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하여 글로벌 거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반도체 기업이 시가총액 1조 달러를 기록한 것은 사상 최초다. 신기술과 혁신으로 이룬 놀라운 결과다. 이제까지 한 번이라도 시가총액이 1조 달러에 이르렀던 기업은 9개에 불과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인 사우디 아람코를 제외하면 스마트폰·전자상거래·클라우드 빅테크 기업들이 모두 차지했다.

창립 30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엔비디아의 급성장에는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주력 제품인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제품을 받으려면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이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던 아이폰에 비유하면서 지금을 ‘AI의 아이폰 모멘트’라고 표현할 정도다.

엔비디아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우수한 인적 자원으로 AI 생태계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2006년에 GPU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쿠다’를 출시했다. 초반에는 실적이 부진했으나 AI 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AI 개발자에게 쿠다는 필수 불가결한 도구가 된 것이다. 쿠다는 엔비디아 제품에서만 작동한다. AI 엔지니어들이 엔비디아의 가두리 양식장에 갇힌 꼴이다. 엔비디아의 성공에는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큰 몫을 했다. 2만 6,000여 명의 임직원 가운데 75%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최근 딜로이트 글로벌과 포춘이 발표한 글로벌 500대 기업의 149명을 대상으로 한 CEO 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글로벌 CEO들은 2023년의 비즈니스 키워드를 ‘글로벌 경기 회복의 희망과 기대로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사업 기회 모색’으로 정의했다. 신규 투자를 위한 최우선 순위로는 ‘핵심 사업 전환과 인재 확보를 통한 조직 운영’을 꼽았다. 이를 기반으로 신제품과 서비스 출시 그리고 신규 시장진입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분야의 우선순위 질문에 대하여, 핵심 사업 전환과 인재 확보라고 답한 CEO 비중이 67%로 제일 많았다. 다음으로 신제품·서비스 개발과 시장진입에 대한 응답이 62%를 나타냈다. 인공지능과 첨단기술 등 디지털 기술 투자와 공급망 회복, 기후변화와 사회적 불평등 이슈는 후 순위로 밀렸다. 글로벌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핵심 사업의 전환과 더불어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며칠 전에 “왜 우리는 미국 글로벌 기업의 CEO가 되지 못하는가”라는 칼럼을 접했다. 인도의 최대 수출품은 CEO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구글·마이크로소프트·트위터·어도비·페덱스·IBM 등 미국의 주요 글로벌 기업들의 CEO는 거의 인도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 중국 등 극동 아시아 출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민자나 유학생은 오히려 한·중·일 출신이 더 많다. 인도인들의 남다른 갈등 조절 능력을 그 이유로 든다. 인도는 인종·언어·계급 등 구성원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태생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 상황에 익숙하다. 그래서 서로 공생하는 방법이 체화되어 있다.

구글에서 몇 년 전에 흥미로운 연구 프로젝트가 있었다. 구글은 구성원 중에서 동양인이 10% 정도를 차지한다. 고위 임원 승진에 인도 출신은 많은데 한국 출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이유를 규명하는 연구가 있었다. 인도 직원의 강점보다는 한국 직원의 약점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권위에 복종하는 문화가 발목을 잡았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 즉 비전으로 남을 이끄는 리더의 자질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관계 형성의 문제도 지적되었다. 한국 출신은 대체로 똑똑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따뜻하지 않고 차갑게 느껴진다고 한다. 똑똑한 사람이 차갑다면 비호감이다. 조직의 메인 서클에 들어가기 힘들다.

지난 5월에 출간된 「AI 이후의 세계」가 화제다.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과 에릭 슈밋 구글 전 CEO, 대니얼 허튼로커 MIT 학장이 4년에 걸쳐 AI를 주제로 논의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들은 “챗 GPT는 시작일 뿐이다. 세계질서 대전환에 대비하라”고 외친다. 그리고 AI의 효용과 한계를 판단하고 통제하면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우수한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요즈음 삼성전자의 인사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대만의 TSMC와 마이크론을 거친 반도체 패킹 분야 전문가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인재 확보에 혈안이다. 인재 전쟁(talent war)에 나섰다. 이는 반도체를 포함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경기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실적 악화로 대규모 감원에 나서는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행보다. 우수한 인적 자원의 확보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글로벌 해운물류 시장이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사상 초유의 호황을 이끌었던 코로나 팬데믹 이슈가 사라지면서 운임 하락과 함께 선사들의 영업실적도 크게 나빠졌다. 올해 1분기에 덴마크의 머스크는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액이 37%, 영업이익이 72% 곤두박질쳤다. 프랑스의 CMA CGM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40%와 64%가 줄어들었다. 적자를 기록한 글로벌 선사들도 있다. 글로벌 해운시장이 또다시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해운’ 號를 이끌 글로벌 역량을 갖춘 유능한 인재의 확보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