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원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글로벌 해상운임이 물동량 감소의 여파로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에 미국과 유럽 항만들의 적체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클락슨 항만정체지수는 지난 7월 말에 37.8%로 지난해 10월에 기록한 정점을 넘어섰다. 특히 독일 주요 항만들의 파업 여파로 유럽을 중심으로 항만의 혼잡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이에 비해 그동안 글로벌 물류대란의 본거지인 북미 서안 항만의 화물 적체는 점차 완화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롱비치 두 항만에서 대기 중인 컨테이너선은 연초 100척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20여 척으로 급감했다. 태평양상선협회(PMSA)에 따르면, 지난 5월에 로스앤젤레스·롱비치에서 수입 컨테이너가 화물차에 실려 반출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5.34일을 기록했다. 지난달에 비해 0.75일이 줄었으며,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5일 이상 부두에 머문 장기적체 화물 비율도 30% 미만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1월에 50%로 최대치를 경신한 이후 올해 3월부터 점진적인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글로벌 컨테이너 운임도 6주 연속 떨어지면서 1년 만에 4000선이 무너졌다. 인플레이션과 통화 긴축, 지정학적 갈등과 공급망 교란 등으로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 운임의 하락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말에 상하이 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전주의 4074에서 3996을 기록했다. SCFI가 4000포인트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1년 만이다. 최고점인 5109에서 22%가 하락한 수치다. 북미와 더불어 유럽 항로 운임도 8주 연속으로 내렸다.

2022년 상반기에 글로벌 선사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글로벌 물류 대란이 이어지면서 사상 초유의 호황기로 지목됐던 지난해를 훌쩍 뛰어넘는 매출액과 이익을 실현했다. 그러나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면서 시황 악화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해운 전문가들은 경기 후퇴로 인하여 물동량이 줄어들면 급증한 선복량이 시황 악화의 요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시황 악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선사들은 하나 같이 선대 확장에 나서고 있다. 컨테이너선 발주량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올해 7월 현재 글로벌 20대 컨테이너선사들의 발주량은 587만TEU로서 연초의 481만TEU와 비교하여 22%가 증가했다. 6개월 사이에 100만TEU의 신조 발주가 추가로 쏟아진 것이다. 지난해 1월의 193만TEU와 비교하면 무려 3배나 급증한 수치다. 신조선 발주는 글로벌 10대 선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올해 세계 1위 선사가 된 MSC가 절반을 차지했다.

MSC는 지앙루지 아폰테가 1970년에 설립한 스위스 국적의 해운선사이다.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억만장자 아폰테는 지중해 항만과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대륙을 오가는 항로에서 해운사업을 영위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동안 MSC는 외부 자본을 배제하고 가족 중심의 경영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리고 컨테이너 정기선 해운과 항만사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통하여 사세를 확장해 왔다. 창업자 부인과 세 딸도 세계 3위의 크루즈회사인 MSC Cruises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 MSC는 1996년까지만 해도 선박량이 세계 12위에 머물렀다. 21세기에 들어 급성장하면서 2003년에 덴마크의 머스크에 이어 세계 2위 선사로 도약했다. 2011년과 2017년에는 선박량이 각각 200만TEU와 300만TEU를 돌파했다. MSC는 지난해 말에 25년간 머스크에서 일했던 소렌 토프트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신했다. 토프트는 머스크에서 컨테이너 해운사업과 석유 거래 등을 총괄한 인물이다. 그는 “MSC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며,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MSC의 신조 발주량은 세계 최대인 112척, 147만TEU에 달한다. 신조선을 모두 인도받으면 세계 최초로 선박량 600만TEU의 선사로 등극하게 된다. 최근 MSC는 프랑스 최대 항만인 르아브르 컨테이너터미널 개발에 1조 원을 투자했다. 현재 르아브르를 포함한 북유럽항만들이 사상 초유의 혼잡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물류 최적화를 표방하고 있는 MSC의 항만투자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스위스는 국토 대부분이 알프스산맥의 능선에 걸쳐있어 높은 산과 깊은 계곡, 그리고 호수가 많다. 산악국가인 스위스에는 바다가 없다. 그런데 스위스는 세계 최대의 해운회사, MSC를 품고 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무역 국가이면서 바다가 있어야만 해운산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무너뜨렸다. 삼면이 바다이고 세계 8위의 무역 국가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지난 8월 11일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해양수산부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해양수산부는 세계를 선도하는 해상물류체계 구축과 역동적인 신해양경제 육성 등의 핵심 전략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우리 국적 선사인 HMM의 민영화 등을 통해 해운 시장을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선박 투자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조세리스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글로벌 물류 대란과 스위스 MSC 등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 외항해운 선대의 획기적인 확충이 필요하다며,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을 요청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야기된 글로벌 공급망 대란은 우리 모두에게 움직이는 국가의 영토인 해운물류 산업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해운물류 산업이 왜 국가적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되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에 확실한 힘을 실어주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우리나라가 지경학적으로 글로벌 해운물류 중심지이며, 글로벌 해운물류 국가로 우뚝 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제 우리의 외침이 더 이상 공염불로 그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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