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흥해 창립 50주년 세미나 참관기

‘예선의 현재, 미래 50년’ 형식 보다 내용에 집중

한마디로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중소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예선업체에서 특급호텔에서 대형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에서 시작하여 이날 주제발표를 한 대학 교수들이나 토론에 참가한 패널들의 무게감에서 또 한 번 감탄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은 그저 그런 행사가 아닌 ‘참석자들에게 뭔가 안겨주고 싶다’는 의지에서 나오는 그 ‘진지함’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예선업체인 ㈜흥해로부터 시작된 우리 예선업의 지난 50년을 돌아보고 향후 50년을 전망해 보는 학술적인 발표에다가 해외 예선의 신기술을 소개하는 자리까지 마련되어 끝까지 참석자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더구나 이날 행사는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내용에 충실한 세미나였다. 정치인이나 기자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주최측의 설명을 별도로 하더라도 세마나라는 본래의 목적에만 충실하려는 의지가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반어적으로 ‘좀 생뚱맞다’ 또는 ‘이건 미친 짓이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의 놀라움 섞인 칭찬을 받은 흥해 50주년 심포지엄은 분명 우리나라 해양 관련 학술 문화에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 현장을 본 대로 느낀 대로 정리해 본다. <전문>


23일 개최된 흥해 창립 50주년 기념 심포지엄 행사장 입구.

사실 중소기업이랄 수 있는 예선업체 ㈜흥해가 정부나 관련 단체에서 해야만 할 법한 ‘예선업’이라는 한 산업에 대한 현황을 분석하고 전망을 해보는 그런 세미나를 한다고 하니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혹자는 ‘이건 미친 짓이다’라는 표현으로 그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흥해가 우리나라의 첫 세계일주 선장으로 유명한 故배순태 회장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예선회사라는 것을 안다면 이해를 하겠다고 고개를 끄떡일 수 있을 것이다. 故배순태 회장은 “해운업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유지를 남겼고. 그 유지를 받든 아들 배동진 ㈜흥해 회장은 장학재단(해봉 꿈이음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해운업계와 후학들을 위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장학사업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한진해운 백서’ 편찬을 위한 거금을 내놓았고, 매년 연말에는 배순태 특별상 시상식도 개최하여 故 배순태 회장의 유지를 실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토론에서 부딪힌 ‘이상론’과 ‘현실론’>

기자가 ㈜흥해 창립 50주년 기념 심포지엄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6월 23일 오후 12시 40분경이었다. 행사장인 인천 송도의 오크우드호텔 36층 프레미어룸 앞에는 흥해 그룹 배동진 회장, ㈜흥해 박관복 부사장 등 주최측 인사들이 일찍부터 나와서 참가자들은 맞이하고 있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50주년 기념식 행사를 축하하는 화환들도 참가자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심포지엄은 호스트인 ㈜흥해 배동진 회장의 환영 인사말로 시작이 됐다. 배동진 회장은 환영사에서 이같은 심포지엄을 기획하게 된 동기에 대해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일게 된 것이 아이디어도 자금력도 부족한 작은 회사 흥해가 현재의 드라마틱한 세상의 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따라서 “우물 안에서 작은 이익에 사로잡혀 서로 싸우며 헌 두개 더 뺏어 먹어보려는 권모술수나 조삼모사로는 십년, 이십년 뒤 도태될 수밖에 없는 길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함께 모여서 인류공동의 거대 담론을 함께 고민해야 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미 와 있는 미래에 적응하기 위해 연구 학습하고 수용해야 하는 협업과 공동체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는 자각 아래 여러분들을 모셨다”고 이날 심포지엄 개최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이번 심포지엄이 “그동안 연구자들이 연구한 성과의 중간보고 회의로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지혜를 모으려는 자리”라고 규정하고 “완성된 연구 발표가 아니기에 여러분과 함께 완성해 나가는 미래를 향한 첫발자국의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주최자로서의 희망을 피력했다.

배동진 회장은 환성사 말미에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를 한번 낭독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 하나의 희생으로 인해 모두가 밝고 행복해지는 경지를 노래한 이 시는 이날 심포지엄이 작은 불씨가 되어 한국 예선업의 발전과 번영을 가져오기를 축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내빈 축사 순서에서는 한국도선사협회 조용화 회장, 한국해양대학교 도덕희 총장, 한국예선업협동조합 김일동 이사장 등이 축사를 했다. 도선사협회 조용화 회장은 축사에서 “고 배순태 회장님은 인천갑문의 첫 도선을 완수하시고 평택항 한국가스공사 기지에 입항하는 LNG선을 처음 도선하는가 하면 한국도선사협회 설립을 주도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다”고 (주)흥해 창업자인 고 배순태 회장을 기리고, “예선과 도선은 ‘공생’과 ‘상생’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관계로 항만효율과 서비스 증대를 위해 앞으로도 상호 협력과 협조를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포지엄은 3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으며, 각 세션 마다 주제발표자와 지정 토론자가 정해져 각각의 발표를 차례로 듣는 식으로 진행됐다.

전준수 교수
전준수 교수

제1세션의 주제는 ‘항만예선 현황과 예선업협동조합 미래 발전 방향 제언’이었으며 이 세션의 좌장은 전준수 서강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전준수 교수는 이 세션에서 ‘글로벌 예선현황과 미래 예선의 역할’이라는 세부 주제로 가장 먼저 발표를 했으며. 원동환 덕성여대 교수는 ‘예선업 협동조합의 미래 대안 DAO'라는 제목으로 역시 주제발표를 했다.

전준수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우리나라 예선업과 글로벌 예선업을 비교 분석하고, 우리 예선업체들이 영세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업규모의 대형화가 필요한데, 현실적인 대안으로 ‘현재의 ’예선업협동조합‘을 ’예선사업협동조합‘으로 재조직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동환 교수는 향후 예선업협동조합이 나가야 할 방향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탈중앙화된 자율조직인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를 제시하고 향후 협동조합의 내부 결속력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암호화폐인 거버넌스 토큰을 발행하거나 예선사용료 수령을 위한 상거래 토큰을 발행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제1세션에서 연구 발표자 두사람이 에선업의 향후 미래 전망에 초점을 맞추어 발표를 한 반면, 지정 토론자인 전 한국예선업협동조합 이사장 장갑순 (주) 선화 회장은 현재 예선업체들의 현실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여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장갑순 회장은 지정 토론자 발표 순서에서 “지금 예선업체들의 문제는 외부의 문제가 아니고 내부적인 결속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제가 예선업협동조합을 만들어 이사장을 하던 시기에는 30개사에서 40개사 정도였던 예선업체 수가 예선사업이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현재는 90개가 넘는 업체가 등록이 됐는데, 정부에서 적정업체수라고 하는 것에서 3분의 1 정도는 줄어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선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예선업체 수와 예선 선박수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장갑순 회장은 최근 LNG 추진 예인선 건조가 늘어나는 데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는 실제로 LNG 추진 예인선을 건조하여 운영해 봤지만 원하는 추진력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지금 LNG 추진선을 건조하면 그 비용을 다 뽑으려면 20년은 걸릴 텐데, 이건 미치지 않고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변했다. 친환경 선박 건조라는 이상은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현실론을 강조한 것이다. 장갑순 회장은 결론적으로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여 “예선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면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창호 교수
양창호 교수

제2세션은 미례예선의 기술 혁신이라는 주제(좌장 : 양창호 교수) 하에 남택근 목포해양대 교수가 ‘예선기술의 혁신’이라는 소제목으로, 양창호 성결대 교수가 ‘원격조정 및 자융운항 예선기술’이라는 세부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토론에는 안광헌 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 대표와 이귀복 한국선장 포럼 대표가 각각 지정토론자로 나서서 준비한 내용을 발표했다. 여기서도 현대중공업 안광헌 대표가 자신이 최근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던 포세도니아 해양조선 전시회에 참석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선박건조 기술의 발전을 설명한 반면, 이귀복 선장 포럼 대표는 향후 선박 운항의 형태가 자율운항 선박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라는 점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부정적인 의견을 견지하여 대조적인 면을 보였다.

이귀복 한국선장포럼 대표는 “운항경비 중 30%에 해당하는 선원비를 줄이기 위해 선가의 2.5 내지 3배가 되는 자율운항선박을 도입한다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바다 현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빈발하는데 그런 것을 모두 자율운항선박 기술로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역시 자율운항선박의 실용화에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제3세션에는 좌장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미래예선의 법제도’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으며 지정 토론자로는 김일동 한국예선업협동조합 이사장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최재선 박사가 나서서 각자 준비해 온 토론 자료를 발표했다.

당초 제3세션 발표가 끝나면 발표자들과 지정토론자들이 등단하여 패널 토의를 할 예정이었으나 발표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종합토론 시간을 생략하고 선진기술을 소개하는 시간만으로 채워졌다.

선진기술 소개 시간에는 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가 나서서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새로운 엔진 모델들에 대해 설명했으며 두 번째로 나선 ‘콩스버그마리타임’측은 예선에 적용되는 선진기술과 솔루션에 대해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다맨 쉽야드(Damen Shipyard)‘에서는 예선 선박의 건조기술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참가자들은 예선과 관련된 선진 기술이 소개되는 화면을 한 장 한 장 그대로 사진으로 찍는 등 큰 관심을 보였으며 심포지엄은 끝날 때까지 이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이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심포지엄이 끝나면서 곧 이어서 저녁 만찬으로까지 이어졌다.

흥해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은 오후 1시 30분에 시작되어 오후 6시 20분까지 장장 5시간 정도 진행이 됐으며, 쉬는 시간인 커피 브레이크는 제2세션이 끝나고 제3세션이 시작되기 전에 20분간만 주어졌다. 이 때 참석자들은 다과를 즐기거나 서로 명함을 나누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등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정치인·언론인 초청하지 않은 세미나>

㈜흥해측은 이번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정치인들과 언론인(기자)들은 한사람도 초청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겉치레의 행사 보다는 참가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알찬 내용의 행사가 되도록 하는데 신경을 썼다는 얘기였다. 이 같은 마음가짐은 결국 ‘해운업계에 도움되는 일을 하라’고 유언을 남기신 고 배순태 회장의 유지를 제대로 받드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평가받을 만하다.

앞에서도 지적을 했지만, 한 업종의 과거 현재 미래를 분석, 전망해 보는 이런 종류의 세미나는 그 업종을 대표하는 단체나 협회 혹은 관련 행정기관에서 개최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간 예선업체이긴 하지만, 아직 그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기업인 ㈜흥해에서 이러한 규모 있는 세미나를 개최했다는 것은 해운 관련업계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만한 좋은 선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심포지엄을 시작하는 환영사에서 ㈜흥해 배동진 회장이 낭독했던 조동화 시인의 시의 한 구절 “내가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흥해의 이 희생적인(?) 기념행사가 한국예선의 질 높은 성장으로 꽃피워질 것이라는 것을 記者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행사가 모두 끝났을 때 주최 측에 감사를 표하고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싶었던 이유이다.

왼쪽부터 본지 이철원 국장, 흥해 배동진 회장, 고려대 김인현 교수
왼쪽부터 본지 이철원 국장, 흥해 배동진 회장, 고려대 김인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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