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봉 배순태 특별상/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장기계약 확대, 조선 내수비중 50%로 높여야
풍부해진 유동성, 재무구조 개선에 우선 투입

올해의 인물 심사위원회는 해운협회에서 40년간 일하면서 한국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무수히 많은 정책들을 입안하고 실현시키는데 공헌해온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을 제6회 해봉 배순태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김영무 부회장은 자타공인 정통 해운인이다.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를 졸업하고 해군에서 복무했으며 대한선주(한진해운)와 조양상선에서 1등 항해사로 승선근무를 했다. 그리고 1981년 1월 4일 한국선주협회(現한국해운협회)에 입사해 40년간 일하면서 1984년대 해운산업 합리화, 1997년 IMF, 2009년 금융위기까지 3번의 해운위기를 모두 경험했고 국제선박등록제, 한국선주상호보험, 선박투자회사제도, 수출입은행 수출연불금융, 톤세제도, 승선근무예비역, 선박금융공사 등 한국 해운을 성장시켰던 주요 정책들을 입안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막전막후를 가리지 않고 뛰어왔던 장본인이다.

해운협회에서 정확하게 40년 8일을 근무하게 된다는 김영무 상근부회장은 수상자 인터뷰에서 한국 해운이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놨다.

“한국 해운산업이 더 성장하려면 화주와 조선, 금융을 잘 꿰어야 한다. 머스크는 자국에 화물도, 조선소도 없지만 한국의 금융과 조선소로 활용해 배를 짓고 우리 화물을 실어날라 세계 최대 선사가 됐다. 우리는 세계적인 화주와 조선, 금융을 다 갖고 있지만 하나로 꿰지를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머스크처럼 화주와 조선, 금융을 하나로 꿰어 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 조선소 건조 능력을 축소시키는 한편 선화주 상생으로 장기계약을 확대해 신조 발주를 늘려 한국 조선소 내수 비중을 50%까지 끌어 올린다면 한국 해운과 조선 모두 더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김영무 부회장의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정책금융기관들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며 해운과 조선, 금융 정책의 일원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무구조 개선·컨테이너 선사간 협력 중요

김 부회장은 또 선사들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선사들, 특히 컨테이너선사들은 최근 2년간 지속된 호황으로 유동성을 많이 확보했다. 과거 2000년대 호황기 때처럼 풍부해진 유동성을 엉뚱한 곳에 써서는 안된다. 최우선적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써야 한다. 컨테이너선사들간 협력도 대단히 중요하다. 과당경쟁하지 말고 국적선사끼리 얼라이언스를 구축하고 시스템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김 부회장은 “국적선사들이 확보한 풍부한 유동성으로 우선 재무구조를 개선해야지 과거처럼 또다시 무분별한 선박 투자에 나서서는 곤란하다. 모선사 CEO는 호황기에 선박 투자를 하지 않고 참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경기역행적 투자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우선은 재무구조 개선에 유동성을 사용하고 선가가 가장 낮고 금리조건이 가장 좋을 때 신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시황이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과거 한국해운이 경험했던 위기와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김 부회장은 “우리는 이미 3번의 위기를 경험했다. 현재 국적선사 경영진들은 대부분 가까운 2번의 위기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고 해양진흥공사라는 시스템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과거처럼 속절없이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해운 발전위해 내놨던 아이디어 거의 실현

김영무 부회장은 스스로를 대단히 꼼꼼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해운업계는 물론 금융, 조선 등 관련업계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나눴던 이야기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복기하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그 아이디어를 토대로 정책을 입안하고 정책실현을 위해 전방위로 뛰어다닌 끝에 40년간 많은 해운정책들이 탄생하게 됐다는 얘기다.

김 부회장이 협회에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가 시행됐는데 해운업계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제안하라고 해서 주변의 여러 의견을 들어 제안했던 게 선박 보유세 완화와 해사전문은행 설립이었다. 신입사원의 제안이었으니 당시에는 아마도 이들 정책이 검토도 않됐던 것 같다.

그러나 김 부회장은 1989년 세계해사대학(WMU)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유럽의 제2선박제도를 연구해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귀국후에도 지속적으로 제2선박제도를 제안하고 추진해 기어코 1998년 국제선박등록제도와 2002년 제주선박등록특구제도를 도입시켰다. 이 제도들이 시행되면서 국적선사들이 선박을 보유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취득세, 재산세 등의 세금을 감면받게 됐다. 김 부회장이 신입사원 시절 제안했던 선박 보유세 완화 조치가 실현된 것이다. 해사전문은행도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부산시와 공동으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대선 공약으로 반영시키는 등 전방위적으로 노력한 끝에 2018년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출범시키면서 30여년만에 실현시켰다.

해양수산부 폐지·한진해운 파산 가장 아쉬워

김영무 부회장은 40년간 해운협회에서 활동하면 가장 아쉬웠던 순간으로 해양수산부 폐지와 한진해운 파산을 꼽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운업계가 위기에 빠졌는데 해양수산부가 폐지되자 김 부회장은 시민단체들과 힘을 모아 해양수산부 부활 운동을 벌였다. 한편으로 해수부 폐지로 해운업계의 구심점이 사라져 위기 대응이 제대로 안된다고 판단하고 해양계를 아우르는 연합단체가 필요하다고 보고 해운 관련 단체들을 독려, 2008년에 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現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를 출범시켰다.

한진해운 파산에 대해 김 부회장은 한진해운을 파산시킬 경우 최대 17조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자료를 만들어 정치권, 금융계 등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한진해운 살리기 운동에 나섰으나 금융의 논리로 접근하는 정부 정책에 밀려 막지 못했다며 너무나 아쉬운 일이라고 회고했다.

김 부회장은 한진해운이 파산하게 된 여러 가지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IMF때 정부의 부채비율 200% 정책이 근본적인 문제중 하나였다고 지적했다. 선사들이 부채비율 200%를 유지하려다 보니 신조 발주 대신 장기용선계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불행의 싹이 튼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부회장은 그렇다고 한진해운 파산이 아무 의미없는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에게 해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각인시켰고 한국해운재건 5개년 계획,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등으로 이어져 한국해운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밀알이 됐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한국 해운계의 대선배라고 할 수 있는 故배순태 흥해 회장께서 생전에 한진해운 파산으로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셨고 다시는 제2의 한진해운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되뇌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해운협회와 흥해가 힘을 모아서 한진해운 백서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해운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셨던 故배순태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제정된 해봉 배순태 특별상 수상자로 제가 선정돼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운업계 숙원 해운빌딩 마련, 가장 보람돼

김영무 상근부회장은 해운협회에서 40년을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중 하나가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 '해운빌딩'을 마련한 것을 꼽았다. 

김 부회장은 "해운호황기였던 2000년대 중반 해운빌딩을 마련하기로 결의하고  약 400억원의 기금을 조성키로 결의했다. 그러나 2008년말 예상치 못한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해운시황이 급락하면서 당초 절반 수준인 200억원을 모으는데 그쳤다. 시황이 어려운데 협회 사옥 매입이 중요하냐는 반대도 많았지만 당시 이진방 회장의 결단으로 2012년말 해운빌딩을 매입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진방 회장과 김 부회장의 결단으로 해운협회는 2013년 2월 해운빌딩으로 이전을 완료하며서 여의도 시대를 선언하게 됐다. 해운헙회가 여의도 시대를 연지 10년이 다 돼가는 지금 해운협회의 여의도 이전은 대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운빌딩의 자산가치가 크게 상승하면서 협회 재정이 튼튼해진 것은 물론 한국선주상호보험,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한국해양진흥공사 서울사무소, 한국선급 서울사무소 등 해운관련 단체들이 해운빌딩에 입주하면서 자타공인 한국의 해운산업의 메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