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lgb1461@naver.com)

이기병 박사
이기병 박사

맥주 한 캔 사러 아파트 상가에 있는 슈퍼마켓에 갔다. 평소 안면이 있는 아르바이트 아줌마가 계산 중에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물가가 많이 올라 걱정이에요”라며 한숨을 쉰다. “그러게요, 아이 성적이랑 남편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것 같아요”라는 필자의 말에 까르르 웃으며 나중에 잊지 말고 써먹어야겠단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인플레가 다가오고 있다. 저성장 속 고물가를 뜻하는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은 시작됐고 경기 침체로 연계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도 슬그머니 다가올까 걱정이다.

한술 더 떠 곡물 가격이 올라 일반물가 상승을 유도하는 ‘에그플레이션(agflatuon)’까지 나서 밥상 물가부터 전 산업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곡물인 밀 가격만 올라도 밀가루, 쌈장 등 식품 물가부터 사료 가격까지 오른다. 덩달아 치킨값도 상승하여 3만 원대 치킨이 현실화하고 1인 1닭도 부담스러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결국 곡물 가격 인상은 인플레이션의 ‘나비효과’를 낳고 이대로 라면 “언제 시간이 되면 삽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는 인사말 아닌 인사말도 없어질 듯 싶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5.8%이며 곡물 자급률은 20.2%에 불과하다. 밀·콩·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라니냐(La Nina)로 대표되는 세계적 가뭄과 기후변화, 코로나19 사태 등 국제 공급망의 차질로 곡물 가격이 인상되면서 식료품값도 요동치고 있다.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린 우크라이나는 밀·옥수수·해바라기씨유 등을, 곡물 수출 대국 러시아도 귀리·수수·메밀 등 주요 곡식에 대한 수출 금지를 하면서 빗장을 잠그고 있다.

수출국은 적고 수입국은 많은 글로벌 곡물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식량 위기에 결코 팔장 끼고 있을 일이 아니다. 곡식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가 공급망 병목현상으로 수입이 순조롭지 못해 불확실성이 증가하게 되고 이러할 경우 식량안보는 국방 안보만큼이나 중요하게 된다.

한국은 수입 곡물 운송의 60% 이상을 세계 4대 곡물회사인 Cargill, Bunge, LDC, ADM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곡식 가격 인상에 신나 하면서도 본업인 곡물 판매 외 1·2차 가공, 영농 및 수송, 물류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국내 사정은 자체 생산량이 적어 해외에서 들여오는 곡물 수입도 많고 운송까지 의존하고 있어 “울고 싶은데 뺨 얻어맞는 격”이다. 실상 섬나라와 다름없는 해운 의존국인 우리나라는 수송 중단 및 항만기능 장애에 취약하다. 최근 들어 <그림 1>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해운 운임 상승과 항만 혼잡이 증가하고 있지만 파나마 운하 마비와 한진해운 파산으로 우리는 이미 우리의 결점의 속살을 들춰냈다.

그림 1 코로나 19 팬데믹의 채찍효과: 해상운임의 상승과 항만 혼잡의 증가(출처: 국립경상대학교 이태휘 교수)
그림 1 코로나 19 팬데믹의 채찍효과: 해상운임의 상승과 항만 혼잡의 증가(출처: 국립경상대학교 이태휘 교수)

메이저 곡물회사에 의존하고 있는 취약한 곡물 수급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 필수선박제도를 개선해 국적선사를 확대하고 금융, 인센티브 등 다채로운 지원을 해야 한다. 선원들의 인건비 및 손실 보상금 지원도 늘리고 선원 근무환경도 개선하며 해운사의 애로사항도 해소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안정적인 선대 유지를 통해 국민의 안정화된 먹거리가 보장돼야 한다.

먹거리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기본권이다!

먹거리는 우리 사회망의 출발점이며 이는 안정적인 해운물류 공급망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건강한 삶과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이미 우리는 과거 일제의 ‘산미 증산 계획(産米增殖計劃)’에 쌀 수출입을 통제할 권한을 잃는 구조적 수탈을 당해 국가적 존엄성을 잃어본 적이 있다.

역사의 발전은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을 고치고 만드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우리의 쌀을 수탈했던 일본도 식량 자급률이 37% 수준에 그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리보다 더 자급률이 떨어져 각종 농축산물의 공급 안정성 확보가 시급한 일본을 보며 한편으로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인플레이션 나비효과는 쓰나미로 진화하여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기업은 주요 원자재의 공급망 다변화와 생산 공정 고도화를 이루고 부정적 영향도 있지만 가격 전가력(Pricing Power)을 확보하는 것도 추진해야 한다. 정부도 민간 회사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곡물 유통망 확보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국내 생산 기틀도 확충해야 한다. 곡물 공급망의 안전한 수송을 추진하고 수출입 비중이 큰 통상 국가인 우리나라는 해운물류 산업을 국가적 인프라로 인식하여 이에 걸맞은 정책의 고도화와 일관성이 필요하다.

쌀가마니가 차곡차곡 창고에 그득해야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원래 가마니는 일본어 ‘카마스(叺)’에서 유래됐다. 일본이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에서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일본식 자루를 들여오면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쌀이란 작은 낱알들은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밀접하고 빵순이, 빵돌이들은 매일 곡물을 먹고 가축들 역시 그렇다.

서민의 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이제 공급망 관리는 개별 회사의 문제만이 아닌 정부 차원의 중요한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굳이 원치 않았던 저녁이 있는 삶이 만들어졌다. 저녁거리는 풍요롭지 않더라도 빈자(貧者)와 서민의 밥상머리에 적어도 사람들의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가마니 덮은 사람이 벌벌 떨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사회는 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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