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28 / 콤파스해운(주)핸디사이즈 벌크선 전문 선진형 브로커 창립 5년 海大 선후배 5명 결속력 탄탄 젊음의 최고 덕목은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업도 젊음을 유지해야만 진취적이 되고 그에따라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해운업계에도 최근 젊은 경영자들이 이끌어 가는 젊은 기업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이번주에 소개하는 해운중개업체 콤파스해운도 젊은 인재들이 모여서 만든 일종의 "벤처캄퍼니" 같은 회사이다. 이 회사는 96년 6월 창립당시부터 社員持柱制(사원지주제)를 시행하여 주주들이 회사를 이끌어 가는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우리나라 해운중개업체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 - 전문 -해운중개업체 콤파스해운(주)의 탄생은 어떻게 생각하면 필연적이었다. 96년 당시에는 우리나라 국적선사나 대형 해운중개브로커회사에 근무하던 중견 간부들이 너도나도 독립하여 브로커회사를 하나씩 만들던 때이다. 해운중개업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브로커인 중개업체들이 생겨났고 한 회사가 두 회사, 네 회사로 쪼개지는 핵분열 현상이 일어나던 시기이다.海大 출신 5명의 브로커 해양대학교 항해과 37기 동기생인 이은원이사(당시 한국유니버살해운 근무)와 윤광종이사(당시 코리아나벌크해운 근무)는 이런 핵분열 현상을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직원들이 모두 오우너십을 갖고 같은 조건으로 일하는 멋진 회사를 만들어 보기로 하고 96년 6월 공동 창업에 나서게 된다. 당시 손잡고 함께 일하게 되었던 브로커는 모두 5명. 30대 초반 중반의 젊은 브로커들이 함께 모여 회사를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에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등 비판적인 목소리들도 들렸었다.하지만 5년이 흐른 현재 콤파스해운은 창립당시 보다 더욱 견실한 중견브로커로 발돋움 하여 초기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입증했다. 이은원, 윤광종 양이사가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해양대학 출신 브로커가 5명이 있는 것도 창립당시와 똑같다. 이은원, 윤광종 이사 외에 김명진 부장(해대 42기), 김흥대 부장(해대 42기), 서영환과장(해대 46기) 등 5명의 브로커가 밤낮없이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해사프레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콤파스해운은 2000년에 총 117만달러의 수수료 수입실적을 올려 해운중개업체 가운데는 6위까지 랭킹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밤새워 가면서 근무하는 등 자신의 직무에 열심인 직원들의 노고가 정당히 평가된 결과로 보인다.핸디사이즈 벌크만 전문콤파스해운의 특징은 핸디사이즈 벌크화물과 선박만을 취급한다는 점이다. 핸디사이즈이면 화물종류가 스틸이든, 콜이든, 로그이든 상관없이 선박을 취급하고 있다. 그것도 국내 선주와 외국 선주를 연결시켜 주는 업무가 메인이다. 이에 대해 윤광종 이사는 "핸디사이즈를 특화했다기 보다 아는 것이 그것 뿐이고 한우물을 더 깊게 파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콤파스해운의 젊은 브로커 5인이 모여 의욕을 갖고 출발한 회사이지만 회사 설립초기에 어려움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입이 많지 않은데다가 당시에는 통신비, 인건비등의 지출이 엄청났었다. 그러나 젊은 브로커 5인은 해운중개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주주회사"라는 점 때문에 성공적인 모델이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밤 11시 이전에 퇴근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밤을 꼬박 새우면서 까지 일을 했다. 이에따라 콤파스해운은 설립 초기인 96년과 97년에 오히려 급격한 외형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콤파스해운은 젊은 브로커들이 운영하는 회사이지만 나이에 비해 해운실무경험이 많은 것이 또하나의 장점이다. 이은원이사나 윤광종이사의 경우 1988년부터 핸디사이즈만 전문적으로 다뤄와 각각 14년동안 핸디 브로커로서의 업무경험이 있으며 나머지 3명의 브로커들도 모두 8년이상의 경험을 갖고 있다. 잘 나가는 콤파스해운이었지만 97년말의 외환위기와 IMF 관리체제 전환은 상당한 시련이었다. 선사들의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사람들이 브로커를 새로 차리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해운중개업계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갔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국적선사들이 해외지사 영업을 강화하면서 직접 용선브로킹 업무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 중개업체들의 업무영역이 자꾸 축소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인터넷 통신의 발달도 해운중개업체에게는 좋은 일이 결코 아니다. 당장에 인터넷이 큰 위협은 되지 않지만 앞으로 해운중개업체들의 생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주회사" 강한 결속력그러나 콤파스해운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 것은 앞서 지적한 대로 해운업계 최초 주주회사로서의 자부심과 그에따른 조직원들간의 단결력 덕분이었다. 이은원이사의 적극성, 윤광종이사의 포용력등 어찌보면 서로 다른 개성들이지만 임직원 전체가 아주 잘 조화가 되어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해양대학교 선후배라는 인연도 있지만 이들은 핸디사이즈 전문브로커로서 남다른 결속력을 갖고 있다. 각자의 업무영역은 화물이나 항로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국적선사별로 나누어 맡고 있다. 임직원들간의 화합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회사의 경영방침 때문에 직원들간의 갈등은 있을 수가 없다. 만약 직원들간에 업무상이나 조직관리상의 문제를 놓고 이견이 생길 경우 장시간에 걸쳐 토의하여 결론을 내는 전통을 갖고 있다.현재 대부분의 해운중개업체들이 경영상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러나 콤파스해운은 핸디사이즈 분야라는 특정분야에서의 전문브로커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들을 쉽게 극복하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 전문브로커로 기록될 것임을 우리는 미루워 짐작할 수 있다. 이은원 대표이사는 "콤파스해운이 잘 되는 것보다 우선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잘 육성되어야지만 중개업체들도 존립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해운산업 발전에 미력한 힘이나마 일조를 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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