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중국의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가 지난해 4분기에 테슬라를 앞선 판매량을 기록했다. 비야디는 52만 6천 대를 팔아서 테슬라의 48만 3천 대를 넘어섰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포함하면 비야디는 이미 2022년 상반기에 테슬라를 추월하기도 했다. 그동안 중국 내수 시장에 집중했던 비야디가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최근에 동유럽 헝가리에 전기차 조립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중국 정부의 전기차 산업 육성 의지와 대규모 재정 지원도 비야디의 성장세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지난해 초에 테슬라가 가격 할인에 나섰지만,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더 많은 할인율을 제시하며 수요 증가를 주도했다. 중국 정부도 외국 자동차업체들이 선점하고 있는 내연기관차를 대신하여 전기차에 각종 혜택을 부여하면서 자국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비야디의 최고경영자 왕촨푸는 1995년에 선전에서 사촌과 함께 소형 배터리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2003년에 친촨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완성차 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배터리 부문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22년 3월에는 내연기관차의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전기차 생산에만 전념했다. 테슬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기차 기업이 전기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배터리를 외주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비야디는 배터리를 자체 조달한다.

비야디의 결정적인 성장의 버팀목이 된 계기는 2008년에 워런 버핏이 이 회사의 지분을 사들이면서다. 당시 버핏은 "전기차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며 "비야디는 세계 최대의 전기차 업체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워런 버핏의 단짝,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도 생전에 “애플이 아니라 비야디가 우리의 최고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멍거는 왕촨푸를 아침에는 전설의 경영자, 잭 웰치였다가 점심과 저녁에는 발명왕 에디슨이 되는 사람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전기차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이 갓 지난 왕촨푸는 버핏이 제안한 거액의 투자를 거절했다. 그리고 버핏의 20% 지분투자에만 동의했다. 당황한 쪽은 버핏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안도했다. “그는 회사를 팔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좋은 징조였다.” 버핏이 미국 언론에 털어놓은 후일담이다. 왕촨푸는 일론 머스크의 요란함이나 알리바바 회장 마윈의 쇼맨십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항상 일에만 열중한다.

비야디의 전기차 도전은 배터리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배터리의 미래 예측 방향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전기차 운명을 결정한다.” 주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며 왕촨푸가 한 말이다. 배터리의 성능 향상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했다. 핵심 재료인 리튬 광산도 사들였다. 차량용 반도체 칩 개발에도 성공하여, 세계적으로 처음 전기차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이것이 테슬라를 제칠 수 있었던 결정적 무기가 되었다.

비야디는 부진과 침체, 실패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고비마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에 막대한 보조금 혜택을 주면서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비야디 전기차를 시범사업 모델로 선정해 선전 시내 2만 대 이상의 택시를 비야디의 2011년 신차 E6로 바꾸기도 했다. 비야디는 E6 이후 역대 왕조(진·한·당·송·원) 이름을 전기차 명칭에 붙였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비야디의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비야디의 급성장에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왕촨푸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다. 비야디의 경영전략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생태계 경제의 구축이다. 일찍이 전기차의 수직계열화를 이룬 왕촨푸 회장은 개방형 혁신을 강조하며, 국경이 없는 협업을 중시하는 생태계 경제가 향후 비야디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비야디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생태계 경제 구축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이제 기업의 경쟁은 개별 기업 간의 경쟁이 아니다. 다양한 협력사를 포함한 기업 생태계 간의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생태계 경제는 지난해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집중적으로 심도 있게 다루면서 세계 경제의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생태계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고객이 원하는 형태로 제공하기 위해서 뭉친 서로 연결된 디지털·물리적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일컫는다.

생태계 경제에서 기업은 자산·정보·자원을 공유하면서 개별 기업이 이룰 수 있었던 것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특정 기업의 강력한 브랜드와 시장지배력만으로는 달라진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없다. 기업은 시너지효과를 가져오는 다른 기업과의 협력을 통하여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창출해야 생존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에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규제혁신 우수사례가 화제가 되었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신공장 건립을 위한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줄이기 위해서 울산시에 도움을 요청했다. 울산시는 전담 인력 파견을 위하여 조례를 개정하고 ‘전기차 인허가 전담 사무관’을 파견했다. 3년 걸릴 신공장 허가를 1년으로 단축했다. 이를 통해 발생한 경제적 효과는 약 3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비야디는 어떻게 테슬라를 따라잡았을까? 그 해답은 생태계 경제에서 왕촨푸의 비야디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에 앞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전기차 육성 정책이 시의적절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과 정부 모두가 반듯이 귀담아들어야 할 참으로 중요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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