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원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18세기 후반에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대량생산 시대가 열렸다. 증기기관을 활용한 기계 덕분에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직물공업의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기계가 직물공장의 노동자들을 대체하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반발했다. 1811년부터 7년여간 영국의 중북부 공업지대에서는 노동자들이 닥치는 대로 직물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

1860년대 영국에서 혁명적인 이동 수단인 증기자동차가 등장했다. 마차를 몰던 마부들은 일자리를 잃고 마차 관련 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이들의 일자리와 마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1865년에 ‘적기조례(赤旗條例)’를 제정했다. 한 대의 자동차에는 반드시 운전사·기관원·기수 등 3명이 있어야 하며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차를 인도하도록 했다. 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도록 자동차의 최고 속도를 제한했다. 이러한 규제 때문에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영국은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들고도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미국에 넘겨주고 말았다.

교육부가 서울·수도권 대학들의 반도체 등 첨단분야 학과의 입학 정원을 늘리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도권 대학에서 더 많은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수도권 대학에 적용되는 정원 규제를 첨단분야에 국한해서 풀기로 한 것이다. 교육부 장상윤 차관은 지난 6월 7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반도체 인력 양성을 주문하는 윤 대통령에게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때문에 힘들다”고 답했다. 그러자 “국가 미래가 걸린 일인데 규제 타령한다”는 취지의 강도 높은 질책을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가리켜 ‘모래주머니’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해외시장 도전을 가리켜 국가대표와 마찬가지라면서 “지금까지는 규제라는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 따오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비유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대불산업단지 진입을 가로막는 전봇대가 수개월째 개선되지 않는 것을 비판하면서 규제개혁에 불을 댕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거창한 정책보다 손톱 밑 가시를 빼야 한다”고 말하며 규제개혁을 외쳤다.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의 단골 정책이다. 5공 시절인 1982년에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성장발전저해요인개선위원회를 시작으로 1998년에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었다. 규제개혁의 목적은 불필요한 행정규제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인 규제의 신설을 억제함으로써 사회·경제활동의 자율과 창의를 촉진하는 데 있다. 규제개혁 역사가 40년이 되었지만, 수혜자여야 할 기업들의 규제개혁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규제개혁은 경제가 어려울 때 돈을 안 들이면서 경기 침체를 막고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역대 모든 정부가 기업들의 시장 진입과 활동을 가로막는 족쇄를 푸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면 규제는 되레 늘어났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서는 규제 건수가 오히려 15% 증가했다. 기업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게 한다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새로운 규제법안이 4천 건이 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규제개혁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38개국 중에 33위로 꼴찌 수준이다.

역대 정부는 규제개혁을 강조하면서도 관련 정부 조직과 공무원 수는 줄이지 않았다. 그 결과 남아 있는 조직과 관료들이 새 일거리(규제)를 만드는 관성도 작용했다. 규제개혁이 성공하려면 공직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과감하게 규제개혁을 한 공무원에게는 승진과 보수 등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사후 부작용이 있더라도 고의나 중과실이 없을 때는 담당 공무원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정권이 바뀌어도 규제를 개혁한 공무원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직사회에는 늘공과 어공이 있다. 늘공은 늘 공무원으로 정통 관료를 말하고, 어공은 정권을 잡은 덕분에 어쩌다 공무원이 된 관료를 말한다. 어공은 소위 실세 그룹이라 불리지만 최장 5년 이하의 계약직이다. 늘공은 25년 이상 공직자로 있는 정규직이다. 규제 권한 덕분에 늘공은 공직을 그만두어도 민간에서 서로 모셔가려는 전관예우를 받기도 한다.

어공들의 눈에는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 경제·사회 부문에서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잘 보인다. 게다가 이들은 임시직이기 때문에 기존 관료조직과의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운 편이다. 늘공과 어공이 이렇게 다르다 보니 규제개혁을 놓고서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리 길어야 5년마다 바뀌는 어공들과 달리 늘공은 특정 정권보다는 소속 부처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늘공은 자신들에게 규제개혁 과제가 주어질 경우, 그로 인한 부처의 권한 약화는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6월 7일부터 7월 6일까지 한 달간 해양수산 분야의 규제혁신과제를 발굴하기 위해 대국민 공모전을 열고 있다. 해양수산 신산업 발전과 민생안정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공무원들이 중심이 된 내부 주도방식으로는 그 효과를 체감하기가 어렵다고 해양수산부는 실토한다. 왠지 넋두리로 들린다. 늘공이 수장을 맡은 탓일까? 해양수산부는 아직도 상금을 내걸고 규제혁신 과제를 발굴하려는 탁상행정에 안주하고 있다. 산업현장을 직접 찾아가 이해당사자들과 만나 규제혁신 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발로 뛰는 늘공이 보고 싶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