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업종이 있다. 해운분야에서도 해운중개업의 경우는 좀더 깊숙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분야이다. 이런 전문직종에서 나름대로 성공하려면 그야말로 그 업무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면 안된다. (주)海榮인터내쇼날은 많은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벌크 차터링 브로커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4명의 브로커는 대부분 국적선사 출신이어서 선사마인드를 갖고 여타 브로커들보다 경쟁력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영인터내쇼날의 탄생을 설명하려면 Fearnleys Korea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고, 현재 실질적으로 모든 업무를 이끌어 가고 있는 張榮煥이사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Fearnleys로부터 분리 독립장영환이사(48세)는 1978년말에 海運公社(大韓船洲의 전신)에 입사하여 부정기선 영업부에 배치를 받았다. 일시적으로 컨테이너과에도 배치가 되기도 했던 장이사는 80년 5월 뉴욕주재원으로 파견되어 미국땅을 밟게 된다. 한달 뒤인 80년 6월에는 현재 해영인터내쇼날 대표이사겸 사장인 하영규씨가 대한선주 뉴욕본부장으로 부임해 오면서 장이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후 大韓船洲가 韓進海運으로 흡수통합 되었고 장영환이사는 88년 1월, 한진해운 부정기선2과장을 맡아 본사로 돌아왔다. 그러나 장영환이사는 몇 개월 후 드라이벌크 차터링업무를 신설 확장해려는 노르웨이의 대형 해운중개업체 Fearnleys에게 스카웃되어 Fearnleys Korea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장이사는 Fearnleys의 국내 드라이 벌크 차터링업무팀을 탄생시키고 이끌어 가게 된 것이다.그러나 Fearnleys는 외국계 해운중개업체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해운중개 현실과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93년 11월 드라이벌크팀은 Fearnleys 본사와의 상의한 끝에 신설회사를 만들어 분리 독립하기로 "우호적인 합의"를 했다. 이에따라 1993년 11월에 탄생한 것이 (주)海榮인터내쇼날이다.한달 후인 1993년 12월 海榮은 현재 위치인 석탄회관 3층으로 이전을 함으로써 회사발전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Fearnleys Korea의 탱커팀이 코스마린이라는 회사로 독립하여 역시 석탄회관으로 이사를 온 것은 그 후의 일이다. 海榮의 출발 당시의 인원은 7명으로 브로커는 5명이었다. 대표이사 사장은 하영규씨가 맡았지만 현재 하영규사장의 경우는 중개업 실무에는 간여하지 않고 있다. 하영규사장은 뉴욕, 뉴저지 항만의 한국대표로서도 일을 하고 있다. 작은규모로 출발한 海榮이지만 드라이벌크 차터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있었던 만큼 성장의 속도가 눈부신 것이었다. 특히 회사 설립 1년후인 94년부터 96년까지 3년간은 해운경기의 호황등을 반영하여 큰 재미를 보았던 시절이다. 95년의 경우는 해운중개수수료 수입이 업계 전체에서 5위 안에 드는 좋은 실적을 올리기도 했고 이 때문에 해영인터내쇼날이 더욱 유명해졌다.외국의 유명파트너들과의 거래관계도 매우 긴밀했다. 영국의 클락슨이나 SSY와 같은 브로커들은 처음부터 중요한 거래처였다. 일본과 싱가폴 등지의 해운거래 마켓에서도 점차 海榮의 신용도는 쌓여져 갔다.파나막스 업무 60% 차지해영인터내쇼날이 취급하는 업무는 드라이벌크 차터링 한분야이며 선종도 거의 파나막스와 케이프사이즈로 집중되어 있다. 선종별로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핸디사이즈가 10%, 파나막스가 60%, 케이프사이즈가 30% 정도 된다. 현재 근무인원은 9명으로 회사 출발 당시와 인원수는 비슷한 상황이다. 외형적으로 떠벌리는 것 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는 것이 해영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역시 회사의 핵심인원인 브로커는 4명으로 창립 당시와 같다. 취급업무가 벌크선 차터 브로킹으로 단순화 되어 있지만 카고 브로킹업무도 일부 하고있다. 석탄관계로 미국의 하주들과 계약을 맺고 카고 브로킹업무를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해영인터내쇼날은 모든 해운중개업체들이 그렇듯이 IMF 사태로 힘들어진 98년 이후 실적이 좀 줄어들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 들어 해운시황이 회복되면서 다시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 올해의 수입은 전체적으로 지난해 보다 15-20% 향상될 것으로 전망이 된다.대부분 船社 출신 브로커(주)해영인터내쇼날의 특장점은 풍부한 경험을 갖고 클라이언트들을 위한 서비스에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이 회사의 실질적인 리더 장영환이사는 대한선주부터 부정기선쪽 업무만 23년 정도를 맡아본 전문가 중의 전문가이고 나머지 3명의 브로커들도 국적선사에서 근무했던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4명의 브로커들이 대부분 국적선사 출신이라는 것도 자랑거리다. 장영환이사가 대한선주-한진해운 출신이라는 것은 앞서 밝힌 대로이고 케이프사이즈를 담당하는 최병성과장이 한라해운출신, 파나막스를 담당하는 김태환과장이 삼선해운 출신이다. 이들은 선사출신이기 때문에 선주의 마인드에서 비즈니스를 엮어나가므로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주 마인드가 되다보니 클라이언트들의 이익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서비스 정신에 투철하다는 설명이다. 앞으로도 직원을 뽑을 때 타 브로커회사의 직원보다는 국적선사 출신을 쓰겠다는 것이 이 회사 경영진의 생각이다. 선사출신들이 많은 관계로 (주)해영인터내쇼날은 해외 브로커 이외에도 외국선주들과 직접적인 거래 채널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 이탈리아, 중국 등지의 선주들과는 직접적인 비즈니스 거래를 함으로써 주위로부터 신뢰와 평판을 얻어 나가고 있다. 오로지 한길 벌크 차터링海榮의 또다른 장점 중의 하나라면 은근과 끈기이다. 지난 93년 창업하여 현재까지 오는 동안 회사의 외형적인 규모는 늘어난 것이 없고 오로지 한길 드라이벌크차터링 업무에 매달려 왔다. 발전이 좀 더딘 것이 않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앞으로도 한눈 팔지 않고 전문적인 실력을 늘려나가기에 더욱 노력하겠다는 것이 장영환이사의 생각이다. 오로지 벌크차터링과 오퍼레이션 한길로만 달려온 해영인터내쇼날. 이제 국내 유명 브로커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브로커로 발돋움 할 날을 기대해 본다. 인터뷰 / (주)해영인터내쇼날 張榮煥이사"브로커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 해운중개업체로서 성공을 거두려면 어떻게 경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중개업체로서는 강한 책임감이 매우 중요하다. 브로커의 역할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선사나 하주가 배를 빌리거나 빌려줄 때 성약이 되어 마무리 단계에 까지 브로커가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외국어, 만국 공용어인 영어를 하주 잘 하도록 실력을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외국인들을 설득시키고, 가이드하고 때로는 강력한 주장을 펴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하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브로킹업무를 하는 B to B 사이트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해영으로서 정보화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인터넷으로 브로킹업무를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인터넷의 기본은 만인이 공용하도록 정보를 오픈시키는 것인데 차터링 브로킹 비즈니스의 성격상 십중 팔구는 오픈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니 활성화 되기는 참으로 힘이 들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로서는 이런데 한눈을 팔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기존 고객들에게도 자칫 피해를 줄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오로지 실력을 배양하고 고객에게 실질적으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시급하다."- 국적선사 출신의 브로커가 많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는가?"선사 마인드를 갖고 선사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에 다른 브로커들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외국선주들과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리고 타 브로커회사에서 근무했던 사람을 스카웃하여 쓰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절대로 경쟁회사의 인원을 직원으로 채용한 적은 없다."- 종교관이나 인생의 좌우명 같은 것이 있다면?"거창하게 좌우명 같은 것은 없다. 종교는 집에서 불교를 믿으니까 불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신조 같은 것을 굳이 얘기하라고 하면 인간으로서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나 인간으로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장영환이사 약력>△1953년 충북 청주 출생 △ 72년 경기상고 졸업 △72년 3월 고려대 경영학과 입학 △ 78년 해운공사 입사 △ 80년 5월 대한선주 뉴욕주재원 △ 88년 1월 한진해운 부정기 영업2과장 △ 88년 5월 Fearnleys Korea 벌크팀장 △ 93년 11월 (주)해영인터내쇼날 설립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