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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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14억 인도인들에게 기념비적인 해였다. 인도는 90여 년간 식민 통치했던 영국의 GDP를 따라잡았다. 인도 출신의 영국 총리도 배출했다. 인도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 쾌거였다. 서방 세계가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도 확연히 달라졌다. 인도가 미국·중국과 함께 G3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미국의 블룸버그는 “인도의 재능이 10∼15년 전에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서구 세계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가디언도 “어느 순간 인도는 조용히 경제 초강대국의 지위를 주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라고 했다.

인도는 중국처럼 장기간에 걸쳐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할 만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진 않았다. 인도는 1991년에 폐쇄형 계획경제에서 개방형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까지 28년 동안 연평균 6.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9.5%였다. 중국은 공산당 체재로서 경제 정책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이루었다. 반면에 인도는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추구했다.

​ 최근 인도 경제에 다가온 또 하나의 기회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서방의 주요 기업들이 안전성 확보를 위해 중국 이외 국가로 공급망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인건비가 강점인 인도가 최대 수혜국 중의 하나로 꼽힌다. 애플은 인도에서 주력 제품인 아이폰 14의 일부를 조립하기 시작했고, 2025년까지 아이폰 생산 시설의 25%를 인도로 이전하기로 했다.

인도는 중국으로부터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기업에 대하여 생산 연계 인센티브와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 적극적이다. 인도의 FDI 규모는 2018∼2019 회계연도에 620억 달러에서 2021∼2022 회계연도에는 835억 7,000만 달러로 3년 만에 35%가 늘었다. 이와 같은 FDI 유입 증가는 인도 정부의 규제 완화와 기업환경의 점진적인 개선에 기인한다. 하지만 열악한 물류 인프라가 인도의 FDI 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2075년으로 가는 길」이라는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30∼50년간 글로벌 GDP 성장의 무게가 아시아 쪽으로 더 기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전 세계의 경제 순위를 뒤바꿔 놓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2년에 미국·중국·일본·독일·인도 순인 세계 톱5 경제 대국이 2050년에는 중국·미국·인도·인도네시아·독일 순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2075년에는 인도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2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얼마 전에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에 국한됐던 과거 정부의 지역 구상들과 달리, 앞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시야를 넓히고 지역·글로벌 현안에 대해서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발표한 우리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인도 경제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둔 시의적절한 정책 전환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인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백신, 산소 실린더 등과 같은 주요 의약품이 품질을 유지하면서, 빠르고 안전하게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특히 물류 인프라 확충을 통하여 물류비용을 크게 낮추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모디 총리는 지난해 9월에 새로운 국가 물류 정책을 발표했다. 물류 공급망의 재편과 물류 디지털화, 그리고 첨단화된 물류시스템의 개발에 초점을 두고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인도의 물류비는 GDP의 13∼14%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한 자리 숫자로 낮추는 것이 목표이다.

인도 정부는 도로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주요 국도와 고속도로에 통합 물류거점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향후 5년 내 완공을 목표로 델리·하리아나·라자스탄·마하라슈트라·구자라트 등을 연결하는 물류 인프라 확충에 나섰다. 또한 물류 시설의 개발과 유지보수에 대한 FDI를 100%까지 허용했다. 나아가 전국에 걸쳐 자유무역 물류센터를 지정해서 물류산업의 활성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뭄바이 인근의 판벨과 뉴델리 인근의 쿠르자, 그리고 첸나이 인근의 시리 시티 등이 자유무역 물류거점으로 지정되었다.

인도의 물류 시장 규모는 2021년에 2,500억 달러에서 2025년에는 3,800억 달러까지 연평균 10∼12% 성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도 정부는 지속적인 물류 개선정책을 통하여 주요 수출거점을 중심으로 물류센터를 대폭 늘리고, 고속도로망과 화물 전용도로의 확충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해운·도로·철도·항공 등을 연계하는 종합적인 물류망 확충에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5월에 ‘한·인도 해운물류 협력 양해각서’에 서명한 바 있다. 양국의 해운물류분야 정보 공유와 선원양성 및 해운합작회사 설립 등 협력 사업 발굴, 그리고 물류터미널 및 항만 인프라 투자 등 실질적인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도 없이 7년이 훌쩍 지났다.

글로벌 경제 전문기관들은 세계 경제 성장의 중심축으로 인도를 주목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인도는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가진 나라다. 특히 인도의 물류 시장은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이제 우리 해운물류기업들은 새로운 기회의 땅, 인도의 거대한 시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 한발 앞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해양수산부도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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