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원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컨테이너와 아마겟돈(인류 최후의 전쟁)의 합성어인 ‘컨테이너겟돈’이란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글로벌 물류대란은 매우 심각하다. 특히 미국의 물류대란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에 도착하는 컨테이너선 하역작업의 40%를 처리하는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다에 닻을 내리고 대기하고 있는 화물선이 지난 10월 18일에 157척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화물선은 도착했는데 항만에 배를 대고 컨테이너를 내리지 못하는 병목현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위축되었던 물류수요가 경기회복과 전자상거래 이용 증가 등으로 급증했으나, 이를 해운과 항만이 감당해내지 못하면서 대규모 적체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해상물류는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항만 폐쇄와 수에즈운하 사고 등 악재가 겹치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도 불구하고 연말 쇼핑 대목을 앞두고 수입화물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컨테이너화물의 하역과 운송에 종사하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물류대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미국의 물류대란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바이든 대통령은 급기야 지난 10월 13일에 항만 지도부와 노조, 상공회의소 관계자 등과 화상회의를 갖고 물류대란 해소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민관 협의를 거쳐 LA항을 향후 90일 동안 주 7일, 24시간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롱비치항은 이미 3주 전부터 부분적인 24시간 운영에 들어간 상태였다. 월마트·페덱스·UPS 등 대형 물류기업들도 병목현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24시간 운영체제에 돌입했다.

지금 미국 하원에는 상원을 통과한 1조 2천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 법안이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도로를 비롯해 항만, 공항 등 사회 기반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인프라 법안에는 항만에 긴급히 투입될 170억 달러의 예산이 포함되어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발생한 항만의 병목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재원이다.

며칠 전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코로나19로 인한 물류대란이 나아질 기미가 없으며, 당분간 상황이 더욱 더 악화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세계 경제회복이 서서히 이뤄지고는 있지만 공급망 붕괴에 발목이 잡혔고, 공급망 붕괴의 여파는 세계 곳곳에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경 통제와 이동 제한, 글로벌 백신패스 제도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점, 집에서 주로 있으면서 보복 소비 수요가 늘어난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비용과 가격이 동시에 높아지면서 글로벌 생산이 원활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글로벌 경제가 탄탄한 성장을 할 수 없는 ‘퍼펙트 스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노동력뿐만 아니라 컨테이너·운송·항만·트럭·철도·항공·창고 등 물류공급망의 모든 연결고리마다 병목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인베스코도 공급망 차질 문제를 야기한 요인들이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덴마크 해운조사기관 씨인텔리전스 컨설팅은 최근 항만적체 등 물류 대란에 따른 선박과 컨테이너 박스의 수급 불안정으로 인한 글로벌 선복량 손실 규모가 한진해운 파산으로 인한 손실의 3.5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전체 선복량의 12.5%에 해당되는 규모다. 항만 적체가 LA항 등 미국 서부 해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항만 폐쇄와 기타 혼란 발생 등 현실적인 운영상의 문제로 인하여 완전한 정상화는 적어도 내년 말은 돼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많은 글로벌 해운전문가들은 선사들이 컨테이너선 신조 발주를 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물류대란이 2022년 하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발주된 선박의 인도까지는 최소한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데다, 더 많은 선박이 투입된다 해도 기존의 항만 병목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에 신조 발주된 컨테이너선은 벌써 사상 최고수준을 넘어섰다. 영국의 해운조선 시황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0월 1일까지 발주된 컨테이너선은 총 470척, 390만teu에 달한다. 아직 3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그 동안 가장 많은 컨테이너선이 발주되었던 2007년의 330만teu를 이미 크게 상회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는 에너지 가격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 중국의 전력난 등으로 번지면서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물류대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글로벌 물류대란은 2022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위드 코로나 현상의 진전과 더불어 미국 서해안 항만 등의 병목현상 완화 속도가 변수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항만하역·운송 인력난 해소를 위한 주방위군 투입 등 특단의 조치와 함께 1조 2천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 법안이 통과되면 문제는 다르다. 물류관련 인력난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사회 기반시설이 확충되면 미국의 물류 공급망도 서서히 제 기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올해 대량 발주된 컨테이너 선박들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2023년부터는 글로벌 물류대란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선박 공급과잉으로 인한 해운불황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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