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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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은 작년에 토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처음으로 글로벌 3위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한국 시장을 제치고 역대 최다 판매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달에는 역대 11월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인 켈리블루북이 선정하는 '2024 베스트 바이 어워드'에서 4관왕에 올랐다. 켈리블루북은 미국에서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평가 매체 중의 하나다.

이와 같은 현대차그룹의 놀라운 경영 성과에는 프리미엄화와 전동화라는 투트랙 혁신이 있다. 그리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다. 정 회장은 소프트웨어 자동차로의 전환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미래 성장동력인 로보틱스·미래 항공 모빌리티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도 그룹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2019년부터 전면 자율복장, 상시 채용, 직무별 입사 교육 등을 시행했다. 보수적이었던 조직 문화를 신세대 맞춤형으로 바꿨다.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강하면서도 유연하다. 품질 향상을 위한 현장 경영을 중시하면서,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선호한다. 정 회장은 격의 없는 소통을 좋아하고 직원들의 작은 목소리도 경청하는 리더로 꼽힌다. 많이 듣고 오래 고민하지만 한번 결정한 사안은 속도감 있게 밀어붙인다.

그는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인재 영입에도 열심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선대 시절 악연이었던 삼성과도 과감하게 손을 잡았다. “기존의 관성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능동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며,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최고의 인재 영입과 기술 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정의선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긴 올해 신년사가 빛을 발하고 있다.

퍼스트 무버는 시장 선도자로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 혹은 기업을 의미한다. 퍼스트 무버는 창의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 선점한다. 이에 반해 퍼스트 무버가 만든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따라가 가격·품질면에서 이를 개선한 제품을 내놓는 전략이나 기업이 있다. 이를 빠른 추격자, 패스트 팔로어라고 한다. 이러한 전략으로 퍼스트 무버를 앞서기도 한다.

최초의 제품을 출시하거나,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입하여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퍼스트 무버의 특징이다. 해당 산업에 가장 먼저 진입함으로써 특허 등으로 기술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패스트 팔로어는 퍼스트 무버가 개발한 상품이나 사업 분야를 분석하고 보완하여 더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파고든다. 그래서 시장의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최근 2차전지 시장이 반도체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다. 글로벌 2차전지 시장은 한국·중국·일본이 지난해 90% 이상을 차지했다. ‘배터리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 중국이 대규모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점유율을 65%까지 끌어올렸다. 이제 우리 배터리 3사의 점유율이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2021년에 30.4%, 지난해에 24.1%, 올 상반기에 23.7%로 하락했다. 이 기간에 중국 CATL과 비야디(BYD)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계속 높아졌다. 우리에게는 혁신 생태계 구축을 통한 퍼스트 무버로의 도약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국가와 기업 전략으로 퍼스트 무버 전략과 패스트 팔로어 전략 사이에 논란이 많다.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후진국에서 세계 10위권 국가로 올라서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우뚝서는 과정에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주효했다. 우리 국민의 우수한 두뇌, 부지런한 근면성, 빨리빨리 문화, 경쟁력 있는 인건비 등이 빠른 추격자로 만들었다. 새로운 혁신을 위한 대규모 투자 없이 선진국의 혁신을 원가·품질·시간 경쟁력으로 상품화하는 전략이 적중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가능하게 했던 강점들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임금, 근로 시간 모두 선진국 수준이 되면서 생산성과 원가·시간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 우리 대기업의 초임은 경쟁국인 일본보다 높아진 지 오래다. 물러서지 않고 도전하던 불퇴전의 기업가정신도 많이 퇴보했다. 시장 선도자, 퍼스트 무버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산업 분야에 따라 빠른 추격자, 패스트 팔로어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반드시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하고 있다. 창의적인 혁신 없이는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없다. 어떤 조직이든지 경쟁력을 유지하고 성장하려면 창조적 파괴, 혁신을 이끌 리더십이 필요하다. 혁신은 조직 문화에서 시작된다. 리더는 조직 내에서 실패를 용납하고 실험을 장려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리더는 조직 구성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이를 결합하여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무엇부터 바꾸어야 할까? 우리 조직 문화에 만연하고 있는 상하관계의 권위주의를 없애야 한다. 한국은 윗사람이 한마디 했을 때 그 지시가 일사불란하게 실행이 되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다. 권력자의 지시가 한국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나라도 드물다. 과거 압축 고도성장의 시대에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통했다. 이제 권위주의 조직 문화는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는 두터운 장벽일 뿐이다. 우리는 시장의 선도자,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한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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