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이기병 박사
이기병 박사

서양인은 한국과 일본인의 외모만 보고는 좀처럼 국적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얼굴을 보면 팔자가 보인다”라는 관상의 비밀처럼 은연중 같은 동양인인 일본인을 보면 이를 구별할 줄 아는 알 수 없는 DNA가 있다.

이러한 일본과 우리나라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쌀. 그중에서도 자포니카(japonica)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둘째, 식량 자급률이 한국은 44.8%, 일본 38%로 양국 모두 50% 이하로 수입 끊기면 맨밥 먹을 나라들이다. 더군다나 곡물 자급률은 더욱 낮아 한국 20.8%, 일본 28%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하면 밀·옥수수는 자급률이 1%도 안된다. 이러다 보니 소득대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비싼 빵값을 지불하고 있어 빵돌이·빵순이가 빵 하나가 주는 행복을 마음 편하게 만끽하지 못하는 나라다.

셋째, 안타깝지만 사방이 꽉 막힌 우리나라와 일본은 모두 섬나라들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은 수출입 물량이 바다를 통해 운송되고 있어 해운산업은 경제를 뒷받침하는 매우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이다.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곡물 자급률 및 식량 자급 자족도가 낮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장기화로 국제 곡물 가격의 상승 및 수급 불안으로 인해 식량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곡물 가격이 일반물가 상승을 심화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으로 인해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물가 파급효과가 증대하고 있다. 외식하기 겁나고 서민 등골은 휜다. 국민 생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입 곡물의 운송을 60% 이상 4대 메이저 곡물회사인 Cargill, LDC, Bunge, ADM의 곡물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해운사로는 하림그룹이 인수한 팬오션이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 국내에서 곡물운반선으로 국가 필수 선박으로 지정된 선박은 29척에 불과하다. 해외 곡물뿐만 아니라 운송도 글로벌 메이저사에 의존하고 있어 수급 안정성이 취약해 이를 낮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상시 국가 필수 선박 제도를 통해 곡물 운반 선사를 확대하고 인센티브, 금융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하여 국민의 안정적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가격만을 우선시하여 고령선 증가, 운임감소, 운송서비스 품질 저하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는 최저가 낙찰제를 지양해야 한다. 적정가격과 수송 능력을 평가하여 운송 안전성을 우선하는 종합심사 낙찰법규를 확대하는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현재 식량 자급 자족도로 볼 때 한반도 주변에 전염병, 전쟁, 경제제재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곡물 운반 선사가 접근할 수 없어 2개월 이내에 국민 대부분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UN은 전쟁·재해에 대비하여 2달 치 식량 확보 및 권장 수준을 18%로 제시했지만 우리나라는 옥수수(7.4%), 밀(12.8%), 콩(8.6%)이 연간 소비량 대비 재고율에 크게 밑돈다.

이러한 곡물 수급 안정화를 위해서는 수송·선적·하역·가공·저장 등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 4대 메이저 곡물회사의 의존도를 줄이고 국적 공급사를 활용하여 기존 수입국과 협력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수입선 다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카길로 대변되는 세계적 곡물회사들은 생산·비축·유통·운송을 전방위적으로 담당하며 창고 역할을 하는 곡물 엘리베이터 확보와 막강한 선적 및 곡물 저장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곡물 사업은 곡물 엘리베이터 인프라 조성과 수송용 선박을 확보해야 하므로 투자비용이 크다.

농업은 변동이 심해 불황기에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며 선물시장을 이용하는 곡물 거래 특성상 금융시장의 높은 이해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이 우리나라 해운사들이 고려해야 할 당면 현안이기도 하다. 관련 업체의 인수·합병과 국제적인 유통망을 확보하여 다양한 식량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향후 국적선사들의 미래 과제이기도 하다.

곡물 수입이 팬오션 등 민간에 의해 이뤄지지만, 정부는 간접적으로 금융 지원 등 필요자금을 통해 국적 공급선사 뒷받침을 검토하며 타 국가와 협력 관계 증진을 통해 수출제한 조치를 예방해야 한다.

민간 기관에도 곡물 시장 및 각종 해상운임 정보를 제공하고 창고․야적장 등 물류 시설을 보완, 품질·보관을 개선하여 체선 방지 등 경제적 손실을 예방하는 등 국내 물류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공급사슬 병목현상으로 수입이 원활하지 못하면 구조적으로 곡물 부족 국가인 한국은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며 식량안보는 국방 안보만큼이나 중요해진다.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1980년부터 40여 년간 1% 이하로 급락했지만, 일본은 10%대를 유지해 식량 안보 지수를 높였다.

식량 공급망의 안정적인 물류 채널 확보를 위해 해운산업을 중요한 인프라로 인식하고 정부는 더 과감한 정책적인 지원을 통해 다양한 사전 대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개인·회사·국가, 세상 모든 것이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고 싶다. 돌발과 변수가 없는 선형적(線形的)인 길. 앞선 자의 길이 교본이 되고 우리의 계획과 예측이 범위 내 들어오는 선형적인 세상. 그러나 삶은 비선형(非線型)이다.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잘못된 예측과 시행착오를 통해 예측불허의 세상, 인간, 미래를 만난다. 급변하는 대내외적 환경변화에 파도만 보지 말고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자.

우리는 관상을 좋아하지만, 관성대로 사는 민족은 아니지 않는가? 오늘 한 끼 주어진 식탁의 밥상을 생각하고(think) 감사하자(thank). 알고 보면 두 단어는 어원이 같은 한 뿌리다. 익숙함에 속지 말자. 소중함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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