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1. 2020년은 돌연변이 시황이었다

2020년은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 의해 빼앗긴 일년이었다. 친구, 거래처는 물론 가족까지도 서로 만남을 삼가해 왔고 문 닫는 가계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모두가 고통 속에 일년을 보냈고 아직도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과 일년동안에 코로나19는 수조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GDP의 감소를 초래했고 세계 경제의 축을 아시아 쪽으로 이동시키는 모멘텀 역할을 했다. 전세계가 모두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컨테이너 정기해운계는 예외적 상황이다. 수연간 적자를 면치 못했던 대형선사, 유동성 위기로 시장의 주목을 받아왔던 일부 선사들도 예상치 못했던 실적에 숨을 돌리고 재기를 위해 몸을 추스리고 있다.

2020년 1분기 당시 팬데믹(Pandemic)이 시작되면서 컨테이너 해운사들은 금융위기보다도 더 엄혹해질 시장에 대비해 원가절감과 함께 생존을 위한 비상체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2020년의 실적은 대부분의 선사가 기록적인 이익을 시현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한해였다. 흑자 전환의 변수는 예상보다 빨라진 중국의 경제 회복, 각국의 부양 패키지와 그로 인한 소비패턴의 변화, 급등한 수요증가와 이를 수용하지 못한 항만과 도로의 혼잡, 장비 부족 등으로 인한 Spot 운임의 고공 행진이었다.

모두가 공감하듯이 지금의 시장환경은 매우 비정상적이며 선사와 화주는 물론 글로벌 무역을 위해서도 이를 조기에 정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는 정상화를 향한 과정이다. 현재의 시장에 대한 신중한 상황인식 없이는 오히려 부작용과 정상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현 비정상의 원인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중국의 경제회복, 각국의 부양 패키지, 소비패턴의 변화 등 해운 외적 요인을 생략하고 우선 선사, 화주, 항만과 터미널을 포함한 물류공급망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살펴본다.

2. 물류공급망의 혼란

물류 공급망의 혼란은 미국에서 시작돼 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고 그 시발점은 미서안의 최대 관문인 산페드로만의 LA와 LB항이었다. 중국의 경제활동이 예상보다 빨리 회복되고 미국의 대규모 부양 패키지에 힘입어 3분기부터 이들 양대항을 중심으로 중국발 물량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LA/LB항은 작년 8월 이후 물량이 증가하면서 하반기 물량은 상반기 대비 50% 늘어났다. 작년 10월 LA항으로 수입된 물량은 전년동기대비 27.3%가 증가하면서 LA항 개항 114년만에 최고 기록이며 LB항 역시 19.4% 증가하면서(LA, LB 발표) 밀려드는 수입물량과 항만, 도로망의 혼잡으로 양대항에서 극심한 체증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량도, 컨테이너도, 선박도 모두 늘어났는데 항만의 수용 능력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는 가운데, 항만으로부터 수십마일 거리에 위치해 있는 주변의 배송센터와 창고는 만재 상태인데 확진자까지 발생하면서 인력난까지 겹치는 문자 그대로 설상가상의 상태다.

중국 역시 2020년 11월 기준 중국발 미주향 물량이 전년동기대비 46%가 증가했지만 산페드로만 항만에 접안해서 작업하고 있는 선박의 척수보다 더 많은 선박들이 접안을 기다리고 있다. 선박의 지체로 인해 수출용 화물과 아시아로 회송해야 할 공 컨테이너의 선적도 지연되면서 선사들의 운항 스케줄은 한마디로 꼬인 정도를 넘어 뒤틀린 상황이다. 야적장에 장치된 공 컨테이너도 빠져나가지 못해 통상 3단적이 5단적 이상으로 쌓이고 있다. LA/LB항의 문제는 미서안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세계 주요항만으로 확산됐고 선박회사의 네트워크에 심각한 과부하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3. 운임 동향

(1) Contract rate vs Spot rate

선사들이 집하(Sales)를 하고 화주들이 선복을 예약(Booking)하는 형태는 연간 단위 혹은 분기별로 사전에 물량과 운임률을 약정하는 형태(Service Contract)와 Booking 당시 시장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매 선적단위로 운임을 약정(Spot)하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

계약운임은 운임 자체도 중요하지만 상품을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안전하게 운송하려는 운송의 안정성에 더 우선을 둔 대형화주들이 주로 선택하는 반면, 공급과잉 시장하에서 선사들간의 경쟁을 최대한 활용해(Market manipulation이라함) 최저 운임으로 선적하려는 화주들은 Spot rate를 선호한다.

실무에서는 시장의 흐름에 대비해 리스크 헷징 차원에서 화주나 선사 공히 계약운임과 Spot 운임을 적절히 조합해 운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형화주와 대형선사간에는 대체적으로 계약운임의 비중이 높고 영업력이 약하거나 고객층이 취약한 선사의 경우는 Spot 의존도가 높은 것이 보통이다. 두가지 운임제가 병행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흐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수요가 공급을 앞지를 경우 선사들은 선택적으로 Booking 하면서 우량 고객들에게는 계약운임을, 유대관계가 지속적이지 못한 고객에게는 Spot rate를 적용하는가 하면 Overbooking시 Roll over되는 대상은 대부분 Spot rate 화물이다. 예상했지만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화주는 선사를 향해 계약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반대로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는 공급과잉 상황하에서는 정반대의 경우가 발생한다. 화주는 Booking을 확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낮은 운임을 제시하는 선사가 있을 경우 예고없이 운송선사를 바꾼다. Booking을 믿고 화물을 기다리지만 화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른바 No-show 현상이다. 선사는 화주에게 약속위반 혹은 계약 위반임을 주장한다.

성수기나 선복이 부족할 경우 선사들의 Booking 관리는 우량 고객에 우선을 두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장비나 선복 제공면에서 Contract rate 화주와 Spot 화주간에는 우선순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계약운임과 Spot 운임간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상응하는 리스크가 뒤따르기 마련이며 화주가 계약운임과 Spot 운임중 선택했을 경우 그로 인한 리스크가 현실화됐을 시에는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유럽항로 Spot rate가 연초 계약 요율의 3배 수준까지 올랐다. 시장의 공급과잉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계약요율보다 Spot rate를 택했던 화주들은 선적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급등한 Spot rate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견할 수 있었더라면 Spot rate를 택한 화주들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일부 선사에서 성수기를 이용해 계약운임 화주에게 계약 운임에 더해 추가 운임을 요구한다거나 할증료 등의 명목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사례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연히 그러한 선사들은 계약위반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며 그러한 행위는 단기적 이해관계에 매달려 고객 관계를 헤치는 자해 행위라 할 수 있다.

(2) 새해에도 Spot Rate는 고공행진

작년 9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운임은 연초에도 여전히 강세이며 중국발 미서안향은 feu당 4천달러, 동안향은 feu당 4700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E/B(head-haul)뿐 아니다. 태평양 복항(back-haul)의 경우도 미서안발은 평균 36% 상승한 feu당 703달러, 동안발 역시 25% 상승한 feu당 769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항로도 다를 게 없다. 아시아발 지중해와 북유럽향은 공히 최근 30%가 상승해 할증을 제외하고 feu당 7천달러를 기록하며 새해 첫주부터 유럽항로 Spot 운임은 작년 10월 이후 거의 4배로 폭등하고 있다.

Drewry의 컨테이너 운임지수(World Container Index) 역시 연초 1주일 사이에 19.8% 상승한 feu당 5221달러를 기록했으며 이는 최근 5년 평균 1569달러 보다 3562달러 상승한 운임이다. 물론 Spot rate라고 하지만 이와 같은 급등세는 정상적인 시장하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지만 Drewry는 당분간 이러한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4. 장비부족사태

(1) 구조적 원인

혼란의 시발점이 된 태평양항로는 통상 O/B 2개 : I/B 1개의 비율로 이동하는 구조적으로 불균형 항로이기 때문에 I/B에는 Loaded 1, Empty 1개가 함께 실려 온다. O/B 화물들은 주로 생필품 내지 일반소비재들로 도착지가 인구가 밀집해 있는 해안에 인접한 대도시인데 비해 미국발 I/B 화물의 상당 부분을 점하고 있는 농산물 임축산물의 대부분은 항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에 위치해 있다.

미주항로의 구조적인 불균형 때문에 공 컨테이너를 아시아 지역으로 회송해야 하는 선사의 입장에서는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최소한의 비용이라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원거리 시골에 위치해 있는 수출업체들(Agriculture Transportation Coalition ; AgTC)에게 공 컨테이너를 제공해왔고 그 덕에 미주발 수출업체들은 그동안 낮은 운임으로 화물을 수출할 수 있었다.

장비 회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목적지에 도착한 즉시 화주에게 인도되고 내장 화물을 적출한 직후 바로 지정된 장소로 회송돼야 하나 현재는 터미널로부터 수입컨테이너의 Pick-up이 지체되고 있을 뿐 아니라 반납은 물론 반납된 공 컨테이너를 수출용으로 재배정하는 기간도 지연되고 있다. 전문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수출용 화물을 위해 재배치돼야 할 컨테이너가 Empty 상태로 머물러 있는 기간은 평균 45일이지만 중국과 미국의 경우 지체로 인해그 기간이 61일과 66일까지 증가했다(Fraunhofer Center for Maritime Logistics and Service, Container xChange-Dec. 1, 2020).

동서항로에서 컨테이너의 회전율은 연간 평균 5차례 정도 화물운송에 사용되는 것이 정상인데 2020년의 경우 지체로 4.5회에 그쳤다. 바꾸어 말하면 부족 사태를 개선하려면 장비가 10~15% 정도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지만 시장에는 그런 여력이 없기 때문에 유일한 대책은 컨테이너 회수를 독려하는 길뿐이다.

또 다른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은 최근 수개월 동안의 Booking 현상이다. 예약률이 90% 수준에 달할 정도로 높지만 실제 선적되는 수량과는 차이가 있다. 즉 컨테이너에 화물을 적입해서 곧바로 선적하지 않고 일시 대기 상태로 두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컨테이너 부족 사태에 대비해 앞당겨 장비를 확보해 두기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이 또한 장비의 회전율을 더디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장비 회전이 지체됨에 따라 아시아 지역의 화주들은 높은 운임을 지불하더라도 장비 부족으로 수출에 차질이 가중되고 있다. 정상적인 시장하에서 아시아권에는 350만개가 있어야 하는데 작년 11월의 경우, 200만개 밖에 없어 어림잡아 150만개가 부족했으나 연말에는 부족수량이 200만개로 늘어났다(SeaIntelligence).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선사들은 고비용과 시간을 소비해가면서 마진이 전무한 미주 W/B 화물에 장비를 제공하는 대신 고운임의 아시아발 E/B 화물 선적을 위해 서둘러 공 컨테이너를 아시아 쪽으로 회송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다 보니 이제까지 저운임으로 수출해왔던 AgTC 등은 이와 같은 선사들의 상사적 선택의 배경을 익히 알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를 선사들의 일방적인 이윤추구행위로 주장하며 정치권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2) 컨테이너의 절대 수량은 부족하지 않다

연초 팬데믹으로 인해 중국의 컨테이너 제조 공장이 한동안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제조 물량이 계획보다 감소됐고 실제 2020년말 기준 전 세계 컨테이너 박스 규모도 예정했던 규모보다 1.1% 감소한 3990만teu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2020년 수송물량은 항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19년 대비 5% 정도 감소했다. 즉 박스 선단의 감소 폭보다 수송물량의 감소 폭이 더 크다는 것은 물량 대 박스의 비율이 더 악화되지 않았으며 투입된 박스의 규모는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Drewry).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인가? 수량의 부족이 아니라 항만의 혼란과 적체 등으로 인한 장비의 회전율 저하가 문제다. 물론 일부 선사가 신규 발주를 서두르고 있어 박스가 추가되면 당장은 박스 부족 사태가 완화될지 모르나 혼란이 완화되고 선박 운항이 정상화될 경우 현재의 물동량 대 박스선단의 비율이 부족함이 없다면 올해 1분기 이후에는 장비가 남아돌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5. 화주들의 불만과 경쟁당국의 개입

운임상승의 배경이 되고 있는 불안정한 수요의 흐름, 혼잡, 장비부족 등 복합적 원인들이 단 시일내 해소될 조짐이 보이지 않다 보니 미국, 유럽 및 중국 화주들의 불만이 거의 동시에 폭발했다. 화주들이 당국에 개입을 요구하는 사유와 그 시기 등에서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일련의 혼란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선사측에 있다. 둘째, 경쟁당국이 제대로 감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경쟁당국의 개입을 요청하는 형식이 모두 화주 단체와 포워더 단체의 공동명의 서신이다.

표면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불만을 제기하는 화주들 대부분은 계약운임보다는 Spot 운임을 이용해왔던 소형 화주들이다. 중국의 화주들은 주로 기록적인 O/B 운임과 선복 확보난이었고 유럽과 미주측 화주들은 그동안 구조적인 무역의 불균형을 이용해 저운임으로 수출을 해왔던 복항(Back-haul) 화주들이었다. 화주들의 주장에 대한 국가별 대응을 살펴보자.

(1) 중국

중국 정부는 선사들의 운임부과 실태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선사들의 운임보고 의무 이행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나서면서 상무부(Ministry of Commerce), 교통부(Ministry of Transport) 및 국가 시장규제 당국(State Administration for Market regulation) 등의 참여하에 선사들과 불원 ‘협의’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2) 미국

선사들이 적기에 컨테이너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AgTC의 민원과 관련해 FMC는 이와 관련해 작년 11월 LA/LB, NY/NJ항에 기항하는 얼라이언스 선사들의 장비운영 실상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어 FMC는 지난 12월 16일자로 WSC(World Shipping Council : 원양 컨테이너선사 단체)앞으로 서신을 보내 미국의 수출화물을 위한 컨테이너 부족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며 원양선사들이 미국 수출업자들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공공운송인의 의무(common carriage obligation)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또 현재의 혼란이 선사의 장비관리와 터미널 주변의 Demurrage & Detention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고 현재 항만이 유례없는 물량의 급증사태를 겪고 있는 만큼, 선사들을 향해 미국 국익에 매우 중요한 농산품의 수출이 차질없이 계속돼야 하며, 미국의 공급망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균형있는 무역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상 AgTC가 원하는 컨테이너를 제공하고 미주항로에서 Head-haul 물량과 Back-haul 물량의 균형을 기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3) 정상이익인가, 부당이득인가?

최근 유럽행 운임이 teu당 4천달러까지 상승하는가 하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혼잡과 정체로 화물의 인수인도마저 지연되자 화주들은 전세계 모두가 힘들어하는 팬데믹을 기회로 삼아 선사들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당국이 이를 철저히 조사해 줄 것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과연 화주들의 주장은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2020년 팬데믹 초기에 선사들이 선복을 감축하기 시작한 것은 운임을 인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not to increase rates, but to survive)였다는 선사의 주장을 화주들이 쉽게 동의할지는 의문이지만 당시 해운시장의 분위기는 공포와 위기감 그 자체이었으며 IMF, World Bank는 물론 해운 관련 전문연구기관까지 금융위기때 보다 더 엄혹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며 정기선 해운업계의 연간 손실이 거액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였다.

미주와 유럽의 수입업자들 역시 주문 물량을 대거 취소하는가 하면 운송중인 상품에 대해서도 중도에 임시 보관조치 해줄 것을 요청할 정도로 모두가 팬데믹의 엄청난 충격에 대해 공포감을 느낄 정도였다. 선사들은 물량의 하락에 대비해 Blanking을 통해 선복 감축에 나섰는가 하면 2020년도 전체 손실 규모를 2천억달러 정도로 추정하고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예상과 달리 2020년 하반기에 나타난 수요의 빠른 회복세를 보고 모두가 의외로 생각하며 선사들은 서둘러 선복의 복귀에 나섰고 화주들도 재고 비축과 선적수배에 나서면서 3분기에 이르러서는 항로에 투입된 총 선복량이 2019년의 수준을 초과할 정도로 선박의 공급 상황도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Jan. 8, 2021).

중국 춘절이 임박해 있지만 아직 추가 Blanking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으며 계선 비율은 최저수준이다. 문자 그대로 떠 다닐 수 있는 배는 몽땅 다 투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컨테이너 박스의 적기 회송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마당에 선사들이 담합을 해서 시장을 조종하고 조작할 수단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4) 지난 10년의 항적

과거에도 운임이 상승하거나 서비스에 문제가 있을 때 화주들은 경쟁당국을 향해 선사들의 담합 가능성을 거론하며 조사를 요청한 적이 종종 있었다. EU의 경쟁당국, 미국의 FMC 등이 새벽에 선사들의 사무실을 예고없이 급습(?)해 자료를 수거해가거나 선사 대표들을 소환해 담합 여부를 조사한 예가 종종 있었지만 한번도 선사들의 운임담합(collective pricing)이나 유착(collusion)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최근 10년 동안 선사들의 수익력(earning power)과 운항원가(Operating expense : Opex)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간 선사들이 겪었던 고초를 유추할 수 있다. 모든 선종을 통합해 평균 일당 수익력을 나타내는 ClarkSea Index, 운항원가는 Moore Stephen의 OPEX Index를 인용한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과 10년후인 2017년의 지수를 비교하면 수익력은 2008년 일일 3만2659달러에서 2017년 9946달러로 70% 이상 감소했는데 운항원가는 일일 6483달러에서 6493달러로 거의 불변이다. 인플레이션과 소비자 물가지수 등을 반영하면 운항원가는 오히려 크게 감소했고 그 원인은 선사들의 대형화를 통한 운항원가 절감이었다.

그러나 대형화는 공급과잉으로 이어져 운임경쟁을 초래했으며 원가절감의 효과는 운임에 반영돼 실질적인 원가 절감의 수혜자는 바로 화주 자신들이었다. 반면 계속된 운임의 하락으로 수익력이 70% 가량 감소하면서 선사들 상당수가 재정난으로 시장에서 철수했거나 흡수합병되는 등 지난 10여년은 선사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체력전의 시대였다. 해운계가 소수 대형화로 재편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에는 화주들이 주도한 운임경쟁이 큰 몫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컨테이너 해운계가 2020년 한해에 그것도 예기치 못했던 팬데믹의 후폭풍으로 의외의 실적을 시현했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면서 운항비도 보전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절을 겪었으며 그 과정에서 2016년 전세계 물류공급망을 통체로 뒤흔들었던 세계 제7위의 한진해운 도산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5) 이것이 시장의 논리

현재 teu당 4천달러까지 상승한 유럽항로 운임을 두고 화주들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지만 과거 운임의 흐름을 살펴보면 작년 10월 초 아시아-유럽향 Spot 운임은 teu당 1100달러였으며 2015년에는 한때 250달러 이하로 까지 추락했었다. 2020년 말 기준 지난 5년간 평균 운임은 teu당 900달러였다.

이러한 현상은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고 2020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는 한마디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며 자본주의의 원리다. 공급은 제한돼 있는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게 되면 공급을 원하는 사람은 그만큼 더 부담하게 되는 것이 시장 경제의 기본(market fundamental)이다.

상품의 도착지 가격을 기준으로 볼 때 해상운임의 비중은 전체 가격의 2% 전후를 점하고 있다. 그동안 해운계가 해운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공급과잉의 부담을 감수하며 대형화를 추진해온 결과로 이처럼 저운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현재 화주들이 비난하고 있는 대상 운임도 시장의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결정되는 Spot rate이며 일정 기간을 정해 사전에 책정돼 있는 계약운임이 아니다. 계약운임은 현 Spot rate에 훨씬 미달하는 낮은 수준이다. 이 또한 운임과 관련된 리스크 관리의 영역이며 그에 수반한 리스크가 현실화된 결과다.

(6) 해운계의 반론

FMC는 미국의 대외 수출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차질없이 행해져야 하며 Head-haul과 Back-haul의 균형을 강조했다. 환언하면 AgTC 등 주요 수출업체에 장비를 계속해서 공급해 줄 것을 요구하고 불균형을 개선해 장비 부족을 해소하라는 우회적 주문이다. 균형있는 운송(balanced trade)을 선사에게 강조하는 FMC의 요청은 과연 현실에 부합하는 지적인가?

선박회사들은 화물을 운송하는 비즈니스를 행하고 있으며 전세계 모든 수출입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려 노력하고 있고 그것이 해운업의 기본이다. 미국의 수출입 무역이 불균형 상태로 행해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래왔으며 선사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이다. 실제 2019년도 미국의 총 수입물량 2490만teu 대비 수출 물량은 1300만teu였다. 즉 미국 무역의 구조적 불균형으로 미국이 수입하는 컨테이너의 절반 정도는 공 컨테이너 상태로 미국이 수입하는 장소(아시아의 수출지)로 회송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7) 무엇이 문제인가?

컨테이너 정기해운 역사상 이번처럼 미국, EU, 중국 등 3대 경쟁당국이 거의 동시에 선사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선 적은 없었다. 물론 조사에 나선의 배경에는 글로벌 물류공급망의 혼란과 그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해상운임에 대한 화주들의 불만이다.

현재 계속되고 있는 운임의 고공행진의 일차적 원인이 수급의 불균형이라면 그다음 원인은 장비 부족현상이다. 컨테이너 해운의 네트워크에 엄청난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예외적 상황이다. 물론 하반기부터 예상과 달리 수요가 되살아 나면서 선복을 늘리는 등 대응조치를 취했지만 상반기 대비 하반기의 수요 증가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해상에서 선복을 늘리더라도 급증한 물량의 규모가 항만과 육상 물류 시설의 수용한계를 초과했다. 이를 두고 혹자는 1갤론 용기에 4갤론의 물을 쏟아 붓는 형상이라고 했다.

미주지역의 혼잡으로 연말 아시아 수출물량이 제때 선적되지 못한 가운데 물량의 소화를 위한 Upsizing에 더해 추가 선복까지 투입되면서 미주지역의 정체 상황이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추가 박스가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복만 추가 투입할 경우 우선 다급한 불을 끄는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오히려 물류공급망의 정상화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Dec. 29. 2020)

현재의 컨테이너 해운시장은 한 마디로 More goods, More boxes, More ships의 상황이다. 그러나 선사들이 동원할 수 있는 핵심 자산인 선박과 컨테이너 박스는 상시 대기하고 있는 자산이 아니다. 최소한 단시일내에 동원되는 그러한 자산이 아닌 만큼 단기적 해법이 될 수 없다. 물론 당장은 급증하는 물량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선복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사들이 운영하는 선복의 규모는 정상상황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지 예외적인 상황까지 고려해 잉여선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같은 논리로 컨테이너 박스의 보유량도 마찬가지다.

(8) 정부의 개입이 해법인가?

현 물류 공급망에 가해지는 과부하 현상을 일시에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현재의 혼란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컨테이너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위기상황이다. 정부의 개입으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어느 한쪽에서 무리한 해법을 추진할 경우 다른 한쪽에서 새로운 문제가 유발 될 수 있다. 위기는 시간이 지나가면 해소될 것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 상황이 아니다.

현재의 사태는 문자 그대로 역사상 전례가 없는 예외적 비상 상황이며 누구의 잘못이나 과실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선사를 탓할 문제도 아니고 더구나 정부 당국이 일방의 주장만을 근거로 선사를 압박해서 해법을 요구할 상황도 아니다. 지금과 같은 혼란이 장기화되는 것은 선사들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뒤엉킨 물류공급망의 실타래는 선사들이 나서서 풀어낼 수 있는 능력도, 통제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국가가 법이나 행정력으로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당국을 포함해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관리해야 할 난제이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장이 해결할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컨테이너 해운계가 유념해야 할 것은 컨테이너 해운계는 수십년동안 미국, 중국, EU 등 주요 경쟁당국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물론 중국 역시 세계 최대 화주국이며 EU는 해운동맹을 무력화시키는데 앞장 설 정도로 화주 이익을 우선시하는 국가다. 따라서 해운에 관한한 미국과 중국의 정책은 해운산업의 육성보다는 적정수준의 감시를 통해 자국의 무역과 화주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물류와 해운분야에서 해운보다는 항만과 터미널 그리고 육상부문으로 구성돼있는 미국의 물류 공급망 보호에 우선을 두고 있는 국가다. 미국 해운법(Shipping Act)에서도 법의 목적이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수송(Efficient & economic transportation), 무역의 성장과 발전을 증진(Promote the growth and development of US trade)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9) 미흡하더라도 소통과 협력이 해답

컨테이너 해운계는 지난 10여년 동안 통합과정을 거쳐 이제는 10개 이하의 글로벌 선사와 3대 얼라이언스 체제로 재편됐고 작년 팬데믹하에서 보여주었던 선복감축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이제는 상당수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절제된 대응을 할 정도로 결속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원양 항로에서 선복의 90%를 점하고 있는 3대 얼라이언스의 과점 체제하에서 자국의 물류흐름이 선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규제 당국의 입장에서 못 마땅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팬데믹 사태 이전부터 규제 당국들은 얼라이언스가 항만의 혼잡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US Port Congestion에 대한 보고서)하는가 하면 얼라이언스에 의한 폐해가 도를 넘을 경우 개입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생산활동이 거의 정지상태에 들어 갈 중국의 춘제까지는 현재의 운임 수준에 가시적인 기복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해보이는 와중에 변종 바이러스 출현과 함께 여러국가에서 방역조치가 재 강화될 조짐마져 보이고 있다. 사람과 물건의 이동이 다시 제한되다보니 그동안 서둘러 왔던 컨테이너 장비 회송에도 차질이 발생할 것이고 또 다시 생필품과 의료품의 수요가 증가할 전망인데 덩 달아 선원의 이동에 대한 제한조치까지 더 엄격해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선사들과 2차 협의회를 준비중이라니 이번에는 장비 부족 문제에 더해 새해에도 강세를 지속하고 있는 유럽항로의 운임이 주 ‘협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 사태를 풀어나갈 해법이라면 현재의 주어진 상황하에서 시스템이 더 잘 가동할 수 있도록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상호 소통하는 이외에는 뾰쪽한 대안이 없다. 미주 항만의 적체, 운임의 고공행진, 장비부족 등의 현안들이 얼마남지 않은 중국 춘절을 계기로 완화 조짐을 보일지가 관건이다.

대부분의 원양선사들이 2020년도에 예외적인 실적을 달성했지만 이를 선사 스스로 자신들의 경영전략의 성공으로 자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2020년의 실적이 앞으로 역풍이 될 수도 있고 순풍으로 작용 할 수도 있다. Maersk등 선두주자들이 솔선해 미국의 당국, 물류 파트너, 화주들과 소통하며 해법 모색에 나서고 있는 이유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