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유조선사협회 박성진 회장

한국유조선사협회 박성진 회장
한국유조선사협회 박성진 회장

해운협회·해운조합·한국선급·해진공 등과 협력
회원사 비용 절감 대책 마련, 회원사수 확대

역대 최저수준의 운임, 점점 치열해지는 동남아 석유화학제품 운송시장, 코로나 19로 급등하는 선원 교대비용 등으로 생존위기에 몰린 국적외항유조선사들이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협회를 설립하고 살길을 모색하고 있어 주목된다.

2년전 한국해운협회 산하 협의회로 출범했던 한국유조선사협회는 지난 4월 27일자로 해양수산부로부터 사단법인 설립허가증을 받고 한국유조선사를 대표하는 공식 단체로서 활동을 개시했다. 초대 회장은 협의회장을 맡았던 박성진 회장(에스제이탱커 대표이사)이 추대됐다.

박성진 회장은 “그동안 유조선사들이 외부의 도움없이 자력갱생해 왔지만 이제는 결집해서 힘을 모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협회를 설립하게 됐다. 앞으로 회원사들의 의견을 잘 조율해 협회 정체성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 관련단체, 화주들과 협의해 살아갈 방도를 찾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회장은 또 유조선사가 한국산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유조선업계가 활성화돼야 석유화학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설득해 나가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박성진 회장을 직접 만나 협회를 설립하게 된 이유, 협회를 조직화하면서 어려운 점, 앞으로 협회가 추진할 사업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상세히 들어봤다.


-사단법인 한국유조선사협회로 새 출범한 이유가 무엇인가?

=2019년 10월 한국해운협회 산하조직으로 한국유조선사협의회가 출범했는데 올해 3월 29일 창립총회를 열어 한국유조선사협회로 전환했다. 4월 27일자로 해양수산부로부터 사단법인 설립허가증을 받았고 법인 등기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협의회를 사단법인 협회로 새 출범시킨 가장 큰 이유는 공식 단체로서 인정받지 못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유조선 관련 이슈가 발생하면 정부는 우리가 아니라 급유선선주협회와 협의를 하더라. 급유선 선주는 사실 선사라기보다 유류판매업자에 가까운데 과연 유조선업계를 대표할 수 있겠는가?

확장성 문제도 있다. 해운협회 산하 협의회이다보니 외항선사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내항유조선사나 해운협회 미가입선사는 협의회 회원사로 가입시킬 수 없어 조직 확장에 문제가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해운조합 지원 문제다. 해운조합은 조합법을 개정해 해운관련 단체에 운영비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그런데 해운조합 지원은 협의회는 안되고 공신력 있는 조직, 즉 사단법인이어야만 가능하다.

-가입 회원사는 얼마나 되나?

=해양수산부에 등록된 외항유조선사는 현재 53개사인데 이중 30개사가 이미 협의회에 가입돼 있어 회원사수는 30개사이고 미가입 선사는 23개사다. 내항유조선사도 22개사가 있는데 향후 이들도 가입시킬 계획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최대 회원사수는 75개사다.

-가입 선사를 어떻게 확대해 나갈 계획인가?

=우선 미가입 외항선사 23개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루트를 통해 협회 가입을 요청 드리고 있다. 협회에 가입하면 비용절감이나 권익향상과 같은 메리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결국은 회원사가 낸 회비 이상의 효과를 협회 가입으로 얻을 수 있어야만 회원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협회가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까지 선사들이 메리트로 느낄만한 것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여러 방면으로 뛰면서 협회에 가입하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먼저 예선료 협상을 통해서 예선비용 부담을 낮춰주고 해운조합과 단체협상을 통해 보험료 수수료를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를 비롯한 금융기관들과 협의를 통해 우리 협회 추천을 받은 회원사에 대해 금리를 낮춰주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유조선사들이 영세하다보니 협회비가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부담이 될 수 있는데 협회 사무국을 가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회비를 부과하고 있다. 회비는 보유선박 톤수별로 부과하고 있는데 3만톤 미만은 톤당 15원, 3만톤 이상은 톤당 5원이다. 가장 많은 회비를 내는 선사가 연간 1천만원 정도고 규모가 작은 선사는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1년에 걷는 회비가 1억원이 조금 넘는데 사무국 사무실을 유지하고 간사 1명을 채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모다.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무국장도 회원사 대표중 한분이 맡기로 했다.

-앞으로 협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계획인가?

=우리 협회가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가장 현실적인 말씀을 드리겠다. 2015~2016년 한국 수출에서 석유화학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5%로 조선, 반도체를 제치고 우리나라 수출품 1위를 차지했었다. 이후에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020년에 비중이 12%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올해 1분기는 8%로 급감했다. 코로나19 이후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감소했기 때문인데 석유제품은 40%, 케미컬은 19% 감소했다.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이렇게 감소했으니 유조선업계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사실 그동안 한국 유조선업계는 외부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력갱생을 해왔다. 그렇다보니 유조선사들은 자립심이 강하고 나름의 저력을 갖고 있다. 수출물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유조선사들은 자기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한중일 중심의 운송서비스를 동남아, 중동지역까지 확대하고 3국간 서비스도 개발해 근근히 버텨왔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선사들이 치고 들어오면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도 이제 결집해서 힘을 모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협회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회원사들의 의견을 잘 조율해 협회 정체성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해양수산부와 협의해 나간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 진작에 유조선사 단체를 만들지 못했나?

=그동안 유조선사들은 한번도 스스로 단체를 구성해 본적이 없다. 유조선사들이 거래하는 화주가 모두 오일메이저들이다 보니 단체를 구성해 운임 인상을 요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유조선사협회는 태생적으로 출발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번에 협회를 창립하게 된 것도 자력갱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한국급유선선주협회가 초기에 운영이 잘됐던 것도 급유선 선주들이 생존이 달린 긴급한 상황에 직면해 협회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단체 설립이 어려움에도 우리가 협회를 출범시킨 것은 유조선이 한국산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유조선업계가 활성화돼야 석유화학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설득해 나가려고 한다.

-급유선 선주도 회원으로 가입시킬 계획인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내항유조선사까지 포함할 경우 우리 협회가 가입시킬 수 있는 선사는 최대 75개사다. 급유선 선주를 가입시키지 못할 것도 없지만 당장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우선은 75개사로 회원사를 확대해도 우리의 목소리는 충분히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75개사를 하나로 모으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회장단끼리 자주 온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우선은 30개 회원사부터 회비를 잘 징수하는 한편 회원수를 조끔씩 확대해 회비를 늘려 나가고 해운조합에서 운영자금 등을 지원받게 되면 협회가 자리를 잡고 활동을 확대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추진할 사업을 구체적으로 말씀해달라.

=먼저 사단법인으로서 공신력을 갖추게 됐으니 한국선급,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관련기관들과 협의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MOU를 체결해 나가려고 한다.

하나의 조직으로 커지면 대정부를 상대로 우리의 입장을 관철 시킬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힘이 부족하다. 당분간은 해운협회, 해운조합과 연계해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사실 우리 협회가 당장 75개 선사를 다 묶어 낼 힘은 없다. 당면한 큰 이슈도 없다. 물론 대산항 예선문제가 있지만 선사들의 목숨줄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특정 이슈보다 대외적 환경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협회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측면도 있다. 결국은 집행부가 이런 어려운 점들을 커버하면서 협회를 조직화해 나가야 한다.

협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회원들이 어떤 요구사항이 있는지 전체적으로 들어보는 공청회 자리를 최대한 빨리 마련하는 것이다. 회장단을 중심으로 회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협회가 앞으로 할 일에 듣고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조만간 공청회 자리를 마련하고 한국선급과 MOU 체결식도 함께 진행하려고 한다. 한국선급과는 최근 IMO의 환경규제 이슈와 PSC 집중관리선박 문제 등으로 탱커 선사들과 많은 접점을 갖고 있다. 정부가 최근 1년 동안 PSC 검사를 받지 못한 선박들을 중점관리선박으로 지정함에 따라 한국선급의 검사업무가 폭증했다. 얼마전 한국선급 관계자들을 만나 직원들 교육을 부탁했는데 회원사 대표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회원사 공청회를 개최하려고 한다. 이 자리에서 MOU 맺고 환경규제 강화 대응 전략을 주제로 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대산항 예선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대산항 예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한국예선업협동조합 대산지부장과 제가 직접 협의를 진행해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합의안에 대해 예선조합원사들이 반대하면서 2년여간 진행한 최종 협상이 무산됐다.

우리는 외국적 외항선에 대한 예선료 인상을 비롯해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놨음도 예선조합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예선조합 대산지부가 일을 너무 크게 만들면서 스스로 수습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다시 협상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협회 사무국 셋팅이 완료되면 관련법 개정을 비롯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다시 정리해나갈 계획이다.

-대산항 예선 문제외에 유조선사들이 당면한 현안 과제는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현재 당면한 과제중 가장 시급한 것은 선원 비용문제다. 코로나19로 외국인 선원 격리비용이 1인당 약 400만원정도 들어가는데 유조선사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다. 소형 유조선사들의 경우 외국인 선원 격리비용이 전체 매출의 약 1%에 달한다. 국적선원의 경우도 하선시 집까지 차량을 제공해야 한다. 선사들로서는 코로나19에 따른 선원 교대비용 급증이 큰 골칫거리다.

보다 근본적인 현안이라고 하면 케미컬 탱커 운임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바닥 수준이라는 점이다. 운임이 바닥인 것은 물동량이 감소한 이유도 있지만 아시아 지역 케미컬 제품 시장을 일본 상사가 좌지우지하는 구조적인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생산한 석유화학 제품을 일본 상사들이 판매하는 구조로 우리나라 정유사의 직접 판매 비중이 매우 낮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상사들은 운임이 비싸도 일본 선사를 우선적으로 쓴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나라 메이저들은 국적선사 여부와 상관없이 운임이 10원이라도 더 싼 곳을 쓴다. 이것은 아마 국내 오일메이저들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선사들이 개별화주와 협의해 풀기는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선화주 상생 협력 모델로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어려운 시황이지만 일본은 상사가 도와주고 중국은 정부가 도와준다. 우리나라도 뭔가 대책을 마련해 야 한다.

마지막으로 표준선형을 만들어 공동발주하면 해양진흥공사가 금융을 지원하는 정책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게 잘 안되는 이유가 있다. 선사들이 협의해서 표준선형을 만들라고 하면 각사별로 영업 기밀들을 공개해야하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정부 R&D를 활용해 조선소가 표준선형을 만들고 선사가 공동발주하는 모델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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