 없다.

결국, 산업 고도화가 필요한데 그러자면 우선 현재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3PL 기업 육성정책의 기본 방향성은 맞다. 세계적 흐름도 자가 물류를 고집하지 않고 물류 공동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영업력 한계, 선진 물류 기업과의 IT 기술격차, 물류 인프라 조성에 따른 자금력 부족 등으로 3PL 기업들이 감당하기엔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 이에 필요한 것은 2PL 대기업들이 글로벌 물류 기업으로 성장하고 중소·중견기업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전략적 협업과 세계 시장에 동반 진출하여 상호 보완적인 상생 관계를 구축함이다.

현재의 ‘우수물류 기업 인증제도’도 손볼 필요가 있다. 건설업계의 ‘시공능력 평가제도’를 참고하여 매출액 외 물류 실적, 경영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 각 업체가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등급제로 나누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물류 산업으로 연관 지어 눈길을 돌리면 ‘수출입 안전관리 우수공인업체 AEO(Authorized Economic Operator)’ 제도를 참고할만하다. 이 제도는 안전관리 수준, 법규 준수를 통해 당국의 심사를 받고 A, AA, AAA로 등급 분류하여 관세 경감, 과태료 부과 등 차등 혜택을 주는 국제적 제도다.

우수물류 기업 인증제도가 화주와 해외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고 말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크다. 신뢰도 확보와 국제화 향상도 열심히 고민해봐야 한다. 화주에겐 적정한 업체를 선택할 수 있는 정보제공과 등급별 경쟁을 통해 대기업이 중소 물류 업체 수주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경계(boundary) 설정의 일환이다.

기업들이 확장정책에서 경영다각화의 일환으로 물류 기능의 수익원을 창출하기 위한 2PL 설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뜬구름 흘러가듯 막을 수도 없다. 다만,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다각화를 지향한다면 모두가 하향 평준화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그룹 내 계열사 부품과 서비스를 무조건 사주지 않고 시장 거래 방식을 택해 조건이 맞지 않으면 다른 업체를 선택한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공급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 나름대로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 다각화를 추진하지만, 상향 평준화를 통한 사업고도화를 도모하고 있다. 모회사의 상황에 맞추다 보면 2PL은 따라가는 형국이 된다. 물류업의 사업 본질을 자각하고 대형화, 글로벌화로 신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것이 조직의 숨을 불어 넣는다. 삼성도 하는데 같은 ‘한국의 DNA’를 가진 우리 기업들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 옛날 조선 시대에 지금의 택배가 가능했던 것은 ‘지게’ 덕분이었다. 지팡이의 힘을 빌려 나름 그 당시 탁월한 운반수단이었다.

일본 강점기에는 그 역할을 ‘조선운송(朝鮮運送)’이 했다. 대한통운의 역사 속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국책 사업으로 육상, 해운, 항만을 포함했던 전국구 운송업체인 조선운송이 있었다. 1930년 설립되어 훗날 한국운수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한국에서 운송, 창고업이 본격화한 것은 일본이 제국주의 세력을 만주 등 아시아대륙으로 뻗게 하기 위한 철도부설 때문이었다. 수많은 수탈과 억압이 있었고 피해자 대다수는 노무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제는 ‘슬기로운 주문 생활’이 더욱 일상화되어 어느덧 ‘배송사회’가 되었다. ‘로켓·새벽 배송’ 등 다양한 서비스가 증가하고 대표적으로 택배 산업은 빛의 속도로 성장하여 올해만 해도 7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런 과정에서 ‘살인노동’으로 불리며 과로사로 인한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다. 높은 노동 강도로 인해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택배 종사자들을 보면 필자처럼 여유 있는 몸매를 가진 분들은 별로 안 보인다.

대한통운 90년은 우리나라 물류의 역사다. 물류 산업 성장 속도만큼 종합적인 제도 개선의 스피드도 높여야 한다. 물류 노동자들의 노동환경도 생각해보고 고객 만족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정책의 모든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유통·물류·교통의 영역이 사라져 업종구분이 별 의미 없고 생활 밀착형 물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하리라 예상된다.

좋은 세탁세제는 냄새가 향긋한 게 아니다. 깨끗하고 잘 빨리는 게 제일 좋은 세탁세제다. 그동안 제 눈썹도 못 보고 성장의 양만 보다 쫓다 보니 산업의 발전이란 논점을 일탈하진 않았을까?

누군가 “역사는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때 우리는 일본의 갑질로 인한 민족적 수난을 겪었다. 갑질의 횡포로 물류 역사에 노무 동원됐던 많은 선조들은 유쾌한 ‘을의 반란’을 기원하지 않을까? “농부처럼 밭을 싹 다 갈아엎어 희망의 씨앗으로 산업의 재개발을 이룩하라”

유산슬과 고량주 한 잔 속에 훅 들어온 그분들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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