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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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그룹이 HMM을 품는다. 자산총액 17조 원의 하림이 자산 25조 8,000억 원의 HMM을 집어삼켰다. 하림이 HMM을 인수하면 단번에 재계 13위로 뛰어오른다. 할머니께 선물 받은 병아리 10마리로 사업을 시작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또다시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2021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여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 바로 하림의 김 회장이다. 그 당시 국내 재계에서 유일하게 초청장을 받았다. 김 회장은 2011년에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델라웨어주에 있는 닭고기 가공업체인 앨런패밀리푸드를 인수했다. 2008년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경기가 극도로 나빠진 상황에서 하림의 투자는 지역 경제에 활력이 되었다.

우리 해운업계에는 2013년과 2015년에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2013년에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대한해운을 인수했다. 그리고 2015년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팬오션을 인수했다. 두 사람은 1970년대부터 전라도 지역에서 양계사업을 하며 꿈을 키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론 경쟁자로, 때론 친구처럼 관계를 맺어온 두 사람은 서로의 경영 방식을 공유했다. 그래서 인수·합병을 통해 성공적인 성장을 이끈 것도 닮았다.

하림그룹이 기존의 벌크선사인 팬오션과 함께 컨테이너선사인 HMM을 품으면 글로벌 해운물류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하림그룹은 “하림은 사이클이 있는 해운업에 경영 노하우가 있다. 앞으로 물류사업 영역이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말한다. HMM과 팬오션의 컨테이너·벌크·특수선 포트폴리오의 시너지효과를 활용하여, 글로벌 해운시장의 불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레셉스가 떠 오른다. 전 세계 교역물동량의 12%가 드나드는 수에즈 운하는 프랑스 출신의 외교관이었던 레셉스의 작품이다. 그가 운하를 파던 수에즈 지역은 무척 덥고 물을 구하기가 힘든 사막지대였다. 190㎞에 달하는 물길을 파면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레셉스는 공사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1869년에 수에즈 운하를 개통했다.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레셉스는 일약 당대 최고 스타로 떠오른다. 레셉스는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할 때 불가능을 가능케 한 사람이며,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크게 칭송받았다. 이후 1881년에, 70대 나이의 레셉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바로 파나마 운하 건설이다. 레셉스는 파나마 운하가 어렵지 않은 프로젝트라고 예상했다. 파나마 지협의 폭은 고작 60㎞로 수에즈의 3분의 1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길이는 길어도 모래 지대에 가장 높은 곳이 고작 해발 20m에 불과했던 수에즈와는 달랐다. 파나마는 산맥이 가로지르고 가장 높은 지역이 100m에 달했다. 게다가 17개의 다른 암석과 6개의 지질 단층이 존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레셉스는 이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수에즈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8년 동안 2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고서도 공사는 30%밖에 진척되지 않았다. 레셉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결국 파나마 운하 공사는 미국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레셉스는 왜 실패했을까? 자만심이 회를 자초했다. 수에즈 운하의 성공에 도취 되어서 파나마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레셉스의 아들이자 실무를 담당한 샤를은 레셉스가 파나마 운하 건설에 나서자 “수에즈 때도 운이 따라줘서 겨우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번 일은 무리”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자신감을 보이다가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며칠 전 일본의 대표 기업인 도시바가 도쿄 증시에서 사라졌다. 한때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혁신을 이끌며 삼성전자가 ‘따라잡고 싶은’ 기업이었던 도시바가 몰락했다. 74년 만에 상장 폐지되었다. 경영 위기에 빠진 도시바를 사모펀드가 인수하면서 비상장사로 전환되었다. 우리에게 기업은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도시바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1875년에 설립되었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업이었다. 당시 도시바를 비롯한 후지쓰·NEC 등 일본기업들은 글로벌 D램 메모리 시장의 90%를 차지했다. 그런 와중에 혁신의 삼성전자가 도시바를 앞질렀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칩 개발에서 셀을 고층으로 쌓아 집적도를 높이는 ‘스택’ 기술을 과감하게 채택했다. 도시바는 기존의 트렌치(밑으로 파내려가는 기술) 방식만 고집했다. 신기술로 경쟁력을 높인 삼성전자는 1992년에 D램 메모리 시장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와 도시바의 운명은 낸드플래시 전략에서 다시 갈라졌다. 도시바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저장하는 낸드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하지만 이 기술력을 발판으로 반도체 시장을 석권한 건 삼성전자였다. 1992년 도시바가 인텔과 경쟁하기 위해 삼성전자에 손을 내밀어 낸드플래시 개발 기술을 이전했다. 삼성전자는 투자를 망설이는 도시바와 달리 낸드플래시에 투자를 늘렸다. 그리고 글로벌 1위에 올라섰다. 혁신을 게을리하면 경쟁자에게 바로 뒤처질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림그룹이 HMM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를 바란다. 승자의 저주가 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를 잠재우고, 성공적인 경영으로 반드시 HMM을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키워내길 바란다. 과거 팬오션의 성공적인 인수에서 얻은 자신감에 도취 되지 말고, 끊임없이 혁신하는 HMM으로 탈바꿈하여야 한다. 레셉스와 도시바의 몰락 사례를 교훈 삼아, HMM이 글로벌 해운물류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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