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에 장관과 차관 인사를 단행했다. 새로 임명한 11개 부처 차관 12명 중 절반에 가까운 5명을 대통령 비서실 출신으로 채웠다. 관리비서관과 국토비서관이 나란히 국토교통부 1·2차관에 임명됐다. 또한 과학기술 비서관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국정과제 비서관이 환경부 차관, 국정기획 비서관이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나갔다. 지난 5월에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으로 임명된 산업정책비서관을 포함하면 대통령실 출신 차관이 6명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사를 국정 장악력 제고와 개혁을 위한 전진 배치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부처 차관으로 발탁된 대통령실 비서관들에게 “고위공무원으로서 약탈적인 이권 카르텔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맞서 싸워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부당하고 불법적인 카르텔을 깨고 공정하고 상식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저에게 충성하지 마시고 헌법 정신에 충성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피를 발탁함으로써 전체 공직 사회가 일신하는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조금 버티다 보면 또 바뀌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은 정부가 아니라 국회로 가야 한다고 일갈했다.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를 꼬집는 복지부동은 원래 군대용어다. 야간전투 시 조명탄이 터지는 상황에서 움직이거나 빛이 반사되는 물체는 적의 표적이 된다. 그래서 빛이 반사될 수 있는 소총을 배 쪽으로 깔고 바짝 엎드려 꼼짝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때 구령이 복지부동이다. 총탄과 포탄을 피해 복지부동 상태에서 기어가면 포복이 된다. 총소리만 들려도 납작 엎드리는 게 본능이라 훈련이 필요 없는 게 포복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공직 사회에 복지부동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이다. 한 언론에서 공직 사회를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직 개혁을 강조할 때 어김없이 등장했다. 1994년에 신경제추진회의를 주재하면서 일할수록 손해라는 공무원의 자조적 자세를 꼬집었다. 그리곤 하루빨리 시정해야 한다며 복지부동 대신 신바람 행정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행정쇄신개혁위원회를 신설해서 규제 완화를 강도 높게 주문하면서 복지부동 타파를 외쳤다.

공직 사회에 복지부동이 등장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 용어의 생명력은 여전하다. 누구나 복지부동하면 공직 사회를 떠올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 개혁을 가로막는 공직 내부 분위기를 지적하며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기요틴(프랑스혁명 당시 사형기구)’, 노무현 정부는 ‘규제 덩어리’, 이명박 정부는 ‘전봇대’,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 문재인 정부는 ‘붉은 깃발’이라는 비유로 규제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달 감사원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추진 실태’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민간 업체에 인허가와 계약상의 특혜를 제공한 전·현직 공직자 13명을 직권남용, 보조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비리에 동참한 민간 업체 관계자 25명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었다. 에너지 정책을 맡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직 과장들이 결탁하여 특정 태양광 사업체의 편의를 봐주고, 퇴직해서는 해당 업체에 재취업한 사실도 적발됐다.

지난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속도를 내면서 각종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감사원은 태양광 사업과 밀접한 8개 공공기관의 임직원 250여 명이 자신 또는 가족 이름으로 태양광 사업을 하는 사례를 확인했다. 감사원은 “정부의 관리 소홀을 틈타 우대 혜택을 노린 일부 사업자들의 위법·부당 사례 등에 대해선 감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29일에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4개 항만공사의 노조위원장들이 해양수산부 청사 앞에서 해양수산부를 규탄했다. 항만물류업의 전문성과 신뢰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항만공사 임원 자리를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퇴직하는 공무원들로 채워 넣고 있다고 성토했다. 해양수산부 퇴직 공무원과 정치권 낙하산 인사로 내정하지 말고, 공정한 공모 절차에 따라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사를 항만공사 임원으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다.

경제정의실천협의회는 지난 5월 30일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관피아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의 퇴직 공무원들의 재취업 승인율이 평균 80%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들 부처의 공무원들은 퇴직하고서도 산하 공기업과 협회에 손쉽게 재취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리까지 대물림한다.

지난달 단행된 차관 인사에서 해양수산부가 포함되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해양수산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안이한 대응이 눈에 걸린다. 일찍이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국립수산과학원 등 산하 연구기관들을 총동원하여 핵 관련 전문가 그룹과 함께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수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서야 했다. 그리고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야권과 시민단체의 괴담과 선동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오도된 여론을 무마했어야 했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4개 항만공사 등의 임원 자리를 둘러싼 인사 파문에 관한 책임과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해양수산부는 퇴직하는 공무원들의 전관예우를 위한 낙하산 인사의 적폐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공정한 공모 절차를 거친 유능한 전문가가 등용되는 길을 봉쇄함으로써 관련 기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번 차관 인사를 계기로 해양수산부가 혁신을 통해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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