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급 파장 공정위 과징금 처분

공정거래위원회가 동남아항로에 취항하고 있는 국내외 컨테이너정기선사 23개사에 대해 무려 8000억원 정도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심사보고서를 내놓고 해당선사들에게 소명자료 제출을 명령한 사건은 지금 우리 해운업계에 핵폭탄급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던 한국해운협회는 드디어 지난 6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사건의 경위와 문제점, 그리고 이 사건이 미치는 파장 등을 설명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 처분은 부당한 것이고,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현재 해당선사들의 소명자료 제출 시한이 2개월 연장되었다고 하니 2개월간의 시간을 번 셈이지만, 그간 우리 정기컨테이너선사들이 얼마나 속을 썩이게 될까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이번 조치의 문제점을 따지기 전에, 우선 팩트만을 한번 짚어보고 넘어갔으면 한다. 이 사건은 지난 2018년 9월 목재합판유통협회가 동남아취항선사들이 부대비용에 대해 부당한 공동행위를 하고 있다고 공정위에 신고함으로써 조사에 착수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목재합판유통협회는 1년쯤 뒤인 2019년 8월에 신고 자체를 철회하고, 같은 해 12월에는 선사들을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탄원서까지 공정위에 제출하여 자신들의 행위가 지나쳤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직권으로 ‘인지조사’를 하겠다며 이 사건을 더욱 파고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가 없다.

공정거래법 제58조에는 “이 법의 규정은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해운법(제29조) 조항에 따라 선사들이 공동행위를 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이유(정도가 지나치다, 혹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등)를 들어 과징금 처벌을 내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정위는 지난 2014년 5월 16일 항공사들이 국제항공화물의 유류할증료를 담합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선사들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시작된 2018년 12월 시점에는 우리 국적선사들이 최악의 해운불황에 시달리던 시절이다.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동남아항로에서는 그 이전부터 마이너스 운임이 등장하는가 하면 수출업자에게 제로 운임을 제공하는 등의 편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는 최저운임에 대한 선사간 합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요, 인지상정이라 할 수가 있다. 그렇게라도 해서 운임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인트라아시아항로 취항 국적선사들 가운데 3~4개사 정도는 한진해운과 같은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전반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이번 처사는 시대에 뒤쳐질 뿐만 아니라 정세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주장 대로 8000억원에 가까운 과징금, 그 중에는 한 회사가 2300억원의 과징금을 내야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선사들은 올바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것인가 의문이다. 또한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내야 하는 외국선사들은 가만히 앉아서 당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 국적선사들이 해당 국가와 연계된 수송을 할 때는 또다시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앙갚음 하려 할 것이다. 이럴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외국이 부과한 과징금을 우리 선사 대신에 물어낼 수 있겠는가?

국적선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해운법이 있고, 그것을 관장하는 규제당국인 해양수산부가 있는데도 굳이 직접적인 제재에 나선다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설사 선사들을 조사하여 위법 사항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처벌 근거법인 ‘해운법’이 있는 한 공정위는 해양수산부에 위반 사실을 통보하고 선사들을 처벌하도록 요청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해양수산부가 그래도 처벌을 하지 않을 경우는 공정위가 나서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직접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는 것은 월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해양수산부의 역할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번 사건은 해운법에 신고의 절차나, 화주와의 합의 절차, 혹은 합의 기구 설치 등이 잘 명시가 돼 있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향후 해운법의 미비점은 개정해 나가되, 우선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치 해결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해양수산부가 직접 사태해결을 위한 중재역할에 나서야 한다. 물론 해양수산부도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겠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결과물을 좀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분발을 촉구하는 바이다.

우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처사에 대해 불만에 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노력이나 의지마저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또한 우리 선사들이 인지했든, 인지하지 못했든 절차상에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의 적용이 경제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서, 그리고 경쟁자들간의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경제의 성숙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처벌로 인해 한 산업이 파탄 날 정도의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현명하고 공정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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