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이기병 박사
이기병 박사

코로나19의 확산 속에서 올해 극장가를 살리며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한 ‘모가디슈’가 있다. 코뿔소 뿔처럼 뾰족 튀어나온 지역이라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소말리아’의 수도가 영화 제목이다.

영화는 실제 내전 현장에 있었던 강신성 소말리아 대사가 쓴 소설 ‘탈출’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강 대사는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와중에 남다른 남북 간의 동포애도 느꼈다. ‘타잔’과 ‘부시맨’ 등 낭만과 순수로 포장됐던 아프리카의 두꺼운 화장을 벗기고 영화는 탈출과 생존이란 낯설지만, 사실이었던 소말리아 내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반도 면적의 9배쯤 되는 소말리아 반도(半島)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국제물류 운송을 방해하는 골칫거리다. 우리만 해도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를 청해 부대가 ‘아덴만 여명 작전’을 펼쳐 치열한 교전 속에 인질 전원과 선박을 구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해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곳은 아덴만과 소말리아 동부해안 지역이다. 아덴만은 수에즈 운하를 지나기 위한 필수 관문이고 EU 회원국 무역량의 90% 이상이 이곳을 통과할 정도다. 이 지역은 우리의 대표적 LNG 공급국가인 오만과 인접해 위험이 늘 상존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원유를 수송하는 주요 루트는 호르무즈(Hormuz)와 말라카(Malacca)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3,025km의 해안선이 있어 해적들은 호르무즈 해협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은 모두 인도양을 끼고 있는데 전 세계 석유제품 수송의 70%, 컨테이너 화물수송의 50%를 차지하는 중요 지역이다.

소말리아 내전의 잔혹함은 1991년 이후 지속했다. 이 틈을 틈타 유럽 기업들은 정치·경제적으로 무기력해진 소말리아 해변에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버렸고 동시에 유럽의 1/100 가격밖에 안 되는 비용으로 우라늄까지도 내던졌다. 아울러 대량 어업에 사용하는 트롤선(Trawler)까지 동원한 외국 업자들은 소말리아 전체 어획량의 50% 이상을 불법 포획했다. 소말리아 어업은 처참히 파괴됐고 소말리아인들은 해안경비대로 모이기 시작해 바다를 보호하는 전사임을 자처했다. 소형 쾌속선을 이용하는 소말리아 기업형 해적의 역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세계 무역의 공급사슬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안보와 연계되기 때문에 각국은 소말리아 해적을 진압하기 위해 해군을 보냈고 상선에 무기를 소지하는 등 자체 보안을 강화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권고통항로(Internationally Recommended Transit Corridor)’라는 새로운 보안 항로를 만들어 선박에 무기 탑재한 민간 경비원 고용을 장려했다. 용병을 갖춘 배는 40%의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조치 등으로 소말리아 해적 행위는 많이 감소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로 대표되는 기니만(Gulf of Guinea)을 중심으로 서부 아프리카 해역이 새로운 해적 발호지가 되고 있다. 우리만 해도 2020년 참치 조업 등 한국 국적 선원의 피랍 사례가 세 차례나 발생했다.

결국 따지고 보면 국민들에게 치안·안보·사회서비스·경제 운영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 ‘취약국가’에서 해적들이 판을 치고 있다. 예전에는 ‘실패한 국가’로 불리던 취약국가 순위에서 소말리아는 항상 1위를 다투고 있다. 물류 경쟁력을 가늠하는 물류성과지수(Logistics Performance Index, LPI) 국가순위는 세계 꼴찌를 기록했었다.

물류성과지수 주요 항목은 통관, 물류시설, 물류역량, 국제수송, 화물추적, 적시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23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계무역과 운송기반시설 및 물류 관련 투자가 많이 이뤄진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일본 등의 순위가 높다. 미국은 주요 산업들이 해외보다 국내 중심으로 이루어져 국제수송 지수가 낮다. 독일의 경우 2007년을 제외하고는 1위를 독주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무역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와 OECD에 속하는 고소득 국가들의 지표가 높게 측정되고 있다. 러시아, 쿠웨이트 등 주로 원유거래가 많고 소득수준이 낮은 국가의 경우 지수가 낮은 편이다. 우리는 전세계 경제 규모 ‘톱10’ 국가임에도 상대적으로 물류 경쟁력이 높지 않다. 그 배경으로 영세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물류 인프라 미비, 정부 지원체계의 미흡 등을 꼽을 수 있다.

소규모 업체간 피 튀기는 가격경쟁에 치중하다 보니 전문성 있고 특화된 고부가가치 물류 서비스 제공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제조업이 경제 버팀목을 하고 그 비중이 높은 나라답게 정부 지원 정책도 이에 편중되다 보니 물류 기업에 대한 실효적인 지원체계는 부족하다. 글로벌 아웃소싱과 오프쇼어링(Offshoring) 확대로 생산 분할이 가속화되고 세분되면서 물류역량은 갈수록 중요한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장거리 교역에서 발생하는 운송은 대금결제, 물품 이동, 파손위험의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증폭되기 때문에 거래비용은 증가한다. 이 비용은 운송 거리에 비례하여 높아지고 거래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이 되어 생산 및 거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운송에 결정적인 수단이 선박이기 때문에 일본과 미국이 ‘말라카 해협 해적대응 센터’를 지원하고 그 지역에 함대 사령부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자국의 재산을 보호하고 질서 강화 방안 마련을 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遠)거리 수송에서 발생하는 해적, 해상테러 등 인위적 원인의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또한 해운물류 대란, 수에즈 운하 선박 좌초 사례 등을 단순한 경제적 문제로만 바라보지 말고 해양안보 및 정부 차원에서 근원적 개선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시에 국가 주도의 물류 중심화 전략이 잘 먹혔던 싱가포르, 독일처럼 정부가 나서 공급망 위기 시대에 경제 효율성 제고와 직결하도록 물류 산업에 보다 많은 성장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와 소말리아는 내전이라는 녹록지 않은 아픈 삶을 경험했다. 한쪽은 파국으로 또 한쪽은 반쪽의 분단으로… 일제강제동원 세대들의 노령화로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는 현실 속에 남몰래 눈물짓는 유족들도 점차 메말라가고 있다. 피해자들의 땀과 기억, 강요된 노동의 피땀 어린 눈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유족분들이다.

강신성 前대사가 그중 한 분이었다는 점이 일제강점기 시대의 탈출을 꿈꾸고 분단의 나라에서 사는 오늘, 능숙하지 않은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코불소 뿔은 ‘케라틴’ 성분이 있어 좋은 약으로 인식돼 밀렵꾼들에게 도륙당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도 더 이상 무분별하게 베어 나가지 않고 국민 모두의 존엄을 실현하는 평화의 길로 이어져 이 시련이 멈춰지길 기대한다. lgb14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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