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중부지사장 이경훈

이경훈 KOMSA  중부지사장
이경훈 KOMSA  중부지사장

우리나라의 대형선박 설계에서부터 건조, 운항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에 거친 기술력은 전세계 최상위권 그룹에 속해 있다고 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소형 선박을 들여다보면, 특히 소형선박의 설계기술에 있어서는 국내 대형선과의 차이뿐만 아니라 선진국 동형선박 설계기술과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대형선 설계기술과의 기술 간극을 좁히려는 국가와 민간 차원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전히 중소형 선박 설계, 건조 및 운영 등은 대형선에 비해 낙후된 실정이다.

국내에서 운항하고 있는 중소형 선박은 건조·개조 단계에서 국내 선박안전법, 어선법 등 관련 기준을 적용한 설계 도면을 작성하고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또는 선급의 엄격한 기술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건조 또는 개조가 가능하다.

최근 5년간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재결서 분석 자료(총 935건)를 보면, 국내 중소형선박 해양사고 발생원인의 대부분은 운항과실에 따른 인적과실에 의한 사고가 73%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를 비롯한 유관기관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소형선박의 해양사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인적과실의 빈도를 근원부터 줄이기 위해 설계 단계에서 일정부분 보완이 가능하다. 충분한 조타 시야 확보를 위한 조타실 높이 확보, 각종 안전설비 이외, 기준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선원의 작업 특성을 고려한 각종 설비와 공간 배치, 인적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각종 자동화 설비 구축 등을 고려한 설계기준 개발이 필요하다.

해양사고 종류별 통계분류에 있어서 기관손상, 축계장치 손상, 연료 고갈에 따른 운항불능상태 같은 경우는 단순 해양사고로 분류되어 있지만 해양사고 통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고이다.

해수부 주도로 개발되어 운영 중인 이네비 디지털 단말기에 각종 항해, 소방, 기관설비 등에 대한 상태 모니터링 기술을 적용하면, 충돌 예방은 물론 선박 운항 시간과 설비 운전시간을 매칭하여 최적의 정비시기를 예측하거나 화재 예방 기능까지 동시에 구현 가능하게 된다. 여기에, 자동차의 연료 소진 경고등과 같이 설계단계에서 소형선박 연료탱크에 레벨게이지 센서를 설치하여 연료소모량을 상시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연료유 완전소모에 따른 운항불능상태는 피할 수 있다. 위의 몇 가지 안전기능만으로도 단순 해양사고는 대폭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장비는 신뢰성 검증을 위하여 일부 선박에 탑재하여 충분한 트랙 레코드를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법령 개정을 통해 기존의 법정 안전설비에 해양사고 예방 기능을 통합하는 방안도 추진해 볼 만하다.

1980년대 초 당시 한국어선협회(현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서 수행한 「FRP재 표준어선 개발 연구」와 대대적인 설계도면 보급을 시작으로, 지금은 일반화된 FRP재 선박은 우리나라 선체길이 24m미만 어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FRP 대체재이자 친환경 소재로서 한때 알루미늄 선박이 최적의 재료로 선택되기도 했지만, 재료의 수급성, 공작성, 작업성 등을 감안했을 때 ‘가성비가 낮다’는 이유로 일부 고속선과 관공선을 제외하고 대중적인 선체 재료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일부 FRP조선소를 중심으로 FRP 선체 건조에서 인건비 비중이 큰 수적층 작업을 진공적층(Vacuum Infusion) 공법으로 전환하려는 산발적인 시도가 있었으나 이 또한 국내 설계기준 미비와 진공 적층에 필요한 외국산 특수재료에 대한 수급, 전문기술인력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저변 확산에 한계를 나타냈다.

최근 5~6년 사이 HDPE가 건조비용과 재활용 측면에서 친환경 소형선박 소재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중기부에서 추진하는 ‘23년도 8차 규제자유특구 사업에 전남 친환경 HDPE 소형어선이 선정되었다. 이 선박은 실선건조후 실증운항에 들어서게 되는데, 실선건조를 위해서는 HDPE 어선 구조기준(설계기준) 개발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친환경 연료는 어떠한가? IMO의 온실가스 총배출량 규제에 맞춰 대형선을 중심으로 전동화 추진기술을 비롯한 화석연료를 대체할 LNG, LPG, 수소, 암모니아, 메탄올 등 친환경 연료추진 선박 개발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일각에서는 2035년까지 전세계 건조 선박의 50%이상이 LNG추진선이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대형선의 이러한 변화의 기조와 달리, 국내 중소형선박 중 친환경 소재와 전동화 기술, 대체연료 추진기술은 일부 관공선과 특수선에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중이다. 중기부에서는 2019년 7월 1차 특구지정 이후 현재 8차까지 부산 LPG선박 해양모빌리티를 필두로, 울산, 경남지역을 암모니아, 수소연료추진 선박에 대한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여 건조 및 운항 실증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해수부에서는 부산 해양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 실증선박을 대상으로 한국선급의 「액화석유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24미터 미만의 선박 잠정지침」기준을 적용하도록 법령 개정작업 중이며, 개발된 선박설계도서 및 건조에는 반드시 KOMSA 또는 한국선급의 인증이 필요하다.

일부 대형선 설계 분야를 중심으로 저 경력자의 설계 능력 향상과 설계 정합성 검증, 설계 자동화를 목표로 디지털 지식 기반의 선박설계 데이터 정보 체계 표준화, 지식베이스 구축, CAD환경에서 운영가능한 챗봇 시스템, 설계 복합 질의사항에 대한 지능형 검색 플랫폼을 개발하고 설계자동화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국내 중소선박 설계업체는 약 80여 업체가 설립되어 운영 중이다. 이들 업체는 고질적인 선박설계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설계 인력의 감소와 기술력 단절의 한계로 친환경 재료와 대체연료 추진 선박설계 역량 확보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중소선박설계업체의 열악한 설계 환경을 극복하고 기존 선박설계의 표준화, 친환경 재료와 대체 연료의 출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공이 협력하는 디지털 기반 중소형 선박설계 및 도면승인 협업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선박설계기준 지식베이스 시스템과 설계 정합성 자동 검증시스템을 개발하여 수요기업과 승인기관에 동시에 구축한다면, 민간의 설계 작업자는 높은 수준의 설계 정합성 검증을 빠르고 간편하게 수행할 수 있으며, 공공은 설계승인 협업에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능화된 디지털 엔지니어링 기술로의 전환을 통해 도면승인기간을 포함한 설계공정 단축, 획기적인 시수절감과 표준화 설계로 선박성능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여 선박안전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중소형선박 설계·건조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해 온 재료, 연료, 설계, 검증, 시공방식이라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벗어나기 힘든 척박한 현실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친환경 연료, 소재 적용 설계기준 개발과 지능형 검색, 자동화된 설계 정합성 검증 및 친환경 시공방식의 디지털 전환은 설계기술 주도권과 데이터 주권의 확보를 위해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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