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원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어떤 시대의 사회 일반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고 특징짓는 정신을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이제 공정(公正)이란 단어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사회다. 사회가 불공정하면 각종 비리가 판치고 나라가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공정이란 가치가 무엇보다도 중요시된다. 공정으로 이어지는 시대정신의 완결은 곧 대한민국의 미래이다.

공정의 본래 의미는 공동체에서 함께 일하고 나누는 일이고, 이에 반하는 사적인 탐욕을 징계하여 바로잡는 것이다. 그래서 공정은 단지 출발 기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도 적용된다. 경쟁과 선발의 기회를 균등하게 주고 불평등을 배제하는 것이 공정이다. 일반적으로 서양에 비해 동양에서는 공정을 평등성에 기초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재 추천제나 로비 활동에 대해 서양에서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보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불공정하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금 우리 해운업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7천억원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를 둘러싸고 초비상이다. 천문학적인 과징금에 해운업계는 해운산업에 대한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이 아닌 해운법에 따라 규율되어야 한다고 항변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가격 담합은 불법이지만, 해운법에는 ‘해운회사들은 운임·선박배치·화물적재 등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에 목재합판유통협회는 선사들이 동남아항로에서 운임 담합을 하고 있다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곧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2019년 8월에 목재합판유통협회가 공정위 신고를 철회하고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직권조사를 이어갔고, 지난달 관련 선사들에게 공정거래법 위반 조사 결과·심사보고서를 보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동남아항로에 취항하고 있는 선사들이 122차례에 걸쳐 운임을 담합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운임 담합 관련 매출을 총 8조원으로 추산, 선사별로 매출의 8.5%~10% 가량 과징금으로 부과해야 한다고 했다. 국적 선사 12곳과 외국적 선사 11곳이 부과대상이다. 공정위는 8월에 전원회의를 열고 제재 여부와 수위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켰는지 여부이다.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가 인정되려면, 사전에 화주와 협의해야 한다. 또한 공동행위의 내용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행위로부터의 탈퇴를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공정위 심사보고서는 이 같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보았고, 해운업계는 요건을 모두 지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세계 각국은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 국제적 기준에 의해 규제를 받고 있다. 환경문제를 무역 장벽과 연계한 그린라운드, 노동여건과 근로 기준을 무역 장벽과 연계한 블루라운드, 과학과 기술정책을 연계한 테크노라운드 등이 있다. 그리고 규제라운드라고 불리는 경쟁라운드와 비윤리적인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규제하고자 하는 윤리라운드도 있다. 만약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국제경쟁에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의 주도하에 OECD에서 시작된 뇌물이나 부정부패 등을 강력하게 규제하고자 하는 부패라운드는 기업들에게 국제거래에서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부패라운드는 국제거래 관계에서 윤리경영을 가장 중요한 거래기준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으며, 윤리라운드로 발전하여 모든 기업이 윤리강령을 준수하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윤리경영이란 회사경영과 기업활동에 있어 기업윤리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투명하고 공정하며 합리적인 업무 수행을 추구하는 경영정신이다. 이익의 극대화는 기업의 목적이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다. 경영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기업윤리 의식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잃으면 결국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윤리준법경영이 필수적이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 6월 11일에 기업의 윤리준법경영과 청렴한 기업문화 조성을 위하여 120여개 기업의 윤리준법 업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윤리준법경영 전문가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기업 윤리준법업무 담당자의 전문적인 역량을 높이고 기업이 자발적으로 윤리준법경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동남아항로 선사들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폭탄은 우리 해운업계의 전대미문의 끔직한 재앙임이 분명하다. 관련 선사들은 존폐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그 동안 불황의 늪에서 간신히 생존해온 선사들로서는 경영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당부한다.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는 해운산업의 특성을 감안하여, 우리 해운산업을 사지로 몰아넣는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우리 해운업계도 이제 공정을 바탕으로 한 윤리경영에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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