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닉스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몇가지 경이로운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선 회사설립 초기에 직원들에게 봉급을 많이 주고 대우가 좋다고 하여 경쟁 포워딩업체들로부터 부러움과 시기를 한꺼번에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 그 첫번째다. 또하나는 IMF 사태 발생이후 부도가 난다는 등 근거없는 악소문이 끊이질을 않았음에도 회사는 오히려 발전하고 더욱 튼튼한 기반을 다져나감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제 세계속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복합운송 기업으로까지 성장한 (주)보닉스쉬핑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 전문 -(주)보닉스쉬핑은 90년 12월 17일 창립되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창립 10주년을 맞는 셈이다. 보닉스쉬핑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는 12월 16일 한강 유람선을 빌려서 10주년 기념 선상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이 파티에는부산, 인천, 대구 공항 지점의 직원들은물론이고 해외지점의 식구들까지 모두 모여 1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더욱 회사를 발전시키기로 다짐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최고 봉급·대우 "선순환"(주)보닉스쉬핑은 우리에게는 "보닉스해운항공"으로 더 익숙해져 있다. 해운과 항공등 모든 복합운송업무를 하게 되면서 주로 등록된 보닉스쉬핑이라는 사명보다는 "보닉스해운항공"이라는 명칭을 많이 써왔기 때문이다. 창립 당시 김영효사장(42)은 "우리나라 포워딩 역사가 짧아 제대로 된 복합운송업체가 없으므로 우리가 본격적인 NVOCC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영효사장은 당시 아신해운, 제임스 포워딩 등에서 영업을 익힌 상태였고 나머지 주주 형태로 참여한 임직원들도 대부분 영업에는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처음부터 포워딩업체 경영에 자신이 있었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아직 "월드와이드 콘솔리데이터"라는 개념이 확립이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닉스가 세계 전지역을 대상으로 시작한 LCL 콘솔업무는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성장 일로를 걷게 되었다. 특히 奧地(오지)에 대한 콘솔업무 개발에 나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태평양등지의 오지 LCL서비스를 개발해 나갔다. 특히 남아프리카 같은 경우는 전체 컨테이너화물 중 LCL카고가 70%를 차지하기도 했었다.처음부터 영업이나 경영에 자신이 있었던 김영효 사장은 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사무실을 외국인 회사처럼 꾸미는 등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직원들에게는 실제로 복합운송업체들 가운데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 직원들에게 업계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니까 직원들은 열심히 일을 하게 되고 그에따라 회사의 이익이 점점 커지게 됨으로써 좀더 직원들에게 잘 해주게 되는 회사 경영의 선순환이 시작됐던 것이다. 이런 선순환은 직원들에게 업무를 믿고 맡기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부분만은 직접 챙기는 김영효 사장의 탁월한 경영감각에 힘입은 바도 크다.95년부터 북한 서비스도보닉스쉬핑은 또한 창립당시부터 프로젝트카고 수송에도 뛰어난 면모를 갖고 있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91년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연구소의 프로젝트 카고나 발전기 같은 중량물은 물론이고 국방부의 군수물자도 수송하게 되었고 이것도 초기에 보닉스가 발판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보닉스가 LCL카고를 많이 취급해 왔지만 FCL이 적었던 것만도 아니다. FCL은 주로 상장회사들과의 거래가 많았다. FCL카고는 매출액만을 기준으로 볼 때 아직도 전체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큰 비중인 셈이다. 사업초기에 포워딩업으로 단단히 기반을 잡은 보닉스는 95년부터 부산-나진 컨테이너항로를 운영하고 있는 동룡해운의 집화대리점을 맡아 대북한 컨테이너수송에 나서게 된다.김영효 사장은 당시 주로 공산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미얀마나 라오스로 보다는 가까운 북한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김영효사장은 95년부터 중국의 연길에 총사장 자격으로 주재하면서 북한을 통한 컨테이너수송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보닉스의 대북한서비스는 그러나 그때까지 컨테이너화물 취급 경험이 없는 한국특수선의 자회사인 동룡해운을 대리하는 성격이어서 1997년에 동룡해운과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함께 끝나버리고 말았다. 포워딩업으로 대북사업으로 잘 나가던 보닉스에게 어려움이 닥친 것은 97년 사무실을 현재의 종로구 서린동 서린빌딩으로 이전하고 부터. 몰론 당시는 IMF가 닥쳐오는 시기였기 때문에 모든 포워딩회사들이 긴장을 하고 있었고 보닉스도 조직과 비용을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막 시작하려던 시기이다.업계에서는 보닉스가 1차 부도를 냈다, 정치권의 비자금을 받아 썼다 등등의 악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당좌거래가 전혀 없었던 보닉스의 경영진들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동안 보닉스의 발전을 시기하던 일부 세력의 음모로 생각한 보닉스 경영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금력을 동원하는 등 6개월여를 고생해야 했다.지난 10월 국적선사 등록이런 가운데서도 돈벌이가 될만한 사업에는 과감하게 진출하기도 했다. 이미 남북한 컨테이너항로를 운영하여 경험을 쌓은 보닉스는 98년부터 4,000dwt짜리 벌크선을 인수하여 벌크수송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99년 12월 인천-남포간에 컨테이너정기선을 취항시켰지만 금년 7월에 이 서비스는 중단했다. 북한으로 해상수송이 지속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반면에 수익성 전망은 어두웠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한 정상회담등으로 경의선 철도 복원사업이 추진되면서 사업의 미래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판단도 철수에 한몫을 했다.대신에 보닉스는 99년에 인수한 Bonex Glory호(7,000dwt급)에 이어 2000년 10월Bonex Pride호(7,000dwt급)를 인수하면서 지난 10월 16일 해양수산부에 정식적으로 외항화물운송사업(국적선사)을 등록하게 되었다. 이 외항운송사업 등록은 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 정부로부터 지난 10월 3일 同國 항만에서의 선박입출항 및 선적업무에 대한 권한을 위임 받은 것과 관련이 있다. 보닉스는 파푸아뉴기니에 현지법인인 Bonex Shipping (PNG) Ltd.를 설립하여 외국계 회사로서는 처음으로 입출항 대행업무와 선적영업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보닉스쉬핑의 향후 장기적인 목표는 "보닉스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복합운송 브랜드로 만드는 일"이다. 김영효사장은 오로지 물류에만 전념할 것이며 사업을 다각화하더라도 물류와 관련된 것으로만 다각화하겠다고 밝혔다.보닉스는 현재 중국의 대련, 천진, 청도 3개소와 미국의 LA, 뉴욕에 각각 해외지점 혹은 현지법인을 갖고 있다. 전체임직원의 수는 국내 99명, 해외 50명등 총 149명이며 보유선박 2척에 근무하는 해상요원(선원)도 38명에 달한다. 대단히 많은 임직원 수이지만 98년, 99년, 2000년 계속하여 조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한 결과 전체적으로 좀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사업분야는 국적선 외항운송사업, 차터링사업, NVOCC사업, 포워딩업, 항공화물운송업 등으로 다양화 되어 있다.보닉스가 국내에서만 올리는 연간 매출액이 400억원정도에 이르고 있다. 회사 창립 10년만에 우리나라 최정상급의 복합운송 기업으로 자라난 것이다. 美 현지법인에 적극 투자보닉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종합물류회사라는 목표에 맞게 향후 물류부문에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2001년부터는 다시 회사의 고속성장기라고 보고 새롭게 투자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회사에 50억원정도의 자기자본을 마련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가 오는 12월 6일에는 유상증자를 실시하여 자본금 규모를 현재의 11억 8,250만원에서 17억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렇게 조성된 자금은 외항운송사업의 경우 틈새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복합운송부문에 있어서는 미국의 현지법인을 歐美국가에서도 가장 훌륭한 복합운송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할 방침이다. 현재 미국의 현지법인 Bonex Shipping & Air Freight USA Crop.은 캘리포니아의 토랜스지역에 물류창고를 매입하고 오는 12월말에 입주를 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내년부터는 미국현지법인을 중심으로 미국 본토는 물론 중남미 연계수송도 본격화 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2년후인 2002년도에는 양산에 물류창고를 하나 매입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보닉스는 앞으로 BtoB 비즈니스에도 노력을 경주할 방침이다. 보닉스는 삼성전자와 올해 초 계약을 하고 이 회사가 해외로 수출하는 전자부품등에 대해 화물부킹에서 운송후 정산까지의 전과정을 전자상거래 형태로 온라인에서 거래를 하고 실제로 그에따라 운송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6월달에 사이버물류팀이 社內에 생긴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앞으로 국내 유명기업과의 BtoB 거래 형태를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인터뷰 / (주)보닉스쉬핑 김영효 사장"포워딩업체로서 프라이드를 가져라"- 대단한 성공을 거뒀는데 어떻게 하면 포워딩업체 경영에 성공한다고 보는가?"우선 회사를 키우는데 전념해야 한다. 사실 난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집도 없이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우리나라 포워딩업체 사장님들을 보면 회사가 크기도 전에, 수익이 발생하기도 전에 먼저 챙겨 가는 것부터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이래 가지고야 성공할 수가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일반 직원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지만 포워딩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정당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다. 좀더 프라이드를 갖고 물류에 대한 종합컨설던트로서 고객을 대해야 한다. 우리회사의 사훈이 명예, 신의, 사랑이다. 우리는 포워딩업체로서 프라이드를 상당히 중요시 하고 있다."- 최근 사업의 다각화를 많이 서두르시는 것 같은데..."우리나라의 복합운송업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예를 들어 통관을 할 수 없다든가 하여 복합운송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여건이 있다. 따라서 수입선을 다양화시켜 놓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 복합운송기업이 어려워지는 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의 다각화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보닉스의 경우 어디까지나 물류에 관해서만 사업의 다각화이다. 물류 외의 산업분야에 진출했다가 실패한 경험도 있는데 역시 우리는 물류산업에 전념해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최근 복합운송업계는 업체들간에 경쟁이 심화되어 어려움이 많은 것 같은데..."우리나라 포워딩업체들의 일부는 아직도 운임 차이에만 의존하여 먹고 살려고 하고 있다. 최근 동남아지역에서의 LCL 운임 덤핑 경쟁은 사실 포워딩산업의 기반 자체를 무너트리는 것이다. 왜 자신의 밥통까지 깨트리면서 경쟁을 할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경쟁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독자들이나 하주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보닉스는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제대로 된 물류기업으로 성장시켜 나가겠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지금까지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줬고 앞으로도 대기업들의 수준까지 최대한 맞추어 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보닉스만 이용하면 물류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다 해결된다는 인식을 하주들이 가져주기를 우리는 희망한다. 보닉스만 이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어디에 어떤 화물을 얼마나 수송하든 다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고 좀더 양질의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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