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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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에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호가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되었다. 말레이시아 탄중 펠레파스 항에서 출발하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고 있던 ‘에버 기븐’호의 선수와 선미가 대각선으로 수로를 막아버렸다. 수에즈 운하가 6일간 마비되었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운하 사고로 수십 척의 선박들이 일주일 동안 발이 묶였다.

수에즈 운하가 통제된 지 이틀 만에 세계 유가가 6%나 오르고, 세계 물류의 12%가 멈춰버렸다. 만약 사고가 오래 지속되었다면 선박들이 시간적, 비용적 손해를 무릅쓰고 계속 대기해야 했다. 아니면 추가 비용을 감수하고 제3, 4차 중동전쟁 때처럼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수에즈 운하가 국제무역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알린 끔찍한 사고였다.

미주 동부로 향하는 해상 운임이 지난 4월부터 치솟고 있다. 파나마운하의 가뭄이 가져온 결과다. 지난 9월에 가툰호수 수위가 최근 5년 9월 평균에 비해서 6.8% 낮아졌다. 기후변화가 파나마운하에 병목 현상을 가져왔다. 파나마운하는 각기 고도가 다른 6개 갑문으로 이뤄져 있다. 가툰호수의 물을 이용하여 배를 이동시킨다. 배가 들어오면 갑문을 닫고 담수를 빼거나 채워서 다음 갑문과 수위를 맞춘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선박이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있다.

가뭄이 계속되자 파나마운하청은 통행 선박의 수를 제한했다. 지난 7월부터 하루 통행 선박을 기존의 36척에서 32척으로 줄였다. 또 지난 6월부터는 선박 흘수를 기존50피트보다 낮은 44피트로 제한하고 있다. 흘수는 선박이 떠 있을 때 선체가 물속에 가라앉는 깊이를 말한다. 배는 화물이 무거울수록 더 깊게 가라앉으므로 흘수를 제한하면 화물의 선적량을 줄여야 한다. 해상 운임에 영향을 미쳤다.

파나마운하를 대체할 해상 운송 경로는 매우 제한적이다. 운송 기일이 한 달가량 늘어나기 때문이다. 태평양에서 미주 동부로 이동하는 항로에서 파나마운하를 통과하지 않으면 마젤란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마젤란해협은 거리가 멀다. 마젤란해협을 통과하는 경우 파나마운하보다 30일 정도 더 걸린다. 파나마운하의 가뭄으로 중국의 상하이발 미주 동부행 운임이 지난 3월에 비해 무려 43% 상승했다.

지난주에 7% 넘게 급락한 서부텍사스원유 가격이 다시 급등했다. 고금리에 따른 경기 둔화로 유가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이란과 미국의 대리전으로 확전되면 유가는 더욱 크게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 하루 60만 배럴에서 최근 하루 320만 배럴까지 증가했다. 이란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어떤 형태로든지 도움을 준 것으로 확인되면, 원유 수출이 제재받을 수 있다.

최근 글로벌 해상 운임의 하락 추세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3년 만에 9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명절 특수가 사라지는 등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공급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해운업계의 ‘파산 러시’가 이어졌던 2016년 수준으로 운임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글로벌 해운 시황을 보여주는 SCFI는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하여 53.9%가 떨어졌다. 4주 연속 하락하면서 해운업계의 손익분기점이라는 1,000선 밑으로 내려앉았다. 마침내 900선도 무너졌다. SCFI가 800선을 기록한 것은 2020년 5월 이후 3년여 만이다. 아시아∼유럽 항로의 경우에 해운업계의 극심한 침체기로 여겨졌던 2019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글로벌 정기선 해운 시장의 수요는 크게 줄어들고 있지만 공급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싱가포르 해운 전문 분석기관인 라이너리티카에 따르면, 글로벌 컨테이너선의 공급량은 지난 4월부터 매월 평균 19만TEU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사상 최대 수치다. 향후 2년간에도 글로벌 컨테이너선 공급은 같은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급기야 선사들은 운항 선박의 축소를 통한 공급조절에 나섰지만, 운임의 하락 추세는 요지부동이다.

이번 10월에도 주요 글로벌 항로인 아시아·유럽·북미에서 공급량이 14∼22% 가까이 줄어들 예정이지만, 운임의 하락 추세는 막지 못하고 있다. 라이너리티카는 “공급을 즉시 줄이지 않으면 2016년 수준으로 운임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6년에는 글로벌 해운업계의 치킨게임으로 SCFI가 600선을 기록했다. 우리 한진해운 등 많은 글로벌 선사가 파산했다. 당시에도 컨테이너선의 공급량이 크게 늘었다.

글로벌 정기선 시장의 선두 주자인 머스크도 글로벌 무역량의 정체가 길고 깊어질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경기침체 위험으로 인해 기업들이 재고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세계 컨테이너 수요가 올해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내년에 글로벌 무역 성장률이 3.2%로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세계 식량 불안, 경제 위기로 인한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 등으로 예상보다 위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글로벌 물류대란이 그랬다. 갑작스러운 수에즈 운하의 선박 좌초도 그렇고, 가뭄으로 인한 파나마운하의 통항 제한도 마찬가지다. 국지적인 전쟁은 말할 나위 없다. 해운 시황에는 돌발 변수가 늘 있다. 그래서 시장의 예측은 어렵다. 그렇지만 내년에는 글로벌 해운시장이 매우 힘든 겨울을 보낼 것 같다. 우리 해운선사들이 잘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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