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지난 8월 10일에 중국이 한국행 단체관광을 전면 허용했다. 2017년에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한한령이 내려진 지 6년 5개월 만이다. 빗장이 풀리자마자 중국발 크루즈선 53척이 제주 방문을 예약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선들이 제주도에 줄줄이 몰려온다. 제주항과 강정항은 내년 3월까지 외국 크루즈선들이 장사진을 이룰 전망이다.

제주도에 입항하는 크루즈선들은 한 척당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중국인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2016년에 크루즈선 관광객이 연간 120만 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던 제주도는 모처럼 크루즈 관광 특수를 누리게 되었다. 지난해에 제주도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이 9,768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세계 크루즈 관광객은 2,967만 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크루즈 산업의 경제적 효과는 무려 1,545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 크루즈 산업이 창출하는 정규직 일자리는 117만 개로서, 이들의 총임금은 505억 달러에 이르렀다. 세계크루즈선사협회(CLIA)는 세계 크루즈 관광객이 2019년에 비해서 2023년에 108%, 2025년에 125%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단기간에 대규모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크루즈 시장의 수요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가파른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크루즈 수요도 계속 증가하여, 향후 5년간에 걸쳐 연간 33.2%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상반기에만 국내 여행사들이 이탈리아 코스타 크루즈의 선박을 빌려서 크루즈 관광에 나선 것이 여섯 번에 이른다.

아시아권에서는 동남아시아의 크루즈 시장이 제일 크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주도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와 베트남도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 지역은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 등 글로벌 선사들의 인기 노선으로 최근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크루즈 시장은 중국과 일본이 주축인데 홍콩·대만·일본을 잇는 노선에서 한국은 기항지 역할에만 머무르고 있다.

지난 7월에 해양수산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는 제10회 제주국제크루즈포럼이 제주에서 열렸다. ‘미래를 선도하는 아시아 크루즈의 새로운 항해’를 주제로 크루즈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아시아 지역 간 협력 방안이 논의되었다. 글로벌 크루즈 선사의 유치를 위한 행사로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크루즈 선사들의 유치에만 그친 것이 못내 아쉽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크루즈 산업의 경제적 효과에 주목했다. 그리고 2015년에 ‘크루즈 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크루즈 산업 육성 기본계획’도 수립했다. 또한 전국 주요 지역에 크루즈 항만과 터미널도 건설했고, 크루즈 전문인력 양성 사업도 추진했다. 그리고 부산·인천·제주·강원·전남·경기 등의 광역지자체에서는 크루즈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도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국적 크루즈 선사의 태동을 위한 논의는 아예 없다. 해양수산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국적 크루즈 선사 육성 지원정책이 성과 없이 표류하고 있다. 크루즈 선박에 대한 정책금융의 부재와 민간기업의 투자 외면 등으로 별다른 진척이 없다. 우리 항만이 외국 크루즈 선박의 기항지 역할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국적 크루즈 선사가 없는 크루즈 산업의 활성화는 빛 좋은 개살구고 속 빈 강정이다.

필자는 1995년에 국적 크루즈 선사의 탄생을 기대하면서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우리나라 해상관광산업의 활성화 방안」이 바로 그것이다. 196쪽에 달하는 연구보고서에 우리나라의 크루즈선 운항의 타당성과 해상관광상품의 개발계획 등을 담았다. 삼면이 바다인 해안지역 관광자원의 개발잠재력을 분석하고, 국립 해상공원을 포함한 해안과 도서를 연결하는 해상관광 루트를 체계화했다. 그리고 크루즈 선박 운항을 위한 해상패키지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해상관광산업의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논의되지 않은 미개척 분야로서 해상관광산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업계의 사업성 검토 등 경영 전략 수립과 정부의 정책 방향 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부산에서 큐슈 지역을 왕복 운항한 크루즈 선박에 탑승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등 실증분석 결과와 비용편익 분석에 근거한 타당성 검토에서 제시된 내용들이 관련 업계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28년 전에 필자가 연구보고서 서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지난해 11월에 서울시는 서해 물길을 관광 자원화하기 위한 ‘세계로 향하는 서해 뱃길’ 사업을 발표했다. 이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2026년부터 인천항에 정박하는 대형 크루즈 승객들이 한강행 크루즈선을 타고 여의도에서 내려 서울을 관광하게 된다. 또한 여의도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서해 뱃길을 통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한강을 동북아 해양관광을 선도할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만들어서 해외 관광객 3천만 시대를 견인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이다.

사업의 핵심은 지방관리무역항으로 지정된 여의도에 2026년까지 ‘서울항’을 조성하여 한강∼서해∼동북아를 잇는 서해 뱃길의 활용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2단계에 걸쳐 사업을 추진한다. 1단계는 2023년부터 한강∼경인아라뱃길 크루즈선을 정기운항하고, 2단계는 서울항을 조성할 계획이다.

서울항의 건설계획이 차질 없이 이루어져서 우리 국적의 크루즈 선사 탄생의 마중물이 되었으면 한다. 당장은 대형 크루즈 선박이 아니더라도 중소 규모의 크루즈 선박을 운항하는 우리나라 국적의 크루즈 선사가 탄생하는 날을 기대한다. 그래서 필자의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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