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이기병 박사
이기병 박사

가만히 보면 말콤(Malcom)이란 이름이 들어간 사람 중에 제법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흑인 민권 운동가이자 급진적 흑인 민족주의 사상가 말콤 엑스(Malcolm X)와 아웃라이어(OUTLIERS),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로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행진곡으로 유명한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말콤 아놀드(Malcolm Arnold)가 있다.

이외에도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컨테이너의 아버지이자 오늘날 물류 역사를 바꾼 말콤 맥린(Malcom McLean)이다. 컨테이너의 역사는 영국의 석탄 광산지역에서 18세기 시작됐다. 벤자민 우트럼(Benjamin Outram)이 1795년 갱웨이(Gangway)를 개설하고 말이 끄는 화차에 석탄을 싣고 통일된 용기에 화물을 운송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의 시각으로 컨테이너 운송으로 본다.

직사각형 모형의 목재로 시작했으나 1830년 철제상자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1900년대초 철도·육상 운송에 밀폐 용기 상자가 도입됐다. 1920년대 미국에서 철도수송 컨테이너를 제작·투입했고 컨테이너 이동량이 증가함에 따라 규격의 통일과 운송에 대한 규칙들이 필요하게 되면서 1933년 ‘국제컨테이너사무국(Bureau International des Containers ; BIC)’이 설립됐다.

국제 무역에 이용되는 컨테이너는 국제표준기구(ISO) 코드와 일련번호가 필요한데 BIC에 등록돼야 한다. 오늘날에는 지구촌 세관 조직이 BIC에 의존, 코드 소유자의 존재 여부와 안정을 확인하며 코드 단일성을 보증 받는다.

사실 물건을 수송할 때 상자에 넣어서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는 것은 세 살 먹은 아이들도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나라, 회사, 분야마다 제각각 다른 이해관계와 표준화였다. 말콤 맥린은 세계 최초로 컨테이너를 개발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고객과 시장이 필요로 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했으며 결국 모든 세상이 그를 따라갔다. 키스 탠트링거(Keith Tantlinger)와 함께 긴 항해에 안전한 잠금장치와 크레인 이용에 편리한 디자인을 개발했고 이것이 국제표준용 해상 컨테이너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컨테이너 표준화는 TEU를 표준 단위로 삼아 운임 지급과 최대 적재 용적의 기준이 되면서 해상·육상 운송비가 절감하여 선박과 항구는 점차 커지게 됐다. 덩달아 배가 항만에서 노는 시간은 적어지고 항구 노동자는 줄어들면서 해운사의 인건비는 절감됐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인간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면 컨테이너의 작은 개선이 국가와 기업의 운명을 바꾸고 세계화라는 글로벌 현상의 촉매제가 됐다.

컨테이너를 통해 모든 물품을 적재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비표준화 화물의 컨테이너화는 화물 수요를 증대시키고 안정성, 신속성, 경제성의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다. 비근한 예로 화학공업 제품과 차량도 컨테이너 적재 방법 개선과 개조, Flexitank를 통해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선박만 공동운항하고 선복을 교환하지 말고 컨테이너도 종류별, 지역별로 공동 관리하여 비용을 줄이고 수급 문제를 관리하여 운용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해상 운송에 필수적인 컨테이너를 담보로 인정 안 해주는 금융권에 대한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

컨테이너 금융리스 계약이 국적취득부선체용선계약(BBCHP) 구조와 법적 성질이 비슷하니 컨테이너 금융 제공자를 선박의 경우와 같은 지위에 두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결국 컨테이너를 담보로 대출받기 어렵다 보니 해외기관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컨테이너 공장은 중국으로 이전하고 국내에는 변변한 제작회사도 없고 글로벌 규모의 임대사도 없다 보니 전반적인 해운·물류 경쟁력의 마이너스 요소가 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표준화는 쉬울 것 같지만 어렵다. 어려운 사례를 짚어보면 테일러(Taylor)의 ‘과학적 관리’에서 표준과업 설정은 가능하였으나 노무관리에 한정됐고 인간노동의 기계화라는 한계점을 낳았다. ‘돼지코’가 존재하는 이유도 가정용 전압이 110 및 220 볼트로 국가마다 달라서다. 차량 운전대도 전 세계적으로는 왼쪽이 많지만, 영연방 계열 국가들은 오른쪽으로 하여 나라별 통행 규칙도 다르다. 인간도 표준모델 조사는 할 수 있으나 개인별 특성에 따른 맥락과 인생의 경로가 달라 결코 표준화할 수 없는 건 물론이다. 이 어려운 표준화를 컨테이너는 혁신을 통해‘컨테이너화’했다.

우리도 업계의 보수성을 타파하고 컨테이너화의 세밀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컨테이너의 금융 활성화를 위해 법적 개선방안 및 공컨테이너 회수, 가압류 문제 등의 실무적 보완책을 강구하고 대기업과 해운사 참여로 글로벌 규모의 컨테이너 임대사 설립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장단기적으로는 고가의 화물 수요에 대응하여 냉동·냉장 컨테이너에 IoT 장비를 설치, 실시간 화물 위치 파악과 습도, 온도, CO2, 진동 변화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고 빅데이터를 축적해 나가는 컨테이너의 고도화도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교토 군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지켜온 일본 땅에 조선인 마을이 있다. ‘우토르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억압과 해방 후 차별의 역사를 간직한 우토로 마을이 철거 중이라 중요한 유물을 보관하기 위한 간이 수장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컨테이너가 필요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비단 컨테이너가 단순한 박스가 아님을 새삼 다시 느낀다.

광복절 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빛을 되찾는다’는 광복(光復)의 의미를 한 번쯤 되새겨 보고 태극기는 반드시 게양합시다. 집집마다 태극기가 휘날리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합시다. 대한민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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