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발표 충격

공정거래위원회가 결국 동남아정기항로에 취항하고 있는 23개 선사에 대해 총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동남아항로에 취항하는 국내외 정기선사들이 수차례 운임 담합을 하고 합의된 운임을 주무관청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데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하게 됐다는 것이 1월 18일 공정위가 배포한 보도자료의 골자이다. 제2의 한진해운 사태를 막아야 한다며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예고에 집단적으로 반발을 했던 해운업계는 커더란 충격과 허탈감에 빠지면서 한편으로는 행정소송 등 더 강력한 대응 방침을 다짐하고 있다. 이번 공정위의 조치가 해운산업 전반의 성장을 크게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운업계는 사생결단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3년여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조사와 관계 부처와의 협의 후에 나온 공정위의 이번 발표는 매우 실망스러은 내용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한국해운협회가 이번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가 매우 잘못된 근거에 기준한 지극히 부당한 처사라며 행정소송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공정위의 10대 오류를 지적하고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의 이번 과징금 부과 조치의 가장 큰 잘못은 법령해석의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공정거래법 제58조에는 “이법의 규정은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따라서 해운법(제29조)에서 인정하고 있는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으로 처벌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의 잣대만으로 ‘정당한 행위’라는 문구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이번과 같은 엉뚱한 결론이 나게 된 것이다. 근복적으로 법 해석의 잘못으로 인해 한 산업에 중대한 피해를 입히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라고 우리는 해석한다.

해운법에 규정된 공동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소관부처인 해양수산부가 판단할 일이고, 설사 그런 공동행위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처벌은 해운법에 근거한 처벌이어야 마땅하다. 이런 것을 공정거래위원회는 법령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주무부처를 압박하고 있으니 월권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발표 끝에 “해양수산부와 협의를 거쳐 해운법에서 규정한 공동행위 요건을 명확히 하는 법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것은 공정위의 잘못된 법해석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극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해운법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먼저 고치는 게 우선이다.

공정위가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오로지 규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공정위는 해운산업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더구나 동남아항로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업계의 그것에 못 미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동남아 선사들이 그간 얼마나 어려운 경영여건에 처해 있었는지, 홍콩 같은 지역은 왜 마이너스 운임이라는 것이 존재했는지,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황에 시달려온 선사들에게 8000억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과징금 부과를 예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정위로서는 선사들이 왜 공동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인지는 이해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해운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주변국에서는 그 어느 나라도 문제를 삼고 있지 않는 정기선사의 최저운임 합의에 대해 우리나라 공정위만이 앞장서서 해당 선사들에게 과징금 부과라는 처벌을 내리고 있다고 우리는 본다. 이 파장은 비단 동남아항로에서 뿐만 아니라 한일항로, 한중항로, 심지어 북미항로나 유럽항로에 까지도 미치게 될 것이 뻔하다. 이번에 처벌을 받는 외국선사들이 속한 국가들의 보복 행위 내지는 따라 하는 행위가 나올 수 있고.,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공정위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규제당국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공정위가 처벌 조치를 내릴 수 있는 근거법은 바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독점규제‘ 보다는 ’공정거래‘ 쪽에 더 방점을 두고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과점을 막기 보다는 약자들의 살아남기 위한 공생 협력을 공정거래 위반으로 보고 강하게 규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독점의 소지가 많은 대형하주의 해운업 진출을 옹호하는 반면에 이번처럼 중소형 선사들의 운임회복을 위한 공조행위는 엄벌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러한 전반을 생각해 봤을 때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조치는 두말할 것 없이 매우 부당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해운협회가 행정소송을 통해 이 결과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소송을 통해 ‘부당 담합업자’ 이미지를 벗어내는 것은 해운산업의 지속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국적선사들은 모처럼 만의 호황을 맞이하여 사업을 확장해 나가야 할 시점인데, 이런 문제로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정말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법령 해석의 문제점과 해운법 규정의 미비점이 드러났다. 공정위와 해양수산부는 ‘해운법' 개정안을 빨리 처리하여 이제라도 해당 선사들의 시름을 덜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해운업계에는 ‘한솥밥 정신’이라는 것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동업자들이지만 한솥에 밥을 해서 서로서로 나누어 먹음으로써 공생 발전해 나가자는 것이 이 ‘한솥밥 정신’ 이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한국해운협회를 중심으로 그러한 단합된 모습이 이어져 왔다. 공정위는 이러한 것도 하나의 ‘담합’이라고 하겠지만, 해운업계는 이번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더욱 더 일치단결하여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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