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대만은 작지만 강한 나라다. 강소국(强小國)이다. 대만은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중소기업 경제가 탄탄하게 구축된 큰 나라다. 혹자는 대만을 미국의 항공모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만에는 미국을 먹여 살리는 TSMC라는 세계 1위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TSMC는 미국이 부러워할 만큼, 중국으로부터 보호해줄 만큼 높은 가치와 경쟁력을 지녔다.

최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분에서 앞선 것으로 보이지만, 대만의 TSMC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2020년 하반기부터 양산을 시작한 5나노 제품의 공정 수율에 문제가 생겼다. 최대 고객인 미국 퀼컴에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퀼컴은 지난해 가을에 TSMC 위탁 물량을 늘렸다. 비슷한 시기에 5나노 제품의 양산을 시작한 TSMC는 애플의 CPU(중앙처리장치)를 도맡았다. 5나노 제품에서 명암이 엇갈리면서 삼성전자와 TSMC와의 격차는 커졌다. 올해 1분기에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53.6%인데 비해서 삼성은 16.3%에 그쳤다.
대만은 반도체 강국이다. 모든 반도체 생태계가 잘 구축되어 있다. 특히 기업 간의 분업 시스템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뛰어나다. 이것이 바로 대만을 반도체 강국으로 이끈 주된 이유다. 대만에는 미디어텍을 대표하는 팹리스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반도체 위탁조립·테스트(OSAT) 기업인 ASE가 있다. 미디어텍은 TSMC에 생산을 전적으로 위탁하고, ASE는 TSMC 고객의 패키징을 전담하고 있다.

​ 만약 대만에 파운드리 생태계가 초기부터 잘 구축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팹리스와 OSAT 기업들은 성장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기업 간 협업구조는 철저한 분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 구축의 시금석이 되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전문기업들이 상호작용하고 협력하면서 시너지를 가져왔다. 튼실한 파운드리 생태계 덕분에 대만은 반도체 강국으로 우뚝 섰다.

파운드리 반도체 산업과 더불어 대만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또 하나의 산업이 있다. 바로 해운산업이다. 글로벌 20대 선사 중에 3개 선사가 대만에 있다. 세계 6위의 에버그린과 세계 9위의 양밍해운, 그리고 세계 11위의 완하이라인이 생생하다. 대만의 컨테이너 선대 규모는 스위스·덴마크·프랑스·중국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한다. 대만 정부는 자국의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2017년부터 30조 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국가발전위원회의 중장기 지원계획과 정책금융기관의 신용공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1968년에 설립되어 세계 최초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대량 발주한 에버그린은 200여 척의 컨테이너선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선대 규모가 우리나라 최대 선사인 HMM의 두 배에 이른다. 1972년에 설립된 양밍해운도 100척에 가까운 선박으로 세계 주요 항로를 운항하고 있다. 그리고 1965년에 설립된 완하이라인은 150여 척의 컨테이너선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항로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

대만의 3대 해운회사는 올해 상반기에 매출액 31조 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10조 원이 넘는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무려 95%나 증가했다. 곳간을 가득 채운 대만 선사들은 신조선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에버그린은 지난해에 세계 1위의 스위스 MSC에 이어 최대 규모인 46척의 선박을 발주했다. 올해에도 초대형 컨테이너선 3척을 발주하는 등 선대 확대를 계속하고 있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 무역수지의 적자 행진이 심상치 않다. 25년 만에 6개월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 지원법을 발효시켰다. 연이어 의약품 등 생명공학 분야의 자국 내 연구·제조 역량을 강화하는 행정명령도 발동했다. 우리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관련 산업에 불똥이 튀었다. 수출 전선에 짙은 암운이 깃들면서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도체 산업의 육성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고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의 생사가 걸려 있다”라고 말할 정도다. 정부가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고 선제적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당장 해야 하는 현안 과제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히고 있다.

대만은 반도체 산업이 경제성장의 생명줄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반도체 강국이다. 이와 함께 대만은 세계 5위의 컨테이너 선대가 경제성장의 젖줄 역할을 하는 탄탄한 글로벌 선사들이 버티고 있는 해운 강국이기도 하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육성 못지않게 해운산업에 대해서도 대규모의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반도체 수출은 상품수지로 무역수지로 잡힌다. 해운 수입은 서비스수지로 무역외수지다. 우리는 무역외수지인 해운 수입 증대가 무역수지의 적자를 메울 확실한 대안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해운산업이 반드시 국가적 전략산업으로서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중추적인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한다. 반도체 강국도 중요하지만 해운 강국도 그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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